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민’의 귀환과 민주주의의 위기
아렌트가 경고한 '고립된 분노'가 한국 사회를 잠식하고 있다.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폭민(mob)’을 체제의 주변부에 존재하는, 절망과 증오로 가득 찬 잉여 세력으로 규정한다. 이들은 계급이나 지위로 구분되지 않으며, 핵심 특성은 ‘고립’이다. 단순한 외로움이 아닌 사회적 유대의 단절 속에서, 그들은 현재의 체제 내에서는 삶이 결코 나아질 수 없다는 극단적인 허무주의에 빠진다. 이러한 심리는 경제 위기 속에서 확산되며, 그들은 자신의 불행을 특정한 외부 세력의 음모로 환원시키고, 분노를 투사할 대상을 갈망하게 된다.
최근 유튜브에서 히틀러 시대 독일의 괴벨스 총력전 연설을 컬러로 복원한 영상을 접했다. 그 댓글란에서 “대한민국에는 히틀러가 필요하다. 모든 걸 통제하고 하나로 묶을 사람. 지겨운 양당 체제를 벗어나고 중국인과 부동산 문제를 한방에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발언이 눈에 들어왔다. 혐오와 음모론, 강력한 ‘한방’에 대한 갈망이 고스란히 담긴 이 문장은, 아렌트가 경고한 폭민의 심리 상태를 그대로 드러낸다. 유대인에 대한 증오는 중국인으로 대체되었을 뿐, 구조는 변하지 않았다.
‘비상계엄’이라는 유혹
12.3 계엄령 논란 이후, 일부 극우 세력의 존재감이 온라인을 넘어 현실로 확장되고 있다. 법원을 점령하고 판사를 단죄하겠다는 발언은 법치주의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이들의 목표는 단순한 지지 대상이 아닌, 비상계엄이라는 ‘예외상태’ 자체다.
윤석열 대통령이 실제로 이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않았더라도, ‘비상계엄’이라는 단어 하나로 그는 곧바로 영웅이 되었다. 비합법적 수단을 통해 민주주의 질서를 전복하려는 욕망이 투사된 결과다. 이들에게 ‘비상계엄’은 민주주의가 실패했을 때 등장하는 메시아적 해결책이다.
폭민을 활용하는 정치 세력
폭민의 등장은 단순한 사회 현상이 아니라,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세력과 결합할 때 더욱 위험해진다. 국민의힘은 자칭 ‘백골단’이라는 폭력적 성격의 시위 세력을 국회 기자회견장에 초대했고, 이들을 정치적 도구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단순한 헤프닝으로 넘기기에는, 이는 극우 민심을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
윤 대통령은 법적 절차보다는 대중 직접 호소에 집중하고 있으며, 언론은 이러한 발언을 비판 없이 보도한다. 검찰과 경찰은 전광훈, 윤상현 등 사건의 배후 인물에 대해 수사를 미루고 있으며, 대통령 경호처 관계자에 대한 구속영장조차 반려되고 있다. 실질적 권한을 가진 대통령 권한대행 최상목 역시 이 사태에 대해 책임 있는 대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야당의 대응 부족
민주당은 이 같은 사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지지율 하락의 원인을 외부에서만 찾고, 정작 폭민을 비호하고 활용하는 정치 세력에 대한 직접적인 대응은 미비하다. 지금이야말로 민주당은 다음의 세 가지 조치를 신속하게 취해야 한다.
첫째, 12.3 계엄령 상황에서 행정 책임을 져야 할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을 탄핵해야 한다.
둘째, ‘5.18 특별법’에 준하는 **‘12.3 내란 옹호자 처벌 특별법’**을 제정해 유사 사태를 방지할 법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셋째,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이 폭력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시도에 대해 분명하고 강력하게 비판해야 한다.
역사의 경고를 기억하라
히틀러는 1923년 맥주홀 폭동을 주도했지만, 독일 법원은 좌파 정부에 대한 정치적 반감을 이유로 그에게 솜방망이 처벌을 내렸다. 이 미온적 대응은 이후 나치 독일의 탄생이라는 비극을 낳았다. 만약 당시 법원이 제대로 대응했다면, 세계사의 비극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광주의 기억이 12.3 내란을 저지했던 것처럼, 히틀러의 기억이 오늘날 우리의 법원과 민주주의를 각성시키길 바란다.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린다. 지금이야말로 대한민국이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로서, 법과 제도를 지키는 마지막 방어선을 세워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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