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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cs and Society Archive

Institutional Theory and the Realist Challenge After the Cold War

by 淸風明月 2023. 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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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TITUTIONAL THEORY AND THE REALIST CHALLENGE AFTER THE COLD WAR

- Robert O. Keohane -

 

 

1. 개 관

 

'이론' 이라는 것은 어떤 시기나 주제에 대해서도 통상적인 이해를 반영해야 한다. 과거는 어떻게 생각했고, 관점은 무엇에 기초하고 있는지, 인과관계의 이해는 무엇인지, 그리고 현실에 대해서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특히 통상적 이해와 현재의 실행사이에 괴리는 분명 존재한다. 그래서 이러한 주장들을 시험하는 새롭고 분석적인, 그리고 분석적인 주장들이 필요하다.

 

이 글은 이러한 것들을 반영하고 있다. 소련과 동구권의 몰락으로 힘과 군사력으로 세계가 양극으로 대치해 왔던 과거의 모습에서 벗어나 법, 제도, 규범이 냉전 후에는 부상할 것으로 기대한다. 전체적인 이 글의 요지는 두 가지로 나누어져 있다. 12장에 있는 그리코 논문에 대한 논쟁과 더불어 제도주의자로서 코헤인은 분석- 즉 냉전 후 EU처럼 제도주의로서 세계가 운용될 것이라는 믿음을 담고 있다.

 

 

2. 논쟁의 변천사

 

우리는 1914년과 1939년 사이에 작동했던 이러한 이중적 변증법을 관찰한다. 제 1차 세계대전은 당연하게 사려 깊은 관찰자들을 비록 반드시 평화가 아니더라도 정치적 완화와 안정을 생산하는 연합적 정치 속에서 신성한 국가주권을 간주하는 보편적인 세력균형의 생각의 자기만족에 도전으로 이끈다. 이전보다 더 파괴적인 양립할 수 없는 전쟁을 자각하는 것은 그것을 막기 위한 계획으로 이끌고, 우드로 윌슨에 의해 말해지는 집단안보는 가장 두드러진다. 그것의 이상주의적 요소들과 1930대의 나치즘의 발생들의 상호작용 속에서, 이러한 자유주의적 건설은 비판받았고, '20년의 위기'에서 카에 의해 대부분 황폐화되었다. 스탠리 호프만이 관찰한대로, 국제관계의 접근으로써 '현실주의'의 현대적 기초가 되었다.

 

카에 의해 지지를 받은 현실주의는 결코 국제정치에 대해 생각하는 이상주의자에게 가장 단순한 반정립(反定立)이 아니었다. '20년의 위기'의 주제는 정치적 이익, 거래, 그리고 모든 국제적 과정들과 제도들을 바탕으로 힘의 위협이었다 : 국제법에 대해 카가 말했던 대로, 독립적으로 그것에 의존하는 정치적 토대와 그것에 봉사하는 정치적 이익들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카는 그의 현대적 계승자들과는 달리, 힘의 분석을 멈추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그는 요구하는 평화적인 변화를 성취하는 방법들을 구했고, 그는 '그것의 작동에 기초가 되는 여러 방법들은 힘만이 아니고, 모든 정치적 생명체의 기초하는 힘과 도덕성 사이에 문제를 다루는 것은 쉽지 않다'.

 

모겐소는 그의 가장 역작 , 'POLITICS AMONG NATIONS' : 권력과 평화를 위한 투쟁으로 이름 붙여졌을 때를 알고있는 대로 의 규범적인 함축에 대해서 쉽지 않았다. 모겐소 책의 대부분은무정부의 존재하는 상황일지라도 평화와 완화를 성취하기 위한 전략들과 관계가 있다.

 

1970년대 동안, 현실주의는 이 책에서 전임자 코헤인이 보여주는 대로 왈츠에 의한 구조적 형태속에서 체계화되었다. 이러한 신현실주의자의 형성, 힘의 분배는 고전적인 현실주의 보다 더 강력하게 결정하는 산물들로 보고 있고, 적은 관심은 평화적 변화의 과정들 또는 국제적 제도들로 지불된다. 고전적 현실주의 보다 더 정확하게, 신현실주의는 또는 협소하게 그려졌고, 보다 더 쉽게 변했다.

 

현실주의의 심각한 도전은 세계에서 현실주의의 전제와 행위의 형태 사이에 변칙들에 나타날 때만 일어났다. 미국에서 주목받았던 변칙들은 놀랍지 않고, 자유주의자들은 전제정치보다 외교정책에서 다르게 행동하는 민주정체들의 분명한 경향과 경제적 상호의존의 증가하는 침묵을 포함해서 쉽게 인식할 수 있었다. 상업적 자유주의와 공화적 자유주의 - 경제적 상호의존이 평화에 기여한다는 믿음과 민주정체들이 비민주정체들 보다 어떤 관계에서 적어도 보다 평화롭다 - 는 자유주의적 사고에 중요한 긴장을 오랫동안 해 왔다. 그래서 나이가 '사회학적 자유주의', 부르는 것 속에 말은 '초국가적 접촉들의 변환적인 효과들과 국내적 태도들 속에 연합들과 이익들의 제한들을 확언한다' 이다.

 

이 논문에서 제도주의이론은 현실주의로부터 중요개념들(국가가 세계의 주요한 행위자, 상대적 능력)을 빌려 왔고 제도주의이론은 국가들이 세계정치에서 주요한 행위자이고 그들 자신의 자조들의 개념들의 기초에서 행동하는 것을 가정한다. 상대적 능력들 - 현실주의의 '권력의 분배' - 중요하게 남고 국가들은 협력으로부터 그들 자신의 이득을 보장하기 위해 그들 자신에 의존해야 한다. 그러나, 제도주의이론들은 또한 자조의 개념들의 변화 속에서 국제적 제도들의 역할을 강조한다. 그 까닭에 이익들의 형성에 대해 생각하는 자유주의를 그린다. 제도주의의 사고는 자유주의의 조화에 맞춘 관점들보다 오히려 현실주의에 그것의 비판적 열중에 초점을 맞추고, 후자는 반세기 동안 앵글로 아메리칸 국제관계이론 속에서 묘사해왔다.

 

제도주의는 국제적 레짐들의 중요성과 지속적인 수의 증가를 지적한다. 제도주의 주장의 정당성에서 현재 논쟁의 중심의 다수는 국제레짐들과 제도들을 보다 넓히는 것이다. 현실주의 저자들은 '국제제도들은 국가간 협력에서 무정부를 강제하는 효과들을 약화시킬 수 없다' 이러한 논쟁을 비판해 왔다.

 

그러나 그리코에 의해 가장 체계적으로 진행되었고, 국가들은 절대적 이득득에 대한 것 보다 상대적 이득 더 관심을 갖는다. 이 논문의 전반부에서, 나는 이 논쟁에서 간략한 반성들을 제공할 것이다. 간결함은 성취하기 쉽고, 1991년 이후 밀러에 의한 글 (이 책에서 인쇄된)은 세련된 방법으로 '무정부'의 개념을 토론하고, '상대적 이득 논쟁'의 분석들을 확실하게 하는 것은 파웰과 스니덜에 의한 논문들 속에 공급되었다.

 

학문적 이해와 세계에서 변화들 사이에 변증법은 끝나지 않았다. 그 반대로서, 유럽에서 시작한 냉전의 종식은 다시 우리의 전제들을 도전하고 있다. 그 까닭에 이 논문의 두 번째 부분은 국제제도의 중요성을 뛰어넘는 논쟁은 이러한 사건들에 의해 설명할 수 있는지를 시험하려고 애쓴다. - 현실주의자들과 제도주의자들이 예상했던 것이 아닌 - 서유럽은 현실주의와 제도주의자들의 관점의 비교적인 평가를 위해 좋은 영역을 제공하고, 서유럽은 1989년에 고도로 제도화되어 왔다. 엄격한 현실주의자들이 옳다면, 이러한 제도들은 많은 상이점을 만들지 못한다. 독일의 재통합으로, 유럽은 강화되었음이 틀림없고, 전반세기의 두려움의 형태와 같은 무정부하에서 투쟁들은 되풀이되는 운명을 지닌다.

 

(보론)앞으로 논쟁의 초점은 현실주의와 제도주의가 될 것이다. 앞의 5장에서 내가 설명하고 있듯이 (신)현실주의, (신)자유주의, 그리고 제도주의는 분명 차이가 있다. 그리고 과거에 현실주의 대 자유주의가 논쟁의 초점이었다면, 현재와 미래에는 현실주의 대 제도주의, 구성주의(웬트류, 하버마스류)의 논쟁이 이슈로서 부각될 것이다.

 

 

3. 제도주의적 이론과 상대적 이득들의 이슈

 

합리적 제도주의이론의 가정은 세계정치에서 주요한 행위자로서 국가를 합리적 이기주의자라는 현실주의와 함께 공유한다. 제도주의자들은 현실주의자와 반대로, 불일치가 반드시 합리적 이기주의로부터 기인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논쟁한다:

 

이기주의자가 다른 국가의 행동을 감시하거나 그들의 다수 역시 다른 국가들과 협력하는 상황에서 협력한다면, 그들은 그들의 행위에서 불일치를 감소시키도록 적용할 수 있다. 그들은 심지어 창조되고 원칙들, 규범들, 법들 그리고 절차를 유지하게 한다 - 제도들은 레짐과 같이 이 책에서 되었다. ...... 적절하게 고안된 제도들은 패권적 권력의 부재속일지라도 이기주의자들이 협력을 할 수 있게 한다.

 

제도주의자들은 국가를 초월한 권위의 가공의 힘에서 국제레짐을 향상시키지 못한다. 즉 다시말해서 국가들이 그들의 국익을 추구하기 위해서 레짐들을 창출하는 것이다. 상호의존의 상황들하에서 조정과 협조의 모순에 직면해서, 정부들은 제한된 집합행동을 통해 국제제도들이 그들의 이익들을 성취하도록 그들을 돕도록 요구한다.(코헤인, 스타인) 이러한 제도들은 법들을 강화하는 것에 의해 원칙적으로 국가목적에 봉사하지 않는다. 여기서도 대국의 힘만이 법을 강제할 수 있다. 예를 들면 IMF와 같은 기구들을 들 수 있다. 그러나 거래비용들에서 감소와 정보의 규정을 통해 결정을 용이하게 하는 것에 의해 협정을 유지하는 것에 의한다. 협력은 결코 완전할 수 없을 것이며 불일치와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동으로 이익이 되는 협력을 용이하게 하는 것을 성공하는 그러한 협력들은 그들이 국가에 공급하는 기회가 중요하게 될 것이고 그들은 그 까닭에 영속성의 어느 정도를 획득할 것이고 그들의 법들은 국가에 의해 힘의 사용이 제한될 것이다. 정부들은 여전히 정치적 영향력의 사용을 통한 협력으로부터 이득들의 증가하는 그들의 소유들을 포함해서 그들의 목적을 획득하기를 추구할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영향력의 사용은 단지 그들의 물질적 능력들에 의존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목적과 수단사이에 관계에 의존할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법들과 국제제도의 실행에 의존할 것이다.

 

(보론)이 책에 기저에 흐르는 脈은 코헤인과 그리코의 상대적 이득에 대한 논쟁이다. 코헤인 같은 경우는 앞에서 절대적 이득의 중요성을 말했다. 국가들은 오직 자신의 이득에만 관심이 있고 다른 나라의 이득에는 관심이 없다라고 했다. 그러나 그리코는 '방어적 지위주의자'로서 상대적 이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의 이론의 요지는 무정부적인 국제적 상황에서 자기가 스스로 자신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다른 국가의 이득은 자국에게 불리하기 때문에, 또는 그 이득으로 인해 강해진 타국이 자국을 위협하지 않을까? 라고 의구심 때문에 상대국가가 강해지기 전에 이를 막을 필요가 있다고 해서 '방어적 지위주의자로서 국가'. '상대적 이득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했다'

 

앞으로 이어질 내용은 이러한 상대적 이득의 상황성을 살펴보기로 하자

 

 

4. 상대적 이득들의 상황성

 

제도주의적 접근은 국가들을 포함해서 행위자들은 단지 그들 자신의 효용에만 관심이 있다.다른 국가의 복지에 본질적인 관심이 없다. 그러나 'After Hegemony'에서 나는 명백하게 이익들은 상호의존이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한 상황의 다양성을 논쟁하고 난 후에, 나는 그리코가 최근에 언급한 '상대적 이득'이라는 것의 문제에 주목한다.

 

권력 갈등의 특징과 특히 군비경쟁의 혹독한 경쟁상황 하에서...... 한쪽의 이득은 다른 쪽의 손실로 보여진다.... 내가 여기 하는 논쟁에 의해서, 다른 나라의 부의 이득들의 부정적 평가는 국제레짐들을 제도화시키기 어렵게 만든다.(코헤인)

 

그래서 제도주의는 국가들의 상대적 이득에 대한 관심은 협력을 보다 어렵게 만들 것이라는 가능성을 주장한다. 그러한 주장은 이득들이 명백하게 상황적이기 때문에 모순 속에서 제도주의 이론을 진행시키지 않는다. 코헤인의 이론은 그들이 협력을 이끌 것이라는 상황아래서 시험되고 주어진 공동이익득의 존재를 발전시킨다.(코헤인) 그리고 과거의 군비경쟁이 현재에는 실효성이 없기 때문에 코헤인의 이론에 대한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반대로, 1988년에 'I . O'에서 조셉 그리코는 국제무정부의 직면은 '어떤 관계에서 국가들의 근본적인 목표는 그들의 상대적 능력에서 다른 국가가 진보를 획득하는 것을 방해한다'라는 의미라고 주장한다.(그리코) 무정부의 위험들에 대한 반응에서, 국가들은 '방어적 지위주의자들'로 '다른 나라들의 능력이 증가를 방해하는 추구한다' 하고 그 까닭에 국제협력에 참여하는 것에 신중하다. 그리코에 따르면 협력은 제도주의자들이 믿는 것보다 덜 의미있다.그리코의 주장의 상황성을 인식한다면, 제도주의이론에 대한 그의 비판은 크게 약화된다. 국제적 무정부는 절대적 이득보다 오히려 상대적 이득에 대한 관심을 지시하는 논쟁은 유지될 수 없다. 상대적 이득들은 국가들과 기업들에게 중요한 유입하는 힘일지 모르지만, 어떤 기간 속에서의 이득들은 다른 기간의 권력관계를 바꿀 때 만이고, 권력의 부수적인 이점들은 스스로에 대해 사용되어질 것 같을 때이다. 상대적 이득이 절대적 이득보다 중요하다는 주장의 이론적 정당성은 상황적이고, 경험적 분석은 중요한 논쟁을 수행해야 하고, 그리코의 '신자유 제도주의의 실패' 주장은 과장되었다.

 

국가들은 능력들만큼 의도들을 평가한다. 앞 장에서도 설명했듯이 현실주의자는 능력에 자유주의자들은 의도에 보다 많은 비중을 둔다. 비록 협력으로부터 비대칭적인 이득은 증가할지라도, 그들의 파트너(그리코의 말속에서, 상대적 손실뿐인 절대적 이득) 가 획득한 그것보다 작은 이득을 예측하는 그러한 정부들은 능력속에서 이러한 흐름은 그들에 대항해 사용되었을지 뿐만 아니라 이것이 어떻게 일어날지를 물을 것이다. 능력안에서 이러한 흐름은 불리하게 사용되었을 것 같지 않지만, 이러한 관계들 속에 상대적 이득들에 대한 관심은 덜 중요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비대칭적인 이득의 직면은 절대적 이득보다 상대적 이득을 걱정하는 국가들을 위한 충분한 상황이 아닌 것을 제외하고 미래의 권력관계의 주어진 설정은 필수품으로 구성되는 것을 함축한다.

 

던컨 스너덜은 '죄수의 딜레마' 같이 행위자의 수가 적은 게임에서 있어서는 절대적 이득의 상황에서도 상대적 이득의 나쁜 충격을 과장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행위자의 수가 많은 게임에 있어서는 이것이 달라진다. 행위자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상대적 이득의 동기가 감소한다.(스너덜) 상대적 이득이 이러한 상황들에 중요했을 때, 그 결과는 스너덜이 '방어적 협력'이라 부르는 것이 당연할지 모른다 : 집단적으로 상대적 이득을 얻으려는 '협력적 단체'의 형성(국제기구 또는 동맹들) VERSUS 다른 집단들(스너덜) 많은 행위자들이 활동함에 따라, 상대적 이득에 대한 관심은 제도화된 협력의 어떤 형태들을 제한하기보다는 증진시킨다.

 

이러한 논쟁에서 그려진 일반적인 점은 간단하다. 상대적 이득의 충격에 대한 어떤 주장들은 고도로 상황적이다 : 그들은 공동 정부의 부재로부터 논리적으로 따르지 않거나, 또는 '국제적 무정부'이다. 두 행위자보다 많은 체계가 있는 곳에서 진행되면서, 그러한 주장은 상대적 이득계산자의 목적을 위해 '중요한' 관계들의 특수화의 부재속에서 근본적으로 모호하다. 그 결과로, 상대적 이득의 이론적 중요성은 그것을 파괴하는 것보다 제도주의 이론의 질에 있다.

 

스너덜과 파웰과 같이, 제도주의자들은 제도주의와 신현실주의는 이론들이 대립적이라는 관점을 거절해왔고, 하나 또는 다른 관점이 타당하다는 것 하에서 상황에 초점을 맞추어왔다. 제도주의는 국가동기에 대한 현실주의의 가정을 받아들이고 세계정치에서 일반적인 강화 권력이 부족하고, 일반적인 이익들이 존재하는 곳에 대해 논쟁하고, 현실주의는 협력의 전망과 제도의 역할에 대해 너무 비관적이다.

 

적은 공동이익의 상황에서 - 국제관계에서는 제로섬 게임의 연속이 적절하다 - 신자유주의의 예측은 신현실주의의 그것들과 상당히 중첩된다. 이러한 상황하에서, 국가들은 서로 협력하기를 꺼리고 보다 지속적인 배열보다 덜 지속적인 것을 선택할 것이다. 더구나 연계는 협력을 방해하는 것이 당연하다. 두 이론의 예측 사이에 분열은 협력을 통한 공동이익을 위한 기회는 실재적일 때만이 분명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하에서 신자유주의 이론에 따르면, 상대적 이득에 대한 국가들의 망상은 감소될 것이다. 그들은 명백하게 법들과 기구들을 가진 지속적인 제도들에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이슈의 연계는 늘 있지 않지만 종종 협정을 용이하게 할 것이다(코헤인)

 

 

5. 상대적 이득에 있어서 중요한 관심에 대한 상황들

 

1992년 그리코 교수는 상대적 이득에 있어서 그의 논쟁의 상황성을 받아들였다.(그리코 12장) 여기에 3개의 특수한 질문은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나에게 나타났다.

 

첫째, 상대적 이득의 개념은 두 행위자보다 많아져서 모호하게 되었다고 논쟁한다. 둘째, 그리코 교수는 상대적 이득들 관심(그의 'k')은 항상 긍정적이라고 적용한다. - 즉, 그들은 협력을 제한한다 - 그리고 종종 크다 : 이득의 갭에서 국가의 민감성 계수 - k - 은 0보다 항상 크지만 다양하게 예측된다' (그리코 12장 323p) 이 논쟁은 '선호하는 파트너 이득들 속에 갭은 국가의 효용에서부터 어느 정도로 항상 끌어낼 수 있다'(그리코) 반대로, 나의 관점은 그리코가 말한 이 계수는 긍정적, 부정적, 또는 0 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진술과 반대로, 한 동맹은 다른 나라의 힘을 강화하기를 추구하는 안정한 동맹의 경우는 부정적이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냉전의 초창기에, 미국은 일부러 유럽과 아시아 안에 미국의 동맹의 경제적 능력을 건설했고, 반면에 소련과 중국의 기술적 경쟁을 제한하기를 열심히 애썼다. 실로 그것은 그리코 교수가 그의 책에서 찬성으로 인용해 와서 동의된 이 점에 효과가 있는 듯 하다.(그리코 1990년) '위험이 나타나고 안목을 괴롭히는 공동적에 어느 범위에 있어서' 시작할 때, 한 국가는 실재적으로 동맹의 능력에 증가를 환영할지도 모른다' (그리코 12장 323), 분명하게, k는 긍정적 또는 부정적이라면, 그것은 또한 부정적인 한 0 일지도 모르고 긍정적 요소는 다른 나라를 상쇄했다. (또는 상대적 이득들에 대한 관심에 있는 곳에는 무시되었다).

세번째, 불일치는 우리가 곤란한 거래를 관찰하는 곳의 상황의 경험적 평가와 관련되고, 상대적 이득에 대한 관심에 의해 설명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경험적 평가의 문제는 다른 나라의 복지는 마치 그들이 상대적 이득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이득이 있는 곳에서 행동할 것에 무관심한 양측의 실재에 의해 보다 더 어렵게 만들었다. 그것의 파트너의 복지에 대한 관심없이, 그 자신이 순이익을 최대화를 추구하는 행위자는 가능한 그러한 이득의 소유만큼 획득하려 하고 공동이익을 성취하는 것 둘 다 추구하려 할 것이다. 그것의 전략은 이 두 개의 목표를 연계할 것이다 : 예를 들면, 공동이익을 공급하는 거래에서 동의할 약속은 그러한 이득의 분할의 특수화에서 부연할 것 같다. 한번 동의형태를 부분들에 의해 거두어들이려는 공동이익을 최대화하기만 하면, 그 자신의 순이익을 최대화하려는 한 측의 효과는 마치 그것의 파트너의 이익을 최소화하기를 추구한다면 같을 것이다.

 

제도주의 이론을 반박하는 그의 경험적 시도에서, 그리코는 이 모호성에 확실하게 대답하지 않는다. (1990년) 그는 상대적 이득에 대한 EC에 의한 관심을 보여 주면서 무역에 기준과 기술적 장벽에 대한 EC - U.S를 설명한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설명일 뿐이다. 실재적으로 그리코의 기준에 대한 언급한 것은 EC가 개인적인 협상가들에 무겁게 의존하고 그것의 연방제도와 함께 미국의 중앙 정부의 실행에서 있어서 너무 강력하게 초점을 맞춘 법들을 피해하는 것은 그것의 유럽 파트너보다 덜 엄격하게 규제된다. 그러한 법들은 미국 상대적 이득에 주어져 왔을 뿐만 아니라, 합의의 EC 나라들에 물질적 이익을 감소시켜 왔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이익들의 커다란 소유를 위한 거래의 근본적 모호성으로 돌아가고, 그리고 상대적 이득을 위한 것은 구별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리코는 상대적 이득 가설을 지원하는 증명을 설명하지만, 그는 EC가 그 회원들 자신의 효용을 최대화하기 위해서 보다 선호하는 협정을 위해서 강요하는 선택적인 가설에 실패한다. 두 가설은 같은 행동을 예측하면서, 그의 증명은 다른 것을 넘어 하나의 가설을 설립하기에는 불충분하다.

 

그리코는 또한 상대적 이득을 위한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그리고 아르헨티나의 관심은 그들을 '다른 나라를 위한 것보다 미국과 EC를 위한 거위 보다 많은 이득을 위한 절대적 이득을 야기했다.' 반덤핑 협정을 막게 한다고 논쟁한다.(1990). 그러나 독자들은 '이 세 나라들은 단순히 그들 자신을 위한 보다 나은 거래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라고 묻는다. 유럽통화제도(EMS)는 약한 파트너와 양측 이득의 처별적인 대우를 통해 '상대적 이득은 약한 참여자에 관심있다'을 반영한다고 말했다. 한번 다시 시작하자마자, 왜 약한 국가들의 요구는 단지 그들의 효용을 최대화하기를 바라기를 반영하지 않는지 물을지도 모른다.

 

선택적 이론들은 같은 행동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에, 상대적 이득에 대한 관심을 괴롭히는 그것들에 대항해서 절대적 이득을 위한 곤란한 거래에 기반하는 설명을 검증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예비 검증은 위에서 논쟁한 대로, 분석적인 상황들은 적용하는데 상대적 이득 논리를 위해 필수적이라는 것에 의해 공급된다. 곤란한 협상을 설명하는 효용을 단순히 최대화하기를 바라는 것보다 상대적 이득을 위해서, 한 파트너에 의한 어떤 설득적인 방법은 미래의 시대에서 자기 자신을 다치게 하는 국제협정으로부터 얻어진 이점을 사용할 수 있고, 그렇게 하기 위한 의미있는 기대되는 동기이다. 단 상대적 이득 설명의 옹호자는 이러한 상황들이 만났던 것을 보여줄 수 있다면, 그의 가설에 참여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상황들은 때때로 만났다. - 그들은 냉전 동안 U.S - 소련관계가 있었고, 또한 군사적 적들 사이에 일반적이다. 상대적 이득은 때때로 세계정치에서 중요하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을 바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주장은 상황적으로 보여질수 있고, 경험적인 조사는 앞선 분석에 의해 기술된 상황들을 주의해야 한다.

 

상대적 이득 동기를 위한 그리코의 증명은 덜 강제적이다. 무역에 기준과 기술적 장벽에 대한 협상에 있어서, EC는 상대적 이득을 위한 관심에 의해 유인되어 왔고, 무역의 단일한 단위로서 EC (그래서 게임은 2번 게임이었다) 와 과점적 경쟁은 결정되었던 것에 의해 영향을 받아왔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3개국 일반적으로 작은 나라(아르헨티나,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은 EC와 U.S가 강화되었기 때문에 그들의 예측된 효용을 최대화하려는 거래를 실로 거절했었다. - 어떤 경우에서 2개국 보다 많은 강력한 존재는 미래에 이러한 작은 국가들을 강제하려는 힘을 갖는다. 동기가 이러한 약한 국가라는 것은 국가들이 결코 경쟁할 수 없는 그러한 힘과 함께 파트너와 무역하는 것에 대해 '상대적 손실'을 피하려 하기 위한 그들의 효용에 이득을 포기하게 하는 것을 분할했는가? 달리, 왜 우리는 EMS의 보다 작은 회원국들이 1991년 마스트리트에 하지 않았지만 1970년대 후반에 보다 더 강력한 독일에 대한 상대적 이득에 대해 두려워 한 것을 믿는가?

12장에 이러한 비판들을 대답하면서, 그리코 교수는 '한 파트너가 두려워하는 국가들은 그들에 대항하는 힘의 사용할지 모르는 것은 파트너가 이점이 되는 이득들의 갭에 대해 고도로 관심을 갖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2개의 다른 상황들을 덧붙인다 : '한 파트너와 힘의 효과, 그리고 이득에 갭의 비군사적 결과에 대한 두려움에 대해 불확실하다' (그리코 12장 313) 그의 불확실성 목록은 다른 나라들의 미래 행동에 대한 불확실성을 언급한다 : 그들의 적은 증거하거나, 또는 이러한 국가들의 정부는 믿을지, 심지어 아마 비합리적으로, 그들은 효과적으로 힘을 사용할 수 있다. 그의 두려움 목록은 그 파트너는 상대적으로 강해짐에 따라 한 나라가 그 파트너에 의존할 것에 대한 관심을 언급한다. '국가들이 두려워하는, 이점을 가진 파트너는 점진적으로 덜 선호하는 단어들을 받아들이는 그들을 강요하는 상대적 이득의 즐거움으로부터 야기되는 증가된 영향을 사용할 수 있다.

 

상대적 이득을 추구하기 위한 동기로서 의존에 대한 관심은 명확하게 위에 나의 논문에 첫 부분에 포함하고 있다 : 의존의 합리적 두려움은 '한 파트너의 의한 어떤 설득적인 방법은 어떤 미래 기간에서 자기자신을 상처를 입히는 국제협정으로부터 얻어진 이점들을 사용할 수 있다'의 존재를 반영한다. 그러나 그리코 교수의 불확실성의 논쟁은 현실주의자로서 그는 위임받아서 합리적 예측된-효용구조에 대한 혼란을 반영하는 듯 하다.

 

예측된-효용구조의 기준에서, 국가들은 단지 그들의 행동을 결정할 가능하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그들의 큰 비용으로, 편집증 같이 행동한다. 반대로, 상대적 이득에 대한 두려움을 고려하면서, 그들은 그들의 파트너의 의해 반대의 결과뿐만 아니라 그러한 행동의 가능성을 추정할 것이다. 위험을 반대하는 국가들은 불확실성의 직면에서 조심할 것이고, 대개 국제적 사건들의 특징인 불확실성은 단지 그 스스로가 상대적 이득을 위한 중요한 관심을 요구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합리적인 그러한 관심을 위한 해로운 행동의 어떤 의미있는 가능성은 나타날 것 같지 않다.

 

아마 일반화된 불확실성과 세계정치에서의 두려움은 너무 심하다고 믿을 수 있고, 감소의 국제적 수단에 너무 저항해서, 정부들은 개연성으로 가능성을 처리할 것이다. 그러한 정부들은 심지어 그들 자신들 보다 더 약한 파트너에 의한 두려워하고, 그들은 협력적인 제도들에 연계된다. 그러나 공동으로 이익이 되는 거래를 위한 기회들을 피하는 것에 의해서, 이러한 정부들은 실재적 이득을 보류할지 모르고 그들의 지도자들은 이러한 이득을 구하려는 그들의 사회들의 구성원들의 손에 고생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엘리트들 사이에 경쟁이 있는 곳에 - 민주적이거나 혹은 다르거나 둘 중 하나이다 - 망상증의 논쟁은 불명확하게 퍼질 것 같지 않은 듯한 분별있는 외교정책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분석의 체계적 수준에서, 그리코 교수가 논쟁한대로, 만약 국가들은 '방어적 지위주의자들'이라 한다면, 제도화된 협정을 통해 그들의 협력을 수행하는 국가들의 경향'은 특히 설명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리코는 강조된 하에서 주제, 상대적 이득의 이슈에 초점을 둔 관심에 의해 중요한 기여를 만들었고, 특히 세계경제에서 자유주의자 또는 신자유주의적 주석자들에 의해서 이다. 과점적 경쟁에서, 장기간 절대적 이득들을 최대화하기 위한 시도의 일부분으로서 일반적인데도 불구하고 국가들 또는 회사들 사이에서는 상대적 이득을 포함할 것이다. 그러나, 상대적 이득의 중요성을 설립하는 것은 경험적으로 주의깊은 분석을 요구한다. 상대적 이득이 중요한 것은 모순의 문제가 아니라 기회에서 상황성과 다른 나라에 대항하는 그들을 사용하는 유인이다. 경험적으로, 그 점은 곤란한 협상들이거나 또는 심지어 상대적 이득 동기를 위한 증명을 결코 제공하지 않는 그들의 결렬이다. 그러한 동기들을 위한 설득적인 경우를 만들기 위해서, 분석가는 국가 또는 국가들이 방해하는 협력은 미래 어떤 기간에서 그것의 잠재적인 파트너들에 의한 이 현재의 시기에서 만들어진 이득에 의해 이성적으로 불리하게 예측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만 한다.

 

 

6. 현실주의자와 제도주의자는 냉전 후를 예측한다

 

냉전 동안, 제도주의자의 상대적 장점과 협력의 현실주의 이론들 두 접근법은 폭넓게 관찰을 일관적으로 하는 듯 하기 때문에 평가하기 어렵다. 코헤인과 같은 제도주의자들은 IMF와 세계은행, GATT, NATO, 그리고 국제레짐의 기능적 이론을 위한 증명으로 유럽공동체와 같은 국제제도들의 증가하는 시정과 특수화를 지적했다 : 얻으려는 그들의 이익들은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협력을 필요로 할 때, 정부들은 공동이익의 토대에서 그러한 제도들을 설립할 수 있었다. 제도들은 그들에게 정보를 공급하는 것과 거래비용을 감소시키는 것에 의해 집단적 행동문제를 극복하도록 돕는다.(코헤인) 비록 미국의 패권주의는 처음에 그들의 다수를 설립하는데 중요한 요소가 되어왔지만, 패권주의는 공동이익에 기반하는 레짐들의 유지하는데 본질적인 것은 아니다. 그리고 비록 군사력은 미국과 그것의 가장 가까운 동맹들과의 관계에 간접적인 역할을 했지만, '군사력관계의 변화는 협력의 형태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가 아니였고 제2차 세계대전의 끝날 때까지 선진화된 산업화된 국가들 사이에 일치되지 않았다.(코헤인)

 

제도주의는 또한 기본적인 이익들에 의해 설정되는 제한 안에서, 새로운 목적들로 쉽게 적용될 존재하는 기구들을 예측한다. 존재하는 기구들은 새로운 기구들이 창조되는 것 보다 쉽게 새로운 일을 채택할 수 있다; 증대된 제도적 변화는 계속적인 향상과 제도적 혁신 둘을 넘어 퍼져야 한다. 내가 1984년에 말했던 대로, '정부들 사이에 만들어진 대부분의 협정들은 국제레짐들의 틀 안에서 건설되지 않는다면, 특별한 원칙에서였다'

 

국제레짐들의 수의 증가와 더불어 유럽을 제도주의의 모델로 삼고 있다. 지금까지 유럽에서, 모든 증명이 아닌 대부분은 제도주의적 예측과 일치한다. 무역과 환경에 있어서, 제도주의자들이 예측한대로 유럽공동체는 새로운 지정학적 혹은 기능적 영역들 속에서 두드러진 역할을 하고 있다. (레비, 니콜라이드) 그러나 채무관리와 공공 국제적 금융에 대해서, 개발과 부흥을 위한 유럽은행(EBRD)는 IMF와 세계은행이 이 지역에서 이미 작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도주의자들을 위한 변칙이 분명하다.(해거드와 모랍식) 제도주의 이론은 우리를 IMF와 세계은행을 예측하게 이끌수 있고, 아마도 유럽공동체의 유럽투자은행과의 연결속에서, 이 이슈영역을 지배하고, 동유럽으로 확장하고 전입자를 밀어내다. 특징적인 국내적 이득들을 강조하면서, 현실주의 이론은 프랑스에 의해 이끌어지는 서유럽 국가들은 왜 EBRD를 설립하기를 원하는가? 을 이해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 미래를 기대하면서, 제도주의자들의 예측들은 모호하다. 한 측면에서, 제도주의 이론은 EBRD 와 같은 기구가 일단 설립되자 마자 상당하게 유지되는 힘을 탓한다; 다른 측면에서 IMF와 세계은행은 잘-에워싼 연결망들과 함께 보다 더 강력한 실체들이다.

 

현실주의를 비판하는 한 가지 이유는 현실주의자에게 상수 '무정부'는 국가들 사이에 분쟁과 협력의 형태들에 다양성을 설명하지 못한다. 공동정부의 부재의 의미에 무정부는 국가간 체제의 역사를 통해 나타났지만, 국가들 사이에 협력은 실제적으로 다양해왔다. 냉전 동안 국제제도의 확산과 가장 주목을 받는 유럽공동체의 역사는 무정부가 반드시 협력을 방해하는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미어샤이머의 논쟁은 실재로 무정부에 대한 폭넓은 일반화에 의존하지 않고 동유럽과 다극체제의 효과에 초국가주의에 대한 보다 특수한 것에 걱정한다. (냉전의 종식과 유럽과 일본을 초월하는 미국 영향력의 쇠퇴에 기인한다)

 

안정적인 제도들의 부재속에서, 다극체제와 초국가주의는 실재로 위험하다. 국가들은 현실주의 저자들의 논문에 의해 논쟁한대로, 분쟁과 자력구제를 통해 그들 자신을 보호하기를 추구한다는 것을 예측할 수 있다. 권력의 효과적인 수단은 문제가 되어 있는 곳에, 그리고 고도로 경쟁적인 국가들의 작은 숫자는 진행되었고, 그들은 상대적 이득을 추구할 것이다. 동맹들은 국내적 분쟁은 커다란 규모의 전쟁을 시작할 수 있다는 문맥을 공급하면서 형성할 것이다. 그 시나리오는 유사하다: 1914년의 이야기와 유사하다.

 

이 결론을 이끄는 분석의 토대가 되는 틀은 나와 같은 현실주의자와 합리적 제도주의자들 둘에 의해 소유된다:국가행동은 객관적인 예측된 효용을 최대화하기를 추구하는 지도자을 의미하면서, 합리적 계산에 기반한다. 예측된 효용의 계산은 다른 나라의 능력의 측정과 그들의 그러한 의도 둘 다 묶는다; 그러한 고로 지도자들의 결정들은 다른 국가들의 그럴 것 같은 행동들에 대한 그들의 예측에 의존한다. 그러나 예측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우리들에게 제도들로 돌아가게 야기한다. 국제적 제도들은 대개 그들이 감소된 불확실성에 의해 자조의 협력을 용이하게 하기 때문에 존재하고, 그래서 예측을 안정화한다. 국가들의 예측들은 본질의 일부분과 국제제도들의 강화에 의존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도적으로 밀도있는 유럽과 같은 지역에서 의 정당한 분석은 국제제도들을 고려해야만 한다.

 

냉전의 종식 후에 국제제도의 계속되는 침묵은 국가 전략의 시험으로부터 증명된다. 5개 모두의 주요한 강대국는 1989 - 91년의 구조적 변화들에 대응의 전략속에서 국제제도들을 사용했다. 독일은 EC 만큼 NATO에 愛着하는 것에 의해 그것의 파트너들에 재보장을 추구하였다; 소련은 동유럽으로부터 철수한 소련의 군대를 덮기위해 유럽안보협력회의(CSCE)에 사용하기 위해 애썼고, 자본주의 세계경제와 함께 그 자신을 통합하기 위해서 서유럽 경제기구에 가입했다. 유럽에 국제제도들을 통해 작동하는 고도로 성공적인 전략을 발전시킨 미국은 감소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기구들과 법들을 강화시키려 했고, 특히 NATO였다. 프랑스는 위협받은 독일 재통일의 과정을 통제하는데 도우려고 EC를 사용했다; 심지어 초국가주의의 그것과 다른 영국조차도 국제제도들에 호소했다. - NATO 의 이러한 경우 - EC 안보협정을 강화시킨 독일과 프랑스에 의해 시도된 것이 중요하다.(코헤인)

 

적어도 짧은 기간에, 존재하는 국제제도들을 사용하는 국가들의 경향은 그리코의 초창기 인용대로, '국제제도들은 국가간 협력에서 영향을 미치는 무정부의 강제를 약화시킬 수 없다'는 그릇된 것이다. 주장들을 제시했을 지라도 거의 세련된 현실주의 논쟁을 반박할 수 없다. 실재로 그리코 자신의 유럽공동체의 분석들, 그리고 특히 유럽통화조직(EMU), 12장에서 그의 초창기 논쟁들을 반박한다: 그의 최근 설명에서, 작은 유럽 국가들은 그들을 다치게 할 수 있는 자치적인 정책들을 추구하는 독일의 능력을 감소시키기 위해서 제도화된 협력을 추구했다. 무정부를 극복하면서, 초국가적 강화의 부재는 국제제도들의 무의미를 함축하는 것은 아니다.

 

미어샤이머가 제시한대로, 유럽공동체는 정당하게 무정부와 상대적 이득에 기반한 강한 현실주의 주장들과 제도주의자들 논쟁 사이에 비교적인 검증을 위해 명백한 이유를 공급한다. 미어샤이머는 유럽공동체는 냉전 종식에 의해 약화될 것이라고 논쟁한다. 그의 말에서, '냉전은 EC가 풍요로울 수 있는 따뜻한 환경을 공급했다. 만약 냉전 종식과 안정적 질서는 붕괴를 야기했다면, EC는 지금 시대에 강해질 것이 아니라, 약화될 것이다(미어샤이머)

 

코헤인의 관점은 정반대이다. 왜냐하면 제도주의 이론에 대한 나의 관점은 신자유주의적 사고의 커다란 틀 속에서 선택적으로 감쌌다. 상업적 자유주의 혹은 상호의존 이론이 강조하고 있는 대로, EC는 그것의 회원국들을 위해 실재적인 경제적 그리고 정치적 이득을 공급했다. 그것의 회원국들은 그들의 정치적 제도들 만큼 그들의 사회속에서 모두 당연하게 민주적이다: 공화적 민주주의는 이러한 사실의 의미를 강조한다. '사회적 민주주의가 강조하는대로(나이), 광범위한 초국가적 연결들과 대륙을 종횡으로 연합한다. 마지막으로, EC의 제도들은 확고하게 주장되었고, 그것은 결정적인 기능들을 계속 수행한다, 그래서 논쟁할 만한 공동으로 강화되는 자유주의의 이러한 4가지 측면들 중에서 '합성'이다.

 

유럽공동체 안에서, 그것의 제도들에 위임은 그것의 파트너들을 과도하게 깨우지 않고 그것의 이익들을 추구할 수 있는 독일을 위한 필수적인 상황이고 그것의 경제적 강화와 정치적 통일을 창조하는 영향을 끼친다. 통일된 국내적 정책들에 따르는 그것의 파트너의 그것들과 현실주의적 외교정책은 다른점에서 독일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된(유럽에 경제적 상호의존의 수준이 주어졌다) 통화정책과 같은 정책을 넘어 어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EC의 제도적 강제를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외부적으로, 한편으로 EC는 유럽의 힘이 미국에 대해 강화되었다. 현재의 틀지워진 국가들은 다른편으로 동유럽 국가들이다. 유럽은 주변국가들을 위한 자석이 되었다. 오스트리아와 스웨덴과 같은 이미 형성된 그것들은 EC에 가입을 추구한다; 체코, 헝가리, 폴란드와 같은 다른 나라들은 미래 멤버쉅의 예측을 실행하고 그들의 법들을 적용하기를 시도한다.(코헤인) 만약 전 소련은 초국가주의의 분쟁-제거 지역이 된다면(공동이익은 제도주의자에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나의 관점에서, EC는 심지어 함께 고수하는 강력한 동기를 갖게 될 것이다.

 

1991년 12월에 협상된 마스트리트 협정은 아무도 만족하지 않는 조항들의 끼워맞춤 이었다. 통화조직을 위한 그것의 조항들은 공동체에 맞춘 거래비율에서 일시적인 기간을 함축했지만 자본은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고 국내적 정부들과 중앙은행들은 재정정책 만큼 통화를 넘어 통제하는 것을 보유한다. 통화위기의 연속 후에, 1992년 12월에 분데스 은행의 행장은 이것을 '투기를 위한 강력한 동기'로서 '거래율 기제'라고 이름붙였다(파이낸셜 타임즈, 1992, 12, 2) 영국의 사회적 법인체의 탈퇴는 비준을 넘어 예비논쟁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그 조약을 변칙들로 만들었다. 그 조약에 대한 논쟁은 유럽에 엘리트와 대중의 관점들 사이에서 넘을 수 없는 한계를 드러냈고 유럽의 범위에서 집중화를 폭넓게 저항했다. 가까운 덴마크 'NO'투표와 거의 동등하게 가까운 프랑스 'YES'투표에 예증된 마스트리트의 비준을 넘어선 논쟁은 유럽연방의 옹호자들의 가장 야심적인 영감들은 맞추어 질 것 같지 않았다. 그것은 또한 유럽에서 선출된 직원들은 여전히 브뤼셀의 기술관료들이 아니라 국내적 선거의 보유권에 의존하는 것을 우리는 상기할 수 있고, 더 큰 통합으로의 유럽의 과정은 결코 부드럽거나 혹은 직선적이지 않을 것이다.

 

유럽공동체의 크기의 증가하는 것은 EC 제도들의 권위가 증가하는 것을 넘어서 우선권을 가질 것 같다; EC는 모여진 주권의 한 체계에서 국가들에 의해 계속해서 운영될 것이고, 국제적 시민공무원의 위임 또는 초국가적 정부는 유럽의회를 책임지지 않을 것이다; 권위는 브뤼셀에 통합되어 있지 않을 것이다. 유럽공동체의 회원국들 사이에 불일치는 반대할 것이고 심지어 EC가 보다 더 중요한 활동들에 참여함으로서 강화될 것이고(통화정책과 같은) 큰 자원들을 통제한다. 그러나 불일치와 협력은 거래관계에서 함께 일어나고, 조화보다 불일치에 많은 면에서 밀접하다.(코헤인) 공동이익들은 저항할 것 같기 때문에, 유럽공동체의 제도들은 잘-에워싸였고, 제도주의 이론은 최소한도로 EC가 지속적이고 중요한 존재로 남을 것을 함축하고, 적어도 협력이 지속되는 한은 그들의 경제적 그리고 정치적 이익들을 얻기 위해 정부들을 도울 것이다. 심지어 곤란한 거래에 전망을 고려하면서, 나는 EC가 보다 크게 될 것이라고 기꺼이 예측하고 1989년 11월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 보다 2000년대에 회원국의 정책들에 크게 영향을 줄 것이다.

 

 

7. 국제제도들에 대한 이해

 

그리코와 나는 지금 '상대적 이득'을 넘어 우리 논쟁의 시작에서, 우리들, 혹은 다른 사람들 중 하나에 증명되어 왔던 것 보다 많은 점에 동의하는 듯 하다.(그리코 1988, 코헤인 1989 1장) 우리 둘은 사회과학은 세계정치에 있어서 국제제도들의 영향을 충분하게 고려한 이론들을 발전시키기 시작했다고 믿는다.(코헤인 1990) 우리 둘은 제도들과 국가정책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요구하는 현실을 위한 변칙으로서 유럽공동체의 '르네상스'를 보고 있다. 그래서 이해와 실행의 '이분법', 주장과 반대 주장은 우리의 일반적 인식들의 확실한 통합을 이끌 것이다.

 

우리는 또한 'After hegemony'의 경험적 분석에 대해 예측되었던 것 보다 많은 것에 동의한다. 그 책에서, 그리코 교수가 12장에 함축했던대로, 나의 이론을 위한 증명을 제공하려 결코 주장하지 않았다. 나의 폭넓은 이론적 논쟁에서, 나는 거래비용의 감소와 정보의 조항들을 통해 협력을 용이하게 하는 국제제도들이라는 폭넓은 점은 대신에 '사기가 협력을 제한한다'를 강조하는 그리코 교수 보다 덜 강조한다. 나는 나 자신의 관점의 설득력을 위해 어떤 증명을 공급하고 패권주의적 안정성의 이론을 비판하기 위해 1945년과 1981년 사이에 무역, 통화 그리고 석유 이슈영역의 나의 경험적 분석을 추구했다; 그러나 나는 이론의 제한적 검증을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헤리 엑스테인은 '잠재적 정당성은 이성적으로 검증하는 비용과 수고에 경고를 충분히 고려되어야 되는지'의 발견을 시도하면서, '느슨하고 비결론적인, 그러나 제시한 검증들'을 안내하면서 '설득력 있는 증명'으로서 언급하는 것이다. 나는 나의 분석은 나의 명제의 증명을 구성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백하게 하려 한다.(코헤인 1984) : '(재정적 협력의) 이러한 예들은 물론 내 관점의 정당성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4-7장에 적어둔 협력과 레짐의 개념들의 독립적인 가치의 결정적인 검증은 이 시대에 가능하다는 것은 아니다.... 국제레짐들의 나의 기능적 이론의 함축들은 이 책에서 검증되지 않았다' 더구나, 나는 (그리코가 강조하는 대로) 의미하는 미국영향력의 저항이라는 것을 '패권주의 후'에서 주장했고, 내가 주장한 협력의 형태는 과도하게 단정되었다.(코헤인 1984)

 

만약 나는 증명되어 왔던 내 이론의 잘못된 주장들을 만드는 것에 의해 '패권주의 후'에 오류가 없었다면, 나는 그들이 국제협력을 위해 창조한 복잡성과 분배적 이슈들을 덜 강조하는 것에 의해 주요한 실수로 만들어졌다. 그리코는 이 점에 초점을 맞추는 것에 의해 중요한 기여를 해왔다. 비패권주의적 협력의 설득력을 증명하는 것을 추구하면서, 나는 협력의 단어를 넘어 분배적 투쟁을 덜 강조했고, 협력의 형태와 정도의 다양성은 가능하고, 반복의 중요성과 협력의 형태와 유사성 둘에 영향을 미치는 매매전략은 실재적으로 물질화되었다.(세베니우스 1992). 나는 명확하게 협력이 불일치를 일으킨다고 주장하고, 나는 충분하게 그러한 시각의 함축을 조사하지 않았다. 국가들은 그들의 목적들을 얻기위해 국제제도들을 사용하는 것을 보여주면서 - 그리고 이러한 제도들은 종종 정보-조항, 감시하는 것, 그리고 거래비용의 감소의 기능들을 수행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다. (코헤인 984, 오이 1986, 자체 1987, 캡스테인 1989, 마틴 1992). 그러나 기능적 설명들은 불충분하고, 법들과 기구들의 많은 다양한 설정들은 공동이익을 얻기 위해 국가들을 가능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기능적 이유의 허약함은 국제관계에서 가장 흥미있는 이슈들이고(그리고 사회과학은 보다 일반화되었다). 복지를 약화시키기 위한 그들의 공격의 의미로서 이미 구분짓지 않았던 협력에 많은 안정한 통로들이 있다.(가젯 그리고 바인가스트 1993) 이러한 통로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전략들, 반복들, 매매계약, 그리고 행위자들의 인식들과 예측들은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그에게 있어서, 그리코는 그의 최근의 논문에서 '어떤 관계에서 국가들의 근본적인 목표는 다른 나라가 그들의 상대적 이득에 앞서는 것을 얻는 것을 방해한다'라고 그의 초창기 논문에서 인용한 것과 같은 진술들에 의해 모호해 왔던 상대적 이득에 대한 관심을 강조했다.(그리코 1988) 그의 전 논문에서 결정한 상대적 이득에 대한 관심의 상황성의 수용은 세계정치의 근본적인 측면으로서 간과한 것이 때문에 제도들의 신자유주의적 이론의 '실패'에 대해 주장한다. 상대적 이득에 대한 全 논쟁은 그의 再논박으로서 보다 제도주의 이론에 유용한 질로서 보다 잘 나타난다.

 

그리코와 나는 국제제도들의 이론을 형성하기를 추구한다. 내가 했던 것은 그러한 하나의 이론을 위한 원칙을 창조하는 시도속에서 현실주의와 자유주의의 합성적 요소이고, 중심은 제도들이 자조의 국가들에 직면한 동기들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관심이다. 그리코는 '현실주의는 국제제도들의 이론을 발전시키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말한다.(그리코 1992) 그러나 현실주의의 경계에 이론을 왜 제한하는가? 나는 우리가 음울한 싸움터에서 무의미하게 싸우는 그들 자신의 도그마와 각각의 '현실주의자들' 와 '자유주의자들'의 진영을 창조하는 것 보다 학문의 선언 사이에 인공적 장벽을 허무러 트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제적 사건을 연구하는 이들은 보다 나은 제도의 이론이 필요하다. 조셉 그리코는 그가 제도주의 이론들은 사기에 대한 국가들의 두려움을 설명하는데 돕는다는 말을 했을 때, 이것을 포함한 형태를 부분적으로 수용하는 듯 하다. 더구나, 미어샤이머 교수와 불일치하지 않다고 말했을 때, 그는 현실주의 이론안에서 설명하기를 추구하고 진심으로 1980년대에 EC의 '르네상스'를 보고 있다.(그리코 1992) 실제로 그는 전체적으로 제도주의적 논쟁에 일관적인 듯 한 유럽통화조직(EMU)에 노력을 설명하려는 '묶어있는' 명제들을 제안한다.

 

마지막으로, 그리코와 나는 심지어 체계수준에서 그러한 합성된 이론은 불충분할 것이라는데 동의한다. 비록 종종 이 점에서 불공평하게 헐뜯지만, 케네스 왈츠는 또한 체계이론이 국가행동의 완벽한 설명을 공급하지 못하는데 분명하다. '패권주의 후'에서 나는 시작에서 체계수준의 이론은 완벽할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국내정치의 분석을 필요로 하는 이익의 이론이 없다면, 국제관계의 이론은 충분하지 못할 것이다. 체계이론은 할 만한 가치가 있지만, 그것은 단지 우리에게 방법의 일부로서 가져올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의 뒤에서 다시 다루는 것을 피하는데 주의 깊어야 한다: 그리코가 그의 논문에서 강조한대로, 주요한 일은 이론적으로 의미있고 분석적인 정밀한 방법으로 국제관계와 국내정치를 연계하는 것이다. 우리의 약한 현재의 이론은 냉전 종식 후에 우리에게 미국과 유럽의 힘의 행동을 이해를 보다 멀리서 가져오지 않았다. 국제제도들에 그들의 의존은 이러한 제도들이 국가정책에 실재로 의미있다는 것을 제시한다. 그러나 국제제도들은 그들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국가들에 의해 사용된다는 사실은 이익들이 변할 때 그들이 어떻게 의미있을지를 증명하지 못한다. 현실주의자들과 제도주의자들은 패권주의적 영향력 혹은 공동이익들 둥 하나는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원칙이 없다는데 동의한다. 동유럽의 정치와 가치의 변환 후에, 바르샤바 조약기구 혹은 공동경제원조협정의 사라짐은 놀라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제도주의자들은 기구적 관성, 평판의 고려, 그리고 국내정치의 연계는 제도들은 종종 그들의 창조를 위한 상황들이 사라졌을 때조차도 방해를 받는다는 의미를 논쟁하고, 그리고 제도들은 정책들이 분명한 이익들에 의해 지시되지 않을 때 국가정책에 있어서 영향을 발휘한다. 여기에 강조되지 않았던 그들의 가장 중요한 효과들 중 하나는 이익의 개념들을 변화시킴으로서의 그러한 방법에서 국가들 안에서 국내정책들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회원국들 뿐만 아니라 비회원국도) 나이가 신기능주의적 이론들에 대한 말할 때, '그들은 제도적 틀들과 레짐들에 의해 자극받음에 따라, 국내적 이익들을 再정의하는 것과 학습의 정치적 과정을 강조했다.(나이, 1988)

 

우리는 이러한 제도들의 효과들에 보다 많은 증명이 필요하다. 나는 보다 많은 연구는 대개 국제체제보다 오히려 국가의 수준에서 행해질 것이라는 그러한 정보를 모으는 것을 제시한다. 우리는 국내정치가 국제제도들과 어떻게 연계되는지 보다 밀접하게 시험을 해야만 한다. 하나의 약속하는 접근은 위에 4장에서 엑슬로드와 내가 '다중게임'으로 언급하는 것에 초점을 둔다.(또한 1988년 푸트남이 본다) 다른 사람은 과거의 결정들이 국가간 연계들 만큼 초국가적 연계를 통해, 미래의 것에 얼마큼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하는 것을 노력하면서, 제도적 변화를 보고 지역적 통합이론가들의 지도를 따른다.(코헤인과 호프만 1991; 모랍식 1991) 또한 그러한 강제는 경쟁되었을 때 동의된 법들과 국가 강제의 범위에 초점을 둘 가치가 있을 수 있다 - 즉, 강제에 반대는 국내정치에서 나타났을 때이다. 내가 미국외교정책에 대한 이 주제에 했던 것의 예비작업은 위임은 때때로 폭력적이었다고 제시한다 - 국제제도들의 법들은 결코 신성불가침이 아니다 - 그러나 불편할 때조차도, 그들은 때때로 유지되었다.

 

국제제도들은 의미있는 효과들 가지는 한, 그들의 논쟁의 이해는 중요하다. 국제제도들을 설립하는 연합들은 그들이 그들의 법들과 기구들을 증진시키도록 예측할 목적들을 갖는다. 다자주의는 실행의 원칙은 약한 국가들을 선호하고 행동에 큰 일관성을 덧붙이면서, 제도의 모든 회원들을 일반화시킬지도 모른다는 규범을 선호하는 가정을 창조한다.(러기 1992) 특히 제도들은 GATT의 비차별과 상호의존의 원칙과 같은 이 규범의 특징적인 다양성들을 내포한다. 실행의 일반화된 원칙들은 IMF와 같이, 모든 채무자들은 국제원조에 적합한 훈련받은 재정적 정책들을 채용해야 한다. - 주목받는 원칙은 과거 10동안 미국에 적용되지 않았다. 다른편으로, 유럽공동체는 지금 단일시장과 통화조직을 창조하는 과정의 일부로서 가난한 회원국들에 대한 원조의 원칙을 점진적으로 제도화하는 듯 하다: 그래서 자원은 유럽공동체 제도들의 부재속에서 일어나지 않을 것이 일어나게 전환된다. 국제제도들은 그들의 논쟁에서 다양하다 - 우리가 가진 다양성은 거의 조사하거나 또는 설명하기를 시작하지 않았다. 현실주의와 일관된, 작동하는 가설은 그러한 다양성은 특수한 소유적인 이익들에 의해 설명하는 것이다. - 부, 삶의 관습적인 방법들의 분쟁으로부터 보호, 혹은 환경적 질 - 국가들의. 국가들은 자기 증명적 목표 보다는 이것들을 염려하는 그들의 능력들을 사용한다. 그러나 선택적인 견해에서, 정책결정자들, 공중들, 또는 '인식적 공동체들'에 의해 시작되는 그 생각들은 이러한 이익들을 정의하는 법에 결정적인 효과를 발휘한다.(하스 1992)

 

제도주의자들의 연구계획은 국제레짐들의 수가 왜 증가하는지, 그들이 국가정책들에 어떤 영향을 받는지, 그리고 그들의 법들과 규범들의 논쟁은 가치를 지닌 평가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를 포함하면서, 많은 수수께끼들의 수를 둘러싼다.(코헤인 1990) 아마도 다음의 몇 년안에, 국내정치에 대한 현실주의, 자유주의, 그리고 논쟁의 요소들을 합성하려는 분석가들은 국제레짐들의 강화와 논쟁에서 다양성들을 보다 잘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8. 결론

 

국제관계 이론의 이분법은 작동하기를 계속한다. 그것의 최근 주기에서, 제도주의자들은 1945년부터 세계정치의 전례가 없는 제도화의 측면을 설명하기를 시도해왔고, 현실주의자들은 중요한 안보에 그들의 주장을 펴왔다. 아마도 이 책은 이러한 관점들의 새로운 합성에 폭 넓은 동의에 기여할 것이다. 국제제도들에 합리적 접근들은 그러한 합성은 단어들에 모순되지 않고 제도들은 의미있을 것이다라는 것 하에서 상황들을 특수화하려는 노력들에 의해 현실주의를 만들었다. 그리고 조셉 그리코와 케네스 왈츠와 같은 현대적 현실주의자와 나와 던컨 스너덜과 같은 제도주의자들은 이론들은 체계적으로 증명에 의해 검증되어야 한다고 믿고, 학문적으로 증가하는 합의의 어떤 전망은 보다 경험적인 논문에서 나타날지 모른다.

 

냉전의 종식은 제도주의자들과 현실주의자들 사이에 학문적 논쟁이 과열되어 왔고, 그래서 학자 사이에 이론과 실행 사이에 변증법을 추가하고 있다. 세계정치의 이러한 변화는 현실주의와 제도주의가 다른 함축을 갖기 때문에 다양항 설명의 질을 평가하기를 추구하는 사회과학자을 위해 행운이다. 엄격한 현실주의는 국제제도들의 수와 중요성의 감소하게 이끌어야 한다; 나와 같은 제도주의자들은 그러한 감소를 예측하지 않는다. 제도주의자들은 변화하는 이익들의 기반한 국가들에 의해 형성된 새로운 제도들은 창조될 수 있다는 것보다 보다 쉽게 방해를 하고 적용하는 존재하는 국제제도들을 예측한다. 현실주의자들은 그러한 예측을 하지 않는다. 가장 극적으로, 존 미어샤이머와 같은 어떤 현실주의자들은 붕괴하거나 혹은 적어도 양극체제의 사멸에 기인한 유럽공동체의 약화를 예측한다. 그러나, 비록 1992년 마스트리트에 반응은 EC가 앞으로 진행되기 전에 다시 뒤로 간다는 것을 보여주지만, 나는 보다 크고 의미있게 되는 유럽공동체를 기대한다. 조셉 그리코의 12장에 유럽공동체의 '르네상스' 논쟁은 그가 미어샤이머보다 나에게 보다 동의한다는 것을 제시한다. 우리는 생각이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했기 때문에 '진영들' 안에서 그러한 불일치를 환영해야 한다.

 

우리는 미래에 대한 예측을 제공하려는 약한 이론들을 사용할 때, 우리는 최근 몇 년 동안 우리가 세계정치에 주요한 변화들을 예측하는데 실패해 왔기 때문에 겸손해야 한다. 미어샤이머는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과 달리 도전하고 그 자신이 예측을 분명하게 제공하는 것에 의해 중요한 기여를 해왔다.(미어샤이머 1990) 예측을 하는 우리들 중의 그들은 결과에 의해 당황하는 것도 당연하지만, 우리는 적어도 우리의 불완전한 노력은 우리의 동료와 학생을 위한 즐거움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더 낫게 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랄 수 있다.

 

<이 글은 코헤인이 그리코 논문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제도주의'에 대한 강한 확신(서유럽의 예측을 통해서)을 갖고 있다.>

 

위의 글은 원문을 많이 인용했습니다. 또는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삭제해서 다루었습니다. 또한 이것이 영어를 번역한 글이기 때문에 문장과 문장사이, 자간과 행간에 의미에 있어서 의미가 잘 통하지 않거나 미흡한 부분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게시판에 남겨 두시면, 이에 합당한 시정을 하겠습니다.

 

 

[첨부파일]

institutional_theory_and_the_realist_challenge_after_the_cold_war.pdf
0.26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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