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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이야기 하다

연출된 사진과 애국심 - "The Iwo Jima Frag" Joe Rosenthal

by 淸風明月 2024.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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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지마(유황도)는 일본 도쿄도 남쪽 해상 오가사와라 제도 중앙에 있는 화산섬으로 이오 열도를 구성하는 3개 화산섬의 중핵을 이루는 섬으로 남서부의 스리바치산을 제외하고는 응회암으로 이루어진 섬으로 1779년 쿡 탐험대가 이 섬을 거쳐 갔으며, 1891년 일본의 영토가 되었다. 1887년부터 일본인이 이주하여 황 채굴과 사탕수수 재배에 종사하였다, 일본은 1944년 주민을 강제 퇴거시키고 일본군 기지를 건설하였다. 그러나 1945년 2월 미국 해병대와의 싸움에서 패전 후 미공군 기지로 사용되었다. 1968년 오가사와라 제도와 함께 일본에 반환되었으며, 현재는 일본 자위대가 항공기지로 사용되고 있다.

 

"The Iwo Jima Frag" Joe Rosenthal

우리 눈에 많이 익숙한 로젠탈의 이 사진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미 해병대원들이 이오지마섬 정상에서 깃발을 꽂는 모습을 촬영한 사진으로 1945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사진이다. 이 장면은 모든 미국인에게 일본에 대한 승리의 상징일 뿐 아니라 전쟁 전체의 승리의 상징이 되었다. 미국 내에서는 동상뿐 아니라 우표, 버터, 아이스크림 더구나 소시지에도 사용되어지기도 했다. 이 사진은 2차 세계대전 말기 미국이 간절히 원했던 영웅의 이미지와 부합되었기 때문에 대대적으로 홍보가 되어졌고, 미국의 해군장성은 이 사진을 보며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이 사진만 있으면 미국 해병대는 앞으로 오백년은 평안하고 무사할 것이다.” 하지만 이 사진은 조직적으로 왜곡되어진 사진이며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되었고 저널리즘에서 사진의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예가 되었다. 이 사진이 확실히 연출되어진 사진이라고 단언하기는 힘든 면이 있다. 연출인지 아닌지에 대한 진위여부도 확인되지 않았다.

 

연출일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당시 몇몇의 사진 기자들은 이 사진이 연출된 사진이라고 주장한 반면, 사진을 촬영했던 로젠탈은 우연히 촬영된 사진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출이냐 아니냐의 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이 깃발이 최초의 깃발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사진에 찍힌 깃발은 처음의 깃발이 너무 작아 큰 깃발로 바꾸어 꽂은 깃발이다, 그러나 이 깃발이 가장 처음 꽂아진 깃발인야 왜곡 선전 되었다. 최초의 깃발은 스리바치 산을 점령한 후, 해럴드 G. 샤이어 소위가 인솔하는 40명의 병사가 정상에 꽂았다. 해군잡지<해병대>의 카메라맨 루이스 로워리가 최초의 깃발이 꽂혀지는 광경을 촬영했지만 깃발이 너무 작았던 것이 로워리에게는 불운으로 작용 했다. 최초의 깃발이 꽂혀지고 나서 세 시간 정도 지난 후 존슨대령은 깃발의 교환을 결정했다. 멀리서 망원경 없이는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순간 로젠탈이 정상에 올라왔고 그는 두번째 큰 깃발이 꽂히는 장면을 찍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오지마의 깃발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에서 이긴 진정한 영웅들의 깃발은 크기가 작다는 이유로 내려지고, 전투와 아무 상관없는 군인들에 의해 새워진 큰 깃발이 상징적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이다. 이 사진은 100여 년 사진의 역사에 기억되는 한 장의 사진으로 남았다. "이오지마의 깃발" 사진은  사진의 윤리적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사진으로 충분하다. 사진가의 연출에 의해 촬영되는 사진만이 문제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저널리즘에서의 사진은 사실묘사에 의한 기록수단 뿐 아니라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한치의 왜곡도 있어서는 않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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