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에 따른 정부의 최초보고서에 대한 반박보고서"
1992. 5.
제 2 부
권리침해에 대한 구제- 관련된 규약의 조항 : 제2조
21. 정부보고서 45-50항에 언급된 바와 같이 한국법은 국가기관이나 개인에 의해 권리를 침해 당한 사람에게 여러 가지 구제방법을 제공하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주요한 것은, (ⅰ) 범죄의 수사 및 소추를 통한 구제, (ⅱ) 법원의 재판을 통한 구제, 및 (ⅲ) 헌법재판소의 위헌심판 및 헌법소원심판을 통한 구제 등이다. 이러한 구제방법들은 그 제도상의 결함과 그것을 담당하는 공무원의 불공정한 자세로 말미암아 효율적으로 기능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수사 및 소추를 통한 구제
22. 한국법상 범죄수사권을 가진 기관은 검찰 및 경찰과 안기부 등 특별수사기관이다. 대부분의 범죄는 경찰이 수사하며 안기부는 국가보안법 위반사건등의 일부를 수사한다. 경찰, 안기부 등 검찰을 제외한 모든 다른 수사기관은 한국법상 "사법경찰관"이라 불리는 데, 검찰은 모든 사법경찰관의 수사를 지휘할 권한을 부여받고 있으며, 사법경찰관들은 수사를 끝낸 모든 사건(단, 사소한 경범죄 사건 제외)을 검찰에 송치한다. 검찰은 그같이 송치되어온 사건을 검토해 필요한 경우 보완수사를 수행한 뒤 기소하거나 기소하지 않기로 결정한다. 검찰은 처음부터 스스로 수사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판단하는 사건을 사법경찰관에게 맡기지 않고 직접 수사하기도 한다.
23. 형사재판절차는 소추가 있어야만 개시되는데, 사소한 경범죄 사건을 제외하고 모든 사건에 대한 소추권은 검사에게만 독점적으로 부여돼 있다. 또한 검사는 범죄의 혐의가 인정되는 사건에 대해서도 그 정상을 참작해 소추를 하지 않을 권한도 가지고 있다.
24. 이상의 제도 아래에서 권리를 침해 당한 사람이 그 침해자를 형사고소하는 경우에 검찰 등 수사기관이 그 사건을 열심히 수사하고 검찰이 그 소추 여부를 공정하게 결정해야만 그 권리침해에 대한 구제가 효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런데 검찰, 경찰 , 안기부 등 모든 수사기관은 행정부의 산하기관으로서 행정 각부의 장관을 통해 최종적으로는 대통령의 지휘, 통제를 받는다. 그리하여 범죄에 대한 수사와 소추 여부의 결정에 있어 정치적 영향력이 가해져 불성실하거나 불공정하게 처리될 가능성이 크다. 이 가능성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수사․소추기관의 활동에 대한 민주적 통제수단이 마련돼야 한다.
25. 현행 법상 사법적 통제수단에 해당하는 것은 재정신청절차이다. 수사기관에 불법체포되거나 그로부터 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해 형사고소를 제기한 사람은 검사가 그 사건에 관해 기소하지 않기로 결정한 경우에 고등법원에 재정신청을 제기할 수 있다. 고등법원은 그 신청을 검토해 타당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지방법원의 심판에 회부하는 결정을 한다. 이 결정이 내려지면 그 사건은 기소된 것으로 간주되며 법원이 지정한 변호사가 검사의 역할을 수행하는 가운데 공판절차가 진행되고 판결이 내려진다.
1970년대 초까지는 모든 범죄에 대해 재정신청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1973년 1월 당시 국회 대신에 입법권을 행사하고 있던 비상국무회의(제14항 참조)는 형사소송법을 개정해 재정신청의 대상을 수사공무원의 불법체포와 가혹행위 등 극히 일부의 범죄로 제한했다. 이 개정 법률이 현재까지도 시행되고 있다.
26. 검사의 불기소결정에 대한 또하나의 통제수단은 헌법소원제도이다. 1988년 2월에 발효한 새 헌법에 따라 창설된 헌법재판소는 그 판례를 통해 수사기관에 형사고소를 제기한 사람은 검사가 그 사건에 관해 기소하지 않기로 결정한 때에는 헌법재판소에 그 결정의 취소를 구하는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도록 허용해 오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검사의 결정이 부당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 그 결정을 취소해 검사로 하여금 새로운 결정을 내리게 한다. 이때 검사가 그 사건을 기소할 의무를 부담하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이론상 긍정설과 부정설이 대립돼 있으나, 실제상 검사는 약간의 추가수사를 거친뒤 대부분 다시 기소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려오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실제 활동을 시작한 1988년 9월 이후 1991년 12월 31일까지 검사의 불기소결정 9건을 취소했다. 그 후 검사가 당초의 결정을 바꾸어 기소한 사례는 1건에 불과하다.
27. 이상에서 본 재정신청제도는 그 대상이 되는 범죄가 매우 제한돼 있다는 점에서 수사․소추기관의 활동에 대한 통제수단으로서 효율적이지 못하다. 검사의 불기소결정에 대한 헌법소원제도는 헌법재판소가 그 결정을 취소하는 경우에도 실제상 기소가 강제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실효성이 크지 않다. 덧붙여, 수사기관이 수사 자체를 불성실하게 하는 경우에는 위 2가지 제도는 거의 구실을 하지 못한다. 법원과 헌법재판소가 수사기관이 조사하지 않은 사실들을 원점에서부터 파고들어 진실에 도달하기는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다.
28. 한국의 수사기관들을 그 임면의 측면에서 집권세력으로부터 독립시켜 공정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장치는 마련돼 있지 않다. 검찰, 경찰의 최고책임자는 물론이고 모든 간부들은 대통령이 임명하고 직책을 부여하며 승진 여부를 결정하게 돼 있는 등 대통령에게 전적으로 종속돼 있다.
29. 한국의 수사기관들은 실제로 그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성실하고 공정하며 인권옹호적인 태도를 지니지 못하고 있다. 특히 정치적 의미가 있는 사건에 대해서는 그 정도가 심각하다.
가. 한국의 수사기관은 고위권력자가 관련됐을 가능성이 있는 사건에 대해서는 아예 수사를 하지 않거나 고위권력자에게 책임이 없다는 결론을 이끌어내기 위한 진실의 은폐에 힘을 기울인다.
(1) 1991년 2월경 서울특별시장이 "수서"지역에 개발된 주택용지를 관련법규를 무시하고 한 대기업과 연계돼 있는 주택조합들(다수의 사람들이 들어가 살 주택을 공동으로 짓기 위해 결성한 단체)에게 특별공급키로 결정했음이 알려졌다. 이로 말미암아 그 기업과 주택조합들은 수천억원으로 평가되는 엄청난 이익을 얻게 됐다. 그런데 위 결정이 내려지기 전에 대통령의 비서관, 여당의 수뇌부, 건설부장관, 법무부장관, 서울특별시 관계자 등이 서로 연락을 취하거나 회합을 가져 위 특별공급을 사실상 결정한 것으로 밝혀졌다. 국민들 사이에는 이 결정에 이른 경위와 그로 인해 위 기업과 주택조합들이 얻을 이익의 규모에 비추어 대통령이 개입했을지도 모른다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됐고 여론은 검찰이 그것에 대해 엄정하게 수사할 것을 촉구했다. 검찰은 처음에는 그 사건이 수사할 만한 것이 아니라는 태도를 취하다가 결국 여론의 압력에 못이겨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그 수사 결과 위 기업의 소유주가 대통령의 비서관과 국회의원들에게 뇌물을 주고 특별공급을 추진했다고 발표하며 관련자들을 기소했다. 검찰은 그 수사 과정에서 관련자들이 외부와 접촉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차단했다. 많은 국민은 검찰이 진실을 밝히려 하기는 커녕 도리어 최고권력자의 범행이 폭로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믿었다.
(2) 1992년 1월에는 한국에서 가장 큰 재벌그룹의 소유자가 기자회견에서 박정희대통령 재임 시부터 노태우대통령이 재임하던 2년전까지 자신이 직접 대통령에게 해마다 수십억원의 자금을 제공했다고 말했다. 이어 노대통령도 돈을 받은 사실을 시인했다. 한국법상 이같이 돈을 주고 받는 것은 범죄를 구성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검찰은 수사에 착수하지 않았다.
나. 한국의 수사기관은 그들 자신이나 정권에 불리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는 사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태도를 취한다.
(1) 1987년 1월 대학생 박종철은 치안본부로 연행돼 경찰관 5명으로부터 조사를 받던 중 고문을 당해 사망했다. 보고를 받은 치안본부장 등 경찰의 고위 관계자들은 박군의 사체를 부검한 의사에 대해 그 사체에 고문의 흔적이 없다는 내용으로 소견서를 작성하도록 강요했으나 결국 고문사실이 드러나자 경찰관 2명을 범인으로 발표했다. 검찰은 이 사건을 수사한 뒤 1월 24일 그 경찰관 2명을 고문치사의 범인으로 인정해 기소했다. 그러나 그 무렵 이미 여러 정황에 비추어 범인은 3명 이상일 것이라는 의견이 언론 등에 의해 제시됐고 검찰은 2월에 위 2명 이외에 3명의 경찰관이 더 고문에 가담했음을 알게 된 것으로 믿어진다. 그럼에도 검찰은 그 사실을 밝히지 않고 있다가 5월에 이 사건을 추적해 온 가톨릭 사제단에 의해 이 은폐사실이 폭로되자 3명의 경찰관은 추가로 기소했다.
(2) 수사기관이 고문사건에 대해 수사를 개시하지 않은 다른 사례들에 관해서는 이 보고서 제198항을 참조하기 바란다.
다. 한국의 수사기관은 범죄혐의자의 계급이나 정치적 태도에 따라 이들을 극도로 차별 대우한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노사분규와 관련해 체포되고 기소되고 있지만, 사용자나 그의 편에 서서 노동자들에 대해 부당노동행위나 폭력행위를 한 사람들이, 노동자들의 고발에도 불구하고, 체포되거나 기소되는 예는 거의 없다. 국가보안법의 적용에 있어서도 차별은 극심하다. 북한을 방문했거나 북한 사람들과 접촉을 시도한 사람들 중 정부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혹독하게 처벌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처벌되지 않는다(제96-119항 참조).
라. 한국의 수사기관은 권력의 영향 뿐 아니라 개인적인 친분에 의해, 또는 뇌물을 받고 불성실하거나 불공정하게 업무를 처리하는 수가 많다고 믿어지고 있다.
30. 수사기관의 인권의식과 수사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낮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1990년 11월경 수사업무를 담당하는 경찰관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바에 따르면, 응답자의 75%가 흉악범에 대해서는 법률상 권리를 제한해도 무방하다는 의견을 나타냈으며, 62.3%는 흉악범을 수사하면서 어느 정도 고통을 가해도 무방하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같은 연구원이 1991년 7월경 서울시민 1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는 경찰을 민중의 지팡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41.2%에 이르고, 그 이유로는 응답자의 27.7%가 도움을 청해도 빨리 응하지 않는다는 것을, 응답자의 25.5%는 경찰이 청탁을 받고 사건을 처리한다는 것을 들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서울지방변호사회가 1989. 12.경 그 회원인 변호사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84%가 검찰이 1988년 이후에도 과거와 마찬가지로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있지 않다는 견해를 나타냈다.
31.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한국에서 수사기관의 활동을 통해 권리침해에 대한 구제를 받기는 어렵다. 그 개선책으로 자주 언급되고 있는 것은 특별검사제도이다. 야당과 언론들은 정치적 의혹이 짙은 사건에 대해 검찰 등의 수사기관이 공정한 수사를 하리라고 기대할 수 없으므로 그런 사건이 발생할 때에 그것을 특별검사를 임명해 수사하고 기소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을 만들자고 주장하고 있다. 이 주장은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수서사건 등 최고권력층의 범죄 의혹이 있는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법원의 재판을 통한 구제
32. 법원의 재판을 통한 권리구제가 원활하게 이루어지려면 법원의 독립성과 공정성이 요청된다. 그러나 한국의 사법부는 독립성과 공정성을 지키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에 대해서는 제42 - 62항에서 논의한다.
헌법재판소에 의한 구제
33. 헌법재판소는 1988년 2월에 발효한 새 헌법에 따라 창설된 헌법재판기관이다. 그 이전에도 헌법은 대법원에 위헌법률심사권을 부여하거나 별도의 헌법재판기관을 만들어 그런 권한을 부여해 왔으나, 실제상 헌법재판은 전혀 기능하지 않았다.
헌법재판소는 국회, 대통령 및 대법원장이 각각 선출 또는 지명한 3인씩 합계 9인의 재판관으로 구성돼 있다. 헌법재판소는 1988년 9월 문을 연 이후 종전의 헌법재판기관들과는 달리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정부보고서 제43항에 언급된 바와 같이 헌법재판소는 상당수의 법들을 위헌으로 판정해 무효화하였고 많은 헌법소원을 받아들였다. 이같은 활동은 한국의 역사상 처음으로 헌법재판을 권리구제의 주요한 수단의 하나로 정립하는 성과를 가져왔다고 높이 평가할 수 있다.
34.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권리구제는 가장 심하게 인권을 탄압한다고 비판받아 온 핵심적인 반민주적 법률에 손상을 가하지 않는 범위 이내로 명백하게 제한돼 있다. 헌법재판소는 1990년 4월 국가보안법의 찬양․고무죄 조항에 대해 "그 소정 행위가 국가의 존립․안전을 위태롭게 하거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해를 줄 경우에 적용된다고 할 것이므로 이러한 해석 하에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한다" 고 결정했다. 이 결정은 국가보안법의 막연한 구성요건에 또하나의 막연한 해석기준을 덧붙인 것에 불과해 사실상 국가보안법을 합헌으로 인정한 것과 같은 것으로 평가된다. 1990년 1월에는 노동쟁의조정법의 제3자개입금지 조항(제134-139항 참조)에 대해서도 합헌결정을 내렸다. 1991년 7월에는 사립학교 교원의 노동3권을 박탈하는 사립학교법의 규정을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마지막의 결정에 대해 부연하면, 헌법 제33조는 일반적으로 모든 근로자에게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노동3권)을 보장하면서, 다만 공무원과 주요방위산업체에 종사하는 근로자의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그 권리를 제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정부보고서 265항 참조). 사립학교 교원은 공무원이나 주요방위산업체에 종사하는 근로자가 아니므로 헌법에 따라 노동3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사립학교법은 사립학교 교원의 노동운동을 전면 금지하며 이를 위반하는 교원은 면직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1989년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가입한 사립학교 교원 670여명은 이 규정에 따라 면직됐다. 이와 관련해 헌법재판소는 1989년 10월 위 사립학교법의 규정이 헌법에 위반되는지의 여부를 결정해 달라는 청구를 접수했다. 헌법재판소법 제38조는 헌법재판소가 사건을 접수한 날로부터 180일 이내에 결정을 내리도록 규정하고 있음에도, 헌법재판소는 아무런 이유 없이 1년 3개월 남짓 결정을 미루다가 뒤늦게 사립학교법의 규정이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비상시의 기본권 제한
- 관련된 규약의 조항 : 제4조
계 엄
35. 한국의 헌법과 법률은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의 경우에만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계엄은 비상계엄과 경비계엄으로 나뉘어지는 데, 특히 비상계엄은 적과 교전상태에 있거나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되어 행정 및 사법기능의 수행이 현저히 곤란한 경우에 선포할 수 있다(계엄법 제2조).
36. 그러나 한국의 역사상 비상계엄은 실제로는 군부가 쿠데타에 의해 불법적으로 권력을 장악하거나 독재자가 헌법을 무시하고 권력을 강화하면서 예상되는 국민의 저항을 방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악용되었다. 1972년 10월 당시 대통령 박정희는 그 때의 상황이 국가비상사태라고 볼 만한 이유가 없었음에도 갑자기 비상계엄을 선포한 뒤 자신에게 권력을 집중시키는 새 헌법을 제정하였다. 1979년 10월 박정희 대통령이 살해된 직후에도 적과 교전상태에 있거나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되었다고 보기 어려움에도 대부분의 지역에 비상계엄이 선포되었다. 그로부터 6개월 이상 지난 1980년 5월 군부세력은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며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라는 불법적 권력기관을 설치해 그 실권을 쥐게 됨으로써 정권을 장악했다. 당시의 상황은 일반적으로 그와 같은 비상계엄의 확대를 요할만한 긴급성이 없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37. 한국의 사법부는 이같이 계엄선포권이 남용돼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부당하게 침해해 왔음에도 그에 대해 아무런 구제방법도 제공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1960년대 이래 1982년에 이르기까지 일관해서 "비상계엄의 선포는 고도의 정치적, 군사적 성격을 지니고 있어 사법부에는 그 당부를 판단할 권한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일단 선포된 비상계엄이 헌법과 법률에 어긋난다는 판결을 내리기를 거부하였다(대법원 1981년 1월 23일 선고 80도 2756 판결 등). 한국의 헌법과 법률상 사법부는 모든 행정처분의 당부를 심사할 권한을 부여받고 있으며 계엄의 선포에 대해 예외를 인정하는 규정이 전혀 없다. 대법원은 자신에게 부여된 권리구제 권한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이같은 사법부의 자세가 그대로 유지되는 한 앞으로도 쿠데타를 일으키는 세력이 계엄선포권을 남용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을 방지하지 못할 가능성이 남아있으며 이는 인권규약 제4조 제1항에 위반되는 것으로 보인다.
위수령과 전투경찰대
38. 한국에는 위수령이라는 대통령령이 제정, 공포돼 있다. 이 영은, 재해 또는 비상사태에 즈음하여 특별시장, 직할시장 또는 도지사가 요청하는 경우에 당해 지역을 관할 하는 군 부대의 장이 병력을 출동하여 경비 및 순찰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한 이와 같이 출동한 군인은 경찰관의 요청이 있을 때에는 민간인을 포함하는 범죄자를 체포하고, 다중의 폭행을 진압하기 위해 필요한 때에는 병기를 사용할 수도 있다.
1971년 10월 위 영에 따라 고려대학교의 캠퍼스에 병력이 출동해 그 곳에 모여 반정부집회를 하고 있던 수많은 학생들을 체포하였다. 당시 군인들은 학생들에 대해 무자비한 폭행을 가하였다.
39. 헌법상 대통령령은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하여 위임받은 사항과 법률을 집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에 관하여 발할 수 있다(헌법 제75조). 그런데 위수령은 법률의 위임을 받지 않은 채 법률을 집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에 해당하지 않는 병력출동권을 창설하고 있으므로 헌법에 위배되는 것임이 분명하다. 또한 이 영은 병력 출동 요건을 "재해 또는 비상사태에 즈음하여"라고 막연히 규정하고 있고 지방자치단체의 장이나 군대에 의한 권한의 남용을 통제할 방안을 전혀 규정하고 있지 않아 재해 또는 비상사태를 빙자한 인권침해를 일으킬 소지를 제공하고 있다.
40. 한국에서 정치적 반대자들이 개최하는 집회나 시위는 주로 전투경찰대에 의해 진압된다. 전투경찰대는 군대에서 복무할 의무가 부과된 젊은 국민들을 강제로 징집해 충원하고 있으며 이들은 일정기간 전투경찰대에서 복무함으로써 군 복무의무를 면제 받는다. 전투경찰대는 군대식으로 조직되고 훈련되며 임무를 수행한다. 전투경찰대는 사실상 군대와 다름 없다.
전투경찰대는 집회와 시위를 진압하면서 그 참가자들에게 무자비한 폭행을 가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1991년 4월 대학생 강경대가 시위도중 전투경찰대원에게 쫓겨 도망하다가 끝까지 추격해 온 전투경찰대원들에게 붙잡혀 쇠몽둥이로 구타 당해 숨진 일도 있다(제170항 참조).
41. 위수령과 전투경찰대는 계엄의 선포에 의하지 않고도 군대 또는 사실상 군대와 다름 없는 전투경찰대로 하여금 치안을 유지케 하는 규정 및 제도이다. 특히 전투경찰대는 상설적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그 한도 내에서 한국은 사실상 항구적인 계엄상태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위수령과 전투경찰대 제도는 비상사태의 경우 기본권의 제한은 그 상황의 긴급성으로 말미암아 엄격히 요구되는 한도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인권규약 제4조 제1항의 정신에 위반되는 것으로 보인다.
사법권의 독립과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 관련된 규약의 조항 : 제2조, 제14조
42. 정부보고서 198 - 202 항에 언급된 바와 같이, 한국의 헌법과 법률은 법관이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하여야 한다고 선엄함과 아울러 독립적이고 공정한 재판을 보장하기 위한 여러 가지 장치를 두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한국의 사법부가 내리는 판결. 결정 들을 보면 사법부는 정부의 권력으로부터 거의 독립해 있지 못하고 헌법과 법률의 내용에 일치하는 심판이 이루어지지 않는 수가 많다는 비판을 제기할 수 있다.
사법권 독립의 실상
43. 사안의 성질상 사법부의 독립 정도를 증거에 의해 계량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한국의 법원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들을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 살펴보면 그 독립의 실상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44. 한국법상 범죄에 대한 소추권을 독점하고 있는 검찰은 그 각급 조직 안에 공안부 또는 공안담당검사를 두고 있다. 이들은 자기 나름대로 정치적 사건이라고 판단하는 형사사건을 직접 수사하거나 국가안전기획부나 경찰의 수사를 지휘한다. 국가보안법 위반사건과 반정부집회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입건된 사람들의 사건은 그러한 사건의 전형이다. 노동자들이 노동조합 결성이나 노동쟁의의 실행과 관련해 노동관계법의 규정을 위반했다는 혐의를 받는 경우에도 그 사건은 공안검사의 처리에 맡겨진다. 나아가 형법을 위반한 일반범죄 사건일지라도 그것을 검찰 나름대로 '불순분자'의 소행이라고 판단하는 때에는 역시 공안검사가 처리한다. 예컨대, 대학 출신자가 노동운동을 하기 위해 생산직 노동자로 취직하려면 그의 학력을 감추어야 하는데 그가 이러한 목적으로 자신의 신분에 관한 문서를 위조한 경우 형법이 규정하고 있는 문서위조죄에 해당하지만 공안검사의 처리대상이 되는 것이다. 공안검사가 처리하는 사건을 공안사건이라 부르는데, 일반적으로 이런 사건은 정치권력에 유리한 쪽으로 지극히 편파적으로 수사되고 소추되고 있는 것으로 믿어진다. 그동안 피의자에 대한 고문 등 수사기관에 의한 인권유린행위가 자행되어온 주요분야 중의 하나가 바로 공안사건이다.
45. 공안사건에 관해 소추가 이루어지면 법원은 그것을 통상의 사건과 구별해 심리를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통상의 사건들은 소추된 순서에 따라 공판기일을 지정해 처리하는 반면에 공안사건은 정치적 고려에 따라 빨리 처리하기도 하며 늦게 처리하기도 한다. 공안사건을 처리하는 법원은 공정한 심판자로 행동하기 보다는 피고인과 변호인의 반대편에 서서 어떻게 하면 이들의 주장과 입증을 효과적으로 봉쇄할 것인지 골몰하는 것처럼 보이는 수가 많다.
46. 공안사건에 대한 법원의 판결․결정의 내용은 예측하기 매우 쉽다. 공안검사가 내세운 공소사실은 거의 예외없이 법원이 유죄로 인정하는 범죄사실이 된다. 법원판결에 기재되는 범죄사실은 사실상 공소사실을 그대로 옮겨적은 것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47. 증거재판주의와 무죄추정의 원칙은 빈번히 부인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법원은 피고인이나 변호인이 제기하는 증거신청을 받아들이기를 매우 꺼린다. 그럼에도 대법원판례는 "증거의 채택 여부는 법원의 재량에 속한다"고 판시하고 있다(대법원 1986년 9월 9일 선고86도146 판결 등). 피고인이나 변호인이 제출하는 증거는 믿을 수 없는 것으로 치부되고 공안검사가 제출하는 증거가 우월한 가치를 지닌다.
48. 죄형법정주의가 부인되는 것도 일상적이다. 국가보안법과 제3자개입 금지조항(제134-139항)은 범죄 구성요건을 막연하게 규정하고 있어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나는 대표적 형벌법규이다. 법원은 이 형벌법규 위반이 문제가 되는 공안사건을 처리하면서 막연한 규정을 되도록 엄격하게 해석해 죄형법정주의의 정신을 살리기는 커녕 도리어 공안검사의 의견을 거의 그대로 수용함으로써 광범위하게 범죄를 인정하고 있다.
49. 형사사건에서 증거조사를 마친 뒤 검사는 법원에 대해 예컨대, "피고인을 징역 3년에 처해 주십시요" 라고 진술하는 방식으로 자기가 바라는 형량을 제시하는 것이 관례이다. 검사는 공소를 제기할 때에 상급자의 결재를 얻어 미리 구형량을 정해 놓는다. 공안사건에서 법원이 선고하는 형량은 거의 예외없이 검사가 제시한 형량의 40-60% 범위 내에서 정해진다. 이 사실은 법원이 형량의 결정에 있어 공안검사로부터 독립돼 있지 않으며 공소가 제기된 뒤 공판과정에서 이루어지는 피고인과 변호인의 방어를 위한 노력이 부질 없음을 의미한다.
50. 공안사건에 관해 구속영장이 청구된 경우 법원은 거의 100% 발부한다(제205항 참조). 공안사건의 피의자․피고인이 구속적부심이나 보석으로 석방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51. 한국의 사법부가 공안사건이 아닌 통상의 사건도 과연 독립적이고 공정하게 처리하고 있는지 매우 의문스럽다. 대법원이 1991년 9월에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1991년 1월 1일부터 1991년 8월 31일까지 제1심 법원의 판결을 받은 피고인 90,255명 중 0.43%에 해당하는 392명만이 무죄판결을 받았다. 같은 기간 항소심 법원의 판결을 받은 피고인 25,064명 중 0.81%인 202명이 무죄판결을 받았다. 1990년 1월 1일부터 1991년 8월 31일까지 구속상태로 대법원의 판결을 받은 피고인 2,872명 중 1.6%인 46명에 관해 항소심의 판결이 파기되고 사건이 항소심으로 환송됐는데 그 중 일부가 대법원이 실제상 무죄를 선고한 사람들이다. 이같이 법원이 무죄판결을 내리는 수가 극히 적다는 사실은 한국의 검찰이 매우 공정하다는 것과 법원이 검찰에 종속되어 있다는 것 등 2가지 가능성 중 어느 하나가 진실임을 보여준다. 그런데 전자의 가능성은 일반적으로 진실이 아닌 것으로 여겨진다.
52. 한국의 국민과 법조인 사이에는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널리 퍼져있다. 서울지방변호사회가 1989년 6월경 전국의 변호사 1천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결과에 따르면, 그 응답자의 61.5%는 사법권의 독립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또한 응답자의 73.5%는 1988년 2월 이후 법원이 공안사건을 다루는 자세에 변화가 생기지 않았다는 견해를 보였다.
사법권의 독립과 공정성을 저해하는 요인
53. 1972년 10월 박정희 대통령이 헌법을 무시하고 자신에게 국가권력을 독점하는 조치를 취한 이후 1987년 6월에 독재에 항거하는 범국민적 항쟁에 직면한 군부정권이 민주화를 약속하는 `6.29 선언'을 발표할 무렵까지 한국의 정치.사회 상황은 군부독재세력이 모든 국민을 공공연하게 억압하는 실정에 있었다. 이 억압통치 의 시대에 사법부는 다른 기관, 예컨대 언론기관 등과 마찬가지로 군부독재세력의 강압적 통제 아래 있었다. 독재세력의 핵심적 권력유지기구인 안기부나 국군보안사령부의 요원들은 법원에 상주하다시피 하면서 법관의 행동을 감시하고 통제했다. 법관들은 독재세력의 지시와 의도에 충실하게 따랐다. 드물게는 독재세력의 비위를 거스르는 판결을 내리는 법관도 있었으나 이들은 즉시 강제로 사직케 되거나 지방으로 전출되는 등 인사 상의 제재를 받았다. (한국에서 서울의 법관이 지방으로 전출되는 것은 일반적으로 그 법관에게 심각한 불이익이 가해진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국민들은 사법부가 독재세력의 강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양심에 어긋나는 행위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상황이 계속되는 동안 사법부 안에서도 독재세력과 적극 협력함으로써 자기의 지위를 높이고 권력의 분점에 참여하는 법관들이 길러졌다. 이들이 사법부의 상층을 구성하고 사법권의 독립과 공정을 짓밟으며 오로지 독재세력을 유지․강화하는 데에 온힘을 기울이게 된 것은 필연적이었다.
54. `6.29 선언'에 이어 국민의 직접선거를 통해 대통령이 된 노태우 장군이 취임한 1988년 무렵 한국 사회의 분위기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 동안 이 사회를 지배해 온 공포는 대폭 사라졌다. 안기부나 보안사의 요원들이 법관의 행동을 직접 감시하고 통제하는 일도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제 사법부가 강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양심에 어긋나는 행위를 할 상황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그럼에도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사법의 현실은 독립적이거나 공정하지 못하다. 1988년 이후에도 종전보다 더 나아졌다고 보기 어렵다.
55. 사법부가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 사회 전반의 민주화와 발전의 수준과 긴밀하고 복잡하게 연관돼 있어서 그 요인을 단지 사법부 자체의 구성과 운용을 규율하는 단편적인 법과 제도의 미비에 있다고 보아서는 문제의 본질에 접근할 수 없다.
56. 현재의 사법부가 독립과 공정성을 지키지 못하는 이유들 중 하나는 과거에 독재세력과 협력했던 법관들이 1988년 이후에도 그대로 남아 고위직 또는 중견 법관으로 과거가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있는 데에 있다고 생각된다. 위에서 본 서울지방변호사회의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90%가 이같은 의견을 나타냈다.
57. 사법부가 개선되지 않고 있는 이유들 중 다른 하나는 그 인사제도의결함이다.
58. 역사적으로 한국의 사법부는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시대(1910-1945)의 제도와 인력을 계승해 조직되었다. 식민지시대에 법관은 법조인 자격 시험에 합격한 자로 충원되었는데 일반적으로 한국인이 획득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관료로 인정을 받았다. 법관은 막강한 사회적 지위를 누리면서 식민지 국민 위에 군림했다. 1940년대에 식민지 상태에서 해방되고 한국정부가 수립되었음에도 식민지 시대의 잔재가 청산되기는 커녕 도리어 식민지시대에 법관을 지낸 사람들을 중심으로 사법부가 구성되었다. 사법제도나 법관의 자세도 옛 시대와 마찬가지로 남았다. 그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법관은 한국에서 세속적으로 가장 높은 사회적 평가를 받는 몇 개의 직업 중 하나가 되어 있다. 많은 우수한 젊은이들이 법관이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 희망자들이 지원하는 법과대학은 대체로 가장 우수한 학생들로 충원된다.
59. 법관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국가가 실시하는 사법시험에 합격해야 하고 대법원 산하에 설치된 사법연수원에서 2년간 주로 법관․검사․변호사가 되기 위한 실무교육을 받아야 한다.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사람은 법관․검사․변호사 자격이 부여되는데 매년 배출되는 300명 안팎의 수료생 중 대체로 가장 성적이 좋은 사람들이 법관을 지원하고 있으며 그 중에서 사법시험 성적과 사법연수원의 교육과정에서 치르는 시험들의 성적을 종합해 그 성적순으로 약 80명이 법관으로 임명된다. 한국의 모든 법과대학의 한 해 졸업생수를 합하면 6,000명 이상이고 1년에 사법시험에 응시하는 사람은 약 15,000명인데 이 중 대체로 가장 성적이 우수한 약 80명이 법관으로 임명되는 것이다. 사법시험과 사법연수원의 시험들은 기술적인 법률 지식을 주로 평가하는 시험이다. 법관의 선발과정에서 사법권의 독립을 지키고 공정한 재판을 하기 위해 필수적인 인격과 민주적 태도를 평가하는 것은 완전히 누락돼 있다. 세속적으로 매우 높은 평가를 받는 법관이 되기 위해 몰려든 머리 좋은 많은 젊은이들 중 극소수만이 거의 전적으로 법률지식만이 문제가 되는 시험을 거쳐 법관이 되는 제도 아래에서는, 사법권의 독립보다는 법관직에 주어진 사회적 지위와 이익에 더 큰 관심을 지닌 법관이 선발되기 쉬울 것이다.
60. 처음 임명된 법관은 지방법원 판사로 일하게 되며 경력이 쌓임에 따라 고등법원 판사, 지방법원 부장판사, 고등법원 부장판사, 지방법원장, 고등법원장으로 순차로 승진할 수 있다. 법관은 대체로 2-3 년마다 전국 단위로 근무지를 옮겨 일한다. 같은 계급의 법관이라도 어느 곳에서 근무하는가, 예컨대 서울인가 지방인가, 서울 중에서도 본원인가 지원인가에 따라 차별적인 평가를 받는다. 대법관을 제외한 일반, 법관은 10년의 임기 동안 재직한다. 이 임기가 끝나면 재임명 여부가 결정된다. 법관의 임명은 대법원장이 대법관회의의 동의를 얻어 행한다. 법관의 승진과 근무지 변경은 대법원장이 단독으로 결정한다. 이 모든 인사문제는 외부적으로 공개되거나 공정한 절차에 따라 설정된 기준에 의해 행해지고 있지 않다. 법관이 재임명에서 탈락하거나 승진이나 근무지 변경에 있어 다른 법관에 비해 불리한 대우를 받는 경우 그 이유가 공표되지 않는다. 그러나 정치적 의미가 있는 사건에서 집권층에 불리한 재판을 한 법관이나 대법원장의 비위에 거스르는 행동을 한 법관이 불리한 대우를 받는다는 의심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61. 한국의 사법부가 독립성과 공정성을 유지하지 못하는 데에는 법관의 선임에 있어 독립성과 공정성을 지켜낼 사람을 선발하기 위한 장치가 마련돼 있지 못하고 관료적인 법관의 승진 이동제도가 시행되고 있는 것이 그 부분적인 원인이 돼 있다고 할 수 있다.
62. 사법부의 독립을 침해하는 또하나의 요인은 검찰의 영향이다. 검사들은 그들의 요구대로 판결․결정을 내리지 않는 법관에 대해 간혹 그들이 가진 수사권을 이용해 위협을 가한다. 예컨대, 1990년 3월 서울지방검찰청 동부지청의 한 검사는 한 서점에서 팔고 있던 북한의 책들을 압수하기 위해 서울지방법원 동부지원에 영장의 발부를 청구했다. 이 사건을 담당한 법관은 이 책들이 그것을 읽는 목적에 따라서는 국가기본질서에 아무런 위험을 끼치지 않거나 오히려 유익한 자료가 될 여지도 있다는 이유로 영장의 발부를 거부했다.
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검찰은 이 법관의 결정에 반발해 그가 제시한 이유가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것인지를 검토하고 문제삼을 것을 고려했다(동아일보 1990년 5월 28일자).
재판의 공개
63. 한국의 형사 및 민사소송에서 공개심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할 수 밖에 없는 경우가 흔히 있다. 주요한 공안사건의 경우 재판당일 법원 주위에서 전투경찰이 법원출입자들을 검문하며 방청하러 오는 사람들에게 귀가하도록 강권하고, 법정안에는 수많은 경찰관이 자리를 차지해 위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한 뒤 나머지 빈 자리에 수용할 수 있는 일반 방청객들만의 입정을 허용하는 수가 많다. 또한 비공개재판을 할 적법한 사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구속돼 있는 증인을 법정으로 부르지 않고 그가 수감돼 있는 구치소 등에서 심리를 진행함으로써 공중이 접근할 수 없도록 하는 일도 있다.
64. 한국의 소송법상 변론과 증거조사는 원칙적으로 법정에서 구술로 행해져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증인신문을 제외한 거의 모든 변론과 증거조사가 법정 밖에서 서면으로 행해지고 있다. 형사소송의 경우 수사서류를 비롯한 증거서류는 법정에서는 단지 법원에 제출된 것으로 조서에 기재 될 뿐이고, 법관은 자신의 사무실 등에서 홀로 그 서류를 읽는 것으로 증거조사를 대신한다. 민사소송의 경우에도 같은 방법으로 증거서류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지며, 변론 역시 당사자가 법원에 제출한 준비서면을 법관이 법정 밖에서 검토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법정에서 심리를 방청하는 사람은 도대체 그 소송이 무슨 내용으로 어떻게 진행되어 가는지 거의 이해할 수 없을 수 밖에 없다. 이와 같은 관행이 생긴데에는 법관의 업무량이 너무 많아 법정에서 충분한 심리를 할 여유가 없다는 것이 부분적인 이유가 되고 있다고 생각된다.
무죄추정
65. 한국에는 형사 피의자와 피고인을 사실상 유죄로 추정하는 법률과 관행이 존재한다.
66. 피의자와 피고인은 대부분 구속된 상태로 수사와 재판을 받는다. 구속된 피의자와 피고인은 구치소 안에서 유죄확정판결을 받아 수감된 자와 거의 같은 대우를 받는다(제210항 참조). 구속된 피고인들은 법정에서도 그들만이 입게 돼 있는 품위 없는 제복을 입고 재판에 임해야 한다. 형사소송법은 공판정에서 피고인의 신체를 구속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음에도(제280조) 피고인에게 수갑을 채우게 한 채 재판을 진행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은 법원이 강도죄, 폭력행위를 목적으로 한 단체에 가입한 죄등 "특정강력범죄"의 혐의를 받아 기소된 피고인이 폭력을 행사하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공판정에서 피고인의 신체를 구속할 것을 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제11조). 실제상 "특정강력범죄"로 기소된 피고인은 그가 폭력을 행사하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다고 볼만한 특별한 사유가 없음에도 수갑과 포승으로 때로는 가죽으로까지 온몸을 묵인 채 교도관들에 의해 둘러싸여 재판을 받는 일이 많다. 형사소송법상 구속된 피고인이 무죄판결을 선고받더라도 검사가 사형,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를 선고해 달라고 요구했던 경우에는 그 판결이 확정되기 전에는 석방되지 못하도록 규정되어 있다(제331조 단서).
67. 법원은 피고인에 대해 심리를 진행하기 전부터 유죄라는 예단을 가지기 쉽다. 정부보고서 203항에 언급된 대로 형사소송규칙상 공소장에는 그런 예단을 일으킬 수 있는 서류 따위를 첨부하지 못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검찰이 피고인에 대한 공판이 시작되기 수일 전에 수사서류를 법원에 제출하는 것이 현재의 관행이다. 법원은 그 서류가 증거능력이 있는지 결정되기도 전에 그것들을 검토해 피고인에게 불리한 예단을 가질 수 있다.
68. 검사가 유죄를 입증할 책임을 부담하고 피고인은 의심의 이익(benefit of doubt)을 누린다는 원칙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 피고인들 중 약 99 %에 해당하는 사람이 유죄판결을 받는다는 사실이 이 현실을 뒷받침하고 있다(제51항 참조).
69. 피의자는 수사의 필요라는 구실 아래 출국금지를 당할 수 있다(제259, 260항 참조). 공무원이나 교원은 기소된 경우 직위를 박탈 당한다. 변호사법은 변호사가 기소되는 경우에 법무부장관이 업무정지를 명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헌법재판소는 1990년 11월 19일 이 규정이 무죄추정의 원칙등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헌법에 위반된다고 결정했다(헌법재판소 90헌가48 결정).
혐의사실의 고지
70. 형사소송법은 피의자를 구속하는 경우에 그보다 앞서 그에게 혐의사실의 요지와 구속의 이유 등을 말하고 변명할 기회를 주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실제상 경찰관이 이를 이행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변호인의 조력
71. 구속된 피의자 또는 피고인이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침해되고 있음은 제80항 내지 제95항에서 논의한 바와 같다.
방어권의 보장
72. 구속된 피의자 또는 피고인 중에는 경제적인 이유로 변호인을 선임하지 못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또한 변호사의 수가 지나치게 적어 변호인 선임을 바라는 피의자․피고인의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1992년 4월 13일 현재 전국의 개업변호사는 2,408명으로서 인구 약 18,000명당 1인 꼴이다. 변호인을 선임하지 못한 피의자 또는 피고인은 스스로 또는 가족이나 친구의 도움을 얻어 방어 준비를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구치소나 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피의자 또는 피고인과 변호인 아닌 사람의 접견은 지극히 제한돼 있어 피의자 또는 피고인은 가족이나 친구의 도움을 얻기 어렵다. 구치소 등의 규칙상 수감돼 있는 피의자나 피고인은 공휴일을 빼고 하루 한 차례 3명 이내의 사람과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10분 정도 만나 구치소 등의 관리의 감시 아래 대화를 나눌 수 있을 뿐이다. 더욱이 공안사건의 경우에는 구치소 등의 당국은 피의자 또는 피고인이 접견자와 정치에 대해 대화를 하는 것을 방지한다는 이유를 들어 친족이 아닌 사람과 접견하는 것을 제멋대로 금지하고 있는 실정에 있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회부되고 교도소에 수감돼 있던 재야 지도자의 한 사람인 김근태의 경우에 교도소 당국은 1991년 1월 한달 동안에만도 6차례나 그를 만나러 온 친지와의 접견을 불허했다.
73. 형사소송법은 변호인에게는 소송 관계서류를 등사할 권리를 부여하고 있으나 피고인에 대해서는 그러한 권리를 부여하고 있지 않으며 다만 공판 진행상황을 기록한 조서를 열람할 권리만을 부여하고 있다(형사소송법 제35조 및 제55조 제1항). 피고인이 이 조서를 열람하는 것만으로는 사건의 자세한 내용을 파악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는 위 열람권마저 피고인 자신의 무지 또는 구치소 등 관계자나 법원 관계자의 거절로 말미암아 행사되는 수가 거의 없다. 변호인을 선임하지 않은 피고인은 자신에 대한 사건의 내용을 거의 모르는 채 심판을 받는다.
74. 형사소송법 상 피의자․피고인 또는 변호인에게는 검사가 보유하고 있는 증거를 열람하거나 등사할 권리가 인정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피고인측은 검사가 그 증거를 법원에 제출하기 이전에는 그것을 검토할 수 없다. 구속기간의 제한이 사실상 피고인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사정 아래에서(제203항 참조) 뒤늦게 검사 측 증거를 검토할 기회를 가지게 되는 피고인 측은 방어준비에 충분한 시간을 가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75. 한국의 민․형사소송절차에서 증인신문은 대부분 유도신문으로 진행되고 있다. 법원의 직원은 증인의 진술 내용을 들어서 조서에 적어 놓는다. 증인의 진술을 속기하거나 녹음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며 조서의 기재는 부정확한 수가 많다. 법관들은 일반적으로 자신이 직접 들은 증인의 진술보다는 그것을 적은 조서를 검토해 심증을 얻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법관들은 증인의 진술이 대부분 유도신문으로 얻어지고 있기 때문에 증언에 큰 증거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와 같이 재판이 주로 서류에 의존해 이루어짐으로써 진실과 먼 판결이 선고될 우려가 크다. 특히 형사소송에 있어서는 수사기관이 작성한 증거서류가 우월한 증거가치를 인정받게 돼 피고인에게 불리한 결과에 이르게 된다. 그러한 증거서류에 의해 유죄의 심증을 얻게 된 법관들은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를 조사하는 것을 꺼리는 수가 많다.
피고인의 출석권
76. 반국가행위자의 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법은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사람 등 "반국가행위자"가 외국에서 돌아오지 않는 경우에 그의 출석 없이 재판을 진행해 원래의 법에 정해진 형벌에 덧붙여 재산을 몰수하기까지 하는 판결을 선고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경우 피고인이 출석하지 않는 한 변호인의 출석도 금지되며, 법원은 검사의 의견을 들은 뒤 증거조사 없이 형을 선고해야 한다. 이 법은 몰수할 재산의 가액이나 범위를 한정하지 않고 있으므로 법원은 피고인의 모든 재산을 그 취득 원인을 따지지 않고 몰수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출석하지 않는 피고인은 판결에 대한 상소도 제기할 수 없다.
증인신문권
77. 형사소송법은 수사절차에서 검사 또는 경찰관에게 진술을 한 사람이 공판기일에 그 진술과 다른 진술을 할 염려가 있는 경우에 검사는 제1회 공판기일 전에 법관에게 그 사람에 대한 증인신문을 해 주도록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증인신문에 있어 법관은 수사에 지장이 있다고 인정할 때에는 피고인이나 피의자와 변호인의 출석을 불허할 수 있다(형사소송법 제221조의 2). 이 제도는 정치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는 사건에서 활용되고 있다. 검찰은 증인이 될 사람을 외부와 차단한 상태에서 장시간 신문하며 회유나 위협을 통해 피의자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게 한다. 그 직후 법관에 대해 증인신문을 청구하면 법관은 피의자나 변호인의 출석을 불허한 채 그 증인을 출석시켜 검사로 하여금 신문케 한다. 그 증인은 위 회유나 위협의 영향이 남아 있는 심리상태에서 검사가 바라는 진술을 되풀이 한다. 이렇게 피의자나 변호인의 출석 없이 작성된 증인신문조서는 후일 그 피의자에 대한 심리과정에서 무조건 증거능력을 지니게 된다(형사소송법 제311조).
78. 형사소송법상 수사기관이 피고인 아닌 사람의 진술을 적은 서류나 그런 사람이 작성한 진술서는 피고인이나 변호인이 그것을 증거로 함에 동의하지 않는 경우 그 진술자가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그 서류가 진정하게 작성됐다고 진술하지 않는 한 원칙적으로 피고인에게 불리한 증거로 사용될 수 없다(형사소송법 제313조 제1항). 전문법칙이 인정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형사소송법은 전문법칙의 예외를 인정해, 그 진술자가 "사망, 질병 기타 사유로 인하여" 법정에 출석하여 진술할 수 없을 때에는 수사기관에서 한 진술 또는 진술서의 작성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서 행해졌을 것을 조건으로 그 서류를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형사소송법 제314조). 형사소송의 실제를 보면, 검사는 피고인에게 불리한 진술을 적은 서류를 수사과정에서 미리 작성해 두었다가 공판정에 증거로 제출한다. 피고인이나 변호인이 그것을 증거로 함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면 검사는 그 진술자를 증인으로 불러 신문할 것을 신청한다. 이에 따라 법원은 그 진술자가 출석하도록 그 서류에 기재된 주소로 소환장을 보낸다. 그 주소가 부정확하거나 그 진술자가 주소를 옮긴 경우 소환장은 송달되지 않고 법원에 되돌아온다. 법원은 경찰에 대해 그의 소재지를 조사해 줄 것을 요청한다. 만일 경찰이 그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는 보고서를 보내오면 법원은 거의 모든 경우에 전문법칙의 예외에 해당한다고 인정해 그 서류를 증거로 사용한다. 대법원은 이러한 조처가 정당하다고 확인하고 있다(대법원 1987. 6. 9 선고 87도691 판결 등). 그 결과 피고인은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한 사람을 신문할 기회를 전혀 가지지 못한 채 그 진술 때문에 유죄판결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심지어 악질적인 수사관이 가공인물 명의로 피고인에게 불리한 진술서류를 작성해 유죄판결을 유도할 가능성마저 배제할 수 없다.
자백의 강요
79. 제205항에서 논의하는 바와 같이, 한국의 형사소송절차에서는 구속수사와 구속재판이 관행으로 돼 있고 피의자는 수사기관에 장기간 구속돼 외부의 감시로부터 차단된 상태로 자백을 강요 받는 수가 많다. 법원은 피고인이 공소사실을 부인하거나 진술을 거부하는 경우에 그가 잘못을 뉘우치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무거운 형을 선고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다. 이는 피고인들에게 빠른 시일 내에 집행유예 기타 가벼운 형을 선고받고 석방되기 위해 범행을 자백하고 방어를 포기해야겠다고 결심하도록 강요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 규약 제9조 제2항, 제14조 제3항 (d)
80. 한국의 헌법과 법률은 정부보고서에 인용된 바와 같이(제151항) 형사피의자 또는 피고인이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구속되어 있는 피의자나 피고인의 경우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광범위하게 침해되어 왔다. 그 이유는 수사기관이 구속상태를 피의자로부터 자백을 강요하여 받아내는 수단으로 혹은 피고인의 재판을 위한 방어준비를 방해하는 수단으로 이용하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81. 한국에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침해되는 모습은 변호인과 피의자의 접견 자체를 수사기관이 거부하는 경우, 접견을 여러 방법으로 방해하거나 지연시키는 경우, 그리고 접견의 비밀을 침해하고 변호인과 피의자에게 부당한 영향을 주는 경우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82. 변호인의 접견권이 침해되는 것은 대부분 "공안사건"으로 분류되는 정치범들의 경우이다. 그중에서도 주로 국가보안법위반 사건을 수사하는 국가안전기획부와 경찰청(과거의 치안본부) 대공분실, 국군기무사령부(과거의 보안사령부)의 경우에 침해되는 양상이 심각하다. 이러한 기관들에서 수사를 받는 피의자들은 대부분 영장이 없는 상태에서 강제로 연행당하며 최소한 48시간 정도 외부와 연락하는 것이 차단된 채 억압적인 수사를 받는다.(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하기 전에 구속된 기간은 법률상 구속기간의 제한을 정하는 데 산입하지 않는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례이다. 김종식의 국가보안법위반사건(서울형사지방법원 91 고합 1357 사건)에 관한 서울형사지방법원 1991. 10. 8. 91 초 3474 결정, 서울고등법원 91.11.1. 91 로 13 결정, 대법원 91.12.30. 91 모 31 결정 참조) 그리고 그 수사결과를 토대로 구속영장을 청구하며 법원에 의하여 영장이 발부되면 비로소 가족들에게 통지를 해 준다. 가족들에게 하는 구속통지서에는 예컨대 "국가보안법 위반"등과 같이 간단한 죄명만 기재하며 구체적인 구속이유를 기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피의자가 영장을 보지 못하는 경우도 많이 있으며 변호인이 검찰청이나 법원에 구속영장의 등본청구를 해도 며칠씩 지연되는 경우가 많다.
83. 국가안전기획부의 경우에는 거의 20일 또는 그 이상의 기간동안 지하실에 있는 조사실에 피의자를 유치해 놓고 자백을 강요한다. 피의자는 지하실의 조사실에서 20일간, 수사관의 감시아래, 용변과 식사를 포함하여 모든 생활을 해야 하며 밖으로 나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안기부가 피의자를 구속하는 경우 구속영장이나 구속통지서에는 구속장소를 안기부 근처에 있는 서울 중부경찰서로 기재해 놓는 것이 관례이다. 구속된 피의자는 구속영장의 집행을 위하여 잠시 중부경찰서에 들릴 뿐 수사의 시작부터 끝까지 안기부지하실에 수감되게 된다.
84. 안기부는 다른 수사기관과 달라서 민간인이 출입하거나 안기부측과 연락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피의자의 가족이나 변호인은 안기부에 직접 피의자의 접견을 요구하는 것이 불가능하며 안기부근처의 주자파출소와 중부경찰서에 접견신청서를 제출하고 오랜 시간을 무조건 기다리게 된다. 주자파출소나 중부경찰서의 경찰관이 안기부로 연락을 하면 안기부는 보통 여러 시간이 지난 다음 피의자와 접견을 하게 해 주거나 어떤 경우에는 끝내 접견을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변호인으로서는 안기부의 담당수사관을 만나거나 그와 연락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법적으로 이의를 하는 것 조차 불가능한 실정이다.
85. 안기부에 구속되어 있는 피의자에 대하여 일단 접견이 이루어지고 나면 안기부수사관들은 대부분 수사가 끝날 때 한번만 더 접견을 허용하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한다. 이런 경우 변호인들은 남한사회에서 안기부가 가지고 있는 특수한 권력과 지위로 인하여 안기부가 스스로 정한 방침을 변경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결국 더 이상의 접견을 포기할 수 밖에 없다.
86. 때로는 안기부의 접견거부에 대하여 접견을 허용하라는 법원의 결정을 받아서 접견을 다시 신청하는 경우도 있으나 이런 때에도 안기부는 접견을 거부하는 경우가 있다.
87. 피의자가 사법경찰관에 의하여 10일 또는 20일간 수사를 받은 다음에는 검찰로 송치되게 되는데 이때부터 피의자는 기소되어 재판을 받을 때까지 구치소에 수감되게 된다. 이 단계에서는 그 전에 비하여 비교적 접견이 쉽게 이루어지지만 때로는 고의적으로 접견이 방해되기도 한다. 구속 피의자가 검찰로 송치되어 구치소에 수감된 경우 보통 변호사들은 전화로 접견을 하기 위하여 변호사가 간다는 사실과 도착예정시간을 구치소 접견과에 알려준다. 그러면 접견과에서는 미리 피의자 또는 피고인을 불러내어 접견실에 대기시키고 변호인이 도착하면 즉시 접견할 수 있게 배려하고 있다. 그러나 공안사건의 경우에는 미리 통지를 하여도 변호인이 구치소에 도착한 후에야 비로소 재소자를 불러내기 때문에 변호사로서는 30분 내지 한 시간이상 그곳에서 대기하지 않으면 안된다. 또 2인이상을 접견할 경우에 일반사건에는 한명을 접견하는 동안 다른 사람을 대기시켜 주지만 공안사건의 경우에는 한명의 접견이 끝나면 그를 감방으로 데려다 주고 나서 다음접견대상자를 데리고 오기 때문에 다시 한시간 정도 시간이 걸린다. 접견은 평일 근무시간에 한하여, 그것도 오후 4시 이후에는 관리목적상 접견을 더 이상 시켜주지 않으므로 변호인들이 접견할 수 있는 시간이 극히 제한되어 버린다. 이런 관행때문에 공안사건의 경우에는 변호인의 접견이 사실상 침해되는 일이 흔히 일어난다.
88. 검사가 피의자를 수사하는 경우에 수사를 위하여 피의자를 소환하는 경우에는 구치소에서 피의자를 접견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된다. 그런데 검찰청에는 변호인의 접견을 위한 시설이 없기 때문에 변호인으로서는 피의자를 접견하고자 할 경우 검사실과 검찰청의 피의자대기실 등을 찾아다녀야 하며 결국 접견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고 하는 경우에도 검사실에서 검사나 수사관, 교도관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개적으로 잠시 접견을 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다.
89. 어떤 경우에는 구치소에서는 검사가 소환하여 피의자가 없다고 하고 검사는 피의자를 소환한 일이 없다고 하며 서로 책임을 전가하면서 변호인의 접견을 방해하는 경우도 있다.
90. 공안사건의 피의자 또는 피고인에 대하여 변호인이 접견을 할 경우, 수사관들이나 교도관들이 그 주위에서 대화 내용을 듣고 대화내용을 기록해 왔으며 안기부의 경우에는 접견 과정에서 계속 사진을 찍는 등 접견의 비밀을 침해하고 피의자와 변호인에게 부당한 심리적 영향을 주어 왔다. 헌법재판소는 1992년 1월 28일 안기부 등의 이와 같은 관행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선언하였다(91 헌마 111). 이후 약간의 개선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아직도 변호인의 접견을 침해하는 사례가 일어나고 있다. 예컨대 헌법재판소가 위 결정을 하던 그날 부천경찰서는 절도혐의로 구속된 정계택씨의 변호인 접견을 거부하였으며 그 다음날에야 접견을 허용하면서 수사관들이 참여하여 듣고 녹음까지 하였다. 이러한 조치에 대하여 대한변호사협회는 관련 경찰관들을 검찰에 고발하였으나 수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91. 구치소나 교도소외에는 안기부, 경찰서, 기무사, 검찰청 등에 변호인의 접견실이 설치되어 있지 않은 것도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이런 사정 때문에 변호인의 접견은 불가피하게 수사기관의 사무실에서 하게 되고 접견의 비밀이 침해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일어나고 있다.
92. 한국의 경우 피의자가 사법경찰관 또는 검사의 신문을 받을 때 변호인의 참여가 허용되지 않고 있다. 전반적으로 매우 억압적인 분위기에서 수사를 받는 피의자들은 수사관의 질문에 묵비권을 행사할 것인지, 대답을 할 경우 그 내용이 자신에게 불리한 것인지, 유리한 것인지 등에 관하여 변호인의 조력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스스로 결정을 해야 한다. 특히 구속되어 있는 피의자로서는 수사도중 그에게 가해지는 고문이나 가혹행위, 모욕적이거나 비인도적인 처우 등에 대하여 무방비상태에 놓이게 된다. 그런 반면 수사기관에서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의 내용을 피의자가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잘 읽어보는 것이 사실상 보장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피의자신문조서의 내용이 실제로 한 진술과 다르게 기재되어 있다는 주장이 종종 법정에서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형사소송법상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는 후에 피의자가 그 내용을 부인하더라도 조서에 찍혀 있는 무인이 그의 것인 한 법원에 의하여 증거로 받아들여지게 되어 피의자로서는 큰 불이익을 당하게 된다.(법률상 검사가 작성한 조서는 성립의 진정과 진술의 임의성이 인정되면 증거로 받아들일 수 있는데 법원은 임의성이 없다는 사정의 입증책임을 피고인에게 지우고 있다. 따라서 결국 성립의 진정만 인정되면 그 조서는 증거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이점에 관하여는 이 보고서 중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에 관한 부분 참조.)
93. 형사소송법 제244조 제2항은 "(피의자의) 조서는 피의자에게 열람하게 하거나 읽어 블려야 하며 오기가 있고 없음을 물어 피의자가 증감. 변경의 청구를 하였을 때에는 그 진술을 조서에 기재하여야 한다."라고 정하고 있다. 그러나 대법원은 수사관이 이 조항을 위반하여 피의자에게 열람하게 하거나 읽어 주지 않은 경우에도 그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이 인정된다고 하고 있다.(1988.5.10. 선고 87 도 2716 판결) 대법원은 또 체포나 구금 당시에 헌법과 형사소송법에 규정된 권리, 즉 체포. 구금의 이유와 변호인 선임권 등을 고지하지 않고 구속기간 중 면회를 거부당하였다 하더라도 이는 구속취소의 이유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있다.(대법원 1991.12.30. 91 모 76 결정) 이처럼 헌법과 법률이 정한 피의자와 피고인의 권리가 침해되어도 법원이 아무런 법적 구제를 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헌법과 법률의 조항은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하는 실정이다.
94. 1992년 3월 24일 전국적으로 한 국회의원총선거에서 일부 군부대가 장병들의 부재자투표와 관련하여 여당후보의 득표를 위하여 부정선거를 하였다는 사실을 육군 제9사단 이지문 중위가 폭로하였고 그는 군무이탈혐의로 구속되었다. 이중위의 변호인들은 구속의 부당함을 주장하며 육군 제9사단 보통군사법원에 구속적부심사를 청구하였는데 4월 1일 열린 재판에서 군사법원 측은 방청객의 출입을 금지하고 일부 변호인들을 헌병을 동원하여 강제로 법정밖으로 끌어내기도 하였다.
95. 한국의 법률은 정부보고서가 설명하고 있듯이 일정한 경우에 피고인이 무료변호를 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제203항 (d)). 그러나 이 경우 피고인의 변호인은 피고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법원이 변호사의 명부가운데 일방적으로 지정하여 선임한다. 이때 정된 국선변호인에게 지급되는 보수가 너무 낮기 때문에 대부분의 변호인들이 최선을 다하여 변호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또 대법원은 이처럼 피고인의 의사를 묻지 않고 법원이 선임한 국선변호인이 자기의 직무를 태만히 하여 피고인에게 불이익을 주었을 때에도 그 책임은 모두 피고인에게 귀속된다고 판단함으로써(예컨대, 대법원 1964.5.21.선고 64 도 87 판결) 국선변호인 제도는 매우 형식화되어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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