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세계는 빈곤의 극단적인 격차가 날로 심해지고 있다. 잘사는 국가와 가난한 국가의 소득격차는 세계대전 이전 상황을 크게 넘어서고 있다. 세계 어느나라든 예외없이 승자독식의 구도가 당연시되면서 고착화 되어가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지구촌의 80여개국가들의 일인당 소득이 10년전 수준보다 하락했다는 것이다.
또한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의「2001년 저개발국 연차보고서」에서는 지난 30년간 하루 1달러도 안되는 극빈선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숫자가 두배로 증대하여 3억 7천만명에 달한다고 보고하고 있다. 보고서는 특히 아프리카의 경우 극빈선상의 인구가 60년대에는 56%였으나, 90년대 후반에는 65%로 증대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로써 세계 인구의 20%를 점하는 부유한 나라와 최하위 20%의 인구비중을 점하는 가난한 나라들간의 소득격차는 1960년의 30 대 1, 1990년의 60 대 1에 이어 1997년 74 대 1을 기록 크게 악화되어가고 있다. 1820년경 부국과 빈국간의 소득격차는 약 3 대 1이었고, 1870년에는 7 대 1로, 그리고 1913년에는 11 대 1로 벌어졌고, 이런 불평등의 심화는 급기야 러시아의 공산혁명, 세계대공황, 1·2차 세계대전으로 치닫게 되는 배경이 되었다.
나라별로도 내부의 소득불균형 문제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중국에서는 수출 주도의 연안지역과 내륙지방간의 격차가 크게 벌어지고 있다. 연안지역의 빈곤지수는 20% 미만인데 비해 내륙지방에선 50%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동유럽과 독립국가연합에서는 소득불균형 지표인 지니계수가 최대의 증가폭을 기록하고 있다. 통일을 이룬 독일의 경우에도 동서독간의 격차가 줄지 않고 있다. 1990년 이후 매년 1500억 마르크의 막대한 재정이전이 이루어졌음에도, 동독의 인당 경제력 지표는 서독의 60% 수준에서 정체되어 있다. 동독은 인구로는 전체의 17%인데, 전체 실업자의 33%는 동독에서 발생하고 있고, 제조업 생산과 수출에서 동독이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8%와 6%에 불과하다.
일찍이 전문가들은 이런 격차가 더 이상 벌어지지 않고 일정 수준 수렴할 것으로 예상했었다. 그러면 도대체 어떤 이유로 지구촌의 양극화가 계속 심화되고 있는 것일까. 연대기적인 관점에서 이를 추적하면 1973년 말의 석유위기가 중요한 단초를 제공했음을 알 수 있다. 석유위기는 산유국에 막대한 오일달러가 축적되는 것을 의미했고, 새로운 자금이 몰려든 런던의 유로달러시장은 이를 환류시키는 문제에 봉착했다. 당시 서방 선진국은 경제불황으로 자금수요가 많지 않았으므로, 유로은행들은 아시아·아프리카·중남미 개도국과 구소련 및 동유럽의 공산권국가를 대상으로 새로운 대출처를 개척하는데 부심했다.
이로써 저리의 외화자금을 맛보게 된 개도국들은 서방제품에 대한 수입의존도를 크게 높였고, 경제성이 낮은 대형 인프라사업도 방만하게 밀어붙였다. 그러나 우호적인 여건은 잠시였다. 79년 제2차 석유위기가 불어닥치면서 세계경제는 다시 심각한 불황에 빠져들었고, 개도국의 주요한 외화벌이인 일차산품의 국제가격은 급격히 하락했다. 게다가 81년 레이건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미국은 '강한 달러' 정책을 내걸고 달러 금리를 턱없이 높임으로써, 이들 나라들은 거의 예외없이 외채의 원리금 상환에 허덕이게 되었다.
이런 국가부도 상황을 틈타 이들 개도국에 적극 개입하기 시작한 것이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이다. 양 국제금융기구는 분담금을 많이 불입한 선진국이 마치 대주주처럼 의사결정을 좌지우지하는 기구인 까닭에, 가능한 한 자국의 금융기관들이 돈을 떼이지 않게 하는데 총력을 경주했다. 이로써 등장한 것이 개도국 구조조정프로그램(SAP)이다. SAP는 철저히 긴축을 의도한 것이었다. 가급적 내수를 줄여야 수출이 늘고, 그래야 빚을 갚을 수 있다는 것이 숨겨진 논리였다. 이로써 외채국들은 수출극대화를 위해 자국통화를 경쟁적으로 절하했고, 재정을 최대한 축소함과 동시에 다수의 공기업을 외국자본에 팔아넘겼다. 그 결과는 민생의 관점에서 참혹한 것이었다. 환율 절하는 생필품 수입가격을 높였고, 재정축소는 교육과 의료서비스를 중단시켰고, 공기업 매각은 공공요금의 대폭적인 인상으로 이어졌다. 그렇다고 개도국의 외채부담이 줄어든 것도 아니다. 1970년 개도국 총외채는 630억달러 였으나, 1980년에는 5870억달러로 증대했고, 1990년에는 1조 4600억달러로 그리고 2000년에는 2조 5280억달러로 폭증했다. 빚을 갚기 위해 새로운 빚을 끌어다 쓴 것이 외채 폭증의 가장 큰 원인이었다.
현재 아프리카와 중남미의 가난한 나라들은 정부예산의 50% 이상을 외채상환 및 이자지급에 투입해야 할 형편이고, 1996년 국제금융기구가 고부채최빈국(HIPC)으로 지정한 42개국은 연간 수출액의 150% 이상을 외채서비스에 털어넣어야 하는 혹독한 사정이다. 이러한 외채부담은 개도국들로 하여금 교육·의료 등 필수적인 사회복지 서비스를 무제한 감축하고, 꼭 필요한 개발투자를 저해함으로써 향후 빈곤의 극복과 개발의 전망을 더욱 어둡게 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개도국에로의 외자유입은 그 형태가 크게 변화했다. 종래 선진국이 정부차원에서 지원하는 개발원조나 국제금융기구의 장기개발차관과 같은 공적 자금의 비중은 급격히 줄어들고, 외국인직접투자와 국제금융시장을 통한 자금이동이 큰 비중을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다시말해 90년대 초 개도국향 장기자본유입의 50%를 차지하던 공적개발원조(ODA)는 98년 현재 20% 수준으로 수직 하락했다. 반면 외국인 직접투자는 80년대 중반 전체 장기자본 유입의 18%였던 것이 42%로 급증했다.
이같은 자금형태의 변화를 이유로 선진국과 국제기구는 개도국이 자기 역량으로 민간자금을 끌어쓸 수 있게 되었으므로, 이제는 원조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경제시스템을 개혁해서 민간자금을 유인해야 한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문제는 개도국향 민간자금이 대부분 소수국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아시아·중남미의 신흥산업국, 덩치로 인해 협상력이 있는 중국과 인도, 그리고 남아공 등 아프리카의 몇몇 자원수출국 외에는 민간자금에의 접근이 사실상 어려운 실정이다.
이로써 절대 다수의 개도국은 심각한 외채에 시달리고 있음에도 공적 자금과 민간 자금의 양 사이드로부터 소외되고 말았다. 이런 사정은 90년대 초 국제정치경제질서의 변화와 무관치 않다. 지난 10여 년간 국제질서는 가히 혁명적으로 전환되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촉발된 공산권 붕괴는 국제질서를 기존의 냉전체제로부터 세계화체제로 개편했다.
돌이켜보면 전후 냉전 시대 중 패권국가 미국에겐 운신의 폭이 그다지 넓지 않았다. 동서간의 대립구도가 미국을 제약했기 때문이다. 공산권 확장을 봉쇄해야 한다는 것은 당시 미국에겐 절체절명의 과제였고, 이로 인해 미국은 글로벌 자유시장 경제체제를 구축하기 보다는 개도국에 대한 전략적 배려를 통해 방어 진지를 구축하는 것을 더 중시했다. 이것이 바로 70년대 초 선진국들이 GDP의 0.7%를 ODA에 투입하겠다고 약속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다. 하지만 2001년 현재 0.7%라는 국제기준치를 지키고 있는 나라는 덴마크·룩셈부르크·네덜란드·노르웨이·스웨덴의 5개국에 불과하고, 유럽연합 전체로는 0.33%, 미국의 경우에는 0.1%를 밑돌고 있다.
소득 불균형의 문제는 단지 저개발국, 개도국의 문제가 아니다.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회원국, 특히 스웨덴·영국·미국 등지에서도 지니계수가 큰 폭의 증가를 보이고 있다. 이런 빈부격차의 문제는 단지 불평등과 경제정의의 문제가 아니다. 역사적으로 빈부격차의 심화는 많은 재앙을 초래했다. 특히 다수가 구매력을 상실하고 마는 유효수요 부족현상으로 이어지면서 자본주의는 극단적인 경기 침체와 주기적인 공황의 발생이라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더욱이 유효수요 부족현상은 산업자본의 증식을 제약하면서 잉여자본의 투기적 금융자본화를 초래한다. 특히 다국적기업의 경우 임금의 하향평준화를 이유로 마땅히 임금으로 지급되어야 할 이윤의 몫을 금융투기에 쏟아넣고 있다. 그 결과 초국적금융자본은 시장의 독재자로 등장했고, 임의로 흠집을 잡아내 신뢰의 게임을 벌이면서 지구촌 곳곳에서 자기충족적 외환금융위기를 속발·빈발시키고 있다. 오늘날 외환시장에서는 매일 2조 달러가 거래되고 있고, 거대한 금융자본이 국경을 넘어 광포하게 이동함에 따라 1980년 이후 지난 20년간 지구촌에선 무려 150여 차례의 외환위기가 발생하고 있다. 그리고 한 나라에서 터진 외환위기는 가히 충격적인 파괴력을 발휘하고 있다. 일례로 1997년 7월 태국에서 발생한 바트화 폭락사태는 동아시아 전역을 강타했고, 이로인해 1천3백만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그리고 한 나라의 위기는 경제적으로 그다지 상관관계가 높지 않은 나라들까지도 감염시키면서 한 지역의 위기를 글로벌 위기로 확대시킨다. 태국의 바트화 위기는 지역적으로 떨어진 한국, 러시아, 브라질을 속속 파국으로 몰아넣었고, 심지어는 월가(街)의 유동성 불안까지도 고조시켰다. 동아시아에서 발발한 외환금융위기로 인해 1998∼2000년의 기간 중 세계 총산출이 무려 2조 달러나 축소된 것으로 추정된다.
오늘날 지구촌을 관철하고 있는 세계화 체제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추동하고 있고, 이는 조건의 불평등을 논외로 한다. 일례로 덩치가 큰 다국적기업과 몸집이 작은 토종기업 사이에 가로놓인 엄청난 조건의 차이는 일체 무시된다. 경쟁 논리만이 중요할 뿐, 출발선 상의 조건의 차이는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세계무역기구(WTO)가 다자간 협상의 원칙으로 채용하고 있는 '일률적 경쟁(level playing field)'의 개념이 바로 그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세계화는 강자의 이익을 반영한 것이고, 약자로 하여금 강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봉쇄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선진국이 기본원칙을 제대로 준수하는 것도 아니다. 특히 개도국에게 비교 우위가 있는 섬유·의류에 대해서는 여전히 쿼터제 관행을 고수하고 있고, 자국 농산품에 대한 막대한 보조금 지급으로 개도국산 농산품의 시장접근을 봉쇄하고 있다. 이로써 개도국은 기존 1차 산품의 국제가격 하락으로 교역조건이 계속 악화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수출품목의 다변화가 사실상 불가능한 형편이다.
따라서 조건의 불평등을 논외로 하면서도 힘의 우위는 철저히 인정하는 세계화체제가 지속된다면 그 경제적·사회적 귀결은 명확하다. 초국적자본의 위세로 인해 국적자본은 초토화되고, 주변부 각국은 전략적 자유를 상실함으로써 종국적으로 개발의 전망을 포기하는 상황에 처하고 말 것이다. 더구나 대중의 정치적 의사를 대변해야 할 국가기능은 이미 미국의 패권주의와 결합한 초국적자본 앞에 무력화되었기에 국적자본의 육성, 일자리의 창출, 삶의 질의 개선은 물건너 갈 수 밖에 없다. 과거 한국의 경제발전 과정을 돌이켜보면 이런 일률 경쟁의 원칙이 얼마나 잔혹한 것인가를 새삼 깨달을 수 있다.
'Sentio ergo sum'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용산을 외면한 당신 "지금 행복하십니까?" (0) | 2010.03.17 |
---|---|
신석기 이후 인류의 '거대한 꿈' & 좌파 (0) | 2010.01.04 |
소득재분배 OECD 꼴지...빈부격차 해소 민간이 떠안아... (0) | 2009.11.09 |
한-미 FTA 분야별 평가 -섬유분야- (0) | 2007.04.09 |
한-미 FTA 분야별 평가 - 자동차 분야 - (0) | 2007.04.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