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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cs and Society Archive

Neo-Marxist Challenges to the Classical Tradition

by 淸風明月 2023. 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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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o-Marxist Challenges to the Classical Tradition" 정리/첨부파일 참고.

원문: Holsti, 1985, “Neo-Marxist Challenges to the Classical Tradition”, The Dividing Discipline, Chap 4.


NeoMarxist Challenges to the Classical Tradition

 

Holsti, 1985, “Neo-Marxist Challenges to the Classical Tradition”, The Dividing Discipline, Chap 4.

 

 

맑스와 그의 제자들은 세계사회주의(global society) 이론가들과 같이 민족-국가로 이루어진 체제를 초월하는 보편적인 사회질서에 대한 비전을 공유하고 있었으나 최근까지 국제정치와 이론에 별 영향을 주지 못했다. 사적 유몰론, 변증법, 계급적 분석 등은 산업화의 충격을 받는 사회 내의 변화의 동력을 분석하는데 적실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식민지분야 이외에 국가 간의 관계라는 측면에서는 홉스, 그로티우스, 루소 그리고 다른 사상가들의 저작에 보뗄만한 점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맑스와 그의 후예들이 전쟁과 평화의 문제에 관심이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맑스는 국제정치를 설명하는 체제이론보다는 국내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에 몰두하였던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전쟁은 자본주의 체제의 사회적 문제의 표출로 보았다. Gallie가 지적하듯이 맑스와 엥겔스가 지적 전성기에 도달했던 당시 유럽은 루소나 칸트의 시대보다는 상대적으로 정치, 외교 상태가 평화로웠던 시기이다. 따라서 근대화, 착취, 불평등 등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맑스주의는 국제정치이론에 별로 공헌을 하지 모했다.

 

그러나 1960년대 후반부터 국제수준에서 맑스의 변증법적 과정, 경제구조의 규정성, 사회모순, 착취, 지배, 종속 등의 개념을 사용한 시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이론들은 종속이론과 세계자본주의체제론 등으로 나타났다.

 

본 논문의 목적이 이러한 이론의 공헌에 대한 평가에 있는 것이 아니고 국제정치와 이론의 교육과 연구에 어떻게 관련되는가를 살펴보는데 있기 때문에 이론적 차이보다는 맑스에 의해 개발된 사상이나 개념이 현대국제정치를 분석하는데 어떻게 채택되었는가를 규명하는데 두고자 한다.

 

저자는 종속이론과 세계체제론이 전통적인 국제정치이론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비판적인 입장을 취함으로써 이들 이론들의 기본적인 관점에 대해서 언급한다. 우선 이들 이론의 기본적 관심은 저발전의 문제에 있으며 고전적인 접근에 대한 대안으로써 연구에 임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신맑스주의 패러다임과 고전적 패러다임을 종합하려 한다든지 신맑스주의 패러다임의 우위성을 주장하고자 한 사람들은 고전적 전통 내에 있는 자들이다.

 

 

1. 맑스와 신맑스주의 패러다임: 몇몇의 미묘한 차이들

 

맑스는 자본주의의 확산은 중앙에서 주변의 착취를 가져온다기보다는 오히려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필요조건을 조성하고 전자본주의 사회의 많은 사람들에게 물적 혜택을 가져온다고 보았다. 레닌도 자본주의의 확산은 비록 불균등하게 이루어졌어도 결국 생산방법과 생활수준을 균등하게 할 것으로 보았다. 이들 모두 식민지 지역에서의 자본주의의 확산이 유럽과 북미의 산업화 과정에 있는 사회와 다를 바 없는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신맑스주의자들은 자본주의의 확산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프랭크는 중심의 발전은 주변의 저발전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았고 배런은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틀을 제로섬 게임으로 봄으로써 세계를 고정된 소득에 대한 투쟁으로 보았다. 그리고 이들은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있어서 중심과 주변은 각각 다른 기능과 역할을 함으로써 세계적 불평등은 극복될 수 없는 것으로 보았다.

 

 

2. 신맑스주의자들의 문제의식

 

고전적 맑스주의와 신맑스주의는 착취개념을 공유한다. 그러나 신맑스주의 패러다임의 문제틀은 불평등과 착취의 원인과 평등의 조건, 정치적, 경제적 자율성에 둔다. 신맑스주의 패러다임은 기존의 국제정치에 대한 불만족에서 출현한 것이 아니라 1950, 60년대의 연구와 정책의 기저를 이루고 있었던 경제적 발전론에 대한 대응으로 나타난 것이다. 경제적 발전론에 따르면, 저발전국의 경제발전의 장애요인은 그 국가의 사회, 문화, 종교, 정치 등에 있다고 하면서 발전을 위해서는 사회적 개혁과 경제전략이 필요하다고 역설하였다. 이에 대해 나미의 경제, 사회, 역사학자들은 발전의 장애물은 국내가 아닌 세계적 자본주의 체제의 구조적 특성인 기능적 분화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즉, 체제는 구성단위의 필요보다는 체제자체의 필요가 충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체제의 결과는 세계적 경제불평등이다. 주변의 잉여는 중심으로 이전되고 중심과 주변간의 불평등한 교환은 천연자원을 필요로 하는 유럽자본주의의 팽창에 의해 규정되었다는 것이다. 월러스타인은 이러한 세계체제는 세계적 노동분업 하에 형서오디어 각 부문은 고유한 경제적 역할이 할당되고 상이한 노동통제방식이 사용되고 체제의 작동에 따라 불평등한 혜택을 얻는다고 주장하였다. 이렇듯 종속이론과 세계체제론자들은 경제적 교환 상의 있어서 제로섬 게임의 성격을 갖는다.

 

 

3. 분석의 행위자와 단위들의 특성

 

여기서 대체로 거론되는 이론은 세계체제론이나 교환과정을 분석단위로 삼고 있다. 사회주의 국가도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속하고 있는 이상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사회주의 세계체제로의 근본적인 변화가 없이는 주변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행위자는 이러한 착취의 조건을 완화할 수 있는가?

 

문제해결은 변증법적 모순개념에서 찾는다. 국제구조는 불평등한 교환구조를 반복할 뿐 아니라 모순을 발생시켜 주변의 사회적 운동과 이데올로기상의 변화를 야기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신맑스주의자들에게 행위자들은 새로운 구조와 과정으로의 근본적인 질적 변화를 야기하는 에이전트로 간주되는 것이다.

 

몇몇 정치학자들은 변증법적 방법 때문에 종속이론과 세계체제론의 패러다임을 채택하기보다는 국제정치를 국가의 행위로 간주하는 기존의 시각에서 벗어나야 하는 목적에서 채택한 것이다. 맑스주의 시각에서 실제 행위자는 국가보다는 계급과 계급에 기반한 초국가적 결사체이다. 따라서 Thorndike의 경우 국제정치의 행위자에 대한 연구는 초국가적 노동계급과 계급과 관련된 혁명운동, 민족해방운동이며 연구주제는 다국적 기업, 초국가적 금융유통, 경제적 종속 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국제정치를 분석하는데 있어서 국가는 필수적이다. 맑수주의적 시각에서 국제정치를 계급적 관점에서 설명하는 과정에서 항상 국가의 행동과 국가 간의 상호작용이라는 측면이 제기된다.

 

 

4. 세계의 이미지

 

신맑스주의자의 세계에 대한 이미지는 첫째, 세계는 엄격히 구별되는 경제적 기능으로 이루어진다는 것, 주변의 경우 경제적 우선성과 과정을 자율성으로 결정하지 못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중심의 정책과 필요의 반영이라는 점에서 중심에 종속되어 있다는 것이다. 국가는 기존 체제의 유지를 위한 에이전트일 뿐만 아니라 산업, 금융, 다국적 기업의 대변자이다. 둘째, 희소성의 세계이다. 세계에 있어서는 지구적으로 공통되는 이해관계는 없다는 것이다. 세계는 제로섬적인 관계일 뿐이다. 신맑스주의는 지구적 사회이론가들과 마찬가지로 현재의 병폐를 진단하고 있지만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의 세계를 제시하지 못한다.

 

 

5. 충돌하는 패러다임들의 결합을 위한 전망

 

신맑스주의 패러다임과 전통적인 패러다임은 피상적인 유사성을 보유한다. 이것은 체제-지배성이다. 즉, 체제의 구조나 과정이 구성단위의 행동을 규정한다는 것이다. 또한 특정 행위의 지속성과 변화를 같은 종류의 변수들로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맑스주의자들의 경우는 국제적 노동분업이며 고전적 패러다임은 전쟁을 독자적인 국가로 설명한다. 그러나 각 패러다임은 일차원적 설명이라는 점에서 한계를 지닌다.

 

이와 같은 패러다임간에는 결합이 불가능하다. 그 이유는 한 패러다임이 전쟁과 평화의 문제에 초점에 맞추고 있는 반면 다른 하나는 불평등, 착취, 평등의 문제에 치중함으로써 문제영역상의 차별성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결합은 마치 치과의사와 결장암의 연구자와 연구협력을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맑스주의 패러다임은 국제관계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중요한 영감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보다 넓은 국제정치에 대한 시각을 갖게 하며 국제관계에 있어서 경제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전통적 국제정치이론의 관심인 전쟁과 평화, 안보, 질서 등의 문제에 대한 신맑스주의자들의 무관심은 국제정치의 핵심주제에서 그들의 분석을 주변적인 것으로 취급되게 만든다.

 

 

6. 맑스주의, 전쟁과 평화

 

신맑스주의자들에게 전쟁과 국제질서의 문제는 계급적 이해의 부수현상에 불과하다. 경제과정을 비교할 때, 전쟁이나 외교적 질서는 경제적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역사적 변화의 주요 원인이나 결과가 될 수 없다.

 

실제로 맑스, 엥겔스, 레닌은 전쟁과 국제질서의 문제에 관심을 갖았다. 그러나 아마도 이들의 애매한 입장과 결점이 종속이론과 세계체제론자들이 이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지 못하게 했을 수 있다.

 

Gallie에 따르면, 맑스와 엥겔스에게 있어서 전쟁은 상부구조의 일부분을 해석하는 것이었지만 전쟁이 생산과정이나 계급관계와는 독립적인 현상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소지도 있다. 즉, 전쟁은 세계가 독립적인 정치적 공동체로 조직되어 있다는 사실의 결과인 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물론 전쟁이 계급적 이익 즉, 국내적 혁명을 방지하기 위한 반동주의자들의 수단이 되거나 혁명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7. 패러다임 결합의 다른 방해요인

 

양 패러다임의 결합의 장애요인은 핵심적인 문제영역의 차이 못지 않게 세계에 대한 견해와 방법론상의 차이에도 존재한다. 고전적 전통에서는 체제 자체의 지속에 관심이 있었다. 주권적이고 정치적인 단위는 지속적으로 존재하며 때로 전쟁은 이들 단위의 존속을 보장한다. 세계는 또한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종교적, 민족적 다양성으로 특징지워진다.

 

맑스주의 견해의 경우 갈등은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역사적 변화의 동력이다. 변화, 혁명, 평등은 질서와 안정에 우선해야 한다. 다양성의 문제에 있어서 맑스주의자들이 기존의 다양성으로 구성된 세계질서의 타파에 관심을 갖는다면 그들의 대안적인 세계질서에서는 다양성은 존재할 수 없다는 가정을 할 수 있다.

 

방법론상에 있어서 계량적 기법에 익숙한 사람들은 변증법적 방법을 사용하기 쉽지 않다. 맑스주의자들의 기본 입장에 따르면, 종속관계, 사회모순 등의 문제는 계량적으로 측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 패러다임의 결합은 불가능한 것인가? 신맑스주의 패러다임은 전통적인 학문에서는 취급되지 않은 문제를 부각시켰다. 유럽중심의 전통적 국제정치이론은 제3세계의 문제를 다루는데 적합하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신맑스주의자가 공헌한 영역을 존중하면서 그들의 패러다임을 결합하기 보다는 그들의 공헌을 접수한다는 의미에서 결합이 가능할 수 있다.

 

 

[첨부파일]

neomarxist_challenges_to_the_classical_tradition.pdf
0.14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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