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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 Cinema

서글프다..그래서 더 시대의 아픔이 녹아 있는 "공동경비구역 JSA"

by 淸風明月 2011.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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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글프다..그래서 더 시대의 아픔이 녹아 있는 "공동경비구역 JSA"

박찬욱 감독의 세번째 작품이자 기존의 경향과는 대조를 이루는 영화가 "공동경비구역 JSA" 이다. 남북분단이란 민감한 문제를 현실적인듯한 이야기로 풀어내며 그 안에서 남과 북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 영화평론가들은 이런 류의  영화들이 관념성과 감상성, 엄숙주의에 빠지기 쉽다고 한다. 그러면 영화는 결코 공감할 수도 없고 재미있지도 않은 정치영화가 되거나, 기운 쭉 빠지게 하는 감상영화가 되기 십상이란다.  그래서 처음부터 "공동경비구역 JSA"는 아주 어려운 길을 걸었는지도모른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그런 우려는 보이지 않는다. 이 영화는 그렇게 관념적이지도 않고 감상적이지도 않다. 그렇다고 엄숙한가 그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런것에는 무관심하다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는 분단이라는 현실을 표면화하지 않는다. 대신 그 자리를 주인공들의 마음가는대로 행하는 행동으로 대신하고 있다. 심지어 어쩔 수 없는 장벽의 그늘이 드리워지는 장면에서조차 영화는 웃음을 잃지 않고, 시종일관 따뜻하며, 한 순간도 인간 그 자체를 잊지 않는다. 영화는 관객들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슬퍼하라고도 강요하지 않으며 엄숙하라고도 강요하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감독은 마치 한걸음 물러나 앉아있는듯 하다. 그것은 관객들로 하여금 스스로 그 답을 찾게 하려는 것으로 보여진다.

영화에서 이수혁(이병헌 분)이 초코파이를 먹는 오경필(송강호 분)에게 남으로 내려가자는 농담조의 말을 던진다. 그 순간 분위기는 얼어붙고 이병헌은 웃으며 말을 흘린다, 그 뒤 나오는 송강호의 "조국이 남조선보다 과자를 더 잘 만드는 미래" 운운하는 대사를 한다. 그것으로 긴장은 풀어진다. 만약 여기서 이변헌의 대사에 대한 진지한 맞 대사가 존재했다면 영화는 아마 평론가들의 우려대로 흘러 갔을 것이다.  그러나 박찬욱은 이병헌의 딱 한 마디만으로 할 얘기를 슬쩍 비추고 영화의 수위에 교묘하게 리듬을 부여한다. 그리고는 이내 절제한다. 영화의 마지막에 관객들은 상당한 수준의 슬픔을 느끼게 되는데, 그것은 그 시점까지 정말 잘도 참아온 절제 때문일지 모른다.


절제를 통해서 팽팽한 긴장감과 감정을 창조해내고 있는 영화 민감한 문제를 일상으로 풀어가려는 연출. 하지만 공동경비구역에는 이런 감독의 의도와 맞물힌 우리들의 서글픈이 묻어 있다. 순간순간의 웃음에는 서글퍼서 더 시대의 아픔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한다. 이인훈의 소설"광장"의 시각을 빌려온 영화는 이제까지의 무수한 반공영화들과는 다른 메세지를 보여준다. 진실은 때론 세밀화에 가까워서 관객의 마음을 가볍게 해 준다. "김광석은 왜 그렇게 빨리 죽었어"라고 외치는 북한 병사 오경필(송강호)의 대사에, 웃음과 함께 벽이 허물어지는 것을 느끼는 것은 지난날 신파 반공영화와는 사뭇 다른 가벼운 어조이다. 어쩌면 <공동경비구역>이 직접적으로 현실을 논하기보다는 '이데올로기의 현실'을 표현하는데 우회로를 선택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남북 병사의 은밀한 만남이라는 알레고리를 통해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를 만들고, 벤야민이 묘사하였듯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회자될 수 있는 생명력 넘치는 상상력의 공간을 만들어 놓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남북병사의 만남이란 작은 '진실'이 무게를 짊어질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알레고리적 상상력이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것은 영화의 마지막 엔딩 크레딧으로 나오는 '사진'에서 압축되어 보여진다. 진실은 묻혀 버린 채 한 장의 사진 속에 네 명의 병사 모두를 담고, 각각의 얼굴을 보여주는 장면은 진실이 무엇인지를 열어놓는 좌표가 된다. 진부하지만 놀랍도록 가장 적합하며 인상적인 마무리라고 할 수 있다. 영화에서는 가볍지만 현실에서 그 진실은 너무나 무겁다. 우리 시대에 이데올로기로 점철된 현실마저도 언젠가는 허물어지겠지만 지금의 현실은 아직도 서글프고 시대의 아픔이 녹아 있다. 영화는 이런 현실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지만 결국 다시금 서글픈 현실을 직시하게 만든다. 그래서 이 영화가 매력이 있는가 보다. 언젠가는 현실의 이데올로기도 승화되겠지란 희망을 주기에... 

Cinema Paradiso  NO.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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