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세에 루이스 위케스 하인 Lewwis Wickes Hine의 지도를 받아 사진에 흥미를 갖고 291화랑에서 스티글리츠의 사진전을 보고 사진가가 될 것을 결심했다. 하인은 스트랜드를 스티글리츠에게 소개를하여 스티글리츠가 291에서 첫 개인전을 갖도록 주선했으며 같은해에 Camera Work지에 사진을 실어주었고 1917년에는 스트랜드의 특집을 실어주었다. 사진 분리파가 순수사진운동을 시작한것은 스티글리츠때문 이였지만 완전히 정립한 사람은 스트랜드였다. 순수사진이 스트글리츠가 주장한 대로의 실질적 결말은 스트랜드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정립이 되었다. 스티글리츠도 그가 배격한 회화적인 사진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스트랜드는 사진 분리파가 내건 순수사진의 주장을 냉철하고 과학적 객관성을 파악하고 사진의기계적 기록성을 단순한 순수사진의 단계에서 더욱 철저하게 강조하여 즉물적인 극한의 한계까지 파고 들어갔다. 그가 1910년대에 추구한 즉물사진은 새로운 개척이었고 새로운 순수사진의 귀결이었으며 다른 사진의 방향제시였다. 그 후 20년대에 독일에서 표현주의의 반동으로 일어난 신즉물주의를 여러 사진가들이 추구했으며 미국에서는 웨스턴이 그의 전통을 이어받고 다시 안셀아담스로 이어져 새세대의 사진가들에게 계승되어 미국 사진계의 한 갈래를 이루고 있다.
그가 처음으로 개척한 즉물사진이란 사진의 광학적인 복제기능의 철저한 추구이며 개발이다. 대상을 실물 그대로 정밀하게 재현함 으로써 최대한의 객관적인 묘사효과를 얻으려하였다. 이런 재현기능을 극대화하기 위해 가능한 조리개를 조이고 Close-Up으로 팬포커스의 효과를 노렸고 냉철한 객관성을 지키기위해 일체의 정서적 요소들을 거부하고 생물이던 무생물이던간에 대상의 재질감과 물질적요소를 중점적으로 강조하여 카메라와 대상자 사이에 자기의 개입을 최대한 억제하고 직접 밀착된 관계를 성립시켜 실물 그대로를 화면에 옮겨다 놓은것과 똑같은 재현효과를 거두려 하였다. 스트랜드의 사진 세계는 스티글리츠에서 그에게로 그리고 웨스턴으로 이어지는 계보에 비추어보면 스트랜드는 스티글리츠의 사회적 기록성과 웨스턴의 조형미의 추구를 함께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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