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노동자, 아니 인간에 대한 예의 - 글 임상혁 -
‘감정노동(Emotional Labor)’은 아직 국내에서 좀 낯선 용어지만 이 노동 방식의 특징으로 인해 이미 많은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이 개념은 미국의 여성 학자 혹쉴드(R. Hochschild)에 의해 1983년 〈관리된 심장(The Managed Heart)〉이라는 이름의 책으로 세상에 모습을 나타냈다. 다양한 선행연구에 따르면 감정노동은 ‘연기를 하듯 타인의 감정에 맞추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통제하는 일을 일상적으로 수행하는 노동’으로 일컬어지며 여성의 경우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노동 방식을 가능케 하기 위해 기업에서는 각종 ‘친절 교육’ ‘CS 교육’ 등을 진행하고 ‘고과평가’로 마무리 짓는다.
감정노동이 생기게 된 배경에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항공사의 과당경쟁이 출발점이었지만 현재에 와서는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서비스 패턴으로 자리 잡았다. 즉, 경쟁적 상품 또는 서비스 판매 시장에서 ‘웃음 끼워 팔기’를 하면 시장을 더 빠르게 점유할 수 있다는 계산에서 출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이제 보편화되어 모든 사업자가 ‘웃음까지 덤으로’ 팔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영역에 종사하는 인구 규모가 우리나라 전체 취업자의 40% 가까이 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서비스산업 종사자는 총 취업자의 약 70%인데 서비스산업에서 감정노동을 수행하는 종사자 수가 과반을 넘을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그 규모는 향후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주요 선진국의 서비스산업 취업자 비중은 이미 80% 수준에 육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이 직종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도소매 판매 종사자, 콜센터 노동자, 음식·숙박업종의 접객 분야 종사자, 운송산업의 객실 승무원이나 역무 노동자, 병원의 간호·간호조무·간병 노동자, 보험판매원·학습지 교사·골프장 경기보조원 등의 특수고용 노동자, 그리고 민원을 상대하는 공공 부문(공무원, 교사 등) 노동자 등 그 범위가 매우 넓다. 대부분 여성이 집중적으로 종사하는 업종이라는 특징을 보인다.
문제의 핵심은 이 감정노동이 노동자에게 높은 직무 스트레스를 유발해 정신적, 육체적 불건강을 낳게 한다는 것이다. 감정노동 상태에 과도하게 노출되면 노동자는 ‘탈진(모든 기운이 다 소진되어 타버린 것처럼 되는 상황)’ ‘우울증’ ‘외상후스트레스장애(강력한 충격이 무의식 속에 남아 계속적인 재경험으로 나타나는 증상)’ ‘면역 결핍’ ‘음주, 흡연, 도박 중독’ 등의 상태에 빠지게 된다. 결국 아주 불행한 ‘자살’이라는 선택을 하는 노동자도 있고 견디다 못해 이직을 하는 경우는 다반사다. 그러나 이직을 하더라도 완전히 새로운 직종으로 옮기기도 어려우니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러한 사례가 노동자 개인의 피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가족 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어 안정적 사회 재생산 구조에도 적신호가 켜지게 된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감정노동 수준은 세계적으로 맹위를 떨치고 있다. 전국적, 전 업종 수준에서 조사가 진행된 바는 없지만 지난해 노동환경연구소가 실시한 민간 서비스 노동자 삶의 질 실태조사 등 몇몇 연구 결과에 따르면 다른 나라에서 가장 ‘탈진’ 수준이 높은 직종보다 우리나라 몇몇 서비스 업종에서의 탈진 수준이 현저히 높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사회・문화적 특성이 ‘친절이 몸에 밴’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직장에서는 과도한 ‘연기’와 부당한 ‘고객 복종’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그 감정적 저항은 매우 큰 것으로 나타난다. 우리보다 더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진 일본의 경우 서비스산업 노동자의 가치는 좀 다르다. 그들의 사회・문화적 배경 하에서 친절은 당연한 것이지 강요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항감도 상대적으로 적은 것으로 나타난다. 반면 서구에서 서비스 노동자가 ‘웃음을 얹어 파는’ 경우는 거의 구경할 수 없다. 감정노동이 이렇듯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문제의 심각성이 널리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노력과 모색이 필요하다.
첫째, 범사회적 ‘친절 이데올로기’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 친절한 것이 무엇이 나쁘겠는가마는 친절한 것이 무조건 옳다는 식의 생각을 만든다는 것이 문제다. 고객이라 할지라도 일반적 상거래상의 규칙은 지켜야 한다. 그런데 서비스 노동자들 앞에서 이런 규칙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다. 구매자의 위치에 있는 고객은 절대 권력을 갖게 되고 서비스 노동자는 부당한 요구를 감내해야 한다. 친절해야 한다. 이 당혹스러운 상황을 지지·지원하는 시스템은 기업의 경영전략이다.
둘째, 작업장에서의 폭력·폭언·성희롱에 대한 문제인식을 강화시켜야 한다. 사업장 내의 직원 간에 발생할 수 있는 폭력·폭언·성희롱 문제가 아직 근절되지 못한 상황에서 고객에게서 비롯되는 폭력·폭언·성희롱 문제에 적극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우리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호텔, 병원 등의 사업장에서는 아직도 상급자에 의한 폭력·폭언이나 남성에 의한 성희롱이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난다. 물론 고객에게서 비롯되는 폭력·폭언·성희롱의 비중이 훨씬 높지만 가장 편해야 할 내부관계에서조차 이런 현실이라면 갈 길이 먼 것이다.
셋째, 구제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고객으로부터 극도의 부당한 대우를 받게 되었을 때 긴급하게 노동자를 엄호할 수 있는 체계가 없다. 호소할 곳도 마땅치 않다. 심지어 부당한 요구를 하는 고객 앞에서 상급자가 노동자에게 면박을 주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 해당 노동자는 극도의 정신적 불안정, 쇼크 상태에 빠질 수 있다. 충격을 받은 노동자 대부분은 좀 울고 흥분을 가라앉힌 후 바로 본래 업무로 복귀하게 된다. 이는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아야’ 하는 상황을 만들어내고 만다. 겉으로는 아무 문제 없었던 일이 되는 것이다.
감정노동 문제를 하루아침에 해결하기는 어렵다. 사회・문화적 풍토와 기업의 경영전략, 정부의 강력한 규제, 공급자와 소비자 인식의 전환 등 바뀌어야 할 것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마냥 늦출 수만도 없다. 제대로 관리되면 저절로 친절이 우러나오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고, 서비스 노동자가 건강하게 살아가고 경쟁력 있는 서비스산업 발전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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