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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Leaks 한국관련

[07SEOUL794] 김근태, 선거에 대해서는 침묵, FTA와 중국에 대해서는 목소리 높여

by 淸風明月 2014.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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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7년 3월 19일

 

C O N F I D E N T I A L SEOUL 000794

 

SIPDIS

 

SIPDIS

 

E.O. 12958: DECL: 12/10/2014

TAGS: PGOV PREL KS

SUBJECT: KIM GEUN-TAE SILENT ON ELECTIONS, VOCAL ON FTA AND CHINA

 

Classified By: Amb. Alexander Vershbow. Reasons 1.4 (b,d). 

 

SUMMARY 

 

1. (C) While deflecting direct questions about his presidential aspirations, former Uri Party Chairman Kim Geun-tae spoke candidly over lunch with the Ambassador on March 15 about a number of issues including the KORUS FTA, Comfort Women, an inter-Korean Summit, and the Six-Party Talks. On the FTA, Kim said that he would issue a statement saying the FTA should not be concluded until the next ROK administration when there would be more time to adequately evaluate the merits of the deal (the Ambassador explained that, with TPA expiring, it was now or probably never). Kim said that he was still hopeful that Kaesong Industrial Complex products would find their way into the final FTA
agreement. On Comfort Women, Kim said that Koreans held very deep feelings about the issue but were not yet speaking out because they trusted that the U.S. would adequately rebut Japanese PM Abe's recent statement. Kim said that the push for an inter-Korean summit was to create a "synergy" with the 6PT, not to get ahead of the talks. Further, the Six-Party Talks should be held on the Korean Peninsula as it was
ultimately a question of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North and South. China should be excluded from talks on a permanent peace regime; only the three countries with forces still facing off in the DMZ should be included. National Assembly Representatives Lee In-young, Hong Mi-young, and Woo Won-shik accompanied Kim to the meeting. END SUMMARY.

대통령 자리에 대한 포부를 묻는 직접적인 질문을 피해가면서, 우리당의 김근태 전의장은 3월 15일 오찬을 하면서 솔직하게 많은 문제에 대해 대사와 얘기를 나눴다. 한미 FTA, 위안부, 남북 정상회담, 그리고 6자 회담도 그에 속한다. FTA에 대해 김은 차기 행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결론을 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차기 행정부가 들어설 때면 협상의 장점들을 충분하게 평가할 좀 더 많은 시간이 있을 것이다.(대사는 TPA가 종료돼가는 상황에서 지금이 아니라면 아마도 결코 협상이 있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김은 개성공단 상품들이 FTA 최종 합의에 도달할 수 있는 길이 있을 것이라고 여전히 희망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 김은 한국인들은 이 문제에 대해 아주 깊은 생각들을 갖고 있다, 그러나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있다, 왜냐면 미국이 일본 총리의 최근 성명을 충분하게 반박할 것이라는 신뢰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은 한미 정상회담 추진은 6자 회담의 시너지 효과를 낳을 것이라고 말했다. 회담에 앞서가지 않으면서 말이다. 게다가 6자 회담은 궁극적으로 북한과 한국 사이의 문제이므로 한반도에 관해서 열려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은 영구 평화 체제에 대한 회담에서 배제돼야 한다; 현재 휴전선에서 물리력을 가진 오로지 3개 국가만 포함돼야 한다. 이인영, 홍미영, 우원식 국회의원이 이번 오찬에 배석했다.

 

WHAT KOREANS ARE THINKING  한국인들을 생각하는 것

 

2. (C) Uri Rep. Kim Geun-tae, in a March 15 luncheon meeting with the Ambassador, said that during his eight-month tenure as Uri Party Chairman, he faced many tough challenges including the DPRK's missile launches and nuclear test. Kim said that the Korean people were "bored" with the current administration. Working people complained they did not have enough money. Despite some improvements, people were not satisfied with the current administration. This was clear in the May 31, 2006 local elections where Uri received little support. Kim said he hoped that President Bush would keep up his support for President Roh until the end of Roh's term in office. If Bush, Roh and Kim Jong-il held a summit, it would provide much needed support for Roh.

우리당 김근태 의원은 3월 15일 대사와 점심을 같이 하면서 우리당 의장으로 8개월 동안 지내면서 많은 어려운 문제들을 직면했다고 말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김은 한국인들은 현재 정부에 “염증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근로자들은 돈을 충분히 벌지 못하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상당한 개선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현재 정부에 만족하지 않았다. 이는 5월 31일 지방선거에서 확실히 나타났다. 우리당은 지지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 김은 부시 대통령이 노대통령 임기 말까지 노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계속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만약 부시, 노대통령, 김정일 정상회담을 갖는 다면 노대통령에게 필요한 많은 지지를 보내는 게 될 것이다. 

 

KORUS FTA DIVIDED KOREANS  한미 FTA로 한국인들 입장이 갈려 있다

¶3. (C) Rep. Woo noted that the KORUS FTA was a divisive force in Korea. As the negotiations entered the final stage, Koreans still hoped that Kaesong Industrial Complex (KIC) goods would be admitted as they were a sign of inter-Korean cooperation and hope. The Ambassador agreed that the KIC represented a good opportunity to expose the DPRK to free market principles and broader economic reforms; moreover, the U.S. had contributed to the project by granting licenses to employ certain technologies at KIC. Inclusion in the FTA was another matter, however. For now, the U.S. did not have a normal relationship with the DPRK. If the relationship improved and if labor and human rights concerns were adequately addressed, the U.S. might reconsider its view on KIC products.

우원식 의원은 한미 FTA가 한국에서 분열적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협상이 마지막 단계로 접어들면서 한국인들은 여전히 개성공단 상품들이 남북한 협력과 희망의 징조로 수용되기를 기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사는 개성공단이 북한으로 하여금 자유 시장 경제와 좀 더 광범위한 경제 개혁을 맛보게 할 좋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데 동의했다; 게다가, 미국은 개성공단에서 특정 기술들이 적용될 수 있도록 허가함으로써 이 프로젝트에 기여했다. 지금으로서 미국은 북한과 정상 관계가 아니다. 만약 관계가 개선되고 노동과 인권에 대한 우려가 충분히 해결된다면, 미국은 개성공단 상품들에 대한 인식을 재고할 수도 있다.

 

4. (C) Kim echoed Woo's comment on the divisive nature of the FTA. Similar public affairs campaigns focusing on economic growth were used in 1996 when Korea joined the OECD, only to have those hopes dashed by the 1997 Asian Financial Crisis. While some people had high hopes for the FTA's impact on the Korean economy, many were concerned about vulnerable sectors like agriculture. The Ambassador
responded that Korea's quick rebound from the 1997 Asian Financial Crisis showed the strength and depth of its economy. The FTA had prompted Korea to look at and reform many of its sectors that would be challenged by outside markets, regardless of the KORUS FTA.

김은 FTA가 한국사회에서 분열적 성격을 갖고 있다는 우의원의 말에 동조했다. 경제 성장에 초점을 맞춘 유사한 공공문제 캠페인들이 1996년 이용된 적이 있다. 이 때 한국은 OECD에 가입했다. 결국 이런 희망은 이듬해 아시아 금융위기에 의해 단칼에 날아갔다. 상당수 사람들이 FTA에 대한 큰 기대를 갖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농업과 같은 취약한 분야에 대해 우려했다. 대사는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에서 한국이 빠르게 벗어난 것은 한국 경제의 힘과 저변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응답했다. FTA는 한국이 많은 분야들을 돌아보고 개혁하게 했는데, 한미 FTA에 관계 업이 외부 시장의 도전을 받게 될 분야들이었다.

 

5. (C) Kim explained that the Uri base was generally opposed to the KORUS FTA. To appease the base without speaking out directly against the deal, Kim said he planned to issue a statement asking the Roh administration to delay a decision until the next administration takes control. The Ambassador replied that this position was tantamount to opposing the FTA. There would not likely be another opportunity in a long time, given the upcoming expiration of TPA. Korea would benefit greatly from the FTA. For example, Korea was poised to see rapid growth in service exports, just as Australia experienced in the year following ratification of its FTA with the U.S.

김은 우리당의 지지기반은 대체로 FTA를 반대한다고 설명했다. FTA에 직접적으로 반대하는 목소리를 강하게 내지 않으면서 지지기반을 달래기 위해 김은 노무현정부가 결정을 차기 행정부가 권한을 쥘 때까지 미루도록 하자는 성명서를 발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사는 이런 입장은 결국 FTA반대로 귀결될 것이라고 답했다. FTA 종료가 임박했으므로, 이런 기회는 또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한국은 FTA로부터 큰 이득을 얻을 것이다. 한 예로 한국은 서비스 분야 수출에서 호주가 그런 것처럼 빠른 성장을 볼 수 있는 위치에 놓일 것이다. 호주는 미국과 FTA 비준 이듬해 그랬다.

 

6. (C) Rep. Lee expressed two concerns with the FTA. First, many Koreans correlated their support for the FTA to the inclusion of KIC products. Second, there were not enough protections for vulnerable industries in Korea. If Korea were admitted to the Visa Waiver Program (VWP), that would build support for the FTA and the U.S. in general. The Ambassador said that the Senate recently put forward an
amendment to a bill that would make expansion of VWP possible.

이의원은 FTA와 관련해 2가지 우려를 표명했다. 하나는 많은 한국인들이 FTA에 대한 그들의 지지를 개성공단 상품과 연계해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한국의 취약 산업 분야에 대한 충분한 보호가 없다는 것이다. 만약 한국이 비자면제 프로그램에 가입된다면, 이는 FTA와 미국에 대한 일반적인 지지를 구축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대사는 상원이 최근 비자면제의 확대를 가능케 하는 법안 수정안을 제출했다고 말했다. 

 

COMFORT WOMEN AND JAPAN  위안부 문제와 일본

 

7. (C) According to Kim, Japan had lost its appeal to the U.S. Perhaps, Korea now had the upper hand in its bilateral relations with the U.S. Kim said that this was a critical time in the region and he hoped that the U.S. would work hard to establish security and order with the ROK's help. Kim cited the successful negotiation of a compromise on the timing of wartime OPCON transfer as proof that sensitive issues could be resolved without an ideological debate. The Ambassador agreed that the U.S.-ROK alliance was indeed key to effectively resolving regional issues, as was the U.S.-Japan alliance; this was not a zero-sum game.

김에 따르면, 일본은 미국에 대한 호소력을 잃었다. 아마도 한국은 미국과 관계에서 우위를 점했다. 김은 이 지역은 지금은 아주 중대한 시기이며 미국이 한국의 도움으로 안보와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주기를 희망했다. 김은 전시작전권의 이양 시기에 대해 성공적인 합의를 그 증거로 들었다. 민감한 문제들은 이데올로기 다툼 없이 해결될 수 있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대사는 미국 한국 관계는 미국 일본 동맹처럼 지역 문제들을 효과적으로 풀어가는 데 있어 열쇠라는데 동의했다; 제로 섬 게임이 아니라는 것이다.

 

8. (C) Rep. Hong said that she traveled to the U.S. in support of the Comfort Women issue when she was a member of the Women's committee. This was the seventh time that the issue was considered by the U.S. Congress, Hong had high hopes for success. The Ambassador assured Hong that the Comfort Women issue was a high priority for the USG and that Deputy Secretary of State Negroponte had raised it with Japanese officials during his recent trip to the region. In the early 1990s, Japan had acknowledged government involvement with Comfort Women, the Ambassador noted. It was not clear why PM Abe was retreating from those earlier findings--although he had stated he would not renounce the Kono Statement of 1993. Kim said that Koreans held very deep feelings about the issue but were not yet speaking out
because they trusted that the U.S. would adequately rebut Abe's recent statement.

홍의원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지지를 얻기 위해 미국을 방문했다고 말했다. 방문은 그녀가 여성위원회 소속이었을 때 이뤄졌다. 이 번은 이 문제가 미국 의회에 의해 고려된 7번째이다. 홍은 일이 잘되리라는 큰 기대를 갖고 있었다. 대사는 홍에게 위안부 문제는 미국 정부의 우선 과제로 국무부 네그로폰테 차관이 그의 최근 이 지역 방문 기간 동안 일본 정부 관리들에게 이 문제를 제기했다고 말했다. 1990년대 초반 일본은 위안부의 일본 정부 관여를 자인했다고 대사는 말했다. 아베 수상이 왜 그런 초기의 입장에서 후퇴하는 불확실하다--- 그가 1993년에 나온 고노의 성명을 뒤집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기는 했지만 말이다. 김은 한국은 이 문제에 대해 깊은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러나 아직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있다. 왜냐면 미국이 아베의 최근 성명을 충분하게 반박할 것이라고 신뢰하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했다.

 

INTER-KOREAN SUMMIT 

 

9. (C) Kim said that he realized that some within the USG were concerned that an inter-Korean summit would get in the way of the 6PT. Rather than hinder the 6PT, Kim said a synergy was needed between the 6PT and an inter-Korean summit. As for the effect that a North-South summit might have on the Presidential elections, Kim remained skeptical. The announcement of the 2000 North-South Summit did little to help the then ruling party in parliamentary elections held just after the announcement. The Ambassador assured Kim that the U.S. would view the question of a North-South summit on the basis of whether it helped the 6PT process and the goal of denuclearization. The best chance for success was for the five parties to coordinate all their efforts.

김은 미국 정부내의 상당수 사람들이 한미 정상회담이 6자 회담에 방해가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은 6자 회담의 방해물이 아니라 오히려 6자 회담과 남북 정상회담에 필요한 시너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남북 정상회담이 대통령 선거에 대해 미치는 영향에 대해 김은 회의적이었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이 일정 발표 후 열린 당시 총선에서 여당에게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사는 김에게 미국은 남북 정상회담을 6자 회담과 북한 비핵화에 도움이 될지 안 될지를 중심으로 해서 볼 것이라고 확신시켜 주었다. 성공 가능성을 가장 높일 수 있는 것은 5개국이 모든 노력에 보조를 맞추는 것이다. 

 

PEACE REGIME NEGOTIATIONS  평화 체제 협상

 

10. (C) Turning to the question of negotiations to establish a permanent peace regime that would replace the armistice and end the Korean War, Kim said that China should be excluded from the talks. Any peace agreement should be among the North the South and the U.S., as the only three countries with forces still facing off along the DMZ. A Recent TV drama captivated 40-50 percent of the population because it
embodied the hope for a better future; a view shared by those who watched the program (NOTE: The drama, set in the Koguryo period of Korea's history, portrayed the country as defiant and strong versus China. END NOTE.).

정전협정을 대체하고, 한반도 전쟁을 종식시킬 영구 평화 체제를 만들기 위한 협상에 대한 질문에 대해 김은 중국이 회담에서 배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어떤 평화 협정도 북한과 남한 미국 사이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 3개국이 비무장지대에서 실질적으로 군사력을 갖고 대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 TV 드라마는 남한 시청자의 40~50%의 눈길을 끌었는데 이는 좀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구체화했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을 본 사람들의 관점이 공통적이었다. (이 드라마는 고구려 시대를 배경으로 한 것으로 고구려를 중국에 자신 있고 강하게 맞서는 나라로 묘사했다.)

 

SIX-PARTY TALKS  6자 회담

 

11. (C) The Ambassador asked Kim if he thought the DPRK was ready to make a strategic decision to denuclearize. Kim responded that he thought that if the U.S. was ready to provide a security guarantee, the DPRK would be ready to denuclearize. Kim Il-sung was still alive, in a figurative sense, in the North. His dying wish was the denucleariz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Even today, many DPRK officials repeated this phrase. Kim expressed dismay that the 6PT were held in Beijing, rather than on the Korean peninsula. The Ambassador said that China has been helpful in using its leverage and influence to keep the DPRK motivated in the talks. The first real test of the DPRK's intentions was
whether the DPRK would proceed with the disablement of their nuclear facilities in the second phase of the process launched by the February 13 agreement.

대사는 김에게 그가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전략적 결정을 할 준비가 돼있는지를 물었다. 김은 그는 만약 미국이 안전보장을 한다면 북한은 비핵화를 할 준비가 대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김일성은 북한에서 하나의 인물로서 아직도 살아있다. 그의 유언은 한반도의 비핵화였다. 오늘날에도 많은 북한 관리들은 이 문구를 반복한다. 김은 6자 회담이 한반도가 아닌 베이징에서 열리는데 실망을 나타냈다. 대사는 중국은 북한을 회담에 붙잡아두도록 영향력 발휘하는데 있어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속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최초의 실질적인 테스트는 북한이 2월 13일 시작된 2단계 과정에서 그들의 핵시설을 불능화할 것인지 아닌지가 될 것이다.

 

VERSHB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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