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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cs and Society Archive

[1989년] ‘4․3 진상규명을 위하여’ - 41주기 4․3 추모 토론회 -

by 淸風明月 2022.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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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전개”

‘4․3 진상규명을 위하여’

- 41주기 4․3 추모 토론회 -

 

 

때 : 1989. 4. 3

곳 : 제주시민회관

토론자 : 고창훈(제주대학교 교수, 행정학)

김용해(제주도문제연구소 소장)

김명식(아리리 연구원 원장)

강창일(동경대학교, 한국사 박사과정)

문무병(굿 연구가)

이지훈(추모제 준비위:사회)

주관 : 41주기 4․3 추모제 준비위원회

 

사회(이지훈) : ‘4․3 진상규명을 위하여’라는 주제를 가지고 토론회를 갖도록 하겠습니다. 토론에 참석하신 선생님들께서는 우선 4․3을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 간단히 말씀을 해 주시고 나서, 토론의 주제가 그 ‘진상 규명을 위하여’에 있다는 점을 명심하시고, 주제에 어긋나는 내용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왜냐하면, 4․3에 대한 객관적이고 총체적인 연구․조사 작업이 미흡합으로 해서, 아직은 그 성격 규정에 대해, 시론적인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고, 그러한 문제들은 본격적인 학술 세미나 등을 통해 구체적으로 정리되어 나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는 한정된 시간이기 때문에, ‘왜 4․3은 진상 규명이 되어야 하며, 그 진상 규명은 어떻게 할 수 있는가’라는 제언에 촛점을 맞추겠습니다.

이 자리에 참석하신 도민들도 나눠드린 갱지에 진상 규명을 위한 제언을 적어 주시면, 하나로 모아 가지고 ‘41주기 4․3 추모제’의 결론을 도출시켜 보겠습니다.

우선, 고창훈 선생님의 말씀을 들어보겠습니다.

 

고창훈: 우선, 우리 4․3이 지금까지 거의 말을 못해 왔고, 또 연구라고 해봐야 총체적인 연구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말씀드려야 하겠군요. 그래서 저는 어떤 입장에서 연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연구가 문제제기의 성격을 갖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전제로 이야기하겠습니다.

우리의 4․3 에 이어서 중요한 것은 47년 3․1 대회가 아닌가 합니다. 왜냐하면 바로 우리의 3․1절 기념식을 못하게 했다는 것, 아울러 거기서 죽었다는 것이 민중에게 어떤 깨침을 주었다고 봅니다.

미군정에 대한 인식은 아무리 말로 해서도 되는 것이 아니고, 실제 경험을 했을때 바로 그것이 어떤 세상을 보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그리고 3․1 시위가 주는 2차적인 의미는 미군정 G-2 보고서의, ‘제주도 민중의 75% 정도가 좌익적 주장을 하고 좌경적 경향이 있다’ 고 하는, 내용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상당히 큰 문제거리가 됩니다. ‘그 당시 시위에 참여했던 제주도 사람은 약 4만명 이상이 되었다’ 라고 하는 이 수치 역시 G-2 보고서 분석에 근거해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결국 ‘빨갱이 참여’라는 근거가 어디에 있다는 말입니까? 이 문제 역시 우리가 4․3 을 연구하거나 총체적으로 밝히기 위해서는 고려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제주도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이 죽었는가 하는 것보다는, 항쟁과 수난이 한꺼번에 같이 복합된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 4․3 이다’ 라고 저는 말하고 싶습니다.

여기에서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이 언제 죽었느냐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대강, 48년 10월부터 다음 해 4월까지일 것이고,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일종의 대결 항쟁으로 수반된 죽음이 아니기 때문에, 상당히 큰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아집니다.

왜 그런가 하면, 좌․우가 대결한다든가 군정과 싸운다든가 하는 점도 있지만, 이 시기의 죽음은 대부분이 양민이였고, 그것도 항쟁이 끝난 한참 후에 였고, 그 형태 또한 마을별 집단 학살로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상당히 주시해야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보통 제주도민들이 쓰는 말중에 세 가지 유형의 욕이 있습니다. 첫째, 몽고의 침략과 관련되어 나오는 것으로 ‘몽근놈의 새끼’. 둘째, 일제 침략과 관련된 것으로 ‘쪽바리’. 셋째로 4․3과 관련되어 나오는 것이 ‘양코배기 놈’과 ‘육지 것들’이라는 말입니다. 아직까지 우리에게 남아있는 이러한 언어들은 무엇인가? 이것이 항쟁이 실패했던 아픔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과연 ‘제주도의 정신’은 무엇인가? 자주의 사상과 평화의 사상이 제주도의 정신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러한 것들이 위협을 받을 때, 그것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것이 제주도 사람의 역사 전체에 흐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용해: 작년에 제가 서울에서 역사를 공부하는 몇 사람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4․3 을 아주 잘 아는 듯이 그분들에게 이해시키려고 한 때가 있었습니다. 얘기를 전부하고 나니, 서울사람들은 제게 이런 말을 합디다. “제주도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면 성인들이군요. 제주도에서 4․3 을 40년 동안이나 감추어 두고서 한 마디 말도, 한마디 호소도 못하는 그런 사람이 제주도 사람이라면 바보가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그러한 아픔, 그러한 고통을 40년 동안이나 참을 수 있는 것은 얼나마 사랑과 포용과 너그러움이 많은 성인입니까?”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는 가슴스리는 아픔을 참 많이 느꼈습니다.

이러한 4․3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저희 ‘제주도문제연구소’ 는 제주도 곳곳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 봤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지마는, 몇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런 이야기를 합디다.

4․3 에 대하여 민주항쟁이다, 폭동이다하는 이야기보다 또 4․3 이 과연 어떠한 이야기보다 또 4․3이 과연 어떠한 배경에서, 어떠한 성격으로 일어났느냐하는 것을 연구하고 찾고 이론을 전개하는 것보다 우리의 아픔을 해결하는 방법은 없겠는가? 40년 동안 아무말 못하고, 울분으로 남겨진 이 가슴을 좀 같이 해 주고, 아들대에 이어서 손자대까지 ‘연좌제’란 족쇄를 꽉 묶어 놓고, 제대로 하나도 일을 못하게 하는 이러한 아픔을 같이 해 달라! 이러한 것을 해결하는 길들은 없겠는가? 또 이호리에 사는 한 사람은 이런 이야기도 합니다.“내 나이 지금 70세가 다 되어 이제 내일 모레면 죽을 때가 됐다. 죽는 것은 하나도 억울하거나 슬프지도 않지만, 죽은 다음에 그 정뜨르에서 죽었던 친구들, 삼춘들의 영혼을 만났을 적에 ‘우리는 그때 다 죽어서 이렇게 잠도 못 들고 있는데, 당신은 그래 살아가지고 40년 동안 한 마디 호소나 해 봤소? 어떤 해결책을 강구해 봤소?’라고 이야기할 적에 그 영혼들에게 자신이 무슨 말을 하겠는가? 제발 죽은 다음에 그 영혼들을 만나서 ‘우리는 이렇게 당신들을 위해 애썼소? 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건덕지라도 하나 만들어 달라.” 이런 이야기를 합디다. 이런 이야기는 수없이 많습니다. 제주도 곳곳마다에 이러한 원한과 사무침과 통곡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4․3 진상규명에 대해 이렇게 계획을 세웠습니다. 다섯까지 단계로 해서, 첫 단계로는 제주도민 피해자들은 4․3 에 대한 해결책은 어떻게 하기를 바라고 있느냐 하는 것을 한 번 알아 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방법을 따라가 보면, 그게 하나의 옳은 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결과를 그저께 ‘4․3 보고대회’를 통해서 발표를 했습니다. 그리고 2차 단계는 각 마을 별로 진상조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설문조사를 통해 보니까, 민간 단체에서만 조사할 게 아니라, 정부와 합동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 대다수의 의견이였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40년 동안의 피해의식, 도민들의 억압을 받았던 그 아픔이 있기 때문에 그러한 조사 결과가 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아뭏든 도민들이 바라는 것은 ‘민간 단체와 정부가 합동으로 조사해 달라, 그러면 더 속시원히 말할 수 있고 두려움도 없을 것이다’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 마을별로 조사하는 것을 2단계로 잡고 3번째 단계에서는 이 조사했던 것을 근거로 해서 국회 차원으로 거론하여 정치적인 문제로 끌어 올려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국회에서 조사권을 발동시켜야 할 것임으로 ‘4․3 진상조사단’이 구성되어 제주도에 내려와서 직접 증인들로 하여금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국회 차원에서 대정부 질의를 통해서 정부에서 해명하기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과연, 4․3 의 문제가 무엇이고, 4․3 의 실책은 무엇이며, 그때 피해 본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해야할 것이냐는 것을 정부 입장의 해명을 듣겠다 이겁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미국 정부의 해명까지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4․3이 일어났던 해가 미군정하이므로 당연히 그 당시 모든 권한을 미국 정부가 가졌기 때문에, 우리는 미국 정부에 대해서도 그 해명을 요구하겠다는 것입니다. 정부의 해명과 미국 정부의 해명을 들은 다음에, 4․3 으로 피해 본 모든 사람이 정말로 치유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고, 그분들에 대한 보상이 무엇이냐를 강구하겠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따르면 위령탑, 위령제 실시 등 기타 여러가지가 많이 나오겠죠. 일단 이렇게 하는 것이 4․3 문제를 해결하는데 중요한 것이 아니겠느냐, 이것이 저희들 ‘제주도문제연구소’가 생각하는 바이고, 이에 따른 방법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방법이 꼭 옳다고 고집하는 것은 아닙니다.

 

김명식: 우선, 이렇게 어려운 시간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을 베풀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그리고, 참고될 말씀을 많이 들을 수 있는, 40년만에 들을 수 있는 모처럼의 기회가 되어서 반갑습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 경찰관, 정보부, 군인, 각 동네 할아버니도 다 나와서, 다 나와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노력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고 생각하면서, 저 밖을 쳐다봤더니, 밖에는 무시무시한 광경이 전개되고 있었습니다. 대단히 가슴 아픈 일입니다. 저 광경 속에는 4․3 사건이 그대로 반영되고 있지 않는가 하고 생각할 때, 저가 4․3 을 보는 전제 조건이 있어야 합니다. 그 전제 조건이 무엇이냐 하면 제주도민의 한을 풀기 위하여, 이 ‘위하여’라는 문제입니다. 또 하나는 조목조목 밝혀서 원인과 결과를 똑 떨어지게 해서 하는, 그 ‘무엇무엇을 해서’라고 하는 이야기, 그 다음에는 그것을 잘한 다음에 ‘내가, 또는 높은 사람이 보상의 대책을 마련하고’등등의 얘기..

이것은 4․3 을 풀자는 것이 아니며, 4․3을 해결하자는 입장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4․3을 보는 나의 시각, 나의 의지, 그것이 먼저 설정되어야 하고, 그것은 4․3 을 해결하거나 풀거나, 또는 내가 해설하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4․3 을 사는 것입니다. 4․3 을 사는 것, 그것은 어떻게 사는 것이냐 하면, 죽어간 사람들과 똑같이 사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가 이 자리에 남아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우리는 다 그 사람들이 가는 길을 쫓아서 가는, 자기 삶을 선택하는 입장에 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선택이냐, 그분들이 가시는 길을 따라서 가는, 쫓아서 가는, 쫓아서 사는 이러한 입장으로, 그 40년 역사를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의 문제로 내가 받아 드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조금 더 심각하게 말씀드리면, 여의도 국회에서는 4․3 을 볼 수 없습니다. 이는 광주의 문제를 여의도에서 볼 수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도움이 되는 점은 있습니다. 전혀 도움이 안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약간은 도움이 되지만, 4․3 의 문제는 학자의 문제가 아니고, 어떠한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고, 다시 말하면, 바라 보는, 대상화 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들의 손에 의해서, 힘에 의해서 문제가 돌려지고, 한을 내가 푼다고 했을때, 한은 영원히 풀려지지 않습니다. 한은 한맺힌 사람들과 함께 사는, 그래서 4․3은 해결할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4․3 은 사는 것이란, 입장에 서지 않으면, 풀려지기가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4․3 을 누구에게 맞겨서 해결할려고 한다’는 그 시각부터 고쳐져야 합니다. 산에 올라갔거나, 토벌대에 의해서 죽었거나, 어떻게 해서 뼈가 뿌러졌거나 등, 그 당한 사람들이 살아온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4․3 을 푸는 것입니다. 그러한 점에서 4․3 은 모든 사회의 장치에 의해서 억눌려온 것을 거부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강창일: 저는 4․3 문제가 어떠한 정치적 세력에 의해서도 이용되어서는 안되고, 어떠한 사회 집단에 의해서 4․3 의 진상이 왜곡되어서도 안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싶습니다.

저는 역사 학도로서 민중사적인 입장에서 역사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좀 전문적인 내용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민중사적 입장이란 것은 당시 이 땅에 살고 있는가에 의해서 역사적 성격은 규정되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층부, 지도부 영웅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선전 삐라에 의해서 4․3 이 왜곡․오도되어서는 안된다는 얘기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당시에 제주도 이 땅에 살고 있는 어머니, 아버지, 삼촌들은 무엇을 하였고, 어떠한 사회를 만들려고 했었는가에 대해서 진지하게 토론하고 밝히는 작업들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45년에서 48년 8월 15일까지 이 땅의 주권은 누가 갖고 있었습니까? 이 엄연한 사실은 아무도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주권은 미국이 갖고 있었으며, 우리에게는 주권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미국 식민지라는 것입니다. 식민지.

제주도 역사는 저항의 역사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는 잔혹한 수탈과 착취를 당하며 살아왔고, 여기서 우리 제주도 조상들은 열심히 싸워왔습니다. 미군정기에 우리 조상들은, 아버지, 어머니, 형제들은 이 땅의 독립을 위하여 싸워왔습니다. 누가 뭐라고 한다고 해도 이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4․3 사건 때, 왜 제주도민은 싸웠습니까? 그 다음에 어떤 식으로 당했는지, 이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인데, 우리 조상들은, 우리의 누이들은 무엇 때문에 싸워왔는가? 조국의 식민지화와 분단화에 대해서 싸워온 민중 투쟁입니다. 그것은 곧, 민족해방투쟁 운동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가지고 현재에 와서 당시도 그랬읍니다마는, 좌․우의 대립이라는 식으로 왜곡․오도시키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엄청난 정치적 의도, 음모가 숨겨져 있습니다. 흉기가 숨겨져 있습니다. 그것은 탄압하는 측에서 만들어 낸 조작입니다. 조작.

저도 지금 몇 십년 공부해 오고 있습니다만, 사회주의가 뭔지, 공산주의가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주도의 입지적 조건부터 시작해서... 당시에 선전삐라 요구 하나에도 경제적 요구는 나오지도 않습니다.

‘미국은 물러나라’ 이것이 가장 큰 이슈였을 것입니다. 우리를 식민지화 하고 있고, 분단하려 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은 물러나라’고 했으며, 그렇기에 제주도 민중은 당연히 일어서야 하지요. 그래서 입장과 시각은 조금 다른 이야기입니마는, 그것에 대해서 한 마디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스스로 공산주의자가 아니라고 하는데, 공산주의라고 몰아치는 세력들, 저는 이 세력들을 ‘이적죄’로 고발하고 싶습니다. 우리를 공산주의라고 하면 저들은 무엇입니까?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이라 해 놓고 왜곡․오도시키는 집단은 ‘사기 집단, 사기 집단’입니다. 여기도 많이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 옆에 경찰들도 다 우리 친적, 형제들이 아니겠습니까? 같이 붙어서 같이 해야지요? 앉아서 조사할 것이 아니라, 같이 힘을 합쳐야지요. 그 여러분들을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4․3 에 대해서 논쟁할 때, 그러한 분들을 비판하지 않쟎읍니까? 같이하자는 얘깁니다.

저는 소위 우리들의 정신상태들을 볼 때, ‘4․3 정신병’에 걸려 있다고 한 마디로 규정하고 싶습니다. 저를 비롯해서 여러분 모두, 전부 다 강요된 침묵, 그 속에서 이미 도피되어 버렸습니다. 도망가버렸고, 그 속에서 나온 ‘피해의식’이나 ‘피해망상증’만 남아서, 이건 ‘정신병’입니다. ‘정신병’. 제가 의사는 아닙니다마는, 지금까지도 우리가 살기 위해서, 정상적으로 살기 위해서 우리는 진상규명을 해야 된다는 겁니다. 지금 이 순간도 시골서 이 추모제 행사에 참가하러는 올라 오지 못하죠. 겁이 나서 그래요. 내가 혹시 불려 가지나 않을까, 그들은 아직도 겁에 쌓여 있습니다.

앞으로 4․3 진상규명을 반대하는 세력들은 언젠가는 제주도민의 이름으로, 이땅의 민중의 이름으로 처단당할 것입니다.

 

문무병: 문무병입니다. 제가 어떻습니까? 밉습니까? 죽이고 싶습니까?

그런데 저는 가끔 그런 전화를 받고 있습니다. “문 선생, 어제 일 많이 하던데... 야, 이새꺄. 까불지마. 작두로 모가지 쳐버려.” 이게 지금의 현실입니다.

그리고 아까, 여러 학생들이 기침이 났습니다. 무슨 냄샌지 여러분들 알죠. 그래서 거기에서 저가 간단하게 시를 하나 섰습니다. 저는 즉흥 시인입니다. ‘최루탄 가루가 민들레 씨앗처럼 날라와 내 어깨에 앉아 / 민들레 씨앗은 생명의 씨앗이라면 / 최루탄은 죽음의 씨앗’이라고말입니다.

앞에서 여러 선생님들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저는 간단하게 방법론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진실을 밝혀 나갈 것이냐 하는 이야기만 해 보겠습니다.

우선, 그 방법을 이야기하기 전에 앞으로 4․3 의 문제가 많이 거론될 것이고 그 4․3 의 문제를 가지고 ‘분열주의다’, ‘제주도민을 분열한다’는 등 이런 말을 하는 세력을 전 미워하지 않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라고 하는 그 예수쟁이들 말을 믿지 않지만, 전 충분히 사랑할 수 있습니다.

왜냐, 제주도민이 분열하지 않고 화합하기 위해서 4․3 의 진실을 규명하고자 하는데, 왜 그걸 분열이라 하고 왜 빨갱이라 합니까? 제주도 사람 수만이 죽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당신들 왜 죽였소’ 하면 ‘빨갱이를 죽였다’ 고 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럼, 제주도민이 전부 빨갱이입니까?

여기서 전제되어야 할 것은 ‘제주도민은 빨갱이가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내 땅에서 내 땅을 지키기 위해서, 나의 생존을 위해서... 그렇게 싸우다가 죽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자료가 있습니다.

저가 현장에서 녹음 채록을 하다 보니까, 그런 말이 나오데요. “어머니, 이 한 목숨바쳐 나라가 산다면, 내 한 몸 이슬같이 죽으쿠다.” 그 말 속에 있는 것이 정의가 아니겠습니까? 그것이 진심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사람의 그런 말을 들었을 때, 저는 40년 동안 반공 세뇌교육을 받아온 한 장본인으로서 이 사람을 옳게 봐야 되는가, 그르게 봐야 되는가 굉장히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4․3 에 죽어 간 모든 우리 조상들은 누구나 다 피해자다’ 이와같은 입장에서 저는 다음과 같은 제언을 합니다. 이제부터 산에 올라간 사람을 ‘폭도’라하지 말자. 폭도라고 하는 것은 난폭한 세력을 말하는 것인데, 그런데 죽은 사람을 5만이라고 합시다. 그네들 말로 ‘난폭한 5만’이 들고 일어났다면, 제주도를 독립시켰을 것입니다.

그런데 선량하고 배웠다는 사람들, 양심도 가지도 있을 사람들이 보니까, 주위의 사람들이 자꾸 압력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내 한 목숨 바쳐서 제주도를 지키겠다고 산으로 간 경우도 많습니다.

제가 증언채록할 때, 여러 할머니나 할아버지의 얘기를 들어 보면, ‘산사람, 활동가, 피난민’이런 쓰지 않습니다. 또 한가지, ‘노랑개, 검둥개’ 라는 말이 증언에 나옵니다.

인간이 아니기에 ‘개새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노랑개, 검둥개라는 말도 쓰지 말아야 합니다. 왜? 다 제주도민 아니겠습니까? 군인, 경찰관, 이런 말로 바꿔 써야 합니다.

증로라는 것은 개인적인 것이지, 집단적인 것이 될 수가 없습니다. 식께는 5대 가는 제사가 아닙니까? 5대면 백년인데, 백년 원수가 될 것입니까? 아버지 제사 때마다 “기여, 니네 아방은 누구한테 죽었저.” , “경해수과?” 하면서 이를 박박 갈고, 그렇게 하면서 어떻게 우리가 통일이 되고, 화합이 될 수 있겠습니까?

제주도민 단결이 안된다는 말 속에는 그러한 점들이 많이 내포되어 있고, 그러한 것들이 바로 직접․간접으로 4․3 의 피해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래서 증언을 채록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하면, 증언은 증언다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할머니들이 살아 온 체험, 그 민중적 정서, 저의 용어로 말한다면 ‘체험의 정서’ 라고 말합니다. 그걸 살려내야 합니다. 토시 하나까지, 숨소리 하나까지도 살려내야 거기에 진실이 담겨 있습니다. 4․3 을 채록하는 사람은 채록하는 입장이 되어야지, 기록하는 입장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기록하는 입장이라고 하는 것은 거기에 자기의 관념과 이데올로기가 들어 가서 진실이 왜곡되어 버립니다.

그런 예를 하나 든다면, 제주도의 역사기록에 보면 이형상 목사에 대한 기록이 있지요. 제주도민들 굿하는 것을 막은 사람이 바로 이형상 목사 입니다. 당 오백절 오백을 파괴하고, 제사를 하게 해서 혹세무민하는 심방들을 다 농사꾼으로 만들어 선정을 베풀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록한 사람의 입장은 무엇입니까? 이 기록 속에 진실이 들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까?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서 그 당시 체험한 사람의 말을 들어 가지고 각색해서 얄팍한 문학적 문장으로 바꾸거나, 아니면 자기의 시각을 넣거나 필요한 부분만 뽑아서 기록한다고 진실이 규명되어질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의미에서 저는 증언을 받을 때마다 토씨나 숨소리 하나 빠뜨리지 않고,그 소중한 것을 그대로 받아 썼습니다. 이것을 토대로 해서 학문도 이루어지고 4․3 논의도 이루어 져야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 다음에 이것을 토대로 ‘민족투쟁이다, 민중항쟁이다, 생존권 투쟁이다, 아니면 힘없이 사라져 버린 들풀이다’ 라고 얘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의 입장이 이와 같은데, 저를 죽여 버리고 싶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화합하는 것이 참으로 어렵고 많은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그러나 옛날에 나라를 위해 내 한 목숨 바치겠다며 죽어가 그 장두정신, 이재수가 그랬듯이 과거의 조상들이 다 그렇게 죽어갔습니다.

핍박받고 가난하고 굶주리면서도 서로 사랑하고 보듬겨안고, 죽어가는 애에게 젖을 물리고, 젖이 안나오면 쇠젖이라도 먹여서 아이들을 키우는 이 아름다운 일을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이 결코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앞으로 용기를 가지고, 서두리지 않으면서, 또 많은 사람들의 공격을 감당해 내면서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해 내겠습니다.

 

사회; 진상규명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다음으로 진상규명을 하기 위한 방법에 대해서 얘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김용해: 저는 진상규명에 대한 방법은 역시, 도민의 합의를 통해서 서로간의 갈등이나 보복이 없는 화합의 차원에서 진상규명을 해야 된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람들을 만나 보니까 제일 두렵고 안타까운 점이 뭐냐 하면, 피해의식에 잠겨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진상규명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문제된다고 하는 것이, 같은 동네 좁은 바닥에서 누가 누굴 죽이고, 누가 그 당시에 우리 아버지의 원수였고 하는 이러한 반목이 상당히 두렵다는 얘기를 많이 듣습니다. 그래서 차원을 벗어난 사회화합의 차원에서 진상규명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입장입니다.

 

김명식: 김용해 선생님이 좋은 말씀을 해 주셨는데, 아까 강창일 선생님의 말씀중에 우리 모두가 ‘4․3 병’에 걸려 있다는 말을 해 주셨읍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우선 사회적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 해결되어야 합니다. 사회적 환경이란 고통을 낳게 하는 사회의 제반 요소들을 제거하는 일입니다.

제주도 사람들이 40년 동안 말도 못하고, 말을 했다가도 두려움과 무서움 때문에 다시 입을 다물게 되는 이런 환경을 깨끗이 청소만 되면 화합하지 말라고 해도 화합하고, 그리고 두려움이 없어지면 우리가 진상규명 안해도 모두다 이야기합니다. 그게 역사가 하는 일입니다. 누가 말하라, 누가 노래하라, 하지 않아도 사회적 환경이 조성만 되면 스스로 말을 할 것이고, 춤을 출 것이고, 또 자기네들이 꿈꾸는 나라를 세웁니다.

또 한 가지, 옳음, 바름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고 긍정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빨갱이는 안된다고 해야 되는 것이 아니라, 빨갱이는 어떤 것이든 ‘옳은 것’에 대해서는 “옳다”, ‘그른 것’에 대해서는 “아니다”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여기 오신 여러분들은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 하는 선택의 갈림길에서, 어떤 판단을 내려서 자기해방을 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4․3 의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그런 환경만 마련된다면, 그 사람들은 모든 이야기를 다 할 것입다. 따라서 4․3 을 살해하는 장치의 모든 구조를 제거하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강창일: 아까 화합하자는 얘기를 했는데, 전 좀 생각이 다릅니다. 의식이 조직화되고 있고, 침묵이 강요되고 있는 현실에서 “ 화합, 화합” 하면서 촛점을 흐리게 할 위험이 있습니다. 위험.

제주도민은 피해자입니다. 그들이 양민을 학살하는데 어떤 식으로 했는고 하면, 제주도 내부의 갈등관계에 의해서 제주도 사람들끼리 싸우게 한 것 뿐만이 아니라, 제주도 사람들과 육지사람들을 대립관계, 갈등관계로 조작을 시켜놨어요.

또 하나, “관민이 합쳐서 하자”, 이거 저는 반대합니다. 정치적으로 이용당할 수 있는 소지가 많습니다. 역사적 진실이나 사실을 규명하는데,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는 겁니다.

 

문무병: 우리가 진상을 규명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제주도민의 떳떳한 명예, 자존심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서 뭉칩시다.

이번에 굿으로 말하자면, 4․3 원혼굿을 삼일굿으로 했습니다. 준비가 변변치 못해서 그렇게 됐는데, 내년부터는 9일이나 열나흘 굿을 해야 합니다. 그래도 다 풀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풀릴 때까지 해마다, 그러면서 우리 제주도 정신을 가져 나가고, 제주 공동체를 살려 나가는 그런 방향으로 함께 일어서 나갑시다.

 

사회: 4․3 진상을 규명하고 사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도민들이 주체가 되서 자발적인 ‘진상규명 위원회’를 조직해 내야 한다는 제안이 들어와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고창훈: 그런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되는 것이죠. 따라서 동의합니다

 

김용해: 마을별로 진상규명위원회를 조직하는 것을 전 좋아합니다. 그것도 좋은데요. 전 어떤 생각을 하느냐 하면, 저번에 어떤 민간단체에서 조사한 내용에서 나온 것에 의하면 정부와 같이 하는 것이 상당히 의미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 생각으로는 민간단체의 진상규명위원회가 구성이 되고, 또 마을별로는 그 마을 사람들끼리 진상규명 조사단들이 조직되고, 그것이 합동이 돼서 정부의 협조가 따른다면 더욱 좋겠다는 얘기입니다. 물론 아까 김 선생인 말씀대로 사회적 환경이 제대로 조성이 된다면, 아무 탈이 없겠지만, 지금 피해를 당한 사람들은 말한 마디 하는 것이 두렵고, 말했다가도 경찰서에 가고 하도 이러니까, 차라리 정부에서 “이젠 좋습니다. 터놓고 얘기하십시요” 이런식으로 집단화되어 진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마을별로 진상규명 위원회를 만드는 것이 상당히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김명식: 진상규명 위원회를 만드는 것은 좋습니다. 좋은데, 그러나, ‘빨리하자 (웃음, 박수) 빨리하자’. 거기에 덧붙힐 것은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진상규명위원회는 깨끗하게 해야 된다. 어떻게 해야 되는고 하면, 4․3 당시 민중들을 탄압해 온 사람들이 지금 정권을 잡고 있는데, 이 사람들로 위원회를 구성할 수도 없고 또 해서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정권을 잡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퇴진을 하는 것을 결의하면서 구성하는 진상 규명 위원회에 동의합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은 더러운 환경, 살해의 환경을 조성하는 장본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 장본인은 여러가지 방법을 통해서 깨끗하게 청소를 하고 난 다음에, 진상규명 위원회에 참석해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강창일: 당연히 해야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적극 동참하겠읍니다.

 

문무병: 저도 마찬가지로 적극 동참할 것입니다.

 

사회:지금 4․3 진상규명을 위해서 관계당국에 대하여 진상규명하라고 계속 외쳐봐야 이 추모 행사조차 봉쇄하는 현실입니다. 도민 차원에서 우리 스스로 진상규명 위원회를 조직하고, 그 위에서 하나하나 차근차근 풀어나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방법상 진상규명 위원회를 적극적으로 구성하기 위해서는 전도적인 참여가 필요하고 각계각층의 의견이 수렴되어야 할 것입니다.

41주기 4․3 추모제를 준비해 주신 분들과 참석하여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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