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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cs and Society Archive

[정치사상] 노자와 장자 (老子와 莊子)

by 淸風明月 2022.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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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는 성이 이씨이고 이름은 이이다. 자는 담()이다. 은나라 유민일 가능성이 크다. 주나라에서 사()라는 직업을 가졌다. ‘도덕경을 노자가 지었다고 하지만 지었다는 근거가 없다. 도가도 비상도(道可道 非常道), 명가명 비상명(名可名 非常名)는 도덕경의 첫 구절인데, 도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이미 평상적인 도가 아니다.

 

- 반자도지동야(反者道之動也) -

 

反者道之動也; 반이라는 것은 도의 움직임이다. 반자(되돌아가는 것 혹은 반동)은 도의 운동(反者道之動也)이라고 하였다. 유 안에 무가 들어있고 유에서 무가 생겨났다. 상대성의 원리이다.

 

유와 무는 상대적으로 생겨났고, 어려움과 쉬움도 상대적으로 이루어지며, 긴 것과 짧은 것도 상대적으로 나타나며, 높은 것과 낮은 것도 상대적으로 기울어지는 것이며, 음악과 소리도 상대적인 조화의 구별이며, 전과 후도 상대적인 의미의 구별에 불과하다.”

 

정언고반(正言苦反); 바른 말은 약과 같다.

 

반자유리(反者有理); 반이 표출되는 방법이다.

 

의 원칙의 응용할 때 5가지 방법

1) 유약(濡弱); 유약이야말로 진정으로 강한 것이다.

생은 유약이고, 사는 딱딱하고 강하다.

살아있는 것은 부드럽고, 죽은 것은 뻣뻣하다.

2) 겸하(謙下);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라.

3) 관용(寬容); 옛 성인은 상심(常心)을 가지지 않고 백성의 마음을 헤아린다.

4) 지족(知足); 적게 가진 것에 만족한다.

5) 견미(見微); 큰 일을 하려는 자는 작은 일도 잘해야 한다.

성공은 작은 것부터 큰 것을 이루어야 한다.

 

 

- 도상무위이무부위(道常無爲而無不爲) -

 

도상무위이무부위(道常無爲而無不爲); 도는 항상 무위하지만, 하지 않는 일이 없다.

무위(無爲)는 작위나 인위가 아니다. 그러나 하지 않는 일이 없다.

 

유가 나왔다고 노자는 보았다.

유가 상호보완적이라고 보는 견해가 헤겔의 변증법적 사고이다.

 

무가 나왔다고 보는 것은 불교의 사상이다.

 

청정무위지치(淸靜無爲之治)는 맑고 고요함으로써 천하를 바르게 다스린다. 라는 의미로 서양의 자유주의와는 다르다.

 

노자는 무위를 강조했는데, 법령이 많을수록 도적이 많아진다고 했다. 그 이유는 유위의 정치의 결과이다.

 

도실(道失) 도가 없어짐()

덕실(德失) 덕이 없어짐()

 

인실(仁失) 인이 없어짐()

의실(義失) 의가 없어짐()

 

고로 혼란이 있다면 스스로 안정되기를 기다린다는 것이 노자의 주장이다. 그리고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작은 생성을 굽는 것과 같다. 치대국고팽소선(治大國苦烹小鮮)와 어린 아이와 같게 덕을 배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자가 말한 최고의 임금

1) 존재를 아는 정도의 임금; 임금이 있다는 사실만 알고 있음

2) 친근하고 예찬하는 임금; 백성이 친근하게 여기며 찬양하는 임금

3) 두려움; 백성이 두려워하는 임금

4) 경멸(업신여김); 백성이 경멸하는 임금

 

 

- 제물외생(齊物外生) -

 

중심사상은 무위자연과 장보불태(長保不殆)이다. 즉 아무 것도 하지 않음으로 오래도록 몸을 보신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노자의 목적은 사실상 성취하기 아주 어려운 것이다. 장자는 불태보다 유유자적을 강조했다.

 

제물외생; 모든 만물은 바깥에서 생겨난다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와 같은 의미이다.

무엇에 집중하거나, 집착하는 일이 없어진다. (=外生)

 

장자는 에서 함께 나온 것으로 말하면 물과 아 사이에는 경계를 긋기가 어렵다. 그러나 천지가 나와 함께 공존하니 만물과 나는 하나가 된다. 그럼, 물과 아의 경계가 없어진다. 행과 불행의 경계도 없어진다.

 

무아지경에 이른다. 여기서 무아란 자신을 위하는 일에 극치, 자신이 가장 편안 상태를 의미한다. 지안지락(至安至樂) 편안하고 안락한 상태에 이른다. (유유자적, 소요)

 

장자는 이기의 자적 이외에는 어떠한 사물도 가치가 있다고 인정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그러나 공맹의 사상은 물아로 보았지만 물아를 연관시켜 보지 않았다.

 

 

 

- 재유(在宥) -

 

물과 아 사이의 경계가 없어진다. “천지만물은 일체를 이룬다

1) 사물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지 않는다.

2) 마음대로 자적하고 소요할 수 있다.

 

유가에서 물아가 일체를 이룬다는 것은 자아가 공동의 기쁨과 근심걱정을 나눈어 갖게 한다는 것이다.

 

장자에 있어서 물아가 일체를 이룬다는 것은 물아 사이의 모든 연계를 단절시키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

곧 무치(無治)의 이상과 재유의 정술(政術)에 도달하게 된다.

 

예전에 지덕의 시대가 있었다. 이것은 원시시대에 대한 지양이다. 의무, 권리, 사회적 책임이 없고 자신도 모르게 덕을 행했다. , 무치의 상태(다스림이 없는 상태)였다.

 

지덕(=동덕)의 시대

 

사람들의 행동은 느릿느릿하고, 안광은 담담하였다. 그때는 산에 길이 없었고, 못에는 배나 다리가 없었다. 만물은 각각 무리를 지어 태어났고, 서로 연접되어 한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새와 짐승은 서로 떼를 이루었고, 초목을 무성하였다. 그리하여 새와 짐승 사람이 한 데 얼려 놀았고, 나무 위에 올라 새둥우리를 들여다 볼 수도 있었다. 지덕의 시대에는 이와 같이 사람이 금수와 더불어 함께 살았고, 사람은 만물과 더불어 종류의 차별이 없었다. 이러한 무치의 이상은 의무와 권리를 없애고 잊게 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방임은 인간의 본성을 상하게 할까 두려워 다스리지 않았다.

치불가(治不可)로써 천하는 다스릴 수가 없었다. 지식을 부정했다.

 

노자와_장자.pdf
0.13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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