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에게 지급되는 기본소득과 여성성(性)
평등 사회에 대한 기여 - 김미정 민주노총 정책연구원 부원장
무조건적으로 모든 개인에게 지급되는 일정 금액의 기본소득은 성(性)평등한 사회를 만드는데 어떤 기여를 할 것인가? 과연 기본소득은 여성이 공평한 기회와 평등한 결과를 획득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인가? 오랫동안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성별 노동 분업을 극복하는데 기본소득은 어떠한 기여를 할 것인가? 사회에서, 직장에서, 오로지 성(性)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을 받고 있는 여성에게 기본소득은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기본소득이 성평등에 미치는 영향을 얘기할 때, 우선 주목되는 것은 기본소득이 개인에게 지급된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에서 시행되는 많은 사회보장제도가 ‘가족을 기준’으로 한 소득비례방식으로 보장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현재 한국의 공적연금은 소득이 없는 사람은 ‘기여’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수급자가 될 수 없다. 이들은 ‘가족’이라는 단위로 묶여 소득이 있는 사람의 ‘부양가족’이 된다. 소득이 없는 사람의 몫으로는 가족이 있는 경우, 부양가족의 몫으로 +@(매우 적은 금액)를 수급자에게 더 주는 방식이다. 그러나 기본소득은 여럿이 가족을 구성하더라도 각 개인에게 지급되고, 혼자 살던, 혹은 수입이 있건 없건 무조건적으로 지급된다. 이것이 바로 기본소득이 성평등에 기여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여성에게 경제적 자유를
한국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2008년 50.0% 이었다. 설사 경제활동에 참여를 한다고 해도 여성 임금노동자의 64.9%가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 성별 임금불평등을 보면 평균적으로 여성은 남성의 62.3%의 임금을, 여성비정규직은 남성 정규직의 39.1%의 임금을 받고 있다(김유선, 2009). 공적 연금 가입현황을 보면 2007년 기준으로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사학연금을 합해 여성은 남성(9백2십1만1천명)의 절반 수준인 5백1십3만 명만 가입해있다. 고용보험 피보험자는 여성이 전체의 겨우 35.4%(2007년)이고, 반대로 기초생활보장수급자는 여성이 전체 수급자의 57.5%로 8십4만7천40명에 달한다. 2009년 총가구수 중 여성이 가구주인 가구는 374만9천 가구로 총가구의 22.2%를 차지하고 있다. 그 비율은 1980년 14.7%, 2000년 18.5%, 2009년 22.2%로 계속 증가 추세이나 이들에게 ‘생계부양자’로서의 임금이 지급되고 있지 않음은 남녀 임금 격차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여성들의 경제적 열악함은 더 나열할 것도 없이 심각한 상황인데 소득비례방식의 사회보장제도는 수많은 사각지대 특히 여성을 지독한 사각지대에 놓이게 한다. 비혼모의 경우를 보자. 정확한 통계가 없다는 것이 비혼모의 현황을 역설적으로 말해준다. 가끔 사회문제로서 지적될 뿐 이들을 사회의 진정한 일원으로, 그들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나누고자 하는 관점과 태도로 접근되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비가시화되고 있는 비혼모는 그들의 처지 때문에 겪는 어려움을 고스란히 혼자서 책임지거나 시혜의 대상자로 여겨진다. 그들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정액의 기본소득이 매월 꾸준히 지급된다면 그들의 삶은 어떻게 변하겠는가? 그들 아이의 삶은 또한 어떻게 달라지겠는가? 또 소득이 없는 여성들, 즉 부양가족으로 인식되며 온갖 무급의 가사노동, 돌봄 노동을 하고 있는 여성들 개인에게 지급되는 기본소득은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경제적 자립의 어려움 때문에 매를 맞고 살아도, 온당한 대우를 받지 못해도 홀로서기(이혼)를 하지 못하는 수많은 여성들에게 기본소득은 어떤 힘이 되겠는가?
'낙인’이 아니라 권리를
여성들의 이러한 경제적 상황은 이들을 돌보아주어야 하는 대상으로 여기게 한다. 비혼모의 여성들, 저임금 장시간 노동의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 소득이 없어 사회보험에 가입하지 못하는 여성들, 매 맞는 여성들, 가사노동자나 간병노동자 등 임금을 받는 노동자이면서도 노동자로 인정도 받지 못하는 비공식 부문의 여성노동자들, 이들은 현재의 사회보장 체계 내에서 사회나 혹은 주변으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으로 여겨진다. 이들 중 많은 수가 사각지대에 놓이거나 ‘시혜의 대상’이 되고, 특수한 상황에 처한 사람이 된다. 보편적 복지인 기본소득은 이러한 여성들을 ‘시혜의 대상’으로 구분하지 않는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런 구분을 하기 위해 자산조사라는 명목으로 그들의 삶을 낱낱이 파헤치지도 않는다.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지급되는 기본소득이지만 다른 사람들보다 이들에게는 더 유용한 그리고 더 절실한 수입원이 될 것이다. 보편적인 복지제도만이 이를 가능하게 할 수 있다. 가장 필요한 곳에 시혜가 아니라 권리로 기본소득은 매우 큰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노동시간단축과 가사노동분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긴 시간의 노동을 한다. 많은 남성들이 ‘남성 생계부양자’의 역할을 수행하느라 하루 종일, 때로는 야간, 철야, 휴일 근로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들은 집에 들어오면 녹초가 된다. 여성 또한 마찬가지이다. 여성 노동자들은 심지어 똑같은 장시간 노동을 하면서도 남성들과 ‘성(性)’이 다르다는 이유로 집에 돌아오면 가사, 양육까지 도맡아야 한다. 이러한 장시간 노동은 일과 생활의 균형(life and work balance)을 어렵게 한다. 장시간 노동과 가부장제적인 ‘남성 생계부양자’논리가 만나면 여성의 3중고는 피할 수 없는 일이 되는 것이다. 기본소득이 도입되고, 여성이든, 남성이든 매월 꾸준히 일정액이 안정적으로 지급된다면 실질 노동시간 단축이 가능해진다(노동시간단축과 기본소득은 지난 호 참고). 실질적인 노동시간이 단축되면 일과 가정의 균형이 가능해진다. 그 뿐이 아니다. 다양한 활동이 가능해질 것이다. 문화 활동, 지역공동체 활동, 혹은 보다 폭넓은 사회활동도 장시간 노동으로부터 해방된 여성과 남성이 사회적 차원으로 자신의 유의미한 활동을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의미있는 사회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데는 기본소득만 있어서는 안 된다. 공공 보유시설이 보다 확충되지 않으면 노동시간 단축으로 생긴 시간들이 ‘자신’의 아이들, 가족들을 돌보는데 머무를 수도 있다. 때문에 기본소득제도의 도입은 다른 공공재의 강화와 함께 이뤄져야 한다. 공공보육의 확충, 무상의료, 무상교육, 돌봄 노동의 사회화 등을 기본소득과 바꾸는 것이 아니다. 많은 기본소득 주창자들이 얘기하듯 공공재는 더욱 확충되어야 한다. 실질 노동시간단축으로 일과 가정의 균형, 의미 있는 사회적 활동도 가능하지만 또한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도 가능해진다. 개개인의 실질 노동시간이 줄어든다면 노동자의 필요∙충족에 의해 노동시간이 단축되면 사용자는 일할 사람이 필요하게 된다. 이러한 일자리가 남성에게만 국한될 것이라는 생각은 지나치게 보수적이다.
성별 노동분업과 기본소득
개인에게 지급되는 기본소득이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성별 노동분업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견은 다양하다. 기본소득이 모두에게 지급되면 여성들은 갈등을 하게 된다. 특히 저임금, 장시간 노동으로 어려움을 겪는 여성들, 또한 아이가 있어 상당히 많은 액수의 보육비를 지출해야 하는 엄마들은 갈등을 겪게 된다. 예를 들어, 100만원의 임금에 40만원의 보육비를 지출하고 있던 여성이 만약 4~50만원의 기본소득을 받게 되면 과연 계속 노동시장에 남아 있을 것인가? 아니면 집에서 아이를 ‘직접’ 돌보는 일을 선택할 것인가? 물론 이는 단순하게 금전적인 이유만으로 선택할 일은 아니다. 아이에게 미칠 영향도 고려해야 하고, 직장에서 자신의 경력을 쌓는 일도 생각을 해야 한다. 그러나 당장은 한 돈 십만 원 더 벌자고 아이를 보육원에 맡기고 싶지는 않을지 모른다. 얼마나 소중한 아이인가! 아마도 노동시장을 떠나게 될 가능성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또 한 가지의 예를 생각할 수 있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하는 여성 노동자들이다. 그녀들에게 기본소득 4-50만원이 매달 지급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허리가 휘도록 일을 해도 최저임금조차 받기가 쉽지 않다. 차비에, 식비에 이렇게 저렇게 드는 비용을 생각하면 기본소득이 있으니 차라리 집에 있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들은 쉽게 노동시장을 떠날 수 없을 것 같다. 최저임금의 일자리를 선택하는 여성들의 경우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최저임금에, 비정규직으로,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면서도 그런 일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녀들에게 기본소득은 ‘추가’의 소득이 될 가능성이 더 많다.
그러나 만약 그러한 여성들이 기본소득이 생김으로써 그녀들이 일자리를 떠난다면? 이를 과연 어떻게 볼 것인가? 많은 여성학자들이 기본소득에 대해 우려하는 이유를 살펴보면, 성별 노동분업을 더욱 고착화시킬 것이라는 우려이다. 요지는 이렇다. 여성 개인에게 기본소득보장이 보장되고, 이로 인해 저임금 일자리를 이탈하게 되어 가정에 머물게 되며, 그렇게 가정에 머물면 너무도 자연스럽게 가정 내의 돌봄 노동을 전담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성별 노동분업은 더욱 고착화되며, 언제가 노동시장으로 복귀하고 싶을 때 또 다시 ‘성별 노동분업’에 근거한 일자리에서 일하게 될 것이다. 그러한 일자리의 일은 ‘생계부양자’가 하는 일이 아닌 부수적 일로 여겨서 저임금,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것이다. 결국 기본소득은 여성에게 성별 노동 분업을 고착화시키며 여성에게 ‘평등’은 더 요원한 일이 되게 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만 생각할 일인가? 다른 경우의 수도 생각할 수 있다. 여성 개인에게 기본소득이 보장되고, 그로 인해 저임금의 일자리에서 이탈을 하게 된다. 가정에 머물게 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그 후 장시간∙저임금의 여성 노동자들이 감당했던 그 열악한 일자리에 누가 채워질 것인가의 문제이다. 그 일자리는 기본소득 때문에 여성들이 떠났다면 똑같이 기본소득을 받는 남성들이 그 자리로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이 공평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저임금 등 열악한 조건의 일자리는 지속될 수 있을 것인가? 장시간 일하고도 적은 임금을 받았다는 것은 여성들은 남성에 비해 그 동안 초과적인 착취를 당해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본소득이 도입되면 적어도 이러한 초과착취는 가능하지 않게 될 것이다. 만약 기본소득 때문에 노동시장에서 떠날 것이라는 논리에 따른다면 그들이 떠난 일자리에 새로운 인력이 필요하게 되고 보편적인 기본소득체계 아래서는 과거의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으로 노동자를 노동시장으로 유인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기본소득이 도입되었을 때 여성이든 남성이든 모든 개인에게 또한 사회에 역동적으로 작동하는 기본소득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의식 변화의 토대
물론 기본소득만으로 여성의 평등을 완전히 실현할 수는 없다. 사회적 제도와 문화, 의식의 변화를 위한 무한한 노력이 필요하다. 의료, 보육, 교육 등의 공공성 강화는 매우 중요한 기본조건이다. 기본소득은 임금 노동, 돌봄, 휴식을 섞어서 취할 수 있는 개별의 선택의 가능성을 그들의 필요에 따라 증진시킨다. 때문에 누구도 노동자와 돌봄자, 둘 중의 하나만 되어야 하는 선택을 강요받지 않는다. 기본소득은 임금 고용의 세계에서 그리고 돌봄의 영역에서 남성과 여성의 관계가 바뀌기 위한 가장 가능성 있는 재분배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기본소득만으로는 진정한 성평등에 도달하지 못한다. 기본소득은 다른 제도와 정책들의 변화 즉, 공보육 시설의 확충, 무상교육, 무상의료, 돌봄 노동의 사회화, 가부장적 문화 극복을 위한 사회적 노력과 함께 그 빛을 더욱 발하며 성평등을 실현하는데 기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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