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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ntio ergo sum

자본주의, 노동패러다임, 기본소득

by 淸風明月 2013. 1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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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노동패러다임, 기본소득

기본소득은 자본주의 극복의 전략인가? - 김원태 (독일 마부르크대학 박사과정/사회학)

 

 

기술발전과 산업구조의 변화로 완전고용이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고용노동과 연계된 복지체제를 보편적 복지체제로 전환하자는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조건 없이 일정액의 소득을 보장해 주자는 기본소득 도입운동을 들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묻고 싶은 질문은 보다 더 근본적인 것이다. 즉 모든 사람을 위한 조건 없는 기본소득은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극복하는 전략일 수 있는가? 이에 답하기 위해서 우선 자본주의의 핵심적 특징을 추려보고, 기본소득 운동이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극복하는데 어떻게 작용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겠다.

 

 

자본주의와 노동패러다임

 

잘 알려진 것처럼, 자본주의는 무엇보다 사람들이 노동할 수 있는 능력, 즉 노동력을 상품으로 만드는 사회이다. 즉 자본가는 노동자의 노동력을 일정기간 동안 사는 대신, 노동자에게 같은 기간 동안 노동자 자신 및 가족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을 지불한다. 그런데 여기서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력을 파는 기간, 즉 노동자가 일하는 전체시간은 그 기간 동안의 노동자의 생계비용을 마련하는데 요구되는 노동시간과 같지 않다. 즉 노동자는 자신의 생계비용을 마련하는데 필요한 노동시간을 넘어서 더 오래, 노동계약 상에 적혀 있는 대로 자본가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다. 이것이 자본주의적 착취이다. 노동자는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살기 위해서 이러한 노동계약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고, 자본가는 더 많은 이익, 착취를 위해 노동자에게 더 많은 노동을 강요한다. 이러한 자본주의 사회의 특징을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자본주의는 더 많은 이익, 착취를 추구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사회적 삶의 모든 면을 노동을 중심으로 조직한다. 자본주의 이전 사회에서 노동은 생존하기 위해 수행해야만 하는 활동으로, 따라서 고통, 저주로 인식된 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은 오히려 그 자체 바람직한 윤리적 활동으로 군림한다. 반면 자본주의에서 노동이 아닌 활동은 게으름으로 비난된다. 이는 단순히 노동이데올로기를 통해 유포된 것이 아니라, 노동수용소 등을 통한 규율, 물리적 폭력의 결과였다. 자신만의 창조적 활동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백수가 사회적 루저(loser)로 낙인찍히고, 노동자의 얼마 안 되는 자유시간마저도 학원을 다니는 등 노동능력 향상을 위한 시간으로 쓰거나, 다른 누군가의 노동시간이 들어간 상품의 소비시간으로 쓰도록 조장되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오늘날 자본주의의 노동숭배는 여전하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노동을 지배하는 사회일 뿐만 아니라 노동이 지배하는 사회, 노동패러다임의 사회이다.

 

 

독일 기본소득 

 

둘째, 자본가의 이익, 착취는 자본주의적 기업조직 내의 노동으로부터 생기기 때문에, 자본주의에서 고용노동만 노동으로 인정받고 소득이 주어지며, 가사노동을 포함한 여타의 비고용노동은 노동 범주에서 쫓겨나 고용노동의 예비군 지위로 전락한다. 즉 자본주의는 고용노동이 지배하는 사회이다. 이는 자동화 등을 핑계로 자본의 이익을 우선하여 시행되는 자본주의적 해고가 만연할지라도 마찬가지인데, 고용노동 경험이 있는 사람만 실업급여를 받고, 고용노동할 의사가 있는 사람만 복지혜택을 준다는 자본주의 논리는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셋째, 자본주의는 더 많은 이익, 착취를 위해 노동자의 의사에 반해 노동과정을 통제하며, 감시카메라 등의 지배기술을 사용한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노동자가 노동 안에서 자기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억압한다.

 

넷째, 자본주의에서 서로 다른 상품의 교환의 양적비율은, 수요와 공급이 서로 상쇄된다고 볼 때, 기본적으로 각 상품의 가치량에 따라 결정된다. 이 과정에서 각 상품을 만드는 각 노동의 서로 다른 구체적 성격은 추상되어, 모든 노동은 서로 구별되지 않는 동등한 인간노동으로 환원되고, 이러한 노동이 쓰이는 시간, 즉 그 상품을 만드는데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이 상품의 가치량을 규정한다고 가정된다. 이렇게 노동시간이 가치량을 결정한다는 ‘가치법칙’은 이 법칙이 작동하도록 돕는 이데올로기적, 물리적 폭력장치를 동반하면서, 노동력 상품을 포함한 모든 상품의 생산과 교환의 원리로 기능한다. 자본주의에서 상이한 쓰임새를 가지고 있는 동시에 동등한 가치량을 지닌 상품들만 서로 교환될 수 있으며, 더 많은 가치량을 얻기 위해서만 물건이 생산한다. 즉 자본주의는 가치, 가치법칙이 지배하는 사회이다. 그런데 이러한 가치의 지배는 다시 가치를 구성하는 노동의 지배를 의미한다. 가치, 가치법칙이 생산, 교환, 분배의 원리라는 것은 노동, 노동시간이 생산, 교환, 분배의 규제적 원리라는 말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치, 가치법칙이 작동하는 이상, 노동이 기본적으로 자유로운 활동을 위한 생계필연적 수단에 불과하며 따라서 노동착취뿐만 아니라 노동 자체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노동자 스스로에게도 망상으로 치부된다. 자본가뿐만 아니라 오히려 노동자도 더 많은 가치를 위해 더 많은 노동을 요구한다. 또한 가치법칙을 원리로 하는 사회에서 생산의 목적은 더 많은 가치이기 때문에, 생산과정에서 노동의 성격과 노동이 인간에게 주는 질적 의미는 철저히 무시된다. 위에서 이미 지적한 노동중심주의, 고용노동중심주의, 노동 안에서의 자기실현 가능성의 억압은 자본주의적인 착취동기 뿐만 아니라, 이러한 가치, 가치법칙 자체에도 기인하는 것이다.

 

다섯째, 자본주의는 기존에 존재하는 성, 인종, 민족 등의 사람들 사이의 균열선을 이용해 각 집단을 노동세계에서 상이하게 대함으로써, 노동자 집단 내부에 균열을 만들고, 노동자의 연대를 막으며, 자본에 대한 복종을 공고히 한다. 즉 자본주의는 노동자를 분할해서 지배한다. 경험적으로 드러나듯이, 여성-타인종-타민족 노동자는 이 과정에서 일반적으로 노동세계의 하위에 그리고 바깥에 배치되어, 무임금, 저임금으로 노동하거나, 승진이나 직업능력 향상의 기회가 적은 일을 하며, 남성-자인종-자민족 노동자는 자신의 보다 나은 지위가 위협받는다면, 이러한 노동의 분할을 극복하려하지 않으며, 오히려 노동의 분할 및 위계를 비판하는 운동에 적대적으로 돌아선다.

 

 

자본주의 비판과 기본소득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자본주의는 가치법칙의 토대 위에서 착취를 목적으로 생산하는, 노동을 지배하는 동시에 노동이 지배하는 체제이며, 노동을 분할하는 체제이다. 그렇다면 최근 논의되는 기본소득은 이러한 자본주의를 어떻게 비판하고 극복할 수 있는가. 기본소득은 모든 사람이 정상적인 사회적 삶을 보장하는 액수를 국가로부터 개별적으로 지급받는, 소득심사 및 노동의무와 같은 조건 없이 지급받는 소득이다. 이러한 기본소득은

 

첫째, 모든 사람의 생계를 보장해 줌으로써, 사람들의 노동에 대한 인식을 바꿔 노동이 사회적으로 신성한 활동이라는 자본주의의 신화를 부순다. 기본소득을 통해, 노동은 애초 생계를 위한 필수적 활동일 뿐이었으며, 인간은 오히려 자신만의 독특한 역량을 개발하고 자기실현을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창조적 활동을 해야 한다는 이상, 즉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이상에 한걸음 다가갈 수 있다. 노동으로부터의 해방과 관련해서 기본소득은 또한 노동시간단축을 실현시킬 수 있다. 지금처럼 고용노동만이 임금을 지급하고 임금이 노동시간과 연계된 경우, 노동시간단축 그 자체는 임금을 떨어뜨려 저임금 노동자, 임금수준과 연계되어 있는 연금수령자 및 사회이전지출 수급자의 생활을 더 악화시키며, 따라서 이들의 반발과 노동자 간 분열을 초래할 뿐이다. 반면 기본소득의 보장은 사람들이 그동안 억압되었던 자유시간 확대에 대한 이해를 직접적으로 표명하도록 하고 따라서 전면적이고 보편적인 전체노동시간단축을 실현하기 위해 연대할 수 있도록 한다.

 

둘째, 기본소득은 자본주의의 고용노동 중심주의를 극복할 수 있다. 고용노동만을 소득과 연계시키는 자본주의와 달리,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기본소득은 사실상 모든 활동에 소득을 보장해준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따라서 기본소득은 위에서 말한 것처럼 자유로운 활동에도 소득을 보장해준다는 것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노동 범주에서 배제되었던 고용노동이 아닌 가사노동을 포함한 여타의 생계활동을 노동으로 다시 인정하며 소득을 보장해준다는 것을 함의한다. 따라서 기본소득을 통해 자본주의를 뒷받침하는 고용노동의 지배는 약화될 수 있다.

 

셋째, 기본소득은 노동자가 소득보장을 바탕으로 쉽게 노동시장 진입을 거부하거나 노동시장에서 탈퇴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기업문제 전반, 특히 노동과정 문제에 대한 노동자의 협상력을 높인다. 그리고 기본소득을 통한 노동자의 협상력 증대는 노동과정에서 지배기술을 철수시키고, 노동의 인간화를 위한 기술의 도입을 촉진시키며, 노동자의 노동과정에 대한 민주적인 통제권을 강화시킬 수 있다. 다시 말해 착취의 문제를 잠시 덮어둔다면, 기본소득은 자유로운 노동, 소외되지 않은 노동, 노동 안에서의 해방을 촉진하는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다. 또한 기본소득을 통한 협상력의 증대, 노동과정에 대한 노동자의 자기결정권 강화는 노동시간단축이 노동강도 강화를 포함한 다른 노동조건의 악화를 동반해 노동시간단축의 실현의 의의가 변질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넷째, 기본소득은 고용노동뿐 아니라 인간의 모든 활동이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고 따라서 조건 없이 소득을 보장해 준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여기서 활동시간과 소득의 양은 비례하지 않고 그 관계가 아예 없으며, 한 활동이 만들어 낸 (비)물질적 부와 다른 활동이 만들어 낸 (비)물질적 부가 각각에 들어간 활동시간을 기준으로 교환되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지출된 활동시간과 관계없는 교환과 분배는 지출된 사회적 필요노동시간에 따라 교환되고 분배되는 자본주의의 원리를 넘어선 것이다. 즉 조건 없는 기본소득은 상품을 만드는데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이 상품의 가치량을 결정하며 이에 따라 상품이 교환된다는 자본주의의 가치법칙, 그리고 노동력 상품을 만드는데 필요한 노동시간만큼의 가치량을 임금으로 받는다는 임금법칙과 근본적으로 대립되는 것이다. 따라서 기본소득의 원리는 더 많은 가치, 따라서 더 많은 노동에 대한 사람들의 강제된 그리고 동시에 내면화된 열망을 진화하면서, 한편으로 노동 밖의 자유로운 활동을 추구하고, 다른 한편으로 노동의 의미를 노동하는 사람 자신의 입장에서 곱씹어 볼 수 있는 길을 열 수 있다. 기본소득은 더 많은 가치를 추구하는 생산체제, 생산과 교환의 규제적 원리로 노동을 강조하는 자본주의 생산체제를 비판하고 극복할 수 있는 전략인 것이다.

 

다섯째, 기본소득은 성, 인종, 민족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의 생활을 보장해 줌으로써, 노동자가 생존을 위해 혹은 더 많은 이익을 위해 기존 사회가 자신에게 부여한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타 노동자 집단과 서로 경쟁하고 적대적인 투쟁을 벌이는 상황을 제어할 수 있다. 즉 모든 차별에 반대하는 사회적 소수자정치와 더불어 기본소득은 자본주의가 노동자에 대한 분할지배를 위해 활용하는 노동세계 내의 성위계, 인종위계, 민족위계를 비판하고, 노동의 분할에 저항해 노동자가 연대할 수 있는 물질적 토대로 기능할 수 있다.

 

 

기본소득의 기준

 

모두를 위한 조건 없는 기본소득은 자본주의의 본질적 마디인 노동패러다임, 고용노동 중심주의, 노동과정에 대한 통제, 가치법칙, 노동의 분할을 꺽고, 노동으로부터의 해방과 노동 안에서의 해방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다. 게다가 기본소득은 노동자에게 직접적인 공통이익을 제시하는 슬로건이라는 점에서 노동자를 설득하고 조직하기에 효과적일 수 있다. 물론 기본소득은 자본주의에 대한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자본주의 지배의 물질적 토대인 사적 소유의 문제, 착취에 대한 직접적 비판은 우회될 수 없으며, 노동자 자주관리 등을 포함한 전통적인 반자본주의 전략도 여전히 적극적으로 사고되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기본소득은 위에서 말한 이유로 사회운동의 중요한 하나의 지점을 차지한다. 따라서 이제 본격적인 논의는 기본소득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어떤’ 기본소득이냐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하의 기본소득의 기준은 이러한 논의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기본소득 도입운동은 이 기준에 따라 자본주의 비판운동에 약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1. 기본소득의 액수가 얼마나 높은가? 국가가 낮은 액수의 기본소득을 사실상 임금보조금의 성격으로 지급한다면, 사람들은 기본소득으로 생활할 수 없기 때문에 저임금 노동이나 노동조건이 열악한 불안정 노동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낮은 액수의 기본소득은 저임금 노동이나 불안정 노동의 확산을 위한 자본주의의 전략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2. 기본소득의 재원마련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가? 기본소득의 재원이 자본의 이윤을 회수하는 징세방식으로 마련된다면, 기본소득은 자본주의 착취에 대한 비판적 성격을 띨 수도 있지만, 기본소득의 재원이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간접세나 노동자 집단 내부에서만 소득이 재분배되는 징세방식으로 마련된다면, 이는 자본주의 비판과 아무 관련이 없다.

 

3. 기본소득과 기본소득으로 대체되는 기존의 사회보장의 양과 질의 차이는 어떤가? 당연히 기본소득의 양과 질이 기본소득으로 대체되는 기존의 사회보장의 양과 질 보다 커야 기본소득을 도입하는 의의가 있을 것이다.

 

4. 기본소득을 도입하는 대신 국가나 기업이 노동시장정책 등을 포함한 전반적 노동정책을 악화시키려 하고 기본소득모델이 이에 타협하지는 않는가? 기본소득은 노동정책의 개선과 함께, 최소한 노동정책의 악화 없이 도입되어야 할 것이다.

 

5. 기본소득으로 확보되는 사람들의 자유시간이 다시 자본주의적인 소비주의에 포섭되지 않고 자율적 활동을 위해 쓰일 수 있도록 돕는 사회적 체계, 조직, 대안적 문화정치가 기본소득모델에 함께 고려되는가? 기본소득의 도입은 첫걸음일 뿐이다. 기본소득으로 확보할 수 있는 자유공간이 자본주의적으로 이용되지 않도록 기본소득의 도입 이후를 내다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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