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을 지급하면서 경제 성장 가능한가?
산업정책으로서의 가능성 - 안현효 대구대 경제학과 교수
무조건적 기본소득의 지급이 경제성장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대표적인 논자인 파레이스는 기본소득이 경제성장에 해를 주지 않는 것은 물론, 다른 형태의 자본주의보다 더 우월하다고 주장한다. 물론 파레이스는 사회의 전체 총생산, 즉 총소득을 기본소득으로 100% 나누는 것을 이상적인 미래 사회로 보는 것은 물론이다. 이 경우 시장에서 생산되고 거래되던 재화와 서비스가 더 이상은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생산되고 유통되지는 않게 될 것이다. 즉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행위로서의 노동이 강제적이고 소외된 노동이 아니게 될 것이다. 하지만 기본소득론은 사적 소유의 철폐를 전제하지 않는다. 즉 자본주의 하에서 적용가능한 사회정책으로 주장된다. 따라서 다른 여러 형태의 자본주의적 유형과 비교하여 기본소득을 내장한 자본주의가 가진 생산성과가 어떠한가라는 질문을 피해갈 수 없다. 철학적, 정치적 차원을 넘어서 기본소득의 경제적 유지가능성 문제로 눈을 돌리면, 기본소득의 세원 확보도 중요하겠지만 이 정책이 유지가능하기 위해서 기본소득이 현재의 다른 경제정책에 비하여 재생산을 더 활성화한다는 점을 보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본소득과 시장소득의 합ⓒ 안현효
자본주의에서 실현가능한 정책으로서의 기본소득이란 100% 기본소득이 아니라, <그림>과 같이 총소득의 일부를 기본소득으로 하고, 나머지 일부를 시장소득으로 경쟁에 맡기는 정책이다. 기본소득이 지금 문제되는 경제적, 현실적 이유는 신자유주의가 양극화를 심화시키기 때문이다. 양극화는 일차적으로는 소득분배의 양극화이지만, 최근 20년 간의 우리나라 경제를 볼 때 단순히 소득분배의 양극화 만이 문제가 아니라 정규직 대 비정규직이라는 고용구조의 양극화, 수출과 내수기업, 대기업과 중소기업 등 산업구조의 양극화가 결합되어 있다. 따라서 기본소득의 지급은 양극화된 산업구조가 가져온 병폐인 소득분배의 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복잡한 복지체계가 가져온 비효율적 배분구조를 극복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다. 그런데 기본소득이 단순한 소득분배 정책에 그친다면 기본소득의 유지가능성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기본소득이 단순한 소득분배의 영역을 넘어서서 산업정책으로서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을까? 이는 다음의 두 가지 쟁점을 어떻게 보느냐에 달려 있다.
첫째 기본소득은 시장임금을 상승시키는가, 하락시키는가의 문제이고, 둘째는 기본소득이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하에서 생산성을 증가시키는가 하락시키는가의 문제다. 전자의 문제에서 기본소득으로 인해 저임금이 보다 확산된다면 사실상 보다 우월한 자본주의적 체제로 간주되기 어렵다. 물론 저임금이 확대되면 거시경제적으로 실업율은 저하할 것이다. 하지만 저임금이 보편화된 사회가 그 구성원으로부터 선호되는 사회라고 볼 수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전체 노동인구 중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반반의 비율인데, 평균임금을 비교하면 비정규직이 정규직의 1/2 밖에 되지 않는다. 이러한 상태는 오래가기 어려울 것이다. 일부의 기본소득 논자들은 기본소득과 저임금의 결합가능성을 주장하고 있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기본소득은 고임금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 기본소득을 지급하더라도 임금율은 변화가 없기 때문에 노동공급이 증가하는 효과가 없으며, 절대소득이 증가하므로 소득 증대로 인해 노동자들이 노동공급을 감소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볼 때 비자발적 실업이 증가하여 전체의 노동공급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이는 기본소득론에 대한 비판가들이 생각하듯 기본소득을 지불하면 근로의욕이 감소할 것이라는 추측을 지지하는 부분이다.
기본소득론자들이 기본소득이 저임금과 결합한다고 보는 이유는 최저보장소득과 달리 1시간을 더 일해도 기본소득보다 더 많이 받기 때문에 노동자의 근로의욕을 감퇴시키지 않기 때문인데 이는 최저소득보장제와 대비한 근로의욕 감퇴에 대해서는 맞지만 기본소득 채택의 전, 후를 비교한다면 없을 때 보다 있을 때 자발적 실업자가 더 생길 소지가 크다. 만약 기본소득으로 노동공급이 줄어든다면 시장임금이 상승한다(물론 노동력의 재생산 비용이 줄어든다는 점에서는 시장임금이 하락할 가능성도 있다). 또한 노동의 수요 측면에서 볼 때 소득 증가로 인해 생산성이 증가한다면 수요곡선이 상향 이동하여 임금이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시장임금이 상승하면 어떤 문제가 생기는가? 산업정책에 관한 통상의 논의에서는 임금의 상승이 자국의 생산기반을 구축하여 산업공동화를 야기할 것이라고 이야기된다. 하지만 다른 측면이 분명히 있다. 시장임금이 상승할 경우 高進路적 구조개편이 강화될 것이다. 왜냐하면 시장임금이 상승하면 기존의 저임금에 기초한 산업체들은 도산하거나 구조조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고생산성 노동을 육성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다만 이 경우 거시경제적 실업율은 높아질 것이다. 그런데 기본소득을 지급하므로 실업보험과 같이 실업자에 대한 사회적 방어장치를 새로이 만들 필요가 없다. 실업률은 증가하되 실업자로부터 야기되는 사회적 불안(자살, 범죄, 사회적 갈등 등)을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사회적 낙오자에 대해서 사회가 공적인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해도 사회는 궁극적으로 대가를 지불하게 되어 있다. 사회 불안의 증가 자체가 대가인 것이다. 따라서 기본소득으로 그 대가를 미리 지불한다면 사회 불안을 예방하는 이득이 있다.
둘째 문제, 즉 기본소득이 생산성을 증가시키는가를 살펴보자. 이는 생산성 증가의 요인이 무엇인가라는 문제와 관련되며, 특히 임금과 생산성의 관계가 문제다. 우선 기본소득은 상층의 소득으로부터 중, 하층으로 소득을 이전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중, 하층의 평균 소득이 증가하는 효과가 있다. 이는 그 사회의 소비성향을 증대시켜 소비를 활성화시키고 국내 경제를 진작시키는 효과를 가질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생산성에 미치는 영향은 기본소득 자체보다, 기본소득을 제외한 시장소득의 차별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필요의 충족에 해당하는 기본소득이 모든 소득을 점하지 않는 한 개인의 총소득은 기본소득과 시장임금의 결합으로 결정될 것이므로 개인별 소득의 격차가 완전히 없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능력에 대한 보상으로 간주되는 시장임금의 차별은 생산성 격차에 대한 보상으로 작용하며 생산성 향상의 유인으로 남을 것이다. 파레이스에 의하면, 이러한 기본소득과 결합한 차별적 총소득으로 인해 힘든 노동(3D)의 임금은 상승하고 보다 매력적인 노동의 임금은 하락할 것이다. 따라서 힘든 노동 분야 산업의 임금이 상승하여 이윤율이 저하하므로 기술혁신의 방향은 힘든 노동의 산업분야에 대해서 생산성이 증대하고 이 부문의 노동고용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산업구조 개편이 이루어질 것이다. 반면 중, 하층의 소득의 전체적 증가는 중, 하층 노동력의 생산성을 강화하는 계기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직접적 생계형 저생산성 노동에 매몰되지 않고 보다 효율적인 업무와 교육에 투자할 시간과 자금이 확보되기 때문이다. 반면 기본소득만 받고 노동시장에서 이탈하는 노동자 군은 이전에도 룸펜으로서 생산활동에 들어올 수 없는 그룹이므로 기본소득제도 이전이나 이후에 노동생산성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이 인구군에 대해서는 다소간의 사회적 비용이 지불되지만 사회의 안녕과 재생산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지불해야 하는 비용으로 간주한다면 그 비용은 기본소득 이전과 이후에도 비슷한 규모일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사회적 총소득을 완전 평등하게 나누는 100%의 기본소득이 아닌 현실적 의미에서 부분적인 기본소득의 규모는 어느 정도가 적절한가? 세율을 증가시킬 때 과세 가능한 사회적 총생산이 줄어든다고 본다면, 세율을 증가시키면 처음에는 세액이 증가하다가 일정한 최고점을 달한 후부터 세율을 증가시키더라도 세액 총액이 줄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소득을 모두 세금으로 흡수하기 위해 완전히 100% 부과하면 과세가능한 사회적 총생산은 0이 될 것이다.
물론 이 때는 과세가능한 사회적 총생산은 0이지만, 과세불가능한 사회적 총생산, 즉 시장에서 유통되지는 않으나 사회적으로 유용한 행동들은 여전히 활발하게 생산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때는 이미 자본주의가 아니다. 문제는 이 단계 이전, 즉 부분적 기본소득 제도 하에서 기본소득을 갖추지 못한 자본주의와 비교하여 경쟁력이 있다면 기본소득은 자본주의 내에서 점차 확산될 것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이 때 최고의 세액을 얻을 수 있는 세율은 완전평등주의적 원칙에 입각한 세율보다 훨씬 낮은 수준일 것이다. 파레이스는 한 사회가 기본소득을 채택할 때 그 세율의 수준은 최고의 세액을 얻을 수 있는 세율과 완전히 평등하게 하는 세율 사이의 지점에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런데 생산성이 점점 증가한다면 동일한 세율의 조건 하에서도 세액은 증가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이 계속 반복되면서 시장소득은 모두 단순한 필요 수준의 충족을 넘어가는 완전평등적인 기본소득으로 전환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논리전개에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것도 바로 기본소득이 경제성장을 보장해야 한다는 점이다.
'Sentio ergo sum'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본소득 재원은 어떻게 마련되는가? (0) | 2013.12.06 |
---|---|
기본소득으로 빈곤과 소득 불평등 해소가 가능한가? (0) | 2013.12.06 |
기본소득은 민주주의 위기에 대한 해법 (0) | 2013.12.06 |
기본소득과 기존복지제도(워크페어) 비교 (0) | 2013.12.06 |
유럽에서 남미, 아시아, 아프리카로 확산되는 기본소득 (0) | 2013.1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