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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nold Newman (아놀드 뉴먼) 아놀드 뉴먼은 1918년 뉴욕에서 태어났다. 경제적인 문제로 고등학교 마저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곧바로 직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여러 가지 직업을 전전한 끝에 그를 사로잡았던 곳은 초상사진관이었으며, 이곳에서 그는 새로운 인생을 꿈꾼다. 1939년 전쟁분위기로 세계가 뒤숭숭할 무렵 필라델피아, 볼티모어 등지의 초상사진관을 떠돌았으며, 그러다 우연히 방문한 뉴욕에서 당시 세계사진이 대부였던 알프레드 스티글리츠를 만났다. 스티글리츠를 만나 새롭게 눈을 뜬 그에게 또 다른 행운이 찾아오는데 바로 뉴욕근대미술관 사진 큐레이터인 뷰먼트 뉴홀과의 만남이다. 아놀드 뉴먼은 두 사람과의 만남으로 생애 첫 전시를 가지게 되었으며, 전시된 사진이 뉴욕근대미술관에 소장되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이때부터 아놀드 뉴먼은 새로운 .. 2024. 3. 3.
최민식 (Choi Min-Sik) 사진은 관념이 아니라 살아있는 존재 나는 평생을 가난한 사람들과 그들의 삶을 촬영해 왔다. 나의 사진 속에 등장한 그들은 가난하지만 따뜻하고 인간적인 순수함을 지니고 있다. 나는 나의 사진을 통해 인간적인 감정을 표현해냈으며, 그것이 순간포착으로 뒷받침되고 있다. 나의 사진 속에서 삶의 진실을 발견할 수 있도록 노력해 왔으며, 사진과 삶에 새로운 경지를 열고 차가운 비판과 따뜻한 고발성의 비판을 나타낼 수 있도록 고민 해왔다. 한 점의 사진을 말하는 것은, 그저 찍힌 사실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볼 때마다 깊이가 있어야 하며, 감동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사진작업과 인생과 예술적 포부가 하나의 조화를 이루어져 나타나 있어야 한다. 사진 작업을 할 때에는, 사진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2024. 3. 3.
Edward Steichen ( 에드워드 스타이켄, 1879 ~ 1973 ) 국제적인 감각과 세련된 감성으로 광고사진 분야를 개척한 스타이켄은 사실 「인간가족전 The Family of Man」을 통해서 널리 알려져 있다. 세계제2차대전이 끝나고 스타인켄에게 뉴욕 현대미술관의 사진부장일이 주어졌는데 이때 현대미술관의 25주년 기념행사로 마련된 자리가 바로 그 유명한「인간가족전」이다. 끔찍했던 세계제2차대전이 끝나고 전쟁에 관한 사진 전람회를 몇차례 개최한 일이 있었으나 별로 큰 성과를 얻지내지 못했다. 전쟁사진 전시회들의 잇단 실패로 인해서 그 원인을 분석한결과 그동안 세계대전을 두차례나 겪으면서 전쟁에 대한 공포감과 참혹함이 떠올라 기억저편으로라도 떠오르지 않고 잊으려고 노력하는 상황에서 적나라하게 표현된 전쟁사진들은 끔찍히 보기 싫어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전쟁방지 의식이 커지.. 2024. 3. 3.
Diane Arbus (다이안 아버스, 1923∼1971) 사진가인 남편 앨런 아버스(Allan Arbus)의 영향을 받아 사진계로 발을 디딘 그녀는 사진을 시작한 초창기 부터 약 15년 가까이 「하퍼스 바자 Harper's Bazaar」를 비롯한 패션지에서 활동하며 패션사진을 전문으로 찍었다. 그러나 1955년 리제트 모델(Lisette Model)에게 사진을 사사받으면서 순수한 사진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자연히 그의 스승이었던 리제트 모델에게서 가장 큰 영향을 받아 패션 사진계에서 순수 사진계로 전환함과 동시에 대상의 선택과 파악방식도 답습하였다. 상처 받은 불구자들의 운명적 고뇌에 관심을 가진 리제트 모델이나 기형, 불구자, 성도착증자등 비정상적인 사람들에 관심을 가진 다이안 아버스나 같은 맥락에 서있다. 다이안 아버스의 사진은 주제면에서나 표현방식에.. 2024. 3. 3.
Sebastiao Salgado (세바스티앙 살가도) 다큐멘터리 분야에서 세바스티앙 살가도(Sebastiao Salgado. 1944~)가 누리는 입지는 확고하다. 살가도는 정통 다큐멘터리 틀 안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문화인류학적 주제와 시각으로 커다란 획을 그었다. 어두운 밤바다를 작은 보트를 타고 횡단하는 모로코 사람들을 자외선 필름으로 촬영한 에서처럼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현실을 보여준다. 그는 행성(Planet)이란 말을 자주 쓴다. 그만큼 그의 시각은 넓다. 1970년대 후반부터 일관된 그의 작업은 하나의 사건이나 상황을 다룬다기 보다, 인류 전체의, 20세기 후반 인간의 삶의 조건. 그 변화란 커다란 흐름을 쫒는다. 세바스티앙 살가도 Sebastião Salgdo. 그는 어린 시절 말 그대로 '이촌향도'식으로 자주 이사를 했는데 이는 브라질의 근.. 2024. 2. 28.
Kuwabara Shisei (구와바라 시세이) 구와바라 시세이는 일본 시마네(島根) 현 츠와노(津和野) 출생으로, 도쿄농업대학과 도쿄사진전문학교를 졸업했다. 수은 중독에 의한 공해병인 ‘미나마타 병’을 주제로 한 첫번째 작업이 일본사진비평가협회가 주는 신인상을 수상(1962)하면서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사진계에 입문하였다. 1964년부터 두 번째 작업으로 한국을 취재 기록하기 시작하였으며, 이후 40여 년간 한국을 수십 차례 드나들면서 10만여 컷의 방대한 작업량을 축적하였다. 그가 한국에서 촬영한 사진은 정치·경제·사회·문화 분야를 망라하고 있으며, ‘사건 전면에서 벗어나지만 현실의 핵심을 찌르는 영상미학과 표현 스타일’을 시종일관 견지해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그는 사진의 본질은 ‘기록성’이라는 신념을 평생 구현해 온 ‘보도사진가’로서 예.. 2024. 2. 28.
Dorothea Lange (도로디어 랭, 1895∼1965) 미국의 여류사진가인 도로디어 랭은 농업안정국(Farm Security Administration)에서 가장 큰 공을세운 사진가중 한 사람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1935∼1942까지 7년에 걸쳐 FSA운동에 가담하면서 공황기의 미국을 특히 이민 노동자나 소작인 등을 중심으로 한 다큐멘타리 사진을 발전시킨 장본인이다. 1930년대 세계공황의 바람이 세차게 불어올때 랭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영업사진관을 경영하고 있었다. 당시 많은 실업자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카메라에 담고자 하여 일련의 사진들을 모아 1934년에 개인전을 열었는데 뜻밖에 반응이 좋았다. 사실 이 사진전을 통하여 농업안정국(FSA) 운동에 감담한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이다. 1935년에 FSA에 가담하게된 그녀는 당시 농민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록.. 2024. 2. 28.
Margaret Bourke-White (마가렛 버크 화이트, 1906~1971) 1904년(혹은 1906년 생) 6월 14일 미국 뉴욕에서 출생했다. 그녀가 사진에 대해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 것은 코넬 대학(Cornell Univ)에서 공부하는 동안이었다. 그녀가 본격적으로 사진을 공부하기 시작한 것은 후에 콜롬비아 대학(Columbia Univ)에서 클라렌스 화이트(Clarence H. White)에게 사진 과정을 공부하면서부터였다. 이 때 그녀는 건축관련 사진에 특별한 흥미를 느꼈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박물관의 파충류 콜렉터로 근무할 예정이었으나 그녀의 사진적인 감각을 아까워 한 동창의 권유로 건축전문 사진가가 될 결심을 하고 클리블랜드에 스튜디오를 개설했다. 버크 화이트에게 포토저널리스트가 될 기회가 찾아왔다. 1929년 버크 화이트는 헨리 루스(Henry Luce)가 창간.. 2024. 2. 28.
Minor Martin White (마이너 화이트, 1908~1976) Solitude is wonderful, too much is stagnating. Gregariousness is healthy, too much scatters the forces. ( 고독이란 멋있지만 지나치면 사람이 발전이 없고, 어울려 사는 것은 건강에 좋지만 지나치면 힘이 분산되어 버린다. ) 사진가에게는 어느 정도의 고독이 필요한가? 인간에게는 빵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특히 예술가에게는 빵보다도 고독이 더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러나 마이너 화이트의 말처럼 창작에 도움이 될 정도의 알맞은 고독을 누릴 수 없다는데 문제가 있다. 특히 예술가에게 있어 고독은 창작의 연료나 마찬가지지만 마이너 화이트는 유달리 고독했던 사진가였다. 그것은 그의 사진만 봐도 알 수 있다. 자신의 고독을 외부로 드러내.. 2024. 2. 28.
Bruce Davidson (브루스 데이비슨, 1933~) 나의 할아버지는 미국으로 이민해 온 유태계 폴란드인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내가 다섯 살 때 이혼했고, 그래서 어머니와 나와 내 동생은 조부모님 댁에서 살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재혼한 할아버지는 시카고로 가서 살림을 차렸다. 한편 어머니는 나와 동생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일했다. 그래서 나와 동생은 종종 외톨이가 되기 일쑤였고 우리끼리만 버려져 있곤 했다. 부모님의 이혼, 할머니의 죽음, 내가 거의 보지 못했던 이 아버지라는 작자와 거의 집에 없었던 어머니, 이런 것들이 어쩌면 학창시절에 내가 저질렀던 문제들, 외로움에 대한 나의 선호(選好), 그리고 가족들에 대한 일종의 초연함 같은 것들을 부분적으로나마 설명해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 인생은 사진을 발견하게 된 .. 2024. 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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