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근대한국정치론: 13강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외교활동
자료: 홍순호, “임시정부의 외교활동, 1919-1945”
1. 문제제기
임시정부= 망명정부(Exiled Government)
국제법의 망명정부의 요건(주권의 대표성의 자격)에 모자람
선거에 의해 선출되거나, 전통적 대표성이 있거나, 또는
정식절차에 의한 정부로 국제법은 그 요건을 요구함.
3.1운동의 기간 후반기 4월 중에 등장한 한성정부와 상해임시정부가 가장 중요한 임시정부. 이를 통합계승한 상해임정이 국내적으로 정통성을 획득한 정부. 그러나 국제법적으로 승인의 요건을 충분히 인정받지 못함
외교적 과제= 승인
임시정부의 최대 현실적 외교적 목표는 망명정부의 승인
미국, 열강- 정식 법적 승인(De Jure Recognition, )은 거부
-사실상 승인(De Facto Recognition)은 2차대전 시기에
현실적 과제= 독립운동
한국독립운동세력- 1919년 3.1운동직후부터 통합적 외교활동 개시
임정은 공식적으로 1919. 9. 에는 상해임정으로 통합
독립운동가들 간의 대립과 갈등
이승만과 상해파와의 알력
임정파와 국민대회파
민족주의 노선 대 공산주의 노선 대립
2. 상해임정의 외교(1919-32)
“파리위원부” 외교활동
김규식- 파리 외교활동 (1919. 2. 신한청년당 특사로 파견)
-임정의 신임장 도착후 임정 외무총장으로 활동
4월 한국통신국 병설
-한국독립 지지를 호소, 각국대표에게 서한전달
-열강의 미미한 호응: 강화회의는 전승국회의(일본 포함)
-민족문제는 독일, 오스트리아 지역에 국한됨
유럽지역 각종 회의에 홍보외교
- 스위스, 프랑스, 영국 등 지역에서 임정 홍보활동
- 황기환, 프랑스와 영국에 한국친우회 결성
- 그러나 영, 미 이후에 의회에서 한국문제 논의(155)
8월 미국의 임정대통령 이승만소환으로 미주행
황기환- 프랑스 인권옹호회 임원회 참석 한국문제 보고
이후 대강연회 개최/ 한국친우회 파리지부 결성 [이승만의 <구미위원부>의 지시를 따름]
구미위원부와 이승만의 대미외교
임시대통령 직속기관으로, “한국위원회/구미위원부”
(Korean Commission for U.S. and Europe)을 설치
초대위원장 김규식와 이대위, 임병직, 돌프 등 임명
필라델피아에 외교통신부 설치, 이어 주미전권특사로 서재필을 임명
<한국 친우회> 인사들과 각종 강연회 개최 및 홍보활동
미 상하원에 한국문제 상정 토론 유도- [미의회의사록]
태평양 회의[워싱턴 회의] 외교, 1921. 11- 1922. 2
- 5개 강대국(영, 미, 일, 불, 이태리) 중심 해군 군축회의 개최
- 1만톤급 이상 주력함 비율결정(5: 5: 3: 1.75: 1.75)
- 산둥반도의 독일의 권익을 중국에 반환 결정 (일의 시베리아 철병 합의)
- 9개국의 중국에 관한 조약: 중국의 독립, 영토보전 존중
-이승만, 서재필, 돌프 대표단으로 파견, 독립승인외교를 전개
- 한국 임정 요구서와 청원서를 제출
대중국외교
1921. 11. 손문의 광동 호법정부, 임정 승인
대소련외교
1922. 1. 극동인민대표대회/ 한국 52명 참석
1923. 1. 국민대표대회 소집
*기타 자료
이승만, <일본군국주의 실상> 이종익 역 (나남, 1987)
이정식, <서재필: 미국 망명 시절> (정음사,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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