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침해를 보고도 부인하는 심리와 구조
“세상이 왜 이렇게 조용한가? 사람들이 미친 것 같다.” 올해 초 경찰특공대의 진압과정에서 철거민 5명이 사망하였다. 그러나 사회는 너무나 조용했다. 용산참사처럼 큰 일이 있어났는데도, 어떻게 아무도 그 책임을 지지 않는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잔인한 국가 외면하는 대중』이라는 책은 이러한 침묵 현상을 객관적으로 분석한 책이다.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한 주간지의 소개 글 때문이었다. 그 기사는 이 책의 내용을 소개하면서, 한국에서의 두 가지 사건을 예로 들고 있는데, 한가지는 용산참사였고, 다른 한 가지는 대전에서 있었던 폭력적인 출입국 단속 사건이었다. 용산참사 사건은 여전히 진행중이고, 대전의 출입국 단속 사건은 피해자들의 추방으로 일단락되었다.
이 책은 인권침해가 발생하였을 때, 국가가 또는 사회가 그 사실과 의미를 어떻게 ‘부인’하는지 분석한 책이다. 이 책은 인권침해의 사실을 드러내는 것은 단순히 은폐된 사실을 ‘진상규명’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저자는 인권침해와 인간의 사회적 고통을 ‘부인’하는 현상에 대해 분석하면서, 부인의 방법으로 ‘문자적 부인(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해석적 부인(그건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함축적 부인(그것은 이런 식으로 볼 수 있다)’의 틀을 제시하고 있다.
용산참사, 대전에서의 폭력적인 출입국 단속 사건은 모두 인권침해 현장이 영상으로 포착된 사건들이다. 현장이 영상으로 남아 있으니 인권침해 사실 자체를 부인할 수 없는 사건들이다. 그런데도 가해자들과 관계 당국은 인권침해 사실을 부인한다. 어떻게? 피해자들이 정당한 공무집행에 대하여 저항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므로 인권침해가 아니라는 식이다. 이러한 ‘해석적 부인’은 문자적 부인보다 반박하기 더 어렵고 복잡하다. 침해의 내용보다는 방식과 과정에만 초점을 맞추면서 정당화한다. 또한 어떤 사건에 이름을 붙이자면 해석을 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 그 해석은 ‘누가’ 하고 있고, 그 ‘기준’은 무엇인가?
법에 근거한 인권침해는 괜찮은 것인가?
최근 한국 사회는 사회적 현상을 지나치게 법 형식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어떠한 사건이 ‘인권침해’인지, ‘비인도적’인지, ‘부당’한지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실이 ‘위법’한지 여부에만 관심이 쏠려 있는 것 같다. 법에 의한 인권침해에 대해서는 묵과해도 된다는 암묵적 동의가 자연스레 만들어졌다. 그러다 보니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결정을 보수적인 법원과 검찰에 모두 넘겨줘 버린 상황이 되었다. 어떤 행위가 어떤 법률의 어떤 조항에 위배된다는 식의 해석은 선명해서 쉽다. 하지만 법률이나 국제인권조약이라는 것은 어찌 보면 지나치게 협소한 최소한의 기준이고 보수적인 기준 아닌가! 인간의 고통을 직시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책은 이러저러한 최근의 고민들에 대하여 다양한 분석을 통하여 생각거리들을 제공해 주는 책이다.
** 다음 블로그를 사용할때 썼던 글로 반디앤루니스 오늘의 책에 게재된 글입니다.
http://www.bandinlunis.com/front/display/recommendToday.do?todayYear=2010&todayMonth=4&todayDay=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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