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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 Cinema

켄 로치의 "빵과 장미(Bread and Roses)"

by 淸風明月 2011.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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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로치의 "빵과 장미(Bread and Roses)"

담요 속에 숨어 멕시코 국경을 넘어 미국에 온 말괄량이 아가씨 마야는 언니의 도움으로 로스엔젤레스의 엔젤 크리닝 컴퍼니에 빌딩 청소부로 취직한다. 그러나 이 도시에는 천사라곤 없다. 호의를 베푸는 척 하면서 한달 월급을 커미션으로 갈취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지각을 해도 영어를 못해도 시간당 5달러를 받는다... 

켄로치의 "빵과 장미 Bread and Roses" 영화이야기 첫번째 영화로 소개하게 되었다. 켄로치의 영화는 칸/베를린 등의 영화제에 의무적으로 초대가 되는데 그 이유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것인지 모르겠다. 켄 로치라는 단어에는 사람들의 죄의식을 건드리는 은밀한 힘이 숨어 있다. 브레히트식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이다.

현존하는 사회주의파 감독 중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지명도가 높은 감독이 켄로치이다. 그의 작품"빵과 장미"는 2000년 깐느 경쟁부문 진출작이며, 산타바바라 국제영화제 피닉스상을 수상했다. "빵과 장미"는 LA의 빈곤 노동자층을 그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극렬한 이데올로기의 대립이아니다.

"빵과 장미 Bread and Roses"는 미국 LA에서 실제 있었던 환경 미화원 노조 결성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왜 빵과 장미냐구? 물론 빵은 생존권을 상징하며, 장미는 최소한의 품위를 유지하며 살 권리를 의미한다. 미국의 부의 상징의 도시인 LA의 마천루에서 일하는 이들 대부분은 중남미에서 건너온 밀입국자들. 호화스러운 건물 속에서 이들은 꼭 있어야 하지만, 밖에는 절대 드러나서는 안 되는 부속품과도 같은 존재이다. 수명을 다하면 싼 가격에 대체될 수 있는 건전지와도 같은 부속품 처럼. 이처럼 밋밋한 제목과 다소 선동적인 줄거리는 <빵과 장미>를 "슬로건"으로 가득한 선동 영화 쯤으로 오해하게 할 여지가 있지만, 영화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이외에, 공들여 창조된 캐릭터들과 남미인 특유의 유머 그리고 마야와 샘의 달콤한 로맨스 등으로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마야는 불법이민자라는 치명적인 약점을 제외하고는 현대 젊은이의 전형이라 부를만한 행동을 보여준다. 비록 고단하고 힘든 일상이지만, 그녀는 삶 자체를 즐길 줄 아는 사람. 그러나 마야는 자신이 소중하게 여긴 일상이 깨어질 위기에 처했을 때 비로소 행동하기 시작하며, 그 동안 자신이 잊고 있었던 것을 마침내 얻어내는 승리를 거둔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녹녹한 곳이 아니다. 모든 것이 잘 해결되는 시점에, 마야는 미국을 떠나 자신이 원래 있었던 멕시코로 강제 추방된다. 감독이 보는 희망적인 시선은 딱 여기까지인 셈이다.


1912년 여성 노동자들의 권익 투쟁 당시에 쏟아져나온 구호 '빵과 장미'는, 인간이 단지 의식주의 기본적 요건의 충족만 원하는 동물적 존재는 아니라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빵'이 생존을 위한 기본적 필요요건인 물질적 재화를 상징하고 있다면,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권리, 즉 인간의 존엄성을 '장미'는 상징하고 있다. 삼엄한 분위기의 1980년대의 한국이었다면, "노동자들이여 일어나라!"라는 투의 <빵과 장미>는 개봉은 커녕 영화의 제목을 언급하는 것 조차 금기 시 되었을 듯. 그러나 세상이 많이 바뀐 오늘날에도 한국에는 마야나 로사, 테레사처럼 멀리 동남아에서 온 밀입국 노동자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과연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각은 어떤가? 영화 중에서 건물 로비에서 생존권을 외치는 노동자들을 무슨 싸움 구경하듯 무관심하게 지켜보던 건물 입주자들의 무관심한 표정과 흡사하게 보인다.

Cinema Paradiso  NO.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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