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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ntio ergo sum

인권단체연석회의가 뽑은 2011년 10대 인권뉴스

by 淸風明月 2011.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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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리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향해 "희망의 버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를 위해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85호 크레인에 올라간 지 150일째, 희망의 버스가 부산을 향했다(6.11~12). 희망의 사다리를 타고 한진중공업 죽음의 공장 안으로 들어간 탑승객들은 희망의 작은 씨앗을 뿌려놓았다. 이후 2차(7.9~10), 3차(7.30~31), 4차(8.27~28, 서울), 5차(10.8~9)까지 이어진 희망버스는 절망의 세상에 희망의 연대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 경찰은 집회 금지를 통보하고 불심검문과 통행 제한, 거리 불법 감금, 대량 연행, 물대포 살수 등 갖은 탄압을 자행했지만 탑승객들은 거침없이 달렸다. 국가인권위는 긴급구제신청을 기각하고 의견표명을 보류하며 침묵했지만 인권활동가들은 인권침해감시단과 무지개버스로 저항의 현장에 함께 했다.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하자던 약속은, 정리해고자를 1년 안에 복직시키는 노사 합의안(11.10)으로 한 매듭을 짓게 되었고 김진숙 지도위원과 크레인에서 함께 농성했던 박성호, 박영제, 정홍형도 땅으로 내려올 수 있었다. 희망버스에 대한 탄압은 송경동, 정진우 구속으로 이어졌지만 이미 족쇄를 벗어난 희망은 정리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만들 때까지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다. 


2. "도가니 해결" 공익이사제 도입을 통한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으로

영화 <도가니> 흥행 이후 영화의 배경이 된 광주인화학교 성폭력 사건의 해결과 함께 사회복지법인의 이사회에 1/3 이상의 공익이사를 둠으로써 사회복지시설을 개방하고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한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안이 의제로 떠올랐다. 인권사회단체들은 10월 4일 야4당과의 공동기자회견을 시작으로 도가니대책위를 결성하고 △원작자인 공지영 작가 등이 참석한 시민문화제 △개정안 마련을 위한 국회 정책토론회 △보신각 1박2일 전국집중투쟁 등을 진행했다. 매주 주말 전국의 <도가니> 상영관 앞 등에서 10만 청원 서명운동을 진행하여 서명지를 국회에 전달했고, 광화문광장에서 매일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현재 국회에는 진수희 의원(한나라당), 박은수 의원(민주당), 곽정숙 의원(민주노동당)이 각각 발의한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안이 계류되어 있는데 모두 공익이사제 도입을 골자로 하고 있다. 여야가 모두 공익이사제 도입을 찬성하는 상황에서 개정안이 11월 22일 국회 보건복지위 법안심사소위 안건에 올랐지만 한나라당의 한미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날치기로 회의가 중단됨에 따라 논의되지 않았다. 내년 총선 일정을 감안하면, 이번 정기국회에서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못할 경우 회기 만료로 자동 폐기될 수 있는 상황이다. 공익이사제는 17대 국회에서도 정부안으로 제출된 적 있지만 한나라당과 시설장들의 반발로 좌초한 바 있다.


3. 표현의 자유는 숨 막힌다.  "G20 쥐 포스터 유죄 판결" 

경찰은 2010년 10월 31일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주변 가판대에 G20 홍보 포스터에 쥐를 그려 넣은 낙서를 한 대학 강사와 대학생에 대해 ‘재물손괴’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며, 한 인문학 연구 학술단체를 이들의 배후로 지목하고 수사를 벌였다. 영장은 기각되었으나 검찰은 결국 공용물건 손상으로 기소했고 2011년 5월 1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10단독 이종언 부장판사는 대학강사에게 벌금 200만원을, 대학생에게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표현과 창작의 자유는 헌법에서 보장하는 기본권이지만 타인의 명예가 훼손되거나 공중도덕을 침해하는 경우까지 무제한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며 “공공물인 G20 포스터에 낙서한 것은 창작과 표현의 자유 범위를 넘어 형법에서 금지하는 행위로 정당화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G20 그래피티는 예술창작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 영역으로 보장되어야할 영역임에도 검찰은 전형적인 공안의 시각으로 이 사건을 받아들였으며 법원도 기계적으로 법을 적용해 벌금형을 선고했다. G20 그래피티에 대한 유죄선고는 한국 사회 표현의 자유가 제약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4. 집단해고에 저항하고 노동조건을 바꾸기 위한 청소노동자들의 장밋빛 행동 아름답다.

새벽 첫차를 타고 출근해 하루 종일 일해도 월 임금 75만원에 한 달 식대 9000원. 열악한 노동조건을 바꾸고자 노동조합을 설립한 홍익대 청소노동자들을 세찬 겨울바람보다 더 춥게 한 것은 새해 벽두 집단해고 통보였다.  ‘우린 유령이 아니다, 노동조건 개선하라!’는 홍익대 청소노동자들의 요구에 수많은 사람들의 연대와 지지가 이어졌고, 어느 때보다 추웠다던 겨울을 뜨겁게 보낸 그들은 49일 간의 농성 끝에 임금 인상, 식대보조비 지급, 전임자 허용을 쟁취하고 당당하게 일터로 복귀했다. 뒤끝작렬 홍익대의 2억8천 손해배상 청구에 맞선 싸움은 현재진행형. 청소노동자 권리 찾기를 위해 활동해온 ‘따뜻한 밥 한끼의 권리 캠페인단’은 2011년 상반기 서울지역 청소노동자 실태조사 결과를 토대로 22개 법제도 개선 요구안을 발표, 관련법을 개정하도록 9월 29일 국회에 입법청원을 하였고, 40만 청소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개선되도록 함께 요구하는 10만 장미 서명운동을 진행 중이다.

5. 국민의 저항, 차벽·물포로 막을 수 없다. "한미자유무역협정 날치기 무효"

11월 22일 한나라당이 기습적으로 본회의를 열어 한·미자유무역협정안(FTA) 통과시켰다.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 미래희망연대, 창조한국당 소속 의원 등 170명만 참여한 가운데 찬성 151, 반대 7, 기권 12로 비준안 가결한 이번 본회의는 4시 24분에 시작해 4분 만에 처리되었다. 2007년 6월 30일 양국의 대통령이 협정에 서명한 이후 농축산업 붕괴, 문화다양성 파괴, 비정규직 확대, 의료비용 증가 등 예상되는 문제로 인해 비준이 미루어졌으나 결국 여당 중심으로 독단적으로 처리되었다. 국민주권을 송두리째 빼앗길 수 없다며 시민들은 연일 거리로 나섰다. 경찰은 여의도에서 행진하던 사회단체 대표자들에게 물포를 직사하여 고막파열, 뇌진탕 증상이 나타나는 등의 부상을 입혔다. 특히 광화문과 종로 일대에서 벌어진 집회에서는 영하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물포를 사용하여 여론의 강한 비난을 사기도 했다. 

한편, 집회시위의 자유를 위축시키려는 경찰의 노력은 물포 사용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경찰은 광장 차벽설치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요 집회 장소에 차벽을 설치하거나 이동제한, 불심검문, 거리감금 등으로 집회 개최자체를 무력시켜 왔다. 얼어붙어 있는 국민의 마음을 녹일 방법을 알지 못하고 물포와 차벽으로 국민의 분노만 들끓게 하는 정부. 상위 1%를 위한 정치를 굳이 확인시켜준다면, 99%도 권력은 민중에게 있음을 반드시 확인시켜줄 것이다. 


6. 강제퇴거에 맞선 상가세입자 재정착 권리 일궈낸 "두리반"  cafe.daum.net/duriban

용산참사가 일어난 지 채 1년이 안된 2009년 12월 24일, 홍대 앞 칼국수보쌈전문점 두리반에 철거용역 30여 명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두리반의 모든 집기를 들어내고 두리반 주인과 종업원들을 길바닥으로 내동댕이친 뒤, 현관까지 철판으로 막아놓았다. 영업을 시작한 지 5년도 안된 삶의 터전이 단 한 차례의 대화도 없이 힘으로 짓밟힌 것이다. 건설사가 두리반에 통보한 것은 이사비용을 던져주겠다는 것이 전부. 영업보상이란 것도 없었고, 시설투자비에 대한 보상도 없었다. 유채림 안종녀 부부는 이튿날 새벽부터 철판을 뜯고 두리반으로 들어가 철거반대농성을 시작했다. 돈에 눈먼 막개발의 폐해에 대해 알렸고, 강자에겐 법이지만 약자에겐 살인도구일 뿐인 개발악법에 대해 알렸다. 악무한으로 치닫는 사회에 함께 맞서자고 연대를 호소했다. 지역 주민과 문화예술인, 종교인들이 중심이 되어 두리반 농성은 독특한 문화예술운동의 형태를 띠어갔다.

그 결과 두리반은 농성을 시작한 지 531일 만인 지난 2011년 6월 8일, 극적인 합의를 이끌어냈다. 생계터전 두리반을 원래의 자리 근처에 다시 열 수 있도록 한다는 것. 그 합의안대로 두리반은 12월 1일 마포구 서교동에 새로운 장소를 마련, 영업을 재개했다. 개발악법의 희생양이 된 철거민들에겐 희망의 상징이요, 문화예술운동이라는 새로운 농성 방식의 위대한 힘을 보여준 사례다. 


7. 폭력과 인권침해로 얼룩진 "제10회 아시아태평양에이즈대회"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에이즈문제를 토론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가장 중요하고 큰 대회인 아시아태평양에이즈대회(이하 아이캅10)가 10회를 맞아 부산에서 열렸다. 유엔에이즈(UNAIDS)는 작년에 향후 에이즈대응전략으로 ‘3제로(신규감염 제로, 에이즈관련사망 제로, 차별 제로)’를 제시했다. 올해 6월에 유엔회원국들은 향후 10년을 대비하기위해 에이즈에 대한 새로운 선언문을 채택하고, 2015년까지 에이즈치료를 필요로 하는 1500만명의 HIV/AIDS감염인에게 치료제를 공급하겠다는 일명 ‘15by15’를 약속하였다.

빈곤과 비싼 약값 때문에 1500만명 중 900만명이 에이즈치료제를 먹지 못하고 있다. 한국 참가자들은 ‘진짜 제로’를 달성하기위해 한미자유무역협정(FTA)중단과 사회적 소수자를 처벌·차별하는 법·제도의 폐지를 촉구했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성노동자, 트렌스젠더, 마약사용자의 입국을 제한했고, 진수희 전 복지부장관의 형식적인 환영사를 섭외했으며, 후원명단에 이름만 걸었다. 그리고 해운대경찰서는 행사장내에서 FTA반대시위를 하는 참가자들을 불법연행했다. 해외에서 온 참가자들은 ‘한국에 민주주의가 있느냐’며 경악했다. 반차별을 얘기하고, HIV/AIDS감염인과 사회적 소수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어야 할 아이캅10은 폭력과 인권침해로 얼룩졌다. ‘아이캅10’은 아이캅 역사에 길이 남을, 수치 그 자체다.


8. 서울·경남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광주에서도 학생인권조례 제정 

2010년 10월 전국 최초로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었고, 시행되고 있다. 서울에서는 학생인권조례를 주민발의로 추진하여, 서울시민 투표권자 1%(약8만2천명)의 청구인 서명을 6개월 동안 모아야 했다. 많은 우여곡절과 시민들의 참여 덕분에 9만7천여명의 유효한 청구인서명으로, 2011년 8월 주민발의가 최종 성사되었다. 이에 이어 경남에서도 2011년 11월,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가 필요한 청구인 서명 수 2만5천여명을 훌쩍 넘긴 3만6천여명의 참여로 성사되었다. 광주에서는 광주시교육청 발의로 전국 두 번째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 선포됐다. 광주 학생인권조례는 경기도보다 한 발 더 나아간 내용을 담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전북에서는 학생인권조례가 '교권' 등을 이유로 도의회 교육상임위에서 부결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또한 서울에서도 보수적 종교계 등이 차별금지 사유에 "성적 지향 및 성별정체성"과 "임신 및 출산"이 포함되어 있는 것에 대해 "동성애, 출산 조장"이라며 학생인권조례를 좌초시키려 하고 있다. 성소수자단체와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추진해온 단체들은 이에 맞서 후퇴 없는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위해 1인시위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9. 노동자들의 잇따른 죽음 두고 볼 수만은 없다.

노동자들의 죽음이 잇따르고 있다. 2009년, 회계조작, 먹튀자본, 일방적인 정리해고에 맞서 '함께 살자'며 77일간의 점거 파업 끝에 합의를 봤던 쌍용자동차 노동자와 가족들의 죽음이 19명에 이르고 있다. 구사대, 용역폭력과 경찰의 합동작전, 단전 단수, 식량반입금지, 최루액, 고무탄총, 테이져건까지 퍼붓던 살인적인 국가폭력을 경험했던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합의 이행은 고사하고 파괴된 공동체, 사회적 낙인에 혹독한 시간을 견뎌왔다.  구조조정, 정리해고, 민영화, 분사, 노사관계 선진화라는 미명하에 진행된 갖가지 반노동정책과 노조탄압에 노동권을 박탈당하고, 반인권적인 상황에 직면할 수 밖에 없는 노동자들의 죽음은 최근, 쌍용차 뿐 아니라 철도, KT와 KT계열사 노동자까지 이어져 사회적 살인이라 불리우고 있다. 다수의 안정을 위해 감수해야하는 몇몇의 어쩔 수 없는 불행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과 연대 그리고 국가의 책임까지 사회적 해결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종교계를 비롯한 각계의 연대가 시작되고 있으며 12월 7일,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정문 앞에선 희망의 텐트촌이 시작되었다.


10. 강정의 평화가 우리의 평화이다.

2005년 1월. 당시 정부는 제주를 세계 평화의 섬으로 지정하고 3개월 후 제주 해군기지 재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2007년 4월 26일 해군기지 유치에 대한 주민투표에 주민 1600여 명 중 87명이 참여하여 박수로 이를 찬성하는 결정을 통과시켰다. 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들은 정당성이 없다고 여겼던 주민투표에 아예 참여하지 않은 것인데, 이러한 날치기 과정을 거쳐 해군과 정부는 주민의 동의를 얻었다고 여기는 것이다. 해군과 정부는 강정주민을 동등한 논의와 합의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고, 국책사업 추진에 필수적으로 동반해야 하는 사업의 필요성에 대한 동의, 입지선정의 객관성 입증, 민주적인 논의구조 형성, 정보의 공유와 공개, 주민의견과 요구 수렴, 합의에 의한 갈등 해결 절차를 수행한 적이 없다. 또 야5당 제주해군기지 진상조사단이 제안한 제주해군기지사업의 일시 중단과 재검토, 국회 특별위원회 구성을 통한 사업 전반 재검토 및 추진 여부 결정, 공권력 투입 중단 등 강정마을 공동체 회복 지원 등을 무시한 채, 국방부는 “중단 없는 사업 추진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공사를 강행하고 있다. 

정부와 해군, 경찰은 부당하게 주민들과 활동가들을 연행, 구속하고, 강정주민들을 상대로 무더기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한 것도 모자라, 경찰병력을 앞세워 강정주민들과 활동가들 위협하면서 강제진압을 해왔다. 해군기지사업단과 서귀포경찰서는 해군기지건설에 반대하고 공사를 중지시키기 위해 펜스를 넘어 공사장 부지에 들어가는 마을 주민들과 활동가들을 ‘업무방해’라는 죄목을 씌워 체포·구속했다. 해군기지 사업으로 인해 현재 강정마을 주민 77%가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으며, 44%에 달하는 주민이 자살 충동을 경험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공사는 강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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