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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SEOUL971] 한일 외무장관 회담, 역사 문제에 발목 잡혀

by 淸風明月 2014.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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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O N F I D E N T I A L SEOUL 000971

 

SIPDIS

 

SIPDIS

 

E.O. 12958: DECL: 04/03/2017

TAGS: PREL PGOV ECON KS JA

SUBJECT: ROK-JAPAN MINISTERIAL TALKS DOGGED BY HISTORY

 

Classified By: POL M/C Joseph Y. Yun. Reasons 1.4 (b/d)

 

1. (C) SUMMARY: On April 2, MOFAT Northeast Asia Division I Director Lee Hee-sup told poloff that the March 31 - April 1 talks between ROK Foreign Minister Song Min-soon and visiting Japanese Foreign Minister Taro Aso focused on history issues (comfort women, textbooks, Yasukuni) and included discussions of bilateral matters (Liancourt Rocks, EEZ, FTA, and cultural exchanges) as well as North Korea and Northeast Asia. While the atmosphere was cordial, the ROK and Japanese positions were too far apart to allow much progress; the two sides did not discuss a visit to Japan by President Roh in 2007. Lee said that Seoul, however, had received initial positive reactions to its initiative for a ROK-Japan-PRC Foreign Ministerial trilateral on June 3 in Korea. END SUMMARY.

요약: 4월 2일 외교부 동북아 1과 이희섭 과장은 우리에게 3월 31일~4월 1일 송민순 외교부 장관과 일본 타로 아소 외무성 장관의 회담은 역사 문제들(위안부, 교과서, 야스쿠니 신사)에 초점이 맞춰졌으며 쌍무 문제들(리앙쿠르 암도, 경제수역, FTA, 문화 교류)도 북한 문제, 동북아 문제와 함께 토의됐다고 말했다. 회담 분위기는 우호적이었지만, 한국과 일본의 입장은 많은 진전을 보기에는 너무 달랐다; 양측은 2007년 노대통령의 방일 건은 다루지 않았다. 이과장은 그러나 한국측은 6월 3일 한국에서 한국-일본-중국의 외교부 장관들이 회동하도록 하자는 한국측 제안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얻어냈다고 말했다.

 

2. (C) On April 2, Lee Hee-sup, Northeast Asia Division I (Japan) Director at the Ministry of Foreign Affairs and Trade, provided poloff a readout of the March 31 - April 1 ministerial talks between ROK Foreign Minister Song Min-soon and visiting Japanese Foreign Minister Taro Aso on Jeju Island, South Korea. Lee said that the two Ministers held a two-hour meeting on Saturday, March 31, followed by a two-hour dinner. On Sunday, April 1, the ministers took a short walk together for about 10 minutes. Talks focused on history issues, ROK-Japan matters, North Korea and regional subjects.

4월 2일 이희섭 외교부 동북아 1과(일본)과장은 한국의 송민순 외교부 장관과 방한중인 일본의 타로 아소 외무성 장관 사이에 열린 제주 회담에 대해 개요를 전해주었다. 이과장은 양국 장관들은 3월 31일 2시간에 걸친 회담을 하고 이어 2시간의 만찬을 가졌다고 말했다. 4월 1일에는 약 10분 동안 두 사람이 함께 걸으며 얘기를 나눴다고 말했다. 이번 회담은 역사 문제, 한국 일본 문제, 북한, 그리고 동북아 지역 문제 등에 초점이 맞춰졌다.

 

HISTORY IS THE MIRROR FOR THE FUTURE  과거는 미래의 거울이다

. (C) In his opening remarks, Foreign Minister Song commented that history was like a mirror to see the future, and that unless one had a proper and clear mirror, one would get a distorted perception, Lee said. Japan must endeavor to clearly portray its history or risk, among other things, increased suspicion of its future role and regional relations. Song expressed regret over Japanese Prime Minister Abe's remarks that suggested a denial of the Government of Japan's role in the comfort women issue. Japanese Foreign Minister Aso restated Abe's March 26
comments to the Japanese Diet that reaffirmed the 1993 Kono statement and expressed Abe's apology as Prime Minister. Lee lamented that the recent controversies would not have arisen under Abe's predecessor, Junichiro Koizumi, who Lee characterized as more skilled in public remarks.

개막 연설에서 송민순 장관은 과거는 미래를 볼 수 있는 거울과 같고, 적절하고 깨끗한 거울이 없다면 왜곡된 인식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고 이 과장은 전했다. 일본은 과거 역사를 명료하게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다른 무엇보다 일본의 미래 역할과 지역 관계에서 의혹을 증폭시킬 수 있다. 송장관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역할을 부인한 아베 수상의 언급에 대해 유감을 표시했다. 아소 외상은 아베 수상이 3월 26일 일본 국회에서 한 발언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즉 1993년 고노 성명을 다시 한번 확인시키며, 수상으로 아베의 사과를 전했다. 이과장은 최근의 논란은 아베의 전임자인 주니치로 고이즈미 시절에는 없었던 것이라고 탄식했다. 이 과장은 고이즈미를 공식 발언을 좀 더 능숙하게 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4. (C) On Japanese textbooks, Seoul and Tokyo had trumpeted their positions ahead of the talks. On March 30, a day before Aso's arrival, Japan's Education Ministry had announced initial results of its review of high school textbooks that had allegedly allowed, or encouraged,
controversial descriptions of Liancourt Rocks and comfort women issues. MOFAT in response, also on March 30, issued a statement that it was intolerable that the Japanese Ministry endorsed textbooks that described the Liancourt Rocks as Japanese territory; MOFAT also called for a withdrawal of that endorsement. At the ministerial talks, Aso stated that Tokyo could not order publishers how to write textbooks and
could only offer guidelines, Lee said. Song responded that some would not differentiate between textbooks and the Japanese Government, so Tokyo should take steps to address the matter. (NOTE: a local Korean daily on April 2 editorialized that the Japanese Education Ministry had
changed elements of the textbooks to ignore the ROK claim that the waters between the two countries were called the "East Sea," to delete readings that discussed the Japanese Army's order of mass suicide of civilians during the battle of Okinawa, and to include alternative views on the numbers of deaths in the Nanjing Massacre. END NOTE.)

일본 교과서 문제에 대해 한국과 일본측의 각자의 입장을 강조했다. 3월 30일, 즉 아소 외상의 방한 하루 전 일본 교육부는 고등학교 교과서 1차 검토 결과를 발표했는데, 이는 사실상 리앙쿠르 암도와 위안부 문제에 대해 논쟁적인 묘사를 허용하거나 오히려 장려하는 내용이었다. 한국 외교부는 이에 대응해 역시 3월 30일 일본 정부가 리앙쿠르 암도를 자국의 영토로 묘사한 교과서를 인정했다는 사실은 참기 어려운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한국 외교부는 이와 함께 승인 철회를 요구했다. 장관 회담에서 아소 외상은 일본은 교과서 발행자들에게 교과서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지시하지 않으며, 오로지 가이드라인만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이과장은 전했다. 송은 상당수 사람들이 교과서와 일본 정부를 구분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래서 일본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대응했다. (4월 2일 한국의 한 신문은 한국의 주장을 무시하기 위해 교과서의 구성 요소들을 바꾸었다는 사설을 게재했다. 한국의 주장은 양국 사이의 수역을 “동해”로 부르는 것이다. 또 오키나와 전투 때 민간인을 대량 학살한 일본 군의 명령을 다룬 부분을 삭제했다, 그리고 중국 남경 대학살로 살해된 사람들의 숫자에 대한 다른 견해들을 포함하도록 했다는 게 사설의 내용이었다. )

 

5. (C) On Yasukuni, Song argued that Class-A war criminals should not be honored in the Yasukuni Shrine. Aso, however, noted that this issue was for Shrine officials to decide and that Tokyo did not consider this a state matter.

야스쿠니 신사에 대해 송장관은 A급 전범들은 야스쿠니 신사에 오르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 아소는 신사 관리들이 결정할 문제이며 일본 정부는 이를 국가 문제로 취급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6. (C) Asked if Song and Aso had discussed a possible visit to Japan by President Roh, Lee said that Tokyo had announced before the meeting that a Roh visit would be "difficult" ahead of July Upper House elections, so there was no reason for Song and Aso to discuss it further. Lee opined that Japan would probably be concerned that a visit by Roh at this point would only give the history issue more prominence.

송과 아소가 노대통령의 방일 문제를 다뤘냐는 질문을 받고, 이과장은 이번 회담에 앞서 7월 일본 참의원 선거가 있기 전 노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고 발표했다고 말했다. 이런 까닭에 송과 아소 장관이 이를 더 심도 있게 논의할 이유는 없었다고 말했다. 이과장은 일본은 아마도 이 시점에서 노대통령의 방일이 역사 문제를 더 부각시키지나 않을까 우려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EEZ, FTA, CULTURAL EXCHANGES  경제수역, FTA, 문화교류

 

7. (C) Lee said that Song and Aso agreed to hold another round of working-level talks on Exclusive Economic Zones (EEZ) within the first half of 2007. The EEZ had been discussed during Director-General talks on March 4 and at Vice Ministerial talks March 11-13, but one sticking point, among many, was that the Japanese insisted on using the Liancourt Rocks as a starting point for its EEZ, which the ROKG could not accept. Aso noted that each capital had their own positions on the Liancourt Rocks, but Song countered that the ROKG would not accept any Japanese claim to the islets. Asked about the potential for dueling oceanographic surveys this spring, Lee offered that problems arose in 2006 when the ROK had announced its intention to conduct surveys in late 2005 and the Japanese felt compelled to counter-survey. At this point, however, neither Seoul nor Tokyo had made any announcements for 2007, so there was a de facto standown. This could change if either side decided to push ahead. In addition to maritime DG talks, Song and Aso agreed to hold working-level talks to discuss the Middle East and the Americas.

이과장은 송과 아소 장관이 2007년 상반기에 경제수역 문제와 관련해 또 한번 실무 차원의 회담을 갖기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경제수역은 3월 4일 국장급 회담과 3월 11~13일 차관급 회담에서 논의됐다, 그러나 다른 그 무엇보다도 한 가지 논란이 됐던 것은 경제수역의 출발점이 리앙쿠르 암도가 돼야 한다고 일본측이 고집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는 한국정부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아소 외상은 리앙쿠르 암도에 대해 각각의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송장관은 한국정부는 독도에 대한 일본의 어떤 주장도 수용할 수 없다고 맞받았다. 올 봄 해양조사를 놓고 양국이 다툴 가능성에 대해 묻는 질문에 대해 이과장은 이 문제는 2006년 수면위로 떠올랐다, 당시 한국은 2005년 하반기 해양조사를 하기로 한 입장을 발표했고, 일본은 이에 맞서 조사를 강행해야 한다고 느꼈던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한국과 일본 어느 쪽도 2007년 조사에 대한 공식 발표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 문제는 사실상 일단 수면 아래로 내려간 상태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은 어느 한쪽이 해양 조사를 강행하기로 하면 다시 변화될 수 있다. 해양 담당 국장급 회담에 덧붙여, 송과 아소는 중동과 아메리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실무급 회담을 갖기로 합의했다.

 

8. (C) Aso raised the need to resume ROK-Japan FTA talks, which stopped in late 2004 after six rounds of meetings. Song, however, insisted that the first order of business should be to reach an understanding on a high-level, omprehensive FTA before working-level meetings resumed. Lee explained the Japanese position to be that a FTA should open 50 percent of the agricultural markets, but the ROKG wanted
openings of 75 to 80 percent. Without a common objective, the prospects for resuming FTA talks before the next ROK administration were low.

아소 외상은 한국 일본 FTA 회담을 재개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한일 FTA회담은 2004년 하반기 6차례의 회담을 가진 뒤 중단됐다. 그러나 송장관은 실무 회담이 재개되기 전에 고위 차원의 포괄적인 FTA에 대한 이해에 먼저 도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과장은 일본의 입장은 FTA가 농산물 시장의 50%를 개방해야 한다는 것이고 한국정부는 75~80%를 열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통의 목표가 없는 상태에서 차기 한국정부가 들어서기 전에 FTA 회담이 재개될 가능성은 낮다.

 

9. (C) On a positive note, Aso invited 1,000 South Korean students per year for the next five years on a bilateral exchange program. Lee said that Prime Minister Abe's office had developed a proposal to invite 6,000 students per year and that it was notable that South Korea would get one-sixth of the slots.

아소는 매년 1000명의 한국 학생들을 향후 5년 동안 양국 교환 프로그램으로 초청하는 문제에 대해 긍정적인 발언을 했다. 이과장은 아베 수상실이 매년 6000명의 외국 학생을 초청하는 방안을 연구해왔으며 한국은 이 가운데 1/6을 배당받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NORTH KOREA 

10. (C) Song and Aso agreed to work closely to implement the February 13 "Initial Actions" agreement. Aso emphasized that it was important to Tokyo to also make progress on the abduction issue. Song noted that Seoul understood Japan's sensitivities and offered to do what it could to help Japanese efforts and during the February 27 - March 2 inter-Korean ministerial talks had encouraged DPRK delegates to resolve the issue of Korean and Japanese abductions. Aso said he appreciated that effort.

송과 아소는 2월 13일 “초기 조치” 합의를 이행하기 위해 긴밀하게 협력하자는데 동의했다. 아소는 피랍자 문제에 대해 진전을 이루는 것이 일본에게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송은 한국측은 일본의 민감성을 이해하고 있으며, 일본의 노력을 돕기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2월 27일~3월 2일 장관급 회담에서 북한 대표단이 한국과 일본의 피랍자 문제를 풀도록 고무했다고 말했다. 아소는 그런 노력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

 

TRILATERAL FM MEETING  3개국 외교장관 회담

11. (C) Song proposed to Aso that they hold a trilateral meeting with Chinese Foreign Minister Li on June 3 in Jeju, South Korea, and Aso agreed. Asked for China's view, Lee said that Seoul had not received a final decision, but Beijing had sent some positive signals. Lee added that at ASEAN Plus Three talks in Cebu, Philippines in January, Song had initially raised the idea for a trilateral meeting to discuss energy issues and the Middle East, given that South Korea, Japan and China were all oil importing nations.

송은 아소에게 6월 3일 제주에서 중국의 리 외교부 장관과 함께 3개국 장관 회담을 열자고 제안했다. 아소는 이에 동의했다. 중국의 생각을 묻는 질문에 이과장은 한국정부는 최종적인 결정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이 몇 가지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왔다고 답했다. 이과장은 덧붙여 필리핀 세부에서 1월에 열린 아세안 플러스 3 회담에서 송장관이 최초로 3국 장관회담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놨다고 말했다. 3국 장관 회담은 한국 일본 중국이 모두 석유를 수입하는 국가라는 점에 비춰 에너지, 중동 문제를 논의하자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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