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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 Cinema

플레이보이 - 체스터 브라운 -

by 淸風明月 2011.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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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권의 여유 No. 12

플레이보이

친구들과 이런저런 지나간 이야기들을 하다가 보면 흥미삼아 어린시절 어떻게 성을 알았는가하는 주제로 이야기가 흐를때가 있다. 그 자리에 잇는 누구든 자기 나름대로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어 끝날 줄 모르고 이야기가 이어지곤 한다. 그런데 그 나름의 이야기란게 거기서 거기라는 사실 기껏 "핫윈드" 나 "건강 다이제스트" 등이다.

인터넷을 통해 무한한 네트의 바다에서 욕망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된 요즘에 비한다면 그것이 성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초라해 보이는 건 사실이다. 책이나 비디오테이프 같은 묵직한 것들을 다루어야 했던 만큼, 노고가 따르고 그래서 해프닝도 만만치 않았다. 어쩌면 우리는 성보다 그저 추억과 모험을 떠올리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캐나다 만화가 '체스터 브라운(Chester Brwon)'의 만화 『플레이보이』를 가지고 이야기 해 볼까 한다.  이 책은 만화로 되어 있다. 즉 만화책이란 거다. 이 책은 '플레이보이'지를 둘러산 작가 자신의 경험을 그리고 있는 책이다. 처음 플레이보이지를 구입할때부터 시작해서 그것을 모으고 관리하고 보관하는 과정 그속에서 일어나는 욕망들과 자기혐오 결국 휴지통에 그 동안 모았던 '플레이보이'지를 버리는 것으로 끝맺음 하고 있다. 

"플레이보이" 사는 것이 어떠한 잘못도 아님에도, 누가 구체적으로 그것을 금지하지 않음에도 들켜서는 안 된다는 것을 어린 체스터는 이미 알고 있다. 성의 욕망이 드러나는 것을 감시하고 있는 것은 종교, 이웃, 학교, 가게 점원, 여자 친구 등의 시선이며, 그리고 이 시선은 동시에 그것이 존재한다고 상상하는 체스터 자신의 내면에 또한 자리 잡고 있다. 내면의 파놉티콘. 보는 자가 없더라도 보여지는 상황은 자기 검열의 상황에 빠뜨린다. 또한 체스터가 옆방 남자의 "펜트하우스' 컬렉션을 발견하고 그를 놀리듯이 자신도 남을 향한 하나의 시선으로 존재하게 한다. "플레이보이"의 마지막 장면은 성인이 된 체스터가 예전에 여자 친구였던 크리스에게, 둘이 사귀던 시절 언젠가 자기가 없는 틈에 그녀가 자기 방에서 혹시 "플레이보이"를 발견하지 않았을까 하고 속이 메슥거릴 만큼 고민했었다고 진지하게 고백하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그 얘길 들은 크리스는 그저 한심하다는 듯 웃는다.

연초에 방영되었던 <아마존의 눈물>을 통해 아마존 밀림에 살고 있는 조예족의 생활을 보면서 저 정도도 괜찮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13세 소녀의 성생활을 대하는 가족과 사회의 시선이 아주 자연스럽고 거리낌이 없다. 일방적이지 않고 상호적이다. 어째서 체스터나 나 그리고 나의 세대는 이런 시선 속에서 성을 알지 못했을까? 아이는 성에서 자유로워짐으로써 훈육의 대상에서 성인이 된다고 생각한다. 반면 성이 부자유한 사회에서는 그 훈육 체계 안에서 아이로 머물 수밖에 없고. 그래서 소년들의 음란한 모험담도 여전히 끝나지 않는 것이다.

애초에 성이란 합리성만 가지고 생각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성은 가족과 사회를 구성하는 근본적인 시스템이며, 그 안에 의식에 떠오르지 않는(드러나서는 안 되는) 심리적 부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에 대한 터부는 일정부분 어쩔 수 없을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개방과 억압의 문제는 결국 정도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우리 사회는 그 정도에 있어서 매우 보수적이다. 이 힘들이 사회의 건전성을 얼마나 회복할지 모르겠으나, 분명한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건전성이 향상될수록 욕망은 어쩔 수 없이 왜곡되는, 이중적이고 정신분열증적인 상황 또한 그만큼 확대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짐짓 점잖은 척 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가장 음란한 나라가 탄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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