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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ntio ergo sum

가난을 착각하지 마라

by 淸風明月 2025.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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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을 착각하지 마라

우리는 가난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사회 구조의 결함을 지적하기보다는, 가난한 개인의 성격이나 생활습관, 소비 방식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 술, 도박, 게으름, 잦은 이직 같은 요소들이 빈곤의 원인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이는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가난은 개인의 문제이기 이전에 사회의 문제이며, 그 이면에는 긴 시간에 걸친 사회 구조의 흐름이 자리하고 있다.

 

산업화 이후, 농촌의 빈농 자식들은 도시로 이주해 도시빈민이 되었고, 주로 육체노동에 의존하며 살아간다. 이들의 일은 일용직이 대부분이고, 반복적인 부상과 고용 불안정 속에서 안정적인 수입을 얻기는 어렵다. 수입이 불규칙하면 필연적으로 소비 패턴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공공의 안전망마저 부실하면, 빈곤은 대물림된다. 부모의 가난은 자식에게, 다시 그 자식에게로 이어지는 고리가 형성된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구조적 고통을 이해하려 하기보다, 빈곤을 쉽게 조롱하고 멸시한다. 가난은 ‘노력 부족’의 결과가 되고, 복지는 ‘게으른 이들’에게 퍼붓는 시혜라는 인식이 만연해 있다. ‘왜 열심히 일한 내 세금으로 저런 사람들을 먹여 살리느냐’는 불만이 공공연히 표출된다. 복지를 받아야 할 권리를 가진 이들이 오히려 눈치 보게 되는 사회, 이는 단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에서도 복지 수혜자들을 ‘무처(moocher)’나 ‘테이커(taker)’라고 부르며 비하하는 경향이 있다.

 

영화나 소설 속 가난 앞에서는 가슴 아파하면서도, 현실 속 가난한 사람들을 향해서는 “더럽고, 시끄럽고, 무례하고, 게으르다”며 혐오를 서슴지 않는 이중적 태도도 존재한다. 이처럼 사회는 가난을 공감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통제와 배제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 중에서도 ‘자발적 가난’이라는 표현은 특히 경계해야 한다. 무소유를 선택한 삶은 태도의 문제이지만, 대부분의 가난은 생존의 문제다. 가난은 선택이 아니다. 사회적 불평등과 구조적 배제의 산물이다.

 

이런 오해와 편견을 바로잡기 위해, 사회학자 조은의 『사당동 더하기 25』를 추천하고 싶다. “밑으로부터 사회학 하기”의 모범이라 할 이 책은 한 도시빈민 가정을 25년간 추적하며, 빈곤이 단기간에 해결될 수 없는 복합적 문제임을 드러낸다.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제 나는 한때의 도시빈민이 25년이 지난 뒤 빈곤의 회로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에 답하는 것이 아니라, 왜 그 질문에 확답할 수 없는가에 대해서 글쓰기를 시작한다.”

 

이 연구는 빈곤이 단순히 경제적 결핍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지위, 교육 기회, 노동 조건, 주거 환경, 건강, 복지 등 여러 요소가 얽혀 있는 구조적 문제임을 보여준다. 우리는 더 이상 가난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편리한 착각 속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가난은 개인이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사회가 만들어내고 고착시킨 것이다. 빈곤을 탓하지 말고, 빈곤을 만드는 사회 구조를 직시하자. 그리고 그 구조를 바꾸기 위한 연대와 실천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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