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wer Analysis and World Politics : New Trends vs Old Tendencies
David A. Baldwin
David A. Baldwin, "Power analysis and World Politics: New Trends vs. Old Tendencies",
World Politics Vol. 31, No. 2(Jan 1979): 161-194
마키아벨리와 흄에서 카와 모겐소에 이르기까지, 권력은 국제정치 이론화에서 중요한 변수이다. 비록 몇몇 이들이 권력 분석은 낡고 진부한 것으로 간주할 지라도, 권력을 연구하는 사회 과학의 최근 정련들은 국제관계를 이해하고자 하는 이 접근법을 소생시킬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이전의 직관적이고 모호한 권력 논의(취급)와 보다 명백하고 정확한 최근의 논의를 가르는 분기점을 인식하는 것은 어렵지만, 라스웰과 카플란에 의한 Power and Society의 출판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그 이후, Simon, March, Dahl, Nagel 등의 학자들이 인과 유형으로써의 권력의 개념을 발전시켰다. Nagel에 따르면, 이런 권력의 인과적 개념은 3가지 장점이 있는 데, 첫 번째는 권력의 직관적 개념과 인과성 간에 compelling한 유사점이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권력의 인과적 개념들은 동어반복으로 빠질 가능성이 적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권력을 인과 개념으로 다루는 것은 권력 연구자들이 보다 일반적인 적용을 위해 발전된 방법론을 채택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권력 연구의 오랜 기원에도 불구하고, 달은 “권력 관계의 체계적인 경험적 연구는 상당히 최근의 것이다”고 주장한다. 그는 지난 몇 십년간의 체계적인 노력은 권력 개념의 명확성에 있어서 무한한 개선의 초래했다고 말한다. 심지어는 그런 주장에 대해서 논박하는 사람들조차도 그런 주제에 대해 최근 작품들의 관점에서 그들의 권력관을 재고하는 것이 유용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논문의 목적은 사회 권력에 관한 국제 관계학의 최근 연구 성과들을 검토하는 것이며, 논의의 주제는 잠재적 권력, 상호의존, 군사력, positive sanction, 제로섬 게임, 그리고 강제와 억지간의 구별이다.
논의가 시작되기 전에 용어에 대한 진부한 논쟁을 막기 위해서 볼드윈은 한 가지 단서를 내세우는데, 논의의 목적을 위해서 “권력”이라는 용어를 “influence”와 “control”과 같은 용어와 상호교체 가능한 광의의 의미로 사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용이 이런 용어들의 구분의 유용성과 타당성을 부인하려는 의도는 아니며, A가 가만히 있었으면 B가 하지 않았을 그런 일을 B로 하여금 하게끔 하는(이런 상황이 어떻게 불리던 간에) 모든 상황에 대한 논의의 적절성을 내포하고자 하는 것이다. 맥락에 따라 유용성의 여부가 달라지는 구별보다는 권력에 대한 연구에 필수적인 기본적 구별에 이 글의 초점이 맞춰질 것이다. 인과 유형으로써의 권력을 논의하는데,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영향을 준다는 점을 구별하는 것, 즉, 행동 양식의 유형(scope)과 권력이 행사되는 대상(domain)을 구체화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러한 구별은 처음에는 빤하고 사소한 것으로 보일 지도 모르지만, 볼드윈은 그런 주장이 국제 권력을 권력의 일반 이론보다는 맥락적 분석의 방향으로 나가게 한다고 주장한다.
Power: Potential, Probable, and Actual
권력 예측의 실패는 아주 종종 학자들, 저널리스트들, 정치가들 그리고 시민들에 의해서 인식되어 왔는데, 이를 “실현되지 않은 권력의 파라독스”라고 부를만 하다. 약소국이 강대국에게 영향을 미치거나, 미국의 월남전 패배 등의 예를 제시하고 있다. 볼드윈은 소위 실현되지 않은 권력의 파라독스에 대한 2가지 대안적 설명을 제기한다.
첫째, 가정된 잠재적 권력을 실재적 권력으로 전환시키는데 실패한 것은 권력의 전환 과정의 잘못된 기능의 관점에서 설명될 수 있다. 즉, 권력의 행사자는 그의 권력 자원들을 효과적으로 행사하려는 의지(will) 혹은 기술이 부족한 것으로 기술된다.
권력 예측의 실패에 대한 두 번째 설명은 권력의 범위(scope), 강도(weight), 그리고 대상(domain)의 변화들(variations)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Harold와 Sprout가 상기시키듯, 어떤 한 행위자의 역량들(잠재적 권력)은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하게 하는가를 구체화시키는 정책 의존적 틀(policy-contingency framework)의 맥락에 놓여져야 한다.(맥락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 권력 예측의 실패는 행위자 그 자체보다 잘못된 예측 기술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소위 실현되지 않은 권력의 파라독스는 하나의 정책 의존적 틀에서 유용한 권력 자원들이 다른 정책 의존적 틀에서도 동일하게 유용할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소위 약소국이라 불리는 국가가 소위 강대국이라고 불리는 국가에게 영향을 주는 것은 어떤 국가가 어떤 상황에서는 약하지만 다른 상황에서는 강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분석가가 고려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이러한 실현되지 않은 권력의 파라독스에 대한 대안적 설명들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권력 자원 개념에 대한 면밀한 조사가 필요하다. 다른 것들로부터 권력 자원들을 구별하는 것은 무엇인가? 권력 자원은 어떻게 대체 가능한 것인가? 등등의 조사가 필요하다.
우리는 어떻게 권력 자원을 구별 할 것인가? 암시적으로 그리고 명백히,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러한 자원들을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들의 행동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수단으로 간주하고 있다. 여기서 2가지의 문제점이 발생하는데, 첫 번째 문제는 어느 것이 배제되느냐하는 것이다. 거의 모든 것들이 어떤 상태에서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미치기 위해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문제점은 한 행위자가 다른 행위자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수단은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하게 하는가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즉, 행위자가 사용하는 수단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어떤 정책 의존적 틀에서 권력 자원으로서 유용한 기능을 하던 것도 다른 틀에서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될 수 있다. 볼드윈에 따르면, 어떤 것이 권력 자원으로써 유용한가 그렇지 않은가를 판단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실제적 혹은 가설적 정책 의존적 틀의 맥락에 그것을 위치시켜 보는 것이라고 볼드윈은 말한다. (ex, 핵)
비록 권력 자원 목록들의 예측적 가치가 이전의 범위와 대상의 구체화에 대한 주장에 의해서 훼손된 것 같아 보일 수도 있지만, 실상은 그 반대이다. 건축가가 그의 프로젝트를 완성시키기 위한 적당한 원료를 가지고 있는가를 측정할 때의 정확도는 그가 궁극적으로 짓고자 하는 것(대성당이냐 혹은 새장이냐)이 무엇인가를 명확히 하는데 따라 개선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구매력 행사의 일반화된 수단인 화폐처럼, 정치적 권력을 행사하는 일반화된 수단이 있다면, 정치적 권력을 인식하고 측정하는 문제는 훨씬 더 쉬워졌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 권력 자원들은 경제적 자원들보다 덜 융통적인(liquid) 경향이 있다. 경제적 자원들을 소유한 사람들은 그 자원을 다른 경제적 자원으로 전환시키는데 별 문제가 없는 반면, 정치적 권력 자원의 소유자들은 이런 자원들을 다른 자원들로 전환시키는데 어려움이 있다. 돈이 경제적 자원의 교환을 용이하게 하는 데 반해, 정치 권력 자원을 위한 교환의 매체로 작용하는 가치의 표준화된 수단은 없다.
이것이 몇몇 정치적 권력 자원이 다른 것들보다 더 대체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대체 가능성에 따라 권력 자원들의 등급을 매길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대부분의 상황에서 효과적인 자원을 높은 순위로 등급을 정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돈, 정보, 명성들은 높게, 스모그, 훌라후프 등은 낮게 매기는 것이다. 정치 권력 자원들의 대체가능성의 그런 변동에도 불구하고, 어떤 정치 권력 자원도 돈의 대체가능성 정도에는 미치지 못한다. 정치 권력 자원의 대체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정치 권력을 분석하는데 권력 행사 대상(domain)과 행동 양식 유형(scope)을 구체화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볼드윈은 주장한다.
다음 패러그래프에서 볼드윈이 말하는 것은, 하나의 이슈 영역 혹은 하나의 정책 틀에서 유용했던 권력 자원들이 다른 이슈 영역 혹은 틀에서는 그 효용을 상실할 뿐 아니라, 자산보다는 오히려 부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문제점이 생기는 원천은 권력 관계뿐만 아니라 권력 자원들에 관련하여 영역과 대상이 구체화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실패했다는 것이다. 즉, 볼드윈은 계속적으로 영역과 대상의 구체화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이 국제 권력 관계의 일반 이론들의 발전을 억제하고, 권력의 맥락적 분석을 장려하는 것이다. 라스웰과 카플란은 그와 같은 권력의 맥락적 분석은 정확히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들에 따르면, 권력이라는 것은 다양한 범위를 가진 다양한 기반들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다양한 방식으로 그것이 행사된다는 것이다. 특히, 그런 권력은 문화마다 상이하고, 또한 문화내의 권력 구조마다 상이하다는 것이다. 모든 권력과 영향력의 관계에 있어서 공통적인 것은 오직 정책에 끼치는 효과 혹은 영향일 뿐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구체적인 정치 상황에서 수행되는 권력 수행을 맥락적으로 보는 것이 권력 분석가들에게 중요하다고 밝힌다.
비록 권력 분석에 대한 맥락적 접근은 권력에 대한 이론의 간결성을 줄이지만, 이것은 별로 심각한 정도는 아니며, 볼드윈은 오히려 정책 의존적 틀에 대한 강조는 중범위 이론 발달을 촉진할 것으로 보았다. 범위와 대상의 구체화가 비논리적인 경험주의를 필요로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정책 우연성 틀은 분석가의 목적에 특별히 적합한 것으로 어느 정도 정의될 수 있다. Sprout가 그것을 정의한 것처럼:
상상 가능한 우발 사건에서 국가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을 포괄하는 역량들을 평가하는 것은 수백만의 조합과 순열까지 이르게 된다. 개인이나 대학은 말할 것도 없고, 정부도 그러한 거대한 조사나 분석을 수행할 수는 없다. 누구도 그러한 연구를 고려하거나 필요로 하지 않는다. 제거의 과정을 통해서, 다가올 시대의 국제 정치의 중요한 패턴으로 될 것 같아 보이는 우발 사건의 핵심에 이를 수 있게 된다.(상호 작용하는 국가들의 상대적 역량은 자명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정책 우연성 틀의 강조는 ‘중범위’ 이론들의 발전을 고양시킴으로써, 그리고 종종 암시적으로 남겨졌던 가정들의 자인(고백)을 강요함으로써 국제 정치학에 대한 이론화를 향상시킬 수 있다.(ex, 대부분의 세력균형 이론화에서 전쟁 승리 능력의 가정은 암시적이었다.)
권력 자원의 대체가능성 혹은 그 결핍을 강조하느냐의 문제(의문)를 흑백의 논리가 아니다. 그 문제(의문)를 제기하는 가장 좋은 결실을 가져오는 방법은 “권력 자원들의 대체가능성에 대한 무슨 가정이 다음 세기 동안 국제 정치 분석을 위해 가장 유용할 것인가?”를 찾는 것이다. 이 문제에 어떻게 대답하느냐는 부분적으로는 권력 자원들의 대체 가능성을 믿는 정도에 달려 있게 될 것이며,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가장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여기는 국제 권력 관계에 대한 현행의 사고에서 특정한 왜곡에 달려있게 될 것이다. 영향력 시도의 맥락에서의 조그만 변화조차도 권력 자산을 권력 부채로 변환시킨다는 Shelling의 논증은 정치 권력 자원이 종종 암시되는 것보다 더욱 대체가능성이 적다는 것을 제시한다. 국제정치학 학도들 사이에서, 종종 범위와 대상을 무시하는 점까지 권력 자원의 대체 가능성을 과장하는 경향이 있으나, 그 반대로 맥락적 변수들(정책 우연성 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국제 권력 분석의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볼드윈은 지적한다. 반대 증거의 부재로, 볼드윈은 국제 정치 분석이 권력 자원이 상황적으로 구체적이라는 가정과 함께 시작한다고 제기한다. (대체 가능성의 증거가 발견되면, 이 가정은 적절히 수정될 것이다.)
비록 코헤인과 나이가 권력 자원의 대체가능성에 대해서 명백히 회의적이지만, 그들은 권력 자원의 높은 대체가능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이를 입증할 것을 요구하려는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그들은 중요한 분석 임무의 하나는 권력의 대체가능성에 대한 가정들에 기반을 두고 있는 기본 구조적 가설들에 대한 예외와 한계들을 이해하는 것이라는 데 주목한다. 그들이 매우 대체 가능성이 높은 권력을 상정하는 가정들에 대한 예외를 찾는 것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증거의 부담을 주는 반면, 여기서 옹호되는 접근법은 권력 자원이 대체가능성이 낮은 경향이 있다는 가정들에 대한 예외의 증거를 찾도록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증거의 부담을 주고 있다. Sprouts와 Dahl이 명백히 범위를 가리키지 않는 영향력에 대한 어떤한 언급도 실질적으로 의미없는 것으로써 거부하는 반면, 코헤인과 나이는 그들이 권력의 동질적 개념의 유용성을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에 그들을 한정시켰다.
(여기까지 권력 자원에 대한 언급을 끝내고 다시 실현되지 않은 권력의 파라독스에 대한 2가지 대체적 설명으로 돌아온다.)
그러면, 실현되지 않은 권력의 파라독스는 부적절한 변환과정 혹은 권력 자원의 대체가능성에 관한 잘못된 판단의 견지에서 설명될 수 있다. 볼드윈은 2가지 이유로 후자(즉, 권력 자원의 대체 가능성에 관한 오판의 견지에서 하는 설명)의 설명을 선호하는데, 첫째, 가정된 권력 자원을 실제 권력으로 전환시키는데 있어 권력 행사자의 무능력과 의지박약을 강조하게 되면 엉성한(변변치 못한) 권력 분석을 고무시키게 되는 것이다. 즉, 권력 분석가가 권력 행사자의 권력 자원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하지 못하더라도, 결국은 권력 전환의 실패를 권력 행사자의 의지와 무능의 탓으로 기인한다고 결론짓기 때문에 부실한 권력 분석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전환과정에서의 기술과 의지에 대한 강조는 분석가의 실수조차도 쉽게 피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볼드윈은 국가들의 능력을 측정하는 데 있어 성공적인 전환의 가증성이 그 평가에 포함되어야 하며, 가능한 권력의 평가에 있어서, 충분한 헌신(혹은 몰두)의 가능성 또한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변환 과정 설명을 거부하고 상대적 비대체 가능성 설명을 선호하는 두 번째 이유는 상대적 비대체 가능성 설명이 더욱더 권력의 맥락적 성격에 초점을 두기 때문이다. 전자의 접근법은 권력 행사자의 기술에 초점을 두는 반면, 후자는 그러한 기술을 또 하나의 자원의 일부로서 파악하고, 능력들이 측정되는 실제의 혹은 가정의 정책 우연적 틀에 초점을 맞춘다. 따라서, 전환 과정 분석가들은 A가 B에게 X를 하도록 하는데 실패한 원인을 A의 어색한 위협에 기인하는 것으로 돌리는 반면, 상대적 비대체 가능성 분석가들은 B가 매조키스트이기 때문에 A의 위협이 처음부터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지적할 가능성이 높다.
볼드윈은 상대적 비대체가능성 분석가들의 관점에서 국제 권력 분석의 최근 사례들을 살펴본다. 우선 그는 Knorr의 주장을 살펴보는데, Knorr는 The Power of Nations에서 추정적 권력과 실제화된 권력간의 구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에 따르면 그 구분은 수단으로써의 권력과 결과로써의 권력 간의 구분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수단으로써의 권력은 국가가 보유할 수 있으며, 축적할 수 있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이 점에서, 상대적 비대체 가능성 분석가들은 2가지 의문을 제시할 수 있는데,
첫 번째는 왜 그러한 구분이 잠재적 결과와 실제적 결과의 견지에서 만들어지지 않았는가?
두 번째는, Knorr가 정치 권력을 행사하는 데 있어 일반화된 수단이 없음을 충분하게 명백히 했는가의 문제이다. 한 정책 우연성 틀에서 잘 작동하는 수단이 다른 틀에서는 반대의 결과를 가져오거나 혹은 무관한 것이 될 수도 있다. 비록 Knorr가 실제화된 권력이 범위와 강도 그리고 대상에서 차이가 있다는데 주목하였지만, 그는 이러한 구분들을 추정된 권력에 적응하지는 못했다. 추정된 권력에 대한 설명(진술)이 실제적 권력 관계에 대한 진술(설명)보다 범위와 대상을 구체화할 필요에 덜 종속될 것이고 믿을 만한 이유는 없다.(구체화된 권력에는 그러한 범위와 대상을 구체화 할 필요가 있고 추정된 권력에는 그럴 필요가 덜하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
다음으로 Cline에 대한 분석을 하는데, Cline은 Sprouts와 Lasswell 그리고 Kaplan에 의해 옹호되는 맥락적 분석의 유형을 정반대하는 학자이다. 국력을 측정하는 공식의 기본 개념적 틀은 172page에 설명되어 있는데, 대부분에 있어, Cline의 분석은 행동양식의 범위(scope)와 권력의 행사 대상(domain)을 무시하였다. 그가 권력을 볼드윈이 앞서 제시한 일반적인 권력개념(A가 B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것)으로 정의내림에도 불구하고, 어떤 정부에게 X를 하게 할 때 유용했던 권력자원이 다른 정부가 Y를 하게 할 때에는 유용하지 않거나 오히려 그 반대의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주는 어떠한 지표를 가지고 있지 않다.
Sprouts주의자들은 전략들(실제적 혹은 가정된)이 역량 분석에서 주어진 것(정해진 것)으로 취급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Cline은 전략을 강도들(weights)이 이미 다른 변수들에게 할당된 이후에 논의 되어지는 변수로써 취급한다. Cline은 권력의 강도를 영토와 인구에 할당하는 반면, Sprouts는 그러한 자료는 무엇이 누구에 의해서 언제 어디서 어떤 적에 대해 동맹, 비동맹에 의한 것인지에 대한 가정의 틀 하에서만 정치적 적실성, 중요성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국가 전략의 가중치를 부여하는데, Cline은 국제적 강화를 위한 명백한 전략 계획을 가진 국가들에게는 높은 가치를 주고 그러한 계획이 없는 국가들에게는 낮은 가치를 할당하였다. 미국의 전략이 0.3을 받은 반면, 러시아는 0.8을 받았다. 그 책의 종반으로 가면서, Cline은 그의 미국에 대한 선호된 전략에 대해서 기술하고, 이런 전략이 이 책의 초반에 기술된 상황에서 암시되어 있었다고 시인한다. 어떤 상대적 비대체 가능성 분석자는 만약에 Cline이 그 책의 초반부에 그러한 정책 가정을 명시적으로 하였더라면 더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고 지적할 수도 있다.
Cline의 World Power Assessment에 깔려 있는 모호하고 내포적인 정책 우연성 틀을 결국에는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추상적인 일반적 수준에서 권력을 다루는 지혜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만약 누군가가 권력의 개념을 단일하며 동질적이고, 일차원적이고 매우 대체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진전시키고자 한다면, Cline의 접근법을 능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즉, 볼드윈에 따르면 Cline의 접근법은 권력의 개념을 동질적이고 일차원적이고 단일하며 매우 대체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파악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볼드윈은 Kindleberger의 연구를 분석하는데, Power and Money에서 Kindleberger는 잠재적 권력과 실재적 권력간의 구분과 유사한 맥락으로 “Strength”와 “Power”를 구별한다. 그는 Strength를 타국의 정책에 대해 통제를 주장, 성취하는데 쓰이는 가와 관계없이 존재하는 수단으로 취급하고, Power를 효과적으로 쓰일 수 있는 Strength로 정의한다. 킨들버거는 이런 권력의 정의는 목적을 내포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볼드윈은 목적과 분리된 권력은 일반화되거나 혹은 매우 대체가능성 높은 권력으로 들리기 시작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문맥상으로 봤을 때, 킨들버거는 (그런 권력을 실제적으로 사용하려는 의도나 바램 또한 없는,) 한 국가가 다른 국가의 정책들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잠재적 권력을 가졌다는 의미에서 잠재적 권력과 실현가능한 권력을 구별하고자 의도했다는 것이 명백하다. 킨들버거의 권력 개념의 취약점은 권력과 목적, 목표 사이를 완전하게 분리시킬 수 있다고 의미(내포)하는 데 있다. 비록 잠재적 권력이 실제적 목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적어도 가정된 정책 우연성 틀의 의미에서 가설적 목적을 의미하는 것이다.
실현되지 않은 권력의 파라독스를 고려하는데 있어서, 그 파라독스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권력 분석을 구체적 맥락에 보다 면밀히 연계시키는 것이라고 주장되고 있다. 볼드윈은 1970년대 당시 국제 권력 관계를 연구하는데 가장 결정적인 취약점들 중의 하나는 행동 양식의 범위와 권력 행사 대상을 구체화하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권력 자원의 대체가능성을 과장하는 경향이라고 주장한다. 맥락적 권력 분석의 유용성을 증명하기 위해서, 볼드윈은 지금까지의 논의의 관점으로 “worst-case”분석의 문제점을 검사함으로써 결론을 내리고자한다.
worst-case분석의 기본 가정은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는 것이 현명하고 신중한 정책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가정은 정책 입안가들이 다른 행위자들의 의도보다는 그들의 능력 측정에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과 관련이 있다. worst-case가 현명하지 않고 또한 신중하지도 않은 정책이라는 것을 증명하는데 있어서 정치 권력의 다원성과 정치 자원의 낮은 대체 가능성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볼드윈은 말한다. 그 이유는 정치 권력과 구매력을 비교함으로써 증명 될 수 있다고 한다.
화폐의 대체가능성은 높기 때문에, 구매력을 많이 보유할수록 좋은 것이다.
그러나 정치 권력은 구매력과 다르다. 정치적 빚을 갚는 견지에서 돈에 상응하는 정치적 가치의 공통 지표는 없다. 정치 권력 자원의 대체가능성의 부족은 최악의 우발적 사건에 대비하고 있는 것은 좀 덜 심각한 사건을 다루는 능력에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 즉, 타국의 의도를 무시한 체 최악의 상황만을 대비한다면, 그 보다는 훨씬 덜 심각하지만 일어날 가능성이 많은 사건들에 대해서는 대비하지 못하게 되고, 오히려 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 권력은 다차원적이고 대체가능성이 낮고, 어떤 한 정책 우연성 틀에서 권력이 많을수록, 다른 틀에서는 반대로 적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최악의 경우만을 대비하는 정책 입안자는 현명하지도 신중한 것도 아니다.
Power and Interdependence
모든 사람들이 상호의존이 중요하다는 것에 동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모든 사람들이 상호의존이 어떻게 정의되어야 하는지를, 혹은 상호의존이 증가되어야 하는지 감소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합의하는 것은 아니다. 비록 다수가 국가들이 그들의 상호작용에 의해 크게 영향 받는 상황이라고 동의하지만, 중요하지 않은 영향과 중요한 영향을 어떻게 구별하느냐에 대한 합의는 없다. 3가지 가능성이 고려될 수 있는데, 첫 번째는 상호작용이 상호 의존과 동일시되는 것이다. 이것은 때때로 상호의존보다는 단지 상호연계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제시된다. 두 번째는 상호간에 상당한 정도로 영향을 미치는 상호작용의 관점에서 상호의존을 보는 정의이다. 이런 정의가 가진 문제점은 국제적 상호작용의 많은 형태(ex.무역)가 상호간 의존이 아닌 상호의 값비싼 결과에 관련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개념은 일반적인 언어 표현에서 그런 용어의 사용에 깔려 있는 의존의 개념을 포착하지 못하는 것 같다. (즉, 거래를 하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정말 서로에 대한 의존을 하고 있는 것인지를 이 개념은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상호의존을 인식하는 세 번째 방법은, 양측간에 서로가 상호의존없이 지내는 비용 혹은 대가가 큰 관계를 상호의존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이런 상호의존의 개념은 앞선 2가지의 정의보다 3가지의 장점을 가진다. 첫째, 일반적인 표현에 깔려 있는 의존에 대한 직관적 개념을 짚어 내는 것이다. 둘째, 3번째 정의는 Thibaut, Kelley, Emerson, Blau 등에 의한 의존의 이론적 취급과 양립한다. 비록 이들 연구자들은 사회적 권력에 대한 작품들에서 널리 잘 알려 져 있지만, 그들은 국제적 상호의존의 논의에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의존에 대한 근본적 개념이 양립가능하다면 사회적 권력 작품과 국제 관계 작품간의 융합이 더욱 가능할 것이다. 상호의존의 이 개념의 세 번째 장점은 그것이 의존과 권력간 연계에 대한 사고를 요이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의존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실제 관계 비용뿐만 아니라 대체 관계의 기회비용이 고찰되어야 한다. 이와 유사하게, 권력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B가 하는 것뿐만 아니라, B가 하지 않으려는 것 또한 연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상호의존은 권력과 관계가 있기 때문에 국제 이론가들의 관심을 끄는데, 만약, A와 B가 상호의존적이라면, 각자는 한쪽이 관계를 끊음으로 해서 상대에게 손실을 입힐 수 있다. 상대방에게 이러한 손실을 줄 수 있는 능력은 영향력 행사의 한 방법이 된다. 이런 의미에서 상호의존은 항상 상호간 잠재적 권력을 내포하고 있다. Young이 지적했듯이, 상호의존의 수준 증가는 권력 행사의 기회와 비용 모두를 증가시킨다.
만약 의존과 권력이 서로 밀접히 연계된 개념들이라면, 이 중 하나를 연구하는데 유용한 몇몇 구별은 그 다른 하나를 연구하는 데에도 유용할 수도 있다. Knorr는 상호의존의 논의에서 다수의 그러한 구별을 개요를 말했다. 권력 관계가 범위, 강도, 분야에서 다양하듯이, 상호의존의 관계도 다양하며, 따라서 권력 연구에서 맥락적 연구가 적합하듯이 상호의존에서도 맥락적 연구가 적절하다.
코헤인과 나이는 상호의존에 있어 권력의 역할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민감성과 취약성을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감성 상호의존은 주어진 정책 틀 내에서 값비싼 결과를 초래하는 부담을 지칭하며, 취약성 상호의존은 정책 틀이 변화된 이후에조차도 값비싼 결과를 초래하는 부담을 지칭한다. 이러한 상호의존의 두 형태간 구분은 권력처럼 의존 또한 정책 우연성 틀에 따라 다양하다는 것을 가리킨다. 민감성 상호의존과 취약성 상호의존은 정책 우연성 틀들의 특별한 종류에 적용되는 단순한 호칭들(labels)이다. 비록 코헤인과 나이가 세계 정치에 대한 중요한 관찰을 생성시키는데 이런 구분을 사용하였지만, 그 구분 자체는 아무런 이론적 통찰이 없다. Lasswell과 Kaplan, Dahl, Sprouts은 이전에 권력 관계가 정책 우연성 틀에 따라 달라 질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민감성 상호의존과 취약성 상호의존간의 구별을 정책 우연성 틀 중에서 구별하는 많은 방법들 중에서 하나라고 간주하는 대신, 코헤인과 나이는 민감성 상호의존과 취약성 상호의존간 구분이 상호의존에 있어 권력의 역할 이해에 있어 필수적인 것이라 주장한다. 어떻게 이러한 구분이 우리로 하여금 상호의존과 권력간의 관계를 이해하도록 돕게 되는 지의 의문에 대해서, 그들은 이렇게 답할 것이다. 명백히, 그것(그 구분)은 민감성 상호의존이 권력 자원들을 행위자들에게 제공하는데 있어서 취약성 상호의존보다 덜 중요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가리킨다. 경험적 가정으로써, 이러한 대답은 논쟁의 여지가 있고, 논리적 추론으로써, 그것은 non secuitur이다. 결혼의 사례를 한번 보라. 민감성 상호의존은 결혼의 틀 내에서 유지되는 것이고, 취약성 상호의존은 폭력적인 이혼과 결부된 비용과 결부된 것이다. 비록 남편이 물리력과 이혼 후의 경제적 생존 능력에서 우위를 가지지만, 이런 권력 자원들이 민감성 상호의존에 의해 제공된 권력 자원들보다 더 중요하다고 하는 것은 명백하지 않다. 만약 남편과 아내 모두 비폭력적인 결혼 생활의 틀을 유지해나가고자 강력히 공헌한다면, 비대칭적인 취약성 상호의존과 결합한 권력 자원들은 민감성 상호의존과 결합된 권력 자원과 비교해서 더 중요하지도 않고, 별로 의미가 없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와 유사하게, 국민국가들이 주어진 국제 레짐이 작동하도록하는 강한 언질을 한다면, 민감성 상호의존과 결합된 권력 자원들이 취약성 상호의존과 결합된 권력 자원들 보다 더 중요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혁명은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이라면, 혁명을 선동하는 능력은 특별히 유용한 권력 자원은 아니다. 주어진 정책 틀 유지를 위한 헌신(공약)의 정도에 대한 정보 혹은 가정의 부재시에, 우리는 민감성 상호의존과 취약성 상호의존에 의한 권력 자원의 상대적 중요성에 대해 전혀 판단할 수 없다. 비록 코헤인과 나이가 유용한 구분을 공식화했지만, 그들은 권력과 상호의존간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그 중요성을 과대평가하였다고 볼드윈은 주장한다.
달의 권력 개념은 상호의존을 취급할 수 없다는 주장이 최근 제기되고 있다. Dahl이 사회 권력에 관한 최신 연구의 주류에 밀접하기 때문에, 이런 관점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즉, 달의 권력 개념이 상호의존을 다룰 수 없다는 주장은 달의 입장을 왜곡시키는 것이다. Hart의 주장은 권력 개념간 구분에 근거하는데, 이는 1)자원에 대한 통제, 2)행위자에 대한 통제, 3) 사건과 결과에 대한 통제로써의 구분이다. 그는 달의 권력 개념(a가 b로 하여금 그렇지 않으면 하지 않았을 일을 하게 하는 능력으로써의 권력 개념)을 행위자에 대한 통제로써 분류하는데, 이는 심한 왜곡이다. 왜냐하면 달의 권력 개념은 한 행위자가 다른 행위자에 대해 어떤 결과에 고려해 영향력을 미치는 능력에 대한 것이다. 즉, 달 역시 행동양식 유형을 구체화한 권력을 강조한다. (Nagel이 지적하듯, 달처럼 인과적 권력 개념을 채택하는 이는 초래된 결과를 명시해야 한다.)
따라서 달의 권력 개념이 상호의존을 설명하지도, 다루지도 못한다는 Hart의 주장은 신빙성이 없다고 볼드윈은 반박한다.
Military Power
볼드윈은 국제 정치학의 전통적 이론화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취약점 2가지를 지적하는데, 첫째, 군사력 자원의 효용성을 과장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고, 두 번째는 군사력을 다른 형태의 권력과 비교하는 궁극적인 측정의 잣대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 두가지 경향은 라스웰과 카플란에 의해서 옹호되는 그 접근법에서는 혐오의 대상이 된다. 비록 이들 작가들이 폭력의 역할에 대한 특별한 고려를 하고는 있지만, 그들은 권력이라는 것이 폭력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고, 권력은 다양한 기반을 가진다고, 어떤 것도 다른 형태의 권력 요소에 기반이 될 수 없다고 반복적으로 주장한다. 그들의 노력과 그들이 창출한 맥락적 권력 분석의 전통에도 불구하고 현대 국제 관계학은 이전처럼 군사력의 효용성을 과장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Cline은 World Power Assessment에서 권력의 다양한 형태가 존재함에 주목하였지만, 그는 권력을 전쟁 수행 능력을 연구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와 유사하게, 길핀도 권력이 많은 형태를 가질 수 있지만, 결국에는 무력이 권력의 궁극적인 형태라고 분석하였다. 즉, 볼드윈은 무력과 전쟁 수행력을 궁극적인 권력의 형태로 파악하는 Cline과 Gilpin의 주장을 비판하면서 그들은 권력이 다차원적 현상임을 간과하면서 연속체의 견지에서 권력을 파악한다고 말한다. 만약 권력이 다차원적인 현상으로 간주된다면, 그러한 연속체의 관점에서 생각하기는 어려워진다. 만약 권력을 일반화된 것이라기보다는 상황에 따라서 구체화된 것으로 간주한다면, 권력의 궁극적 형태에 대한 개념은 말도 안되는 것이다. 아주 중요한 정책 우연성 시나리오들에서 무력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권력자원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권력의 궁극적인 형태가 무력이라고 주장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그러한 상황을 인식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다. 결국, 대부분의 국가는 대부분의 국제 분쟁을 대부분 실제적인 무력의 사용 혹은 무력 사용의 협박없이 해결하는 것이다.
코헤인과 나이가 군사력에 대한 전통적인 강조를 계속적으로 비판함에도 불구하고, 그들 조차도 때때로 권력 자원으로써의 군사력의 효용성을 과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군사력과 관련하여 증가된 비용과 많은 상황에서 군사력의 비적용성을 인식하면서도, 그들은 군사력이 다른 권력 수단을 지배한다고 주장한다.
군사력이 다른 권력 자원들 보다 더 효율적이라는 가정은 애매모호하면서 논쟁의 여지가 있는 것이다. 명백히 구체화되거나 암시된 정책 우발성 틀의 부재에서, 무력이 다른 권력기반들 보다 더 효율적이라는 전제는 아무 의미가 없다. 즉, 볼드윈은 권력에 대한 모든 일반화는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하게 하도록 노력하는 가를 구체화하는 맥락 속에 놓여져야 한다는 주장을 상기시킨다. 어떤 상황에서 무력이 잘 작용하지만 다른 경우 실제로 그것은 반대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코헤인과 나이의 분석의 기저를 살펴보면, 무력이 효율적이라는 정책 우연성 틀까지도, 그리고 그런 틀의 상대적 중요성을 암시하는 일련의 가정들이 있는 것 같다. 만약 그 저자들이 그러한 틀에 가중치를 부여하는데 사용된 기준을 포함하여, 그러한 가정들을 상세히 설명했더라면, 그것은 유용했을 것이다.
경험적 가정으로써, 무력이 다른 권력 수단들을 지배한다는 개념은 검증되어야할 가설로서 공식화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가정의 지위로 될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않는다. 코헤인과 나이에 따르면, 만약 어떤 이의 도구에 대한 선택에 대해서 강요가 없다면, 즉, 비용에 대한 고려가 무시된다면, 우월한 군사력을 가진 국가가 우세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Power and Interdependence가 무력이 효과적이지 않은 몇몇의 상황들을 기술하는 것이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많은 정책 우연성 틀에서 군사력 자원들의 쉽게 증명할 수 있는 역효과성에도 불구하고, 코헤인과 나이는 만약 비용만 무시될 수 있다면 군사력이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 의미한다.
볼드윈은 Power and Interdependence에서 언급된 3가지 상황을 연구한다. 첫째, 경제적 수단 하나만으로는 군사력의 심각한 사용에 대항해 비효과적이 되기 쉽다는 점에서 군사력이 경제력을 지배한다고 주장한다. 둘째, 최악의 상황에서 무력이 궁극적으로 생존을 보장하는데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세 번째, 군사력이 소련으로 하여금 동유럽을 정치, 경제적으로 지배할 수 있게 도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볼드윈은 첫 번째의 반박으로 1973년 미국의 무력 사용 위협이 아랍 석유 수출금지보다 더 효과적이었나? 아니었다. 즉, 1973년 미국의 무력사용 위협이 아랍석유 금수조치에 효과적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 반박은, 생존을 보장하는데 있어 오늘날 군사력의 효용성은 지속적으로, 빠르게 줄고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에 대한 반박은, 동유럽에 있어서의 소련의 무력 사용은 어떤 면에서는 동유럽 지배에 역행하는 (지배를 방해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군사 영역 내에서조차, 권력 논의는 좀더 맥락적 방식으로 고려될 때 유용성이 있다고 볼드윈은 주장한다. 한 국가의 군사력을 극대화하는 개념은 군사력 자원들이 상대적으로 대체가능성이 있지 않을 경우에는 별 의미가 없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법은 하나의 정책 우연성 틀에서는 자산인 것이 다른 틀에서 부채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설득력이 있다.
Positive Sanctions
Positive sanctions(보상 혹은 약속된 보상)은 어떤 국가가 다른 국가에게 그들이 원치 않는 일을 하게끔 하는 수단으로써 오랫동안 중요성을 가져왔다. 이런 영향력을 어떻게 정의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Positive sanctions이 국제 행위자들이 다른 행위자들의 행동, 신념, 태도 혹은 정책들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자원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Knorr는 세계 정치에서 P.S의 역할에 관한 학문적 작품이 소량이라는 것을 제대로 지적하였다. 볼드윈은, 파괴적인 권력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세상에서, P.S의 실제적이고 잠정적인 역할에 대한 이해가 향상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것이라고 말한다.
국제 정치학에 있어서 경제력에 초점을 둔 관심이 증대되는 것은 P.S에 대한 보다 많은 연구의 필요성을 강화시킨다. 왜냐하면, 경제력은 종종 그러한 형태를 띄기 때문이다.
P.S에 대한 연구에 있어 가장 어려운 개념적 문제는 교환과 권력간의 관계이다. 보통의 경제적 교환 관계는 달의 광의의 권력 개념에서는 기술될 수 있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학자들은 그런 관계를 분석하는데 권력 전문 용어로 사용하는 것을 거부한다. Knorr는 P.S을 중요하다고 인정하나 그런 교환관계로부터 비권력적 영향력을 구분하려는 시도는 논의에 아무 도움이 안 된다. 한편, ‘권력적 영향력’은 B에게 유해한 것으로 기술되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그의 선택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반면, ‘비권력적 영향력’은 B에게 유익한 것으로 기술되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그의 선택을 풍부하게 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비록 B가 그것들을 보상 혹은 처벌로 간주하느냐의 관점에 따라 Positive sanctions과 Negative sanctions으로 정의내리는 것은 유용할 지라도, B가 항상 그에게 가장 좋은 것을 안다고 가정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어린이, 마약 중독자 혹은 국민 국가들에게 가능한 선택을 제한하는 것이 반드시 유해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예, 이빨 썩은 어린이에게 사탕을 주는 것, 마약중독자에게 마약 주는 것 등등) 보상이 수혜자에게 실질적으로 이득이 되는가의 문제는 중요하다, 하지만, 이를 정의상의 문제보다는 경험적 문제로 다루는 것이 더 유용해 보인다고 볼드윈은 주장한다.
상호간의 호혜적인 상호작용의 범주 내에서, Knorr는 ‘교환’과 ‘비정치적 영향력’을 다음과 같이 구분하였다.
교환과 비정치적 영향력을 구분하는 것은 어떤 행위자가 다른 행위자에게 어떤 조건 없이, 즉, 지금이나 혹은 나중에라도 어떠한 지급을 가정함이 없이 가치물을 주는 것이다.
그러한 구분은 연구자들이 국민국가들 간의 관계에 적용하기에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보상에 관하여 계약은 언급되지 않을 수도 있고 관련 행위자들에 의해서 오직 막연하게 인식되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사회적 교환 이론가들은 교환이 미묘한 과정이 될 수 있고, 보상 수여자의 약정 혹은 의도에 관계없이 보상의 수혜자 측에서는 부채에 대한 느낌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왔다. 더욱이, 심지어는 가장 애타적인 후원자 조차도 그의 마음을 바꿀 수도 있고 원조 수혜자에게 그가 후원자에게 호의를 빚지고 있다고 상기시킬 수도 있다. 엄격히 경제 교환에서 지불에 관하여 소급하는 약정을 만들려는 그러한 시도는 성공할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원래의 수혜자는 증여가 일어날 그 때에 이행 조건이 명백히 구체화되었던 것을 지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적, 정치적 교환은 그 교환에 따른 의무의 모호성에 의해 부분적으로 경제적 교환과 구분된다. 심지어는 Knorr에 의해서 예증된 사례조차도 사회적 교환의 유형으로 간주될 수 있다. 국가 A는 경제 개발을 가속화하기 위해 화폐를 사용하겠다는 국가 B의 약속을 위해 경제적 원조를 교환하는 것으로써 간주될 수도 있다. 사람들과 국가들은 항상 약속을 위해 화폐를 교환한다, 그래서 Knorr의 사례의 그러한 해석에 대해서 별로 특이할 것은 없다. A가 그의 원조의 사용에 대해서 전혀 관섭을 하지 않는 한, 그는 보상을 위한 약정을 한 것으로 보여질 수도 있다.(?) 결국, A에 의해 조건으로 요구된 행위(태도, 정책 등등)가 그에게 아무 가치가 없다면, 그는 처음에 계약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볼드윈은 현실 세계에서 완전히 조건 없는 원조의 사례를 본적이 없으며, 기대도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미국이 다른 나라에 원조를 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그것이 미국에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요약하자면, 권력과 교환간의 구분은 지을 수 있지만, 국제정치학도들은 그 상이성과 유사성 모두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이득이 된다고 볼드윈은 말한다. 결국 P.S은 주는 자의 이득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보상의 상호간 교환이 국제 관계에 널리 퍼져 있다는 사실은 부분적으로 왜 그 주제가 흥미가 부족한지를 설명해줄 수 있으며, 다음에는, 왜 국제 정치학도들이 위협과 벌의 교환에 더 흥미를 가지고 관심을 집중시키는 지를 부분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다. 그러나, 국제정치에서 P.S의 역할은 학문적 이목을 받기 시작했다. Fisher, Knorr, Galtung, Rosecrance, George, Smoke 그리고 몇몇이 이 논의에 기여를 하였지만, 할일이 많이 남아있다. 이 주제에 대한 심층적 연구는 Hirschman과 사회적 교환 이론가들의 초기작 위에 지어질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교환이론이 국제 정치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많은 것을 줄 수 있다는 Eckstein의 주장은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Power as a Zero-Sum Game
전통적으로, 국제 관계 학자들은 분쟁과 협력을 구분하고, 권력을 협력이 아닌 갈등과 관계가 있다는 것으로 파악해왔다. 토마쓰 쉘링은 The Strategy of Conflict에서, 이러한 이분법의 유용성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대부분의 흥미로운 국제정치적 상황들은 분쟁적 요소와 함께 협력적 요소의 혼합을 수반한다고 주장한다. 비록 제로썸 게임과 순후 협력 게임은 연속체의 목적들을 정의하는데는 유용할 수 있지만, 이것들은 실제 현실 세계의 상황을 제대로 묘사하기 힘들다. 심지어 전쟁에서도 중요한 협력적 차원에 관련되는 것으로 셀링에 의해서 보여진다. 셀링은 그의 논의를 제한전에 집중시켰지만, 그의 논리는 소위 ‘토탈 워’라 불리는 것까지 확장될 수 있다. 핵전쟁을 생각못할 것은 아니지만, 참전자가 행성의 파괴의 관점에 무관심한 전쟁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볼드윈은 여전히 국제정치를 제로썸 게임로 인식하는 학자들로 Hoffmann과 Gilpin의 주장을 언급한다. 스탠리 호프먼은 최근에 제로썸 게임의 모델은 국제 정치의 상당한 부분에 대한 유효한 설명력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볼드윈은 스탠리 호프만의 아랍 이스라엘 분쟁을 제로썸 게임으로 파악하는 것에 대해 회의적이다. 즉, 협력적 측면이 간과될 것이므로 상황이해나 평화 전망에 도움이 안된다는 것이다.
길핀은 국제 정치가 항상 제로썸 게임의 형태를 띤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길핀의 권력 개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건 중요한 것은 달-라스웰-카플란의 권력 개념이 제로썸 게임 시각이 아님을 깨닫는 것이다. 그들의 개념은 우리로 하여금 b로 하여금 x를 하게 하는 a의 능력이 a로 하여금 x를 하게 하는 b의 능력과 동시에 증가하는 상황을 기술 가능하게 해준다.
제로썸 게임의 모델은 국제정치 학도들에게 잠정적으로 유용한 개념적 도구일 수도 있다. 그러나, Positive sanctions을 무시하면서 Negative sanctions의 중요성을 과장하고, 세계정치의 협력적인 차원은 무시하면서 갈등적인 차원에 집중을 하는 전통적인 성향들을 고려하였을 때, 이론가들은 이런 특별한 개념적 도구를 선반위에 남겨두어야 할 것이다. 혼합된 의도의 게임 모델이야 말로 제로썸 게임 모델보다 실제 세계 상황들을 보다 정확하게 묘사한다고 볼드윈은 주장한다.
Compellence and Deterrence
IR학자에 의해 종종 강제와 억지 사이의 구분이 되었는데, 특히 쉘링이 그러하였다. 여기서 볼드윈은 성공적 영향력 행사 시도의 가능성에 대한 함축적 가정이 쉘링의 강제와 억지 논의의 기저에 깔려 있으며 이 가정이 그러한 구분의 타당성과 유용성에 의문을 제기함을 주장하고자 한다. 쉘링에 따르면 적으로 하여금 어떤 일을 하게 하려 의도하는 위협과 적으로 하여금 무엇인가를 하지 못하게 하려 의도하는 위협간에는 전형적인 차이가 있는데, 이는 성공 가능성, 위협의 명확성, 위협의 신뢰성, 타이밍과 순응의 어려움 등에 관한 것이다.
이러한 구분(누군가가 어떤 것을 하게끔 하는 것과 누군가가 어떤 것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의 차이로 인한 구분)은 아주 유용하지 못하다. 억지적 위협이 강요의 견지에서, 강제적 위협이 억지의 견지에서 진술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억지로서의 영향력 시도를 기술할 때, 우리는 우선 아주 발생하지 않을 것 같은 어떤 사건의 발생의 가능성을 줄이고자하는 위협을 보통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강요로써 영향력 시도를 기술할 때는, 어쨌든 아주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어떤 사건의 발생의 가능성을 증가시키려고 의도된 위협을 보통 생각한다. 쉘링은 강요하는 것보다 억제하는 것이 더 쉽다고 관찰한 것은 매우 옳은 것이다. 그러나 이는 경험적 관찰이라기보다는 자명한 이치라고 할 수 있다.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 노력하는 사람은 아마도 성공할 것이고, 반면,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을 일어나게 하려 노력하는 사람은 아마도 실패할 것이다.
어려운 일들을 하게 하는 것과 쉬운 일들을 하게 하는 것 사이에는 사소하지 않은 차이들이 있다. 쉘링에 따르면, 강제적 위협과 억제적 위협간의 차이점 대부분은 그 사람이 영향력을 미치고자 하는 결과의 자율적(자발적) 가망성, 확률에 있어서의 차이로 설명될 수 있다. 강제적 위협이 어려운 일을 위해서 사용되어 지는 반면, 억지적 위협이 쉬운 일을 위해서 사용된다는 함축적 가정을 할 때, 억지적 위협이 강제적 위협보다 더 성공할 것 같다는 관찰은 별로 심오해 보이지 않다.
강제와 억지의 타이밍에 있어 다른 요구사항들에 대한 대부분의 논의는 쉬운 일을 할 때는 훨씬 덜 노력을 하는 반면, 어려운 일을 수행할 때 상당한 노력이 요구되어 질 것이라는 것은 자명한 이치로 축약될 수 있다.왜 강제적 위협은 신뢰받는 것으로 시작해야 하는가? 그들은 많은 신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강제적 위협은 신뢰성을 필요로 하는가? 왜냐하면 우선 그것들은 성공할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쉘링은 강제적 위협을 a가 b로 하여금 그가 하지 않을 것 같은 일을 하게 하려는 상황으로 억지적 위협을 a가 b로 하여금 그가 할 것 같은 일을 하게 하려는 상황으로 지칭한다. 쉘링이 그가 강제 상황이라 부르는 것 하에서 순응, 복종이 어렵다고 한 것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이 강제적 위협의 특성은 아니다. 이는 강제적이라 할 수 있는 특징의 형태의 영향력 행사 상황의 특성이다. 어떤 강제적 위험 상황에선 순응이 돋보이고 어떤 상황에선 아니다.
쉘링은 또한 강제적 위협과 억지적 위협간에는 또 다른 차이가 있는데, 이는 강제가 억지보다 더 모호한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를 수용한다 해도 어느 쪽의 위협이 다른 쪽보다 분명하다고 믿을 이유는 없다.(이 역시 어느 쪽의 위협이 다른 쪽의 위협보다 명확하다고 할 있는 이유가 없다.)
쉘링의 말대로라면 억지적 위협은 더욱 분명하며 그 보장 또한 명확해진다. 왜냐하면 강제적 위협에 관련한 보장은 모호하기 쉽고 신뢰성을 결하기 쉬우니까. 그러나 강제적 위협이 아닐때도 보장이 확실치 않을 수 있다. 보장의 신뢰성은 어떤 위협의 종류의 기능이 아니다. 이는 위협과 약속의 신뢰성을 결정하는 동일한 종류의 것들의 기능이다.
억지와 강제간의 구분이 처음에는 국제 정치학을 분석하는데 매우 유용한 듯 보이나 이에 대한 면밀한 조사는 그러한 구분의 유용성에 대한 심각한 의문을 제기한다. 강제의 정확한 정의를 제공하지 못하는 것은 그것을 확실하게 만든다. 그러나, 성공의 낮은 가능성은 이러한 용어의 함축된 정의와 풀리지 않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강제와 억지간 차이를 구분하느니 위협과 약속, 높은 성공 가능성을 지닌 영향력 행사 시도와 낮은 성공 가능성을 지닌 시도간의 구분이 보다 타당한 것이다. 그러나, 더욱 정확한 정의와 더욱 설득력있는 주장이 제시되기 전까지는, 국제정치학도들은 억지와 강제간의 구별에 신중해야 한다고 볼드윈은 말하고 있다.
Conclusion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국제관계에서 최근 연구물들에서 선정된 작품들의 재검토를 통해서 권력을 다루는데 다수의 전통적 경향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밝혔다. 첫째, 권력 자원의 대체가능성을 과장하는 경향과 범위에 대한 고려를 소흘히 하는 관련된 경향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군사력을 궁극적 권력 기반으로 다루는 성향, 그리고 군사력의 효용성을 과대 평가하는 관련된 성향이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세 번째는 협력과 positive sanctions에 대한 강조 대신 분쟁과 negative sanctions에 대해서만 강조하는 것이 그것이다.
권력을 다루는 데 있어 전통적 약점을 바로 잡는 방법으로 (라스웰, 카플란, 달, Sprouts 등의 학자에 의해) 권력의 맥락적 분석이 제기되었다. 그런 맥락적 분석은 국제관계학자들에게 다수의 함의를 지닌다. 첫째, 이는 세계를 강대국, 약소국, 중간 권력국으로 나누는 것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게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구분/용어들은 상황상 구체적 권력보다는 일반화된 것을 주로 의미/내포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러한 용어들의 사용자들은 그들이 고려하고 있는 이슈 영역을 구체화할 것이 요구된다. 둘째, 단일의 국제적 권력 구조라는 개념 자체가 의문시 될 것이다. 왜나하면 그러한 개념은 매우 대체 가능성 높은 권력 자원 혹은 단일의 지배적 이슈 영역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구분되는 이슈들만큼이나 많은 권력 구조들이 존재한다. 코헤인과 나이는 국제 권력 구조가 이슈별로 다양하다는 것을 보였을 때 2보 전진하였지만, 그들이 총체적인 구조적 접근이 총체적 구조적 접근이 이슈영역을 구별하는데 실패하고, 그런 접근법은 권력이 매우 대체 가능성이 높으며 또한 권력이 세계 정치의 부분적인 설명까지도 제공할 수 있다는 가정에 기반하였기 때문에 1보 후퇴하였다. 이제는 어떤 특정한 이슈영역에 관계없는 단일의 총체적 권력 구조 개념이 사실상 의미없는 권력 개념에 기초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할 때이다. 이제는 국제 권력 구조에 놓여있는 권력 자원들의 분배에 대해서 말하는 것 대신에, 수많은 주요 이슈영역들에 관련된 다양한 자원들의 다수의 분배 패턴에 주목해야 한다.
여기서의 요점은 아주 광범위하게 정의된 이슈 영역들내에서 권력 패턴에 대한 일반화의 가능성 혹은 바람직성을 부정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건전한 회의주의와 학문적 주의가 이슈영역의 구체화의 모호성과 넓은 범주에 비례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어진 이슈 영역에서의 권력의 계서화의 대략적인 지표들은 유용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접근의 한계가 명백히 이해될 때의 경우에만 그러하다. 중요한 것은 어떤 다른 권력 범주가 비교될지의 관점에서 정치적 가치의 공통적 지표의 부재는 해결되어야 하는 방법론상의 문제라기 보다 함께 지니고 살아야할 현실의 제약임을 인식하는 것이다.
비록 권력 분석이 국제 정치학 연구에 있어 가장 오래된 접근법이지만 이는 앞으로의 시기에서도 가장 유망한 접근법 중 하나이다. 1950년 이래 권력의 인과 관계적 개념상의 정련은 국제 관계학에 대한 작품으로 완전히 통합된 것은 아니지만, 이것이 일어나지 않을 이유는 없는 것이다. Alker가 최근에 관찰한 것처럼, 권력 측정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고 말하면서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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