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경제학회 심포지움(1997.3.27.)>
김수행-조복현교수의 “Korean Economic Crisis: New Interpretation and Alternative Economic Reform"에 대한 논평
이건범(서울대학교 경제학부 박사과정)
저자들의 논문은 한국등 아시아의 위기에 대하여 그동안 진행되어온 여러 논쟁을 정리하고 자본론의 분석틀에 의거하여 아시아, 특히 한국의 위기를 해석하고자 하는 시도로 평가된다. 특히 논문에서는 그동안 별로 주목받지 않아 온 한국에서의 경기변동, 수익율의 변화 등을 산업,금융,외환의 위기에 대한 설명변수로 채택하고 있으며, 정책처방에 있어서도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하에서는 저자들의 논문에서 약간 의문이 가는 부분들에 대하여 쟁점별로 살펴보고자 한다. 주요하게 토론하고자 하는 부분은 1. 아시아발전모델에 대한 이해, 2, AA(the Anti-Asian model View)에 대한 비판의 합리성, 3. PA(the pro-Asian model View)에 대한 비판의 합리성, 4. 이론을 뒷받침하고자 하였던 실증적 부분의 타당성, 5. 산업금융위기와 외환위기와의 관련성, 6. 정책적 처방의 현실적 적합성과 이론적 정합성(은행, 재벌, ESOP, 주식시장) 등이다.
1. 아시아 발전모델에 대한 이해
저자들은 아시아모델의 특징을 다음의 세가지로 요약하고 있다. 1. 금융시장에서 market based system이 아닌 bank based system, 2. 승자를 선택(picking winners)하고 정책금융을 지원하는 정부정책, 3. government-business-bank의 긴밀한 관련.
그동안 아시아 성공 모델은 논자에 따라서 다양한 방식으로 범주화되고 있지만 위의 특징은 빈번하게 지적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앞의 두 논의를 하나씩 다시 살펴볼 때 아시아경제의 특징으로 적용될 수 있는가는 의문이다. 만약 이러한 특징이 아시아(성공)모델의 본질적인 구성인자가 아니라면 그것이 변화되느냐 아니냐는 아시아위기의 근원을 설명하는데 중요한 것은 아니며 그것을 둘러싸 논의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다.
우선 금융시장에서의 bank based or market based system의 문제이다. 사실 market based system이라고 하는 것은 주로 미국과 영국의 증권시장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다. 전세계에서 금융시장에서 security market(주식equity과 채권bond)이 미국과 영국만큼 중요성을 갖는 나라도 별로 많지 않다. 그렇다면 나머지 모든 나라들은 따라서 bank based system이 되는 것이다(아니면 금융이 후진적이거나) 따라서 bank based system을 아시아의 특징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한편 독일과 일본의 금융시장을 염두에 두고 bank based system을 정의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동안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이들 선진국에 있어서 기업부문의 자금조달에 있어서는 은행, 증권시장 등의 역할은 그리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Collin Mayer, "Financial Systems, Corporate Finance, and Economic Development", in Asymmetric Information, Corporate Finance and Investment, ed. by Glenn Hubbard, 1990.). 따라서 저자들이 논문에서 주로 기업의 자금조달상의 특징으서 bank based 와 market based system으로 구분하고 bank based system을 아시아의 특징으로 사용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 오히려 bank based system과 market based system의 구분은 기업의 지배문제corporate governance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냐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다음으로 저자들은 아시아 발전모델의 특징을 산업정책을 통한 selective targeting에서 찾으며 그것을 정책금융(policy loan)과 연결시키고 있다. 두가지 점에서 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우선 산업정책을 selective targeting에 국한하여 보아야 하는냐이다. 사실 산업정책을 이상과 같이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그럴 경우 미국의 과학기술에 대한 예산상의 지원, 유럽에서의 공통농업정책이나 R&D에 대한 범유럽적 연구공통체 (ESPRIT나 EUREKA project등)에 대한 지원은 산업정책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게 된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의 이러한 지원도 자국 또는 자기영토안에 있는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려고 하는 노력으로서 산업정책의 일환임을 부정할 수 없다. 즉 산업정책은 각국의 역사발전단계와 산업발전상의 조건에 의하여 그 형태상에 차이가 나는 것이다. 따라서 산업정책을 selective targeting에 국한하여 살펴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
한편 후진국의 산업정책에서 selective targeting을 하는 것은 아시아만의 특징은 아니다. 즉 남미나 아프리카의 국가들에서도 전략적인 산업이라는 것에 국가가 보조하는 것은 일반적인 것이다. 따라서 산업정책, 특히 선별적인 개입이 아시아에서는 성공할 수 있었던 요소가 아시아의 특징인 것이지 단순하게 산업정책과 industrial targeting을 했다는 것으로 아시아를 특징지울 수는 없다.
한편 정책수단으로서 정책금융(policy loan)은 아시아의 특징으로 과대평가되고 있다. 물론 선별적인 지원에 있어서 금융적 지원의 중대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선별지원정책에 있어서 금융지원의 정도가 국가마다 동일한 것은 아니다. 또한 은행을 통한 정책자금의 중요성은 어떻게 보면 한국에 있어서 특징적으로 중요한 것이지 다른 아시아권의 나라에서도 그렇지는 않다. (Taiwan의 경우를 보라) 그리고 선별정책의 수단은 매우 다양하며(조세상의 지원, 무역정책에서의 수단들, 정부조달시장에서의 정책 등) 금융상의 지원도 매우 다양하다.(한국과 같이 정책금융에 의한 방법, 일본에서의 재정투융자에 의한 방법, 싱가폴에 있어서의 국가투자기금과 국가Venture capital fund등, 대만에서와 같이 직접적인 공기업에 대한 투자 등) 또한 남미나라들에서도 보듯이 정부가 국가은행(특히 개발은행)을 통하여 대기업에 대하여 지원하는 것은 아시아권밖에서도 일반적인 현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저자들의 아시아모델에 대한 정의는 주의가 필요하다.
오히려 아시아발전모델의 특징을 아시아위기이전의 고속성장속에서 찾는다면 다음의 세가지가 가장 중요하며 아시아위기에 근본적인fundamental 어떤 것이 있었다면 이 세가지의 특징에 큰 변화가 있었는가에서부터 고찰되어야 할 것 같다.
첫째, 건전한 거시경제정책 (the sound macro economic policy) --아시아 경제의 성장의 특징은 거시적인 안정성과 거시경제정책의 건전성이다. 따라서 거시적 안정성을 크게 저해할 수 있는 외부환경적인 변화나 그것을 수용할 수 있는 국내거시경제정책의 조정자들의 능력이 없었다면 그것은 아시아 경제기적의 근본적인 요인을 변화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상호성, 즉 성과에 근거한 보조(reciprocity--subsidy based upon performance) 그리고 under-performance에 대한 punishment-- 사실 2차대전이후 후발개발도상국의 성장과정에서 정부의 지원은 일반적인 것이었고 아시아의 특징은 아니다. 문제는 보조를 하되 그에 상응하는 “성과를 제도자체가 강제”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후진국에서 지원과 보호가 그냥 줘버리는 것(give away)에 그친 반면 동아시아국가들에 있어서는 지원에 상응하는 수출지원, 생산증대를 강제하였고 그것을 강제할 수 있는 기제(mechanism)가 효과적이었다. 만약 이러한 조건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이 있었다면 그것이 아시아 경제위기의 본질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양호한 초기조건(the initial favorable conditions) 특히 성장초기의 부의 공평한 분배와 높은 교육수준(이 논의에 대해서는 특히 Dani Rodrik, Understanding Economic Policy Reform, Journal of Economic Literature, 1996을 참조하라) -- 다른 후진국과는 달리 아시아국가들에서는 비교적이른 시기에 농지개혁이 있었고 높은 교육수준을 유지하였기에 재분배적인 투쟁(the redistributional politics)을 줄이고 발전된 생산기술을 습득하는데 유리한 조건을 구비하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선진국의 발전된 기술을 습득하여 성장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조건은 물론 장기적인 것이지만 급격한 분배악화가 다른 정치사회적인 혼란과 결부된다면 경제적인 위기를 가져올 수있다. 만약 이러한 조건에 큰 변화가 있었다면 그것이 아시아위기의 근원적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아쉽게도 논문에서 저자들은 이상의 논의에 대하여는 크게 주목하지 않고서 아시아의 특징을 지적하고 있다.
2. The Anti-Asian Model(AA)에 대한 평가의 문제
저자들은 AA의 논의가 아시아위기가 도덕적해이의 문제와 crony capitalism에 크게 연유하는 것을 비판하면서, 도덕적해이없이도 business boom에서의 excessive optimism 과 그에 따른 과잉투자가 있어서 결국은 그것이 수익성악화를 가져오고 그리고 경제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business boom에서의 euphoria문제를 micro economics에서 사용하는 ‘불완전정보문제’로 바꾸어 표현한다면 양자의 차이는 별로 없다고 할 것이다. 즉 낙관적인 기대는 ‘투자자에게 성공에 대한 확신이 증대되어 이전보다는 더욱 위험하지만 수익성이 높다고 예상되는 사업에 대한 투자를 하게 하는 것’으로 표현할 수 있으며, 그것은 수익성에 대한 기대의 확률분포가 mean preserving spread에 의하여 변화하였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실 이는 불완전정보하의 도덕적해이를 지칭한다고도 볼 수 있다. 따라서 저자들의 자본주의에서의 호황기 과잉투자의 필연성과 미시경제학에서의 도덕적인 해이문제는 표현방식(전자는 자본주의라는 제도라는 측면에서 본것이고 후자는 투자자의 측면에서 본 것)이 다를 뿐이지 내용에서는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다.
또한 AA에 대한 비판에서 저자들이 특징화한 3요소의 변화에 크게 주목하고 있는데 앞에서 보았듯이 이 3요소가 본질적인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따라서 이요소들의 변화여부는 아시아모델의 fundamental에 대한 변화의 근거로는 미흡하다.
3. PA에 대한 평가의 문제
저자들은 PA의 논의를 ‘1990년대의 금융시장의 자유화(개방포함)와 이에 따른 전통적인 아시아발전모델(특히 금융자원의 분배)의 와해와 위기’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사실 PA의 논의의 핵심은 자유화deregulation라기 보다는 the deregulation(liberalization) without proper regulation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이것은 Amsden and Euh의 New York Times기고나 Chang의 too few regulation의 논의에서 볼 수 있다)
저자들이 PA의 논의의 핵심을 잡는데 혼동이 있었던 이유는 regulation 또는 government intervention을 단순화하였기 때문이다. 예외적이기는 하지만 후진국에서 자본시장의 개방에 있어서 급격한 변동을 피할 수 있었던 나라들도 있다.(Chile의 90년대, 홍콩과 아르헨티나의 Currency Board System등) 즉 이는 외환시장개방이라고 하는 자유화정책(deregulation)이 반드시 불안정성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문제는 자유화정책과정속에서 시장의 불안정성을 제거할 수 있는 장치가 있었느냐 없었느냐 하는 것이다. 불행이도 이번 아시아외환위기를 겪은 나라들은 그것이 불비하였다는 것이다. 즉 일본이나 중국 심지어 대만에 있어서도 그 은행들의 부실화율은 정도에 차이가 있지만 한국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이들 나라에서 대규모의 자본유출(즉 급격한 환율변화를 예상한 투자자들의 자본회수)이 없었던 이유는 이들 국가가 상당한 외환을 보유하였거나 제도적으로 급격한 외화유출이 불가능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환보유고가 적은 나라에서는 제도적으로 단기간 급격한 자본유출을 제어할 수 있는 장치가 있었어야 했는데 그것이 없었던 것이다. (한국에서는 외환시장개방에 따른 hot money의 급격한 자금유입에 대한 대책만 부분적으로 있었지 급격한 자금이탈에 대한 방어책은 구비되어 있지 않았다. 즉 환율변동을 hedge할 수 있는 외환선물시장도 없었으며, 이자율인상을 통하여 유출을 방지할 단기채권시장의 개방도 지연되었었다.)
또한 regulation을 금융적자원의 흐름을 규제하는(즉 allocating financial resources) 것과 동일한 것으로 생각할 수는 없다. 자원배분을 시장에 맞기면서도 (즉 정부의 자원배분에 대한 regulation없이도) 금융시장의 거시적인 안정성을 위한 regulation을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자원배분에서의 정부개입이라는 regulation이 금융시장의 거시적인 안정을 해칠 수도 있다.
4. 실증적인 근거들에 대한 검토
저자들은 ‘국내적인 과잉투자(특히 재벌), 과잉투자에 따른 부채비율의 증가, 과잉경쟁에 따른 가동율저하와 수익성(이윤율)의 저하, 국내기업의 도산, 은행의 부실채권누적, 부실채권누적에 따른 해외투자자의 roll over거부, 그에 따른 외환위기’로 현금의 한국의 위기를 설명하고 있다. 이와 같은 전통적인 자본론의 TRPF 해석에 따라서 금번위기를 설명하는 논거로서 한국에서의 높은 부채비율, 제조업에서의 수익성의 저하가 실증적인 지표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저자들은 특히 산업과 금융위기가 외환위기를 cause한 것이지 그 역이 아니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논의가 타당한 것 같으나 실질적으로 얼마나 설명력이 있는지는 더욱 자세한 자료들에 근거하여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저자들이 분석하고 있는 것은 자본주의에 있어서의 일반적인 공황( a crisis in general)이 아니라 ‘1997년도말의 한국에 있어서의 공황’이라고 하는 시공적으로 특수한 공황(the crisis specific in time and space)이라는 점을 고려하여야 할 것이다. 특히 공황을 산업생산의 급박한(점진적이 아닌) 정지와 파산, 대량실업이라고 할 때 지표상 저자들의 논거가 충분한 타당성을 갖는지는 검토되어야 한다.
1997년의 아시아의 위기, 특히 한국에서의 위기를 설명하기 위해서 과잉투자의 문제와 과잉채무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는 것이다. 또 96년 이후 기업의 부채비율이 높아지고 수익성이 낮아졌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부채비율의 증가와 수익성(이윤율)의 악화가 왜 이번기에는 여타 다른 business cycle과는 달리 1960년대이후 최악의 급격한 공황을 가져오게 하였는가 이다. 그 이유는 한국에 있어서 높은 부채비율과 낮은 수익성, 그리고 경기침체기에 이들 지표들이 악화된 것이 이번 business cycle의 특징만은 아니고 다른 business cycle에서도 나타났었기 때문이다. 또한 지표상에서도 90년대에 있어서 96년이후의 지표들의 변화-- 부채비율의 악화 수익성의 악화--의 정도는 그렇게 급격한 것은 아니었다(표 1,2,3,4를 참조하라. 표에서는 90년도의 지표만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1997년의 지표들은 1997년 IMF행 이후의 결과이므로 해석상 주의가 필요하다) 또한 이번 부채비율의 증대도 제조업전체와 5대재벌의 경우에 볼 때 그렇게 심한 것은 아니다. 시기별로 볼 때 한국제조업전체의 차입금의존도는 1971-75년 48.5%, 1976-80년 47.9%, 1981-85년 45.4%, 1986-90년 42.3%, 1991-95년 45.9%, 1996년 47.7%이다. 따라서 이번 위기에 특징적으로 부채비율이 급속히 증가하였다고는 볼 수 없다.
반면 수익성지표들에서 제조업전체나 재벌의 수익성이 1996년에 이전기에 비하여 악화되었다는 것을 볼 수 있다.(<표3>에서는 Marx의 이윤율개념에 가까운 총자본경상이익율을 <표4>에서는 기업의 총괄적인 활동의 지표로 사용되는 매출액순이익율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수익성지표는 연간활동의 총계적인 지표를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에 특징시기의 위기를 설명하는 지표로 이들을 직접 사용하는 것에는 의문이 남는다. 한편 이번 위기의 원인을 6대이하의 재벌들의 과잉투자와 저수익성이라고 한다는 근거는 <표4>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더욱 의문이 가는 것은 이들의 저수익성은 1992년이후 지속적이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이전의 한국의 경기순환에서와 같이 이번의 위기도 지금과 같은 급격한 위기가 아닌 mild한 recession이 될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한편 1996년과 1997년의 수익성악화에 대해서 그 주요원인로 지적되고 있는 사항은 1996년이후의 악화된 무역조건 특히 수출가격의 하락과 원화가치감소에 따른 환차손이다. (이에 대하여는 한국은행 조사통계월보 1998년 5월, ‘1997년 기업경영분석’과 박대근, 이창용의 ‘한국의 외환위기:전개과정과 교훈’ 서울대학교 Mimeo를 참조하라) 이것들이 경기순환상의 특징적인 것이라면 저자들의 논의의 논거가 되겠지만 일시적인 또는 외부적인 요인이라고 생각한다면 다른 해석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따라서 저자들의 연구대상이 ‘1997년 후반’에 있었던 ‘한국’의 위기라고 한다면 왜 이시기에는 다른 시기와는 달리 공황이 폭발적으로 일어났어야 했는가? 그리고 이전시기와는 특히 달라진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등에 대한 좀더 구체적인 답변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5. 산업금융위기와 외환위기의 관련
논문에서는 외환위기를 국내적인 위기들(산업위기, 금융위기)의 결과로서 해석하고 있는데 논리적인 인과관계와는 별도로 시간상의 지표들을 볼 때 주의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표5>에서 보듯 폭발적인 실업과 산업생산의 위축, 가동율의 저하는 오히려 외환위기가 표면화된 1997년 11월이후의 일이다. 물론 잠재적인 것이 외환위기로 표면화된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외환위기가 국내적인 산업생산의 위축과 가동율의 저하, 실업의 폭발적인 증대에 미친 영향도 과소평가되어서는 안된다고 할 것이다.
6. 정책적인 처방에 대하여
저자들은 여러 가지 대안들을 제시하고 있는데 각각에 대한 검토하여 보자.
(1) 은행
저자들은 은행의 민주적인 경영을 위하여 분산된 주식소유와 ‘Credit control committee'를 제안하고 그 구성원을 주주, 차입자, 예금자, 종업원, 일반시민으로 하여 사회적으로 유용한 자원배분을 하도록 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그리고 중앙은행의 독립은 ’자본가‘에게만 도움이 되며 반노동자적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보다 포괄적인 책임있는 인사들에 의한 금융통화위원회의 구성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사실 IMF이전 한국에서의 은행주식소유는 다른 어떤 기업에 비하여 광범위하게 분산소유되어 있었다. 따라서 분산된 주식소유의 유무는 은행경영의 건전성에 대한 어떠한 충분조건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경영의 건전성을 담보할 수 있는 이사회의 구성과 경영진의 형성인다. 문제는 저자들의 제안에 따라서 credit control committee를 구성하는 것이 실현가능성과 유효성을 갖느냐 하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시도는 공익을 대표하는 인사가 포함된 ‘행장선임위원회’라는 제도를 통하여 시도되어온 바 있지만 정부로부터의 개입을 피한다는 구실하에 은행내부자들에 의한 경영독점으로 변화하여 여러 폐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저자들도 강조하고 있듯이 은행이 ‘사회적자본’인 은행에 모아진 예금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지식과 외부압력에 부응하지 않는 독립적인 대출심사기능을 갖는, 그리고 monitoring 능력이 있는 은행산업의 발전이 필요하다고 보는데 credit control committee가 이러한 능력을 가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또 저자들과 같이 중앙은행의 독립성문제를 긴축정책에 주목하여 인식한다면 (화폐)자본가와 노동자의 대립적인 구도속에서 독립성문제를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앙은행의 독립을 정부내에서의 독립, 즉 인플레이션유발적인 정책을 쓰는 정책당국으로부터의 화폐가치의 안정을 찾으려는 독립이라고 본다면 중앙은행의 독립은 오히려 정액소득에 의존하는 임금생활자에게 유리할 수도 있다. (사실 많은 후진국의 경우가 이것이다) 따라서 최근 출범한 유럽중앙은행의 예정되는 행태나 80년대 미국 폴볼커시기의 연방준비은행의 행태에 근거하여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비판하기 보다는 후진국일반의 특성에 근거하여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평가하여야 할 것이다.
(2) 재벌
저자들은 재벌의 개혁을 위하여 이사회구성의 다양화, 상호주식의 보유(reciprocal share-holding)금지, debt-equity swap 등을 제안하고 있으며 재벌의 해체를 주장하고 있다.
한국재벌의 지배상의 특징은 소액지배주주(the controlling minority shareholder)에 의하여 경영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소액지배주주의 이론적인 논의에 대해서는 Lucian Bebchuk et al."Stock Pyramid, Cross-ownership, and Dual Class Equity', NBER Working Paper 6951, 1999를 참조하라) 그리고 그 수단은 pyramid형 주식소유이다. 이럴 경우 경영자는 소액의 자본을 갖고도 엄청난 규모의 자산에 대한 지배의 이득을 누린다. 이것의 폐해를 막는 방법으로서 위의 대책들이 실효성을 갖는지는 검토되어야 한다.
우선 상호주식의 보유금지는 이미 한국의 상법과 독점금지 및 공정거래법의 규정에 의하여 이미 금지되어 있다. 문제는 공개된 또는 비공개된 기업을 통한 pyramid형 소유를 제한하는 것인데 이것에 대한 대책은 한국에서는 아직 출자한도제한정책에 의한 것 밖에 없으며 그 실효성도 의심받고 있다. 따라서 미국에서와 같이 강력한 독점금지법에 의한 규제(경쟁을 제한하는 회사간의 주식소유관계의 청산을 명령할 수 있다)를 시행하거나 아니면 기업간배당소득(the intercorporate dividend tax)에 대한 과세를 통하여 기업간 주식소유의 제한을 유도하는 정책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한편 은행부채와 주식의 스왑은 은행의 경영측면에서 약간의 문제가 있다. 즉 이와 같은 방식을 시행하면 은행은 확정부이자부자산을 포기하고 위험이 증대된 주식을 소유하게 된다. 따라서 만약 현재와 같은 재벌경영체제를 변화시킬수는 없는 가운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정도의 주식만을 은행이 소유하는 경우 은행의 추가적 부실화가 있을지도 모른다. 더욱이 debt-equity swap은 현재 재벌도 원하는 것이다. 특히 우선주에 의한 스왑을 통하여 비이자지급성 자금을 확보하면서 지배를 유지하려고 하고 있다. 따라서 debt-equity swap에서는 은행은 투표권있는 보통주의 소유를 통해 재벌에 대한 견제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은행이 재벌을 소유하면서 건전한 경영을 할 수 있으려면 무엇보다도 은행경영이 건실하게 유지될 수 있는 능력과 제도가 형성되어야 한다. 따라서 이러한 은행제도의 정비가 이루어지기 이전에 debt-equity swap으로 재벌개혁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재벌기업체 이사회구성의 다양화가 재벌의 내부경영의 효율성을 높일 수도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수많은 stakeholders와 시민을 참여시키는 것이 내부적인 견제를 강화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즉 이사회구성의 바꾸는 것은 기업경영에 대한 내부적인 견제인데 만약 시장지배력의 존재나 진입장벽으로 외부경쟁여건이 구비되지 않는다면 내부경영의 건실화를 기대하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재벌해체를 주장하는 저자들의 의도는 사실 ‘재벌해체’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정의하지 않으면 공허한 것이다. 이미 6대 이하의 많은 재벌은 IMF의 파고와 시장의 압력으로 해체되고 있다. 문제는 5대재벌인데 정부의 정책도 재벌해체라기 보다는 지주회사방식에 의한 기업연합체로 바꾸는 것에 머무르고 있다.(사실 이것은 일본형 케이레츠를 염두에 둔 것이라고 생각된다) 재벌이 의미하는 바를 우선 첫 번째의 정의로서 ‘tight한 소유관계에 의존한 기업집단’이라고 한다면 유일한 방법은 서로 복잡하게 연관된 소유관계를 단절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자본주의적 사적소유권을 인정하는 제도속에서 이것을 급진적으로 실행시킬 도리는 없다.(일본에서의 자이바쭈해체도 전후패전국에 대한 승전국의 강제에 의해서만 가능하였다) 만일 ‘총수에 의한 지배‘를 재벌의 또 다른 정의라고 한다면 점진적으로 총수를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게 하면서 무능한 가족경영자를 주주로서 만족하게 하는 방식을 생각할 수 있다.(이것은 채권금융기관 그리고 주식시장의 압력을 통하여 가능할 것이다. 미국에서 20세기로 진입하는 단계에서 금융기관들의 압력이 무능한 후계자로의 경영권승계를 제어한 경우를 많이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총수와 가족경영의 비능률문제를 해결한다고 하더라도 전자의 문제, 즉 회사간 복잡한 소유관계에 의한 기업집단의 문제는 여전히 남는 것이며 이것이 현재 일본 게이레츠의 딜렘마이다.(최근 일본경제의 장기불황과 게이레츠의 중핵은행들의 부실문제를 기업구조문제에서 찾는다면) 따라서 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재벌을 해체할 것인가에 대한 대책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3) ESOP(종업원지주제도)
저자들은 노동자의 주식소유를 소유권분산과 재벌개혁의 대안으로 제시하고 법적으로 강제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노동자의 주식소유문제는 그것을 할 것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할 것이냐가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한국에서 1970년대 기업공개촉진법이후 종업원지주제도는 상당히 발전되어 있다. 현재 법적인 강제적 규정을 만들 필요도 없이, 상장회사의 경우 거의 100%에 가깝게 우리사주조합이 결성되어 있다(1997년 말 총상장회사776개사중 3개사만 우리사주 조합이 없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우리사주조합의 주식취득에 있어서 약 30에서 50%에 이르는 자금이 회사의 무이자대부를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우리사주조합제도가 종업원의 주식소유를 통한 부의 증진과 참여동기확대라는 바람직한 효과를 갖는다는 것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종업원주식소유자금에서 회사의 무이자대부의 중요성에서도 보듯 현재 가장 중요한 우리사주제도의 효과는 경영권의 안정화이다. 만약 부실한 경영자를 도태시키는 것이 효율적인 지배구조의 선결과제라고 한다면 경영권안정을 위한 우리사주제도는 오히려 변혁을 지체시키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 또한 만약 회사가 경영악화로 파산되는 경우를 상정한다면 우리사주조합원인 종업원은 직장을 잃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축적한 자산마저도 상실당하게 된다.(즉 human capital과 financial capital의 집중된 투자로 인하여 portfolio분산투자의 장점을 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ESOP의 확대는 주의가 요망된다고 하겠다.
오히려 보다 광범위한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퇴직연금적립을 통해서 기금을 설립하고 그것이 기관투자가화하도록 하여 다양한 기업에 투자,감시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된다.(미국의 CalPERS(the California state public employees retirement systems)나 TIAA-CREF(Teachers Insurance and Annuity Association- College Retirement Equity Fund)가 그러한 예라고 할 수 있다)
(4) 주식시장
케인즈도 지적하고 있듯이 주식시장은 공개된 casino로서 효율적인 자원배분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이러한 논의는 Stiglitz가 후진국의 바람직한 금융제도를 논의하는 데서도 찾을 수 있다.(Joseph Stiglitz, The Role of the State in Financial Markets, Proceedings of the World Bank Annual Conference on Development Economics, 1993)
그러나 이와는 달리 최근의 연구에서는 속속 주식시장의 발달은 경제성장과 양의 상관관계를 갖는다는 것이 입증되고 있다.(Ross Levine, Financial Development and Economic Growth: Views and Agenda, Journal of Economic Literature, 1997) 즉 금융자금의 카지노도 잘 이용되면 성장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그것은 효과적인 정보의 유통과 이용, 기업지배권시장의 확립을 통한 비효율적인 경영에 대한 견제 그리고 생산적인 자금의 분배 등을 통하여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주식시장은 또한 저자들이 강조하고 있듯이 은행과 재벌의 소유권의 분산화를 위해서도 발달되어야 한다. 따라서 요구되는 것은 주식거래에 대한 과세등 제약이 아니라 주식시장의 투명성을 높여서 주식시장의 긍정적인 효과를 볼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주식시장의 성장이 일정수준에 이른다면 다른 금융자산의 소득에 상응하는 과세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한편 저자들은 주식시장의 투기화를 예로 들어 비우호적인 인수합병에 대한 제약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것은 투기적인 거래가 기업을 근시안적으로 만들어서 장기적인 성장을 제약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러나 주가를 미래수익에 대한 현재의 가치라고 가정하고 합리적인 투자자가 기업의 장래성에 의존하여 투자한다면(즉 기업의 장기적인 수익성에 근거하여 투자하는 기관투자가의 경우와 같이), 그리고 주가가 경영자를 평가하는 지표로 사용될 수 있다면 발달된 주식시장은 경영자에 대한 효과적인 감시장치로서 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 한국에서 지금까지의 주식시장은 자금조달상의 역할이외에 이와같은 경영자의 견제장치역할을 할 수 없었고 기업정보의 공개에도 유효하지 못하였다.
또한 한국의 재벌지배구조의 특징때문에도 주식시장의 기능은 강화되어야 한다. 만약 한국재벌의 문제를 소액주식을 갖고서 방만한 경영을 하는 소액지배주주-경영자(controlling minority shareholder-manager)의 문제라고 한다면, 그리고 한국에서 그동안의 주식시장정책이 과도한 경영권의 보호라고 한다면, 주식시장에서의 인수합병은 오히려 더욱 장려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주식시장의 인수합병의 동기가 ‘기업경영의 부실로 인하여 내재적인 기업가치에 비하여 under performing하는 기업을 선별하여 유능한 경영자로 교체함으로써 기업가치를 높여 이익을 얻으려고 하는 것’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주식시장에서의 인수합병의 부작용(즉 내부자거래나 사기 등)은 최소화되어야 하겠지만, 주식시장에서의 인수합병을 통한 위협이야말로 방만한 투자와 무분별한 다각화를 하는 한국재벌의 경영자에 대한 가장 강력한 견제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의 논의에서 논문에서의 여러논의를 검토하여 보았다. 저자들은 논문에서 기존논의와는 다른 새로운 시각에서 문제를 파악하여 보다 근원적인 질문을 제기하고 있으며 한국경제에 대한 건설적인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위의 검토에서 보듯 아직도 여러 의문들이 아직도 그 답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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