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재협상의 문제, 한EU FTA 논란 그 중심은 괴물의 산파인 신자유주의~! 지금 한국 사회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맹목적 지지를 보내는 이들이 경제관료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들과 결탁한 언론과 지식인층의 현란한 말놀림에 신자유주주의로 대변되는 세계화와 FTA가 우리의 성장동력이란 착각에 빠트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려한다.
"부자에게 사랑을 그 밖에 모든 사람에게 모질게..."
신자유주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대의 현상을 보여주는 패러다임이며 한국사회 역시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한국사회는 지금 자본과 정보를 독점한 20%의 부유층과 그들에게 예속되어 불안정한 고용과 경쟁적인 저임금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80%의 빈곤층으로 나누어지는 극단의 양극화로 내달리고 있다. 여기에 국민적 동의란 있을 수 없다. 단지 동의 없는 동의만을 주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한미FTA만 보더라도 그것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우리가 살면서 실행하는 소비의 대부분은 인위적 유도로 이루어진다. 그 소비를 유도하는 것은 자본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카르텔에 의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소비가 자본주의의 미덕인양 우리들을 세뇌시키고 있다. 이것은 인간의 실질적인 필요와는 큰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소비를 하지 않더라도 인간은 얼마든지 행복해 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사회를 논란으로 끌고 가고 있는 한미FTA와 같은 자유무역협정은 자유무역협정이 아니다. 그것은 개방을 빙자하여 자본이 지배하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투자자 권리협정"이다. 이것은 내부거래로 시장 질서를 왜곡시킬 수 있는 힘을 다국적 기업에게 하용하기 위한 세계적인 사기극일뿐이다. 거기에 노무현 정권은 가담한 것이다.
신자유주의 또는 경제적 합리주의라 불리우는 이데올로기들의 임무는 민중들에게 그들이 어리석게 믿고 있는 바와 달리 아무런 권리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자본주의 이전 시대의 문화가 저지른 중대한 오류는 민중이 사회에서 취약하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위치를 차지하며, 그에 따른 권리도 갖는다는 믿음이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로 대변되는 새로운 과학이 등장하면서 '살 권리'라는 개념이 논리적 오류로 증명되었다.
지금 민중의 삶은 시장에서 행운을 실험하는 권리이외에는 어떠한 권리도 가지고 있지 않다것을 설명하고 있다. 독자적으로 보유한 재산도 없고 노동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사람은 '한 줌의 음식도 요구할 권리가 없고, 현재 몸담은 곳에 있을자격도 없는 사람인 것이다. 하지만 선택의 자유는 존재한다. 노역장과 같은 노동시장과 죽음중에 하나를 선택하면 된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을 도우려는 시도는 가난한 사람을 더욱 힘들게 만들고 있다. 반면에 부자는 공권력의 도움을 받으며 승승장구 한다.
우리는 경제의 합리주의가 체계화되어 강요되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기억할 필요가 있다. 언제나 그랬더니 이중적인 면을 띠었다. 약한 사람들에게는 시장법칙이 가차없이 적용되었다. 이런 시장법칙은 필요할때 마다 부자와 특권계층을 보호하려는 정부의 개입으로 나타났다. 정치 경제 시스템의 실제 주역들은 자유시장 자본주의에 대한 환상을 버린 지 오래이다. 단지 자유시장 신봉자들만이 그 환상에 젖어있다.
요즘 TV를 보면 '일자리 창출','경제성장','선진인류국가'란 말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과연 순수하게 그 뜻으로만 쓰이는 것인가? 이것은 "기업 이익"의 또다른 이름으로 쓰이는 것이다. 그리고 상위 10 %가 국민전체소득의 절반이상을 차지하는 현실에서 세금문제를 말할 때 부자나 가난한 사람 모두 똑같은 세율의 세금을 내야한다는 주장을 '공정하게 모든 국민을 동등하게 대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부자들은 공공보조금을 받고 정부의 보조를 받아야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가혹한 시장논리를 적용받아야 한다는 이중 잣대를 가지고 있다. 기업 인센티브, 역진적 성격을 띤 세금감면 등 가진자들을 위한 복지국가 건설을 위한 제안들은 '일자리 창출과 임금 향상을 위한 법'이란 이름으로 둔갑하여 제안되고 있다. 물론 '단기적으로'라는 조건을 붙이기는 하지만 이런 명분은 중요하지 않다. 일반적 상식에 따르면 여기서 말하는 '일자리'는 기업의 이익을 뜻하며 '일자리 창출'이란 제안은 실질적으로 임금을 '아래로 향상시키겠다'는 제안이기 때문이다. 즉 '시장의 유연화'란 다른 말로 저임금과 초과 근무를 말한다고 보면 된다. 현재 대부분의 국민의 삶의 조건과 노동조건은 악화되어가고 있다. 우리들은 지금 신자유주의라는 "메마르고 상스러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자본의 우월성 앞에서 인간 존엄성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자본의 파도는 거세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그 끝은 보이지 않는다. 오늘날에는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솜보다, 과점적 경쟁, 기업과 정부의 전략적 결탁이 첨단산업에서 경쟁적 입점과 국제적 노동분할을 결정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농업, 서비스업, 제약업 등 경제의 전반적인 분야에서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대다수는 시장논리에 구속되어 시장의 경이로움을 찬송하면서 이런 소리를 거의 듣지 못한다. 아니, 이런 소리를 들을 권리조차 인정되지 않는다.
이제 우리는 기만과 왜곡으로 점철된 현실과 부딪쳐 그 진실과 대면해야 한다. 그리고 그 진실을 하나의 힘으로 모아 신자유주의의 망령을 끝장내야 한다. 이 일은 쉽다면 쉬운일이지만 결코 만만하지 않은 일이다. 정당성을 얻지 못한 권력구조와 합의는 국민들의 저항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국민들이 그들의 그늘에 묻혀 버리면 획기적인 변화는 어렵다. 권력이 초국가적 다국적 투자자들의 손에서 놀아나는 한 국민들은 그저 말없이 쓰러져 갈 뿐이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진실을 찾기 위해 맞서야 한다. 신자유주의의 망령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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