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유토피아’, 대안사회를 위한 기반
이행전략으로서의 기본소득 - 곽노완 서울시립대 교수
기본소득론은 여러 가지가 있다. 이 중 가장 체계적인 기본소득론을 제시한 사람은 판 빠레이스라 할 수 있다. 판 빠레이스는 신자유주의적인 형식적인 자유 및 시장의 극대화에 반대하여, ‘모두를 위한 실질적 자유’를 주창하였다. 여기서 실질적 자유는, 자유를 누릴 수단으로서 지속가능한 최대한의 기본소득에 대한 모든 사람들의 최대한 평등한 권리를 담고 있다. 이 기본소득은 유아부터 노령층, 그리고 특정기간 이상 국내에 거주한 외국을 포함하여 모두에게 신청·심사과정 없이 그리고 기존의 노동소득에 더해져 추가적으로 지급되는 소득이다. 그에 따르면 이러한 기본소득은 생태적‧경제적으로 지속가능한 수준에서 GDP의 압도적인 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최대한 커야 한다. 이러한 기본소득은 현금뿐만 아니라, 교육·의료·보육·깨끗한 길·보행자전용도로·장애인 편의시설 등의 현물공유재의 무상공급을 포함한다. 이러한 기본소득은 자본주의에서도 도입될 수 있지만, “필요에 따른” 분배를 기본 경제원리로 하는 코뮌주의와 상충하지도 않는다. 그는 기본소득은 오히려 코뮌주의의 “필요에 따른” 분배의 다른 이름이라고 본다. 그래서 실업 및 경제공황 등을 통해 사회의 생산력을 막대하게 탕진하는 신자유주의적인 자본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기본소득+지분배당경제(share economy)’ 시스템을 도입하자고 주장한다. 지분배당경제란 웨이츠만(Weitzman)이 주창한 것으로, 노동자가 고정임금을 받는 현재의 임금노동시스템과 달리 기업별 순부가가치(순수익)를 일정비율의 이윤과 일정비율의 노동소득으로 분배하는 것을 뜻한다. 곧 자기기업의 순부가가치가 크면 노동자의 노동소득은 커지지만, 순부가가치가 적으면 그만큼 노동소득도 적어지는 시스템이다. 판 빠레이스는 이러한 ‘기본소득+지분배당경제’에서는 지금까지의 그 어떤 자본주의보다도 노동유인이 클 뿐만 아니라, 고용주 측에서도 고정임금에 대한 부담이 사라져 일자리 제공을 늘리게 되므로 기존의 자본주의보다 경제성과에서도 우월할 것이라고 한다. 곧 이러한 경제시스템은 평등과 정의라는 도덕적 우월성뿐만 아니라 경제적 지속가능성에서도 지금까지의 어떤 자본주의보다도 우월한 ‘최적자본주의’라고 한다. 이는 자본주의를 폐기하진 않지만, 지속가능한 최대한의 기본소득을 담고 있는 만큼 자본주의 내에 최대한의 코뮌주의를 담자는 주장이기도 하다.
판 빠레이스의 기본소득론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아마도 재원마련 대책일 것이다. 판 빠레이스는 불평등한 재산 및 능력의 분배로 인한 수혜자들은 대부분 자기의 노력과 무관하게 고소득의 특혜를 누린다고 본다. 따라서 이에 대해 고율의 조세를 부과하여 기본소득의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비정규직과 실업이 확대되는 현대 자본주의에서 상당수의 정규직조차 일종의 부당한 특혜를 누린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선망 받는 고소득의 일자리에 대해 고용지대세를 부과하자고 제안한다. 이는 기존의 조세만으로는 기본소득의 재원이 충분치 못하다는 인식에 따른 것이다. 나아가 최근에 판 빠레이스는 일국적인 기본소득을 넘어서서 지구적 차원의 기본소득을 주창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영어권 국가들은 영어를 통해 막대한 이득을 얻으므로 이들 국가들로부터 언어세를 거두고, 나아가 생태자원을 많이 소비하는 선진국들로부터 생태세를 거두는 등으로 재원을 마련하여 지구인 모두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함으로써, 지구적 차원에서 기아와 빈곤을 극복하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이러한 판 빠레이스의 재원조달방식과는 달리, 민주노총에서 출간한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인 기본소득을 위하여!'에서 제시된 한국의 기본소득모델은 노동소득에 대한 증세는 최소화하고, 이자‧배당‧지대 등 불로소득 및 증권양도차익‧부동산양도차익 등 투기소득 그리고 토지에 대한 고율과세 등으로 가처분GDP(전체GDP에서 감가상각을 뺀 부분)의 30% 수준에 달하는 재원을 마련하여, 무상교육‧무상의료를 포함한 기본소득을 모든 국민과 5년 이상 거주한 외국인에게 지급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이렇게 될 경우, 2009년 기준으로 39세 이하의 사람들은 개인별로 연 400만원, 그리고 40-54세의 사람들은 연 600만원, 55-64세의 사람들은 연 800만원, 65세 이상의 사람들은 연 900만원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명목GDP상승률 이상으로 매년 증액된다).
이는 판 빠레이스가 간과한 투기소득에 대한 고율과세를 포함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증권양도차익뿐만 아니라 부동산양도차익이 막대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투기소득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크다고 할 수 있다. 통계자료가 미비하여 추정하기는 쉽지 않지만, 투기소득은 최소한 가처분GDP의 20-30%를 차지할 것으로 판단된다. 이는 가처분GDP의 60% 수준에 달하는 노동소득의 반 가까이가 투기자본 및 투기꾼들에 의해 수탈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자‧배당‧지대 등 자본주의적 불로소득이 가처분GDP의 40% 수준임을 감안하면, 불로소득과 투기소득의 합은 사실상 가처분GDP의 60%를 훌쩍 뛰어넘는 것이다. 이러한 불로소득과 투기소득은 신자유주의로 인해 더욱 극대화된 측면이 있지만, 신자유주의뿐만 아니라 모든 자본주의는 노동소득보다는 불로소득과 투기소득의 극대화를 조장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노동소득을 극소화하며 불로소득과 투기소득을 극대화함으로써, 사회 전체적으로 막대한 시간을 불로소득 및 투기소득 획득에 탕진하게 만든다. 한국의 기본소득모델은 이점을 감안하여 불로소득 및 투기소득에 대한 고율과세를 통해 재원을 마련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고 종국적으로는 사회 전체자본 및 토지를 사회전체성원의 공동소유로 전환함으로써 자본주의적 불로소득 및 투기소득을 전액 환수하여 코뮌주의적인 기본소득(사회연대소득)의 재원으로 전환할 것을 지향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가처분GDP는 현재의 ‘사실상의 노동소득 40% + 불로소득 40% + 투기소득 20%’에서 종국적으로는 대략 ‘노동소득 50% + 코뮌주의적인 기본소득(사회연대소득) 50%’를 담는 새로운 21세기형 코뮌주의로 전환될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코뮌주의는 현재의 자본주의보다 사실상의 노동소득비율을 증가시킴으로써 보다 높은 노동‧생산 유인을 갖게 될 것이며 따라서 경제적으로도 우월한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한국의 기본소득모델이 당장에 이러한 ‘코뮌주의적 기본소득(사회연대소득)’을 담고 있는 아니다. 한국의 기본소득모델은 ‘코뮌주의적 기본소득’으로의 이행모델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이행모델이 아직 불로소득 및 투기소득을 완전히 환수하지 못하여 가처분GDP의 30% 정도에 달하는 기본소득을 담고 있다면, 코뮌주의적 모델은 불로소득 및 투기소득을 완전히 환수한 50% 수준의 기본소득을 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2단계론은 현실사회주의의 역사적 과오로 인해 한국사회에 뿌리 깊게 새겨진 레드콤플렉스를 고려한 것이다. 만약에 이러한 레드콤플렉스가 정치적으로 상당히 극복된 상태라면 이행모델과 같은 우회로를 거칠 필요 없이 ‘코뮌주의적 기본소득’으로 직행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 한국사회에 축적되어 있는 250조원 수준의 연기금과 주식회사에 대한 은행대출(사실상 사회전체성원의 예금을 원천으로 하는 것이다)의 주식으로의 전환방안을 활용한다면, 경제적으로는 사회전체자본의 대부분을 당장이라도 전체사회성원의 공유로 전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곧 한국사회에는 이미 코뮌주의 시초축적을 위한 경제적 조건들이 넘쳐날 만큼 축적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기본소득모델은 이처럼 최종적으로 탈자본주의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50% 코뮌주의+50% 자본주의’라 할 수 있는 ‘최적자본주의’를 지향하는 판 빠레이스의 모델과는 다르다. 뿐만 아니라 노동소득에 대한 대폭적인 증세로 인해 생산유인을 감퇴시킬 가능성이 있는 판 빠레이스의 모델과 달리, 노동소득세 증세를 최소화하고 불로소득‧투기소득에 대한 증세를 극대화함으로써 생산유인을 높게 유지할 수 있으므로 판 빠레이스의 모델보다 경제적으로 우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정규직 노동자를 기본소득의 피해자로 만들 수 있는 판 빠레이스의 고용지대세와 달리 수혜자로 만듦으로써, 그들도 기본소득의 적극적인 지지자가 될 수 있는 계기를 담고 있다. 나아가 판 빠레이스는 기본소득의 도입되면 노동시장이 유연화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 반해, 한국의 모델은 최종적인 코뮌주의적 모델에 도달하기 전까진 최저임금제의 강화와 병행하는 기본소득이라는 점도 중요한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기본소득은 기존의 노동과 연계된 사회복지 패러다임과 달리, 무조건적으로 지급된다는 점에서 임노동과 강제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을 위한 계기를 담고 있기도 하다. 연금이나 실업급여, 희망근로프로젝트 등 기존의 대부분의 현금지급형 사회복지는 과거나 현재 또는 미래의 노동과 연계되어 있다. 이는 사실상 노동을 강제하는 사회복지인 셈이다. 기본소득은 부분적으로 이러한 임노동강제로부터의 해방을 담고 있으며, 각자가 보다 원하는 노동이나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사회활동을 할 수 있는 기본적인 경제적 기반을 마련해 준다.
기본소득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생태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지속가능한 유토피아’ 내지 ‘가능한 좋은 사회’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물론 기본소득이 그러한 사회를 위한 충분조건은 아니다. 하지만 충분조건의 일부 그것도 가장 중요한 일부일 수 있다. 그것은 빈곤과 실업에 대한 유력한 대안이며, 소년소녀가장‧장애인‧외국인 모두가 떳떳하게 품위 있는 생존권을 향유할 수 있는 방안이다. 그런 점에서 기본소득은 지금까지 사회적으로 배제되었던 사람들의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기본소득은 임금노동자와 자영업자처럼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기본소득만큼 더 많은 것은 누릴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령층의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기본소득의 최대수혜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본소득은 노동자‧영세자영업자‧여성‧장애인‧청소녀‧사회활동가‧대학생‧외국인‧노령층 등 인구의 90% 이상이 환영하고 연대하게 될 계기를 담고 있다. 이는 기본소득이 자본주의를 넘어선 변혁 및 이를 향한 이행의 획기적인 주체형성전략이기도 하다는 걸 뜻한다. 기본소득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연대하게 된다면, ‘지속가능한 유토피아’ 내지 자본주의를 넘어선 대안사회는 그리 먼 곳에 있지 않다. 특히 보다 급진적인 한국형 기본소득은 그동안 착취당하고 수탈당했던 90% 이상의 사람들의 연대를 활성화함으로써, ‘지속가능한 유토피아’ 내지 대안사회를 획기적으로 앞당기는 데 기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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