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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grapher

Jean Eugene Auguest Atget (으젠느 앗제, 1856∼1927)

by 淸風明月 2024. 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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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C 후반기에 사진계에 등장하여 20C 초까지 한 세기의 전환기에 활동한 사진가였던 으젠느 앗제(Jean Eugene Auguest Atget)는 알프레드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와 더불어 현대사진의 선구자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살아생전에는 이와같은 영애로움을 누리지 못한채 가난과 고독, 외로움으로 불운하게 지내다가 세상과 작별하고 나서야 그의 존재가 널리 알려지고 인정을 받은 사진가이다. 1857년에 프랑스 보르도에서 태어난 앗제는 어린나이에 부모를 여의면서 부터 그의 불행이 시작되었다. 어려서부터 삼촌의 손에서 자라나 열살이 넘어서 부터는 선실 급사로 바다에 나갔고 스므살이 넘어서는 떠돌이 극단의 배우로 생활하였다. 그의 배우 생활이라고 해보았자 단역에 지나지 않았으며 주로 무대 뒤에서 잡일을 거드는 일이 고작이었다. 그가 카메라를 손에 잡은 것은 그의 나이 40세에 이르러서 파리로 갔을 때였다. 그때까지도 앗제는 내일이 없는 밑바닥 생활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고 있었다.

 

1899년 18ⅹ24cm 뷰카메라를 구입하여 파리의 시내와 센느강 주위을 찍은 사진들은 그에게 있어서는 예술행위라기 보다는 화가들이 그림을 좀더 정확하게 그리기 위한 도구로서 사진을 제공해주고 돈을 버는 생계수단이었다. 앗제는 하나의 직업으로 사진가를 선택하였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사진을 판매하였던 것이다. 예술, 창작을 위해 한평생 바친 사람들도 그 위상을 떨치기가 어려운데 앗제의 경우처럼 생계수단으로서 시작하였던 사진이 높이 평가받을 수 있다는 것은 매우 놀랄만한 일이다. 여기에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분명히 앗제에게 있어서 사진은 일차적으로는 생계 목적의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부차적으로는 불행한 인생살이 속에서 항상 혼자였기 때문에 외로웠고, 세상과 단절된채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사진은 그에게 세상과 연결하는 유일한 끈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세상과의 연계되는 부분을 사진으로 생각하고 자기표현하는 유일한 수단으로 사진이 이용되어 하나의 탈출구 역할을 한 셈이다. 그의 친구였던 앙드레 깔메뜨(Andre Calmettes)에 따르면 앗제는 한때 파리와 그 주변 환경의 예술적이며 회화적인 그 모든 것을 하나의 콜렉션으로 창작해내려는 야심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을 보면 단순한 기록 이상의 수준을 넘어서는 서정적인 작품이라는 것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느낄 수 있게한다.

 

앗제를 세상에 드러내보인 사람은 만레이(Man Ray)의 조수인 미국의 여류 사진가 베러니스 애보트(Berenice Abbott)에 의해서였다. 앗제가 세상을 뜨기 1년전에 미국의 화가이자 사진가였던 만레이가 초현실주의자들의 기관지인 「Surrealist의 변혁」에 앗제의 사진 4점을 실어보임으로써 앗제로서는 처음 도구로 쓰이기 위한 사진이 아닌 창작으로서의 사진이 사람들에게 공개된 셈이다. 이후 만레이의 소개로 베러니스 애보트는 앗제가 첫만남을 가졌고 그의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두 번째로 애보트가 앗제를 찾았을 때에는 앗제가 이미 이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하마터면 회화를 위한 화가들의 도구로써 사라졌을지도 모를 앗제의 사진들을 뒤늦게나마 애보트가 수소문해서 2천여장의 원판과 1만여장이 넘는 사진을 찾아내어 1968년 뉴욕 현대미술관에 보존하여 오늘날에도 우리가 앗제의 사진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앗제의 사진적 특징을 볼 것 같으면 장소는 주로 야외에서 찍은 사진이 대부분이었고 그 중에서도 화려한 거리보다 대부분 사람이 없는 뒷골목을 위주로 하여 사진을 찍었다. 가끔씩 그의 사진에 사람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사진속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앗제와 비슷한 처지의 밑바닥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앗제의 이러한 사진들은 그의 성격에서부터 나온 것인데 그는 늘 고독하게 지냈으며 자폐증, 우울증의 증상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눈길을 피해서 찍다보니 대 부분 뒷골목을 배경으로 하였고, 시간상으로도 인적이 드믄 이른 아침이나 저녁이 되어야 편안한 마음으로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그는 늘 혼자였고 외로웠다. 이런 외로움들이 어쩌면 그의 사진에서 현실을 초월한 그 무엇인가를 사람들에게 느끼게 해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늘날에 와서 앗제를 평하기를 흔히 '카메라의 시인'이라고 부르는데 기계적 기록성을 바탕으로 한 스트레이트한 앗제 사진으로 어떻게 시인으로 불려질 수 있었을까? 이 해답은'공감'이라는 단어로 함축하여 말할 수 있다. 기록하고 있는 장면은 현실속의 생생한 장면 들이더라도 현실속에 미처 보지 못했던 시의 세계를 찾아서 표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즉 현실공간 속에서 삶의 진실을 마음속 깊이 느낀 것이다. 그가 찍은 대상들은 그가 늘 생활 하던 공간 속에서 자연스러움이 베어있었고 그 속에서 조화를 느낄 수 있었으며 따라서 정감적인 분위기가 뭍어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머리보다 가슴으로 다가가 사진을 찍었고 삶의 앙금을 표현하여 대상과 조화를 이루고 어울리도록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즉 일상적 생활공간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감정을 공감할 수 있게 표현되었다.

 

19C말 당시 사진의 가장 기본적이고도 특징적인 기계적 기록성은 무시하고 오히려 회화적 사진이 예술로서 인정받던 시기에 회화적 예술사진으로 향하기 보다는 비록 기록사진을 목적으로 한 스트레이트한 사진을 찍었지만 실용에 목적을 둔 기록사진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색을 형성한 예술활동을 하였다는데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물론 그의 사진이 기록성에만 치중해 있었다면 오늘날과 같은 명성을 얻지는 못했을 것이다. 사실적 기록만으로도 충분히 예술성을 표현가능 하다는 점이 다른 사진가들과는 다른 점이었고 또하 그를 인정하게된 계기가 된 점이기도 하다.

 

1856년 프랑스 보르도 출생
1876년 떠돌이 극단배우로 유랑극단 생활
1896년 파리로 이주 후 사진을 시작
1926년 초현실주의자들의 기관지인 「Surrealist의 변혁」을 통해 소개됨
1927년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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