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든대국 "러시아" - Kuwabara Shisei

우리는 흔히 20세기를 이념(ideology)의 세기 또는 대변혁(the great transition)의 시대라고 부른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을 계기로 세워진 소련은 미국과 더불어 세계의 초강대국으로 지난 75년간을 군림해 왔다. 따라서 소련과 사회주의의 갑작스런 붕괴는 더욱 큰 충격일 수 밖에 없다.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은 소련을 ‘사악한제국(evil empire)’이라고 불렀으며 팽창주의적인 초강대국 러시아를 봉쇄하는데 모든 자유세계가 힘을 합해 대처해 나갈것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소련은 스스로 무너졌다. 구와바라 시세이는 우리가 상상속에 갖고 있던 소련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이미지들을 전해주고 있으며 그들 체제가 왜 무너질 수 밖에 없었는가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그가 전해주는 러시아 국민들의 참담한 상황의 단면을 통해 국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지 못하는 한, 어떤한 이념도 국민들의 충성을 영구히 지속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구와바라 시세이는 일본의 한 잡지사 청탁으로 취재차 소련에 체류하고 있었다고 한다. 1991년 여름 그는 우연히 모스크바에서보수파의 쿠데타 현장을 목격하게 되었다. 러시아 변환기의 한가운데 서 있던 그는 현실감 있게 그 당시의 상황을 묘사할 수 있었다. 그는 그 이후 3년간 지속적으로 러시아에 관심을 가지고 취재를 계속하였다. 그가 이번 전시에서 보여주는 약 100여점의 작품들은 쿠데타의 흔적부터 시작하여 사회주의에서 자유민주주의로 전환하는 과정속에 나타나는 삶의 다양한 모습과 한 사회가 변화를 이행하는 데 얼마나 많은 어려움과 고통이 따르나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1839년 사진의 탄생 이후 사진 이미지들은 여러가지 형태로 우리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사진이 우리에게 주는 강력한 위력 중의 하나는 세상의 진실된 사실을 전달하여 대중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다. 한 순간의 정지된 장면이 인간 마음속의 여러 감정들을 일깨우기도 하고, 우리 역사의 흐름을 생생하게 작동시켜주기도 한다. 시대를 기록하는 사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작가 자신이 역사의 극적인 순간에 존재하여야 하고, 그 순간 작가 자신이 생각하는 역사 해석의 장면을 놓치지 말고 기록하여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진을 다큐멘터리(Documentary)사진이라고 하며, 다큐멘터리사진가들은 역사의 흐름에 이정표를 남기기 위해 때로는 위험한 상황을 무릅쓰며 시대의 증인으로서 이 세상을 기록하는 것이다.
 
구와바라 시세이는 전형적인 다큐멘터리 사진가로서 그의 사진경력은 30여년에 이른다. 1962년 일본의 심각한 문제였던 ‘미나마타병’에 대한 기록을 시점으로 하여, 역사의 흐름속에 발생되는 여러가지 사건과 그것을 극복해 나가는 인간들의 의지에 깊은 관심을 보여왔다. 그의 작품중 ‘쓰러진 동상’은 러시아인들이 경험한 가치관의 단절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사진 중앙에 서있는 사람과 그 옆에 우뚝선 거대한 동상의 크기의 대조로 우리는 러시아의 과거의 모습, 즉 공산주의의 위력이 얼마나 큰 것이었나를 실감할 수 있다. 또 사진 앞부분에 여러 동상들이 땅바닥에 스산히 구르고 있는 모습에서 러시아의 현재의 모습, 즉 러시아인들에게 거부된 과거의 영웅들을 느낄 수 있다. 이 작품에서 볼 수 있는 드라마틱한 작품구성은 과거를 부정하는 러시아의 상황을 극대화시켜 준다. 그의 또 다른 작품에서 보여주는 여인의 의상과, 티셔츠에서 보이는 레닌과 맥도널드, 옐친과 배트민의 그림들은 러시아의 시장개방으로 몰려드는 자본주의 국가들의 각축전을 예상하게 된다. 벤자민 바버(Benjamin Barber)는 20세가 말적 특성으로 지하드(Jihad, 성전)와 맥월드(Mac World)가 동시에 공존하고 있다고 말한다. 맥킨토시(Macintosh), 맥도널드(Macdonald)햄버거의 상업주의의 영향은 이제 세계를 한 지붕으로 묶어 놓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민족 중심으로 분리 독립을 추구하고 그러한 목적을 위해서는 폭력을 서슴치 않는 경향이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체첸사태를 비롯하여 러시아의 종교 및 민족갈등은 전쟁의 상처를 더욱 깊게 만들고 있으며 러시아에 어두운 그림자를 던져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