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퓰리처 상] 수단의 굶주린 아이 - Kevin Carter -
1993년 2월에, 카터는 위클리 메일誌The Weekly Mail에서 휴가를 얻어 실바와 함께 수단으로 갔다. 그들이 탄 비행기는 급식소가 세워졌던 아요드Ayod라는 마을에 착륙하였다. 카터는 그 날 대부분을 굶주린 사람들이 먹을 것을 찾으려고 급식소 안으로 비틀거리며 들어가는 공포스런 장면을 사진에 담으며 보냈다. 그는 취재를 하다가 우연히 급식소 근처의 수풀 속으로 걸어 갔고, 거기서 어린 아이의 알아 듣기 힘든 훌쩍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한 여자 아이가 먼지 속에서 웅크린 채 급식소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때, 한 마리의 독수리가 근처에 내려 앉아서 썩은 고기인지를 분별하였다. 카터는 제 시간을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독수리와 함께 있는 아이를 사진으로 찍기 위하여 자세를 고쳐 잡았다. 카터는 몇 방의 사진을 찍고 나서 곧 독수리를 멀리 쫓아 버렸다. 그는 사진 촬영을 마친 뒤 울적해 하였지만, 그 사진이 전하는 통절한 심상은 전세계의 신경을 건드렸다고 카터의 친구들이 나중에 전하였다. 3월에, 수단의 사진을 찾고 있던 뉴욕 타임즈New York Times誌는 내장을 비틀어 돌리는 듯한 카터의 사진을 사용하였다. 사진은 다른 언론들에도 빠르게 선택되어 국제적으로 널리 발간되었고, 곧 아프리카의 고통을 상징하는 전세계의 아이콘이 되었다. 이 사진은 발표와 동시에 전세계의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퓰리처상을 수상한 후 일부에서 촬영보다 먼저 소녀를 도왔어야 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결국, 케빈 카터(Kevin Carter)는 수상후 3개월 뒤, 1994년 7월 28일에 친구와 가족 앞으로 쓴 편지를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33살의 젊은 나이에...
< 진실은 무엇인가? >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우리가 알고있는 이 사실은 사실이 아니다. 조금 더 보태자면 순전히 드라마틱을 위해 날조된 거짓말이다. 그는 남아공 출신으로 3명의 동료사진작가와 함께 방방클럽(Bang Bang Club)이라는 이름의 활동을 하며 전쟁기아 소요사태가 일어나는 위험천만인 지역을 누비며 사진을 찍어온 전천후 사진작가이다. 그가 퓰리처 상을 받기 전에 그의 방방클럽 동료인 마니로비치 역시 1991년 퓰리처 상을 받았다. 종전기자로 참가하는 사진작가들은 대부분 높은 보수를 받고 일하지만 케빈카터의 경우는 소속사 없이 프리렌서로 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상당한 생활고에 시달려야 하는 사진작가였다. 그저 인간이 만든 최악의 참상을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원초적 의지가 그를 전쟁터로 이끈 원동력이었다.
위의 수단의 굶주린 아이 라는 사진에 관한 이야기는 이렇다. 그는 1993년 일하던 곳에 휴가를 내고 돈을 빌려서 내전지역이던 수단으로 향한다. 그리고 아요드 라는 곳에서 기아에 허덕이는 난민의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한 소녀가 급식센터로 향하는 걸 목격한다. 소녀는 기아에 힘이 없었는지 주저앉아 쓰러저 버린다. 그런 소녀뒤에는 독수리 한마리가 버티고 있었고 카터는 사진사의 본능에 의해 카메라를 들었을 것이고 잠시 기다린다. 독수리가 행여나 날개를 펼친다면 좀 더 멋진 그림이 나올것이라는 욕심이었겠지만 그는 서둘러 사진을 찍고 독수리를 쫒아버렸고 소녀는 다시 급식소로 돌아갔다. 그렇다 일단 fact는 이게 전부다. 카터는 이 사진을 찍고 뉴욕타임즈에 보냈고 순식간에 이 사진은 세계적인 반항을 불러 일으킨다. 다음해 4월 카터는 퓰리처상을 수상한다는 통보를 받았고 퓰리처상 수상과 더불어 이 사진은 더더욱 큰 반항을 불러 일으킨다. 남의 말 하기 좋아하고 좋아하는 호사가들에 의해 그의 인간적인 도덕심 어쩌고 저쩌고 하는 헛소리가 나온것도 이 쯤의 시점이다. 일단 우리가 사실이라 믿는 사실에는 상당한 오류가 있다. 굶주림에 허덕이는 소녀가 사망했고 독수리 먹이가 되었다고 알려졌는데 일단 그 소녀는 살아있다.
사진이 찍히고 나서 다시 일어나 급식소로 향했고 결정적으로 독수리는 아주 작은 병아리나 쥐 같은 동물이 아니면 절대 공격하지 않는다. 그리고 아프리카의 독수리는 사자나 치타가 먹고 남긴 짐승의 썩은 고기를 먹기 때문에 그 독수리는 소녀를 노리고 있었다기 보다는 그냥 거기에 앉아 있었다고 보는게 맞는 이야기다. 그리고 케빈카터는 그 소녀를 구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는 사진을 찍자마자 독수리를 쫒아버렸으며, 아프리카는 내전으로 인한 기아에 허덕이는 난민촌에 있는 외국인들은 그곳 난민과의 일체의 신체접촉을 엄금하고 있다. 전염병에 감염 될 위험성 때문이다. 하지만 그를 비난하고 공격한자들.. 그리고 그걸 그저 맞다고 믿는 자들은 그가 인간이 만들어낸 최악의 참상이 벌어지는 곳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알지 못한다. 그저 그랬을 것이라 하는 오류와 오해가 빚어낸 진실의 탈을 쓴 거짓이 있을 뿐이다.
한술 더 떠서 대한민국에서는 작품을 위해 인간 존엄성을 포기한 비극적인 예술가의 대표적인 예로 케빈카터가 등장한다. 설령 그가 정말 사진을 찍는 사이 소녀가 죽었다 하더라고 푹신한 의자에 앉아서 자신의 이득에 관한 일 외엔 관심조차 가지지 않으려 하는 우리에게 목숨을 걸고 그들의 참상을 알리고 잠시나마 마음의 경종을 울리려 했던 그에게 인간의 존엄성을 운운할 수 있을까? 당신은 시체를 본적이 있는가? 전쟁터에서 산산히 조각난 시체를... 지독한 굶주림으로 뼈와 가죽만 남은 앙상한 시체를... 물론 나는 이런 시체들을 본적이 없다.
하지만 간접적으로 케빈카터같은 사진작가들을 통해 접하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이 얼마나 상상도 못할 고통과 참혹함에 방치되었는지 알 수 있다. 그들은 인런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참상을 알리고 인간의 가장 잔혹했던 순간들을 세상에 알리고 그에 경종을 울리고자 하는 사진작가들이다. 단순히 기아에 허덕이는 아이들 몇명을 도우러간 자원 봉사자와는 차원이 틀리다. 그들은 그럴만한 힘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의 시선과 목소리를 좀 더 귀를 기울여야한다. 그들은 기념사진을 찍으러 간 것이 아니다. 믿기 어렵겠지만 우리가 함께 숨쉬고 공기를 마시는 지구 어딘가에 자행되어지는 참혹하고 절망적인 일을 알리려는 것이다. 그들은 힘의 논리와 소수의 정의에 의해 진실이 왜곡될 때 얼마나 절망적인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있기때문에 목숨을 걸고 빗발치는 총알사이로 살아있는 자가 죽은자들을 부러워하는 생지옥 사이로 셔터를 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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