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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SEOUL3579] 이명박의 승리 비결은 “노무현 대통령과 무조건 반대로” 전략

by 淸風明月 2011. 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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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O N F I D E N T I A L SEOUL 003579

SIPD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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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O. 12958: DECL: 12/10/2014
TAGS: KN KS PGOV PREL PINR
SUBJECT: "ANYTHING BUT ROH" CARRIES THE DAY FOR PRESIDENT-ELECT LEE MYUNG-BAK

Classified By: POL Joseph Y. Yun. Reasons 1.4 (b,d).

1. (C) Summary: GNP candidate Lee Myung-bak won a landslide victory in the December 19 presidential election, winning 49 percent of the votes in a field of ten candiates and carrying all regions except Jeolla Provinces. Among pundits a strong consensus is emerging that Lee's was able to sweep to victory because of the following factors:
-- "Anything But Roh" mood among the voters, or the near-unanimous evaluation that Roh Moo-hyun had failed as president and the desire for a change.
-- A widespread acknowledgement, across the ideological spectrum, that a leader who could revive the economy was paramount.
-- GNP's ability to stay together, shown in its approval ratings, consistently 50 percent support through 2007, while the Uri Party and its successor UNDP barely managed to break double figure support. End Summary

1. 요약: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12월 19일 선거에서는 그는 10명의 후보 가운데 49%를 득표했다. 전라도 지역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승리했다. 다음과 같은 이유들로 인해 이명박이 승리할 수 있다는 합의가 전문가들 사이에 있다.
--- “노무현만 아니면 된다”는 분위기가 유권자들 사이에 있었다. 노무현이 대통령으로서 실패했다는 거의 만장일치의 평가가 있다. 그래서 변화를 바랐다.
--- 이데올로기의 스펙트럼을 넘어서 경제를 살리는 지도자가 최고라는 광범위한 인식이 있었다.
---단합할 수 있었던 한나라당의 능력은 지지율에서 보여주듯이 2007년 내내 50% 이상을 유지했다. 반면 우리당과 그의 후신인 신민주장은 겨우 두 자리숫자에 머물렀다.


Anything But Roh  노무현만 아니면

2. (C) Because of overwhelming sentiment that Roh Moo-hyun had failed as a president, voters wanted something different and Lee Myung-bak is indeed, anything but Roh. While Lee and Roh both grew up poor and are both known for their penchant for misstatements, the comparison ends there. United New Democratic Party (UNDP) candidate Chung Dong-young, Unification Minister under Roh, could not escape his association with Roh and failed to convince voters a Chung presidency would be much different from Roh's term. Leading
political analyst Park Song-min told poloff December 18 that Lee would win, not just because of the economy, but because, "people wanted a change -- they are convinced the country needs something different than the last 10 years." A December 12 RealMeter poll showed 63 percent disapproved of Roh's overall performance, and only 24 percent approved of Roh.

2. 노무현이 대통령으로서 실패했다는 압도적인 정서 때문에 유권자들은 변화를 원했고 이명박은 노무현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 반면 이명박과 노무현은 둘 다 가난하고 그들의 말실수가 있는 공통점이 있지만, 비교할만한 부분은 이 것이 다이다. 신민주당 후보인 정동영은 노무현 밑에서 통일부 장관을 했는데 노무현 정부와 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리고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노무현과 크게 다를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는데 실패했다. 유력한 정치 분석가인 박송민은 12월 18일 이명박이 승리한다면 경제 때문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변화를 원하기 때문이고—그들은 지난 10년간과는 다른 그 무엇인가를 나라가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12월 12일 리얼미터 여론 조사는 노무현에 대한 불신임이 63%에 이르고, 신임은 24%에 라는 점을 보여줬다.

3. (C) Lee, from the conservative GNP, secured the victory by touting a centrist platform and guaranteeing voters he would revive the economy. He stated he would institute more market-driven management practices to the government and even to foreign policy but most importantly he emphasized he would be better than Roh Moo-hyun. Lee spent most of his career in construction, Roh defending civil rights leaders; Lee convinced voters that this difference in experience and management style would result in a different kind of government.

3. 보수 한나라당 출신이 이명박은 중도 공약과 경제를 살리겠다는 약속을 함으로써 승리를 굳혔다. 그는 정부에 시장 중심적 관리기법들을 좀 더 도입하고 외교 정책에까지도 그런 요소를 포함하겠다고 천명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하게는 무엇보다 노무현보다 잘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명박은 그의 대부분 경력을 건설분야에서 쌓았다. 노는 시민 운동자들을 감싸고 돌았다; 이명박은 유권자들에게 이러한 경험의 차이와 관리 스타일의 차이가 다른 종류의 정부를 만들 것이라는 확신을 주었다.


It's the Economy  문제는 경제다

4. (C) While the Korean economy grew at an almost five percent clip during the Roh presidency (2003-2008), most Koreans felt their economic situation was worse off now than it was when Roh took office. In a November 19 Kyunghyang Newspaper poll, 33.9 percent of respondents said they had become worse off during the Roh administration, 57 percent said there was no real change and only 8.5 percent felt they were better off. Even among respondents who voted for Roh in 2002, 25.3 percent felt they were worse off. Disappointment in the economy ruled and Lee Myung-bak effectively capitalized on this sentiment.

4. 한국 경제가 노무현 정부 시절(2003~2008) 거의 5% 수준으로 성장했지만, 대부분이 한국인들은 경제 상황이 노무현이 대통령에 취임했을 때보다 나빠졌다고 느끼고 있다. 11월 19일 경향신문 여론조사는 응답자의 33.9%가 노무현 정부 동안 나빠졌다고 대답했다. 57%는 실질적인 변화가 없다고 응답했다. 단지 8.5%만이 더 나아졌다고 답했다. 2002년 노무현을 찍은 응답자들조차도 25.3%가 상황이 나빠졌다고 답했다. 경제 분야에서 실망이 선거를 지배했고, 이명박은 실적으로 이런 감정을 이용했다.


GNP: Staying Put  한나라당 변모 일신

5. (C) Roh Moo-hyun was elected as the candidate for the Millenium Democratic Party; he then created the Uri Party ahead of the 2004 parliamentary elections and eventually the Uri Party dissolved in August 2007 after a year of political infighting. The UNDP was formed to create a new political union between NGOs, political leaders and "common" people. However, the widely held perception was the party was created simply because the Uri Party was unpopular and a Uri candidate would have no chance in the December election. UNDP lawmakers told poloff that the last-minute creation of the "new" party, while done with some good intentions, was indeed a political ploy that failed to convince voters it was indeed something new.

5. 노무현은 새천년 민주당 후보로 대통령에 선출됐다; 그리고 나서 우리당을 2004년 총선에 앞서 창당했다. 그리고 우리당은 2007년 8월 내분으로 해체됐다. 신민주당이 시민단체와 정치 지도자 그리고 보통 사람들 사이의 정치적 연대를 창출하기 위해 창당됐따. 그러나 일반적으로 국민들이 느끼기에는 이 당은 단순히 우리당이 인기가 없고, 우리당 후보로는 12월 선거에서 승리할 기회가 없기 때문에 창당됐다. 신민주당 의원들은 막바지 신당 창당은 선의로 이뤄진 것이지만 실제로는 유권자들에게 새로운 그 무엇이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는데 실패한 정치적인 책략에 그쳤다고 말했다.

6. (C) The GNP, meanwhile, instituted positive change after change without dissolving. For the first time, the GNP had an "open" primary where about 200,000 people, including some non-party members, were allowed to participate in selecting Lee as the party candidate. Substantive debates held during the July-August primary were much more policy-oriented than the three official debates held during the 23-day presidential campaign. Park Geun-hye, after losing narrowly to Lee Myung-bak, gracefully accepted her loss and supported Lee throughout the campaign. This is particularly significant since the last GNP also-ran, Rhee In-je, after losing to Lee Hoi-chang in 1997, formed his own party, split the conservative vote and this, in no small part, led to Kim Dae-jung's victory. In the past, the GNP has been plagued by corruption scandals. Park Geun-hye, as the Chairman of the GNP from 2004-2006 succeeded in reforming the party and
cleaning up the GNP's image.

6. 한편 한나라당은 해체되지 않고 긍정적인 변화를 거듭했다. 처음으로 한나라당은 20만 명이 참여하는 공개 경선을 치렀다. 여기에는 비당원도 포함돼 있었다. 이들이 이명박을 당후보로 결정하는데 참여했다. 7~8월 예비경선 때 열린 실질적인 토론회는 23일의 유세기간 동안 열린 3차례의 공식토론회보다 훨씬 더 정책 지향적인 것이었다. 박근혜는 이명박에게 근소한 차이로 패한 후에 우아하게 그녀의 패배를 받아들였고 유세기간 동안 이명박을 지원했다. 이는 특별히 의미가 있다. 왜냐면 1997년 선거에서 이인제는 이회창에게 패배한 뒤 한나라당을 탈당해 자신의 정당을 결성했다. 이로 인해 보수표가 갈렸고 또 상당 부분 김대중의 승리로 이어졌다. 과거에 한나라당은 부패 스캔들이 만연했었다. 2004~2006년 당대표로서 박근혜는 성공적으로 당을 개혁하고 한나라당의 이미지를 깨끗하게 만들었다.


Non-Factors  선거판을 좌우하지 않은 요소들

7. (C) Almost as important as the factors that led to Lee's victory were the non-factors. Several factors that played a key role in 2002 did not influence the election this year. In 2002, foreign policy, regionalism and morality were important issues in a tight campaign. This year they did not play a significant role determining the outcome of the election.

7. 이명박의 승리를 이끈 요소들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바로 아무런 역할을 못했던 요소들이다. 2002년 선거에서 핵심 역할을 했던 몇몇 요소들은 이번 선거에서 아무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2002년에 외교정책, 지역주의, 도덕성 등은 치열한 유세에서 핵심 이슈들이었다. 이번 이들은 선거의 결과를 결정짓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았다.

8. (C) Lee's victory was due to his overwhelming support in the capital region, unlike past president-elects whose support emanated from a powerful regional base. During this election a "new regionalism" emerged and had an important effect on the election. Lee Myung-bak, as the popular former Mayor of Seoul, was the first conservative candidate to win in the traditionally left-leaning metropolitan region. Several political observers told poloff that instead of voters in the regions affecting their family in the capital, this time Seoul voters, who overwhelmingly support Lee, influenced family in the rest of the country. After a series of elections that pitted the southwest vs. the southeast, Lee's dominance of the voter-rich metropolitan area (47 percent of the electorate) has created a new regional paradigm.

8. 이명박의 승리는 수도권 지역에서 그에 대한 압도적인 지지에서 비롯됐다. 과거와 달리 그에 대한 지지는 강력한 지역적 기반을 벗어난 것이다. 이번 선거기간 동안 새로운 지역주의가 부상했다. 그리고 선거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 인기 있는 전 서울시장으로서 이명박은 전통적으로 좌파 성향을 보이던 수도권 지역에서 승리한 첫 번째 보수 후보이다. 몇몇 정치 분석가들은 수도권에 사는 가족들에게 고향의 유권자들이 영향을 미치지 않고, 반대로 이번에는 이명박을 압도적으로 지지한 서울의 유권자들이 나머지 지역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호남 대 영남 구도의 일련의 선거를 치른 뒤, 유권자 다수가 몰려있는(47%) 이명박의 수도권 압승은 새로운 지역 패러다임을 창출했다.

9. (C) In 2002 Roh Moo-hyun exploited the unfortunate accident by a U.S. military vehicle that killed two schoolgirls and said, "What if I am anti-American?" His attitude struck a chord and voters responded with mass demonstrations in support of Roh and condemning the U.S.
This year, Chung Dong-young and Lee Myung-bak both pledged support for the KORUS FTA and that they would strengthen the U.S.-ROK relationship. Nothing about the relationship was even a topic for serious debate.

9. 2002년 노무현은 2명의 여학생을 죽음에 몰아넣은 불행한 미군 차량 사고를 이용했다. 그는 “내가 반미 주의자라면 어떡할거냐”라고 말했다. 그의 태도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유권자들은 노를 지지하며 대규모 시위로 응답했다. 그리고 미국을 비난했다. 올해 정동영과 이명박은 모두 한미 FTA 지지를 약속했다. 이들은 미국 한국 관계를 강화하겠다고도 했다. 두 나라 관계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심각한 토론의 주제가 되지 못했다.

10. (C) Just as unanimously, candidates agreed that engagement with North Korea should continue. In the first campaign debate, the candidates explained nuanced differences in policy and approach toward North Korea, but none were significant. More importantly, voters did not attach much significance to the difference in policies toward the North, since most Koreans support engagement and assume it will
continue.

10. 너와 나를 가릴 거 없이, 후보들은 북한 문제를 계속해 다루겠다는데 동의했다. 첫 번째 토론회에서 후보들은 북한에 대해 다른 뉘앙스의 정책과 접근법을 설명했다.그러나 그 차이는 없었다. 가장 중요하게도 유권자들은 대북 정책 차이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앗다. 왜냐면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북한과 협상을 지지하고 그 것이 계속될 것이라고 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11. (C) In a May 2002 Gallup poll, respondents indicated that morality was the most important criteria in selecting a president, leading over ability by a 36.5-33 margin. In November 2007, the same poll showed that ability was the most important, outstripping morality by a 63-25 margin.

11. 2002년 5월 갤럽 여론조사에서 응답자들은 도덕성은 대통령을 고르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근거라고 답했다. 도덕성이 능력보다 36.5~33 차이로 더 중요하다고 응답했다. 2007년 11월 같은 회사의 여론조사에 능력이 가장 중요하며 도덕성보다 작게는 25%, 많게는 63% 차이로 능력을 우선시했다.

12. (C) In 2002 as in past elections, young voters overwhelmingly supported the liberal candidate. In 2007, there was no strong division in support based on age or gender; Lee Myung-bak is the first president-elect to win all age categories. Professor Kang Won-taek told poloff that the lack of common grievances among any particular class, age or gender made it difficult for UNDP candidatge Chung to exploit
the traditional liberal-conservative split that was so successful for Kim Dae-jung and Roh Moo-hyun.

12. 과거 선거처럼 2002년에 젊은 유권자들은 압도적으로 진보파 후보를 지지했다. 2007년에는 나이나 성별에 따른 지지 차이는 없었다; 이명박은 모든 연령대에서 이긴 첫 번째 대통령이다. 강원택 교수는 특정 계층, 연령, 성별에서 공통적인 거부감이 없는 게 신민주당의 정동영 후보로서는 전통적인 진보-보수의 분할 투표 이점을 누리지 못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진보 보수의 분할은 김대중과 노무현의 당선에 매우 성공적으로 작용했다.


Comment 

13. (C) All in all, Lee Myung-bak is a lucky man. Lee's campaign message emphasizing his personal experience and ability to revive the economy hit all the right notes with an electorate worried about its economic future. Many outside events also helped Lee maintain his lead from October 2006 until election day. Each time Lee appeared in danger that some of the many allegations aimed at him would cause him to lose his lead, something -- whether the Afghan hostage crisis or the Shin Jeong-a-Blue House scandal -- happened to distract the electorate, and more importantly, the press, from attacking Lee. A devout Christian, Lee has reasons to believe that someone above was looking out for him. VERSHBOW 

13. 종합하면, 이명박은 행운아다. 그의 개인 경험과 경제에 활력을 불러 넣을 수 있음을 강조하는 이명박의 선거 메시지는 경제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는 유권자들에게 통하는 메시지였다. 많은 외적 요인들이 이명박이 2006년 10월부터 선거일까지 그의 리드를 지키게 만들었다. 그를 향한 몇몇 혐의점 가운데 상당수가 그가 선두를 내줄 수도 있게 만들 위험에 처할 때마다—아프간 인질사태나 신정아 스캔들 같은—무엇인가가 일어나서 유권자들을 관심을 앗아갔다. 보다 중요한 것은 언론이 이명박을 공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신실한 기독교도인 이명박은 그 위의 누군가가 그를 보살피가 있다고 믿게 할만한 이유를 갖고 있었다. 
 

작성일 : 2007년 12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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