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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cs and Society Archive

[1992] 한국 인권의 실상 3부

by 淸風明月 2022. 10.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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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에 따른 정부의 최초보고서에 대한 반박보고서"

1992. 5.

 

제 3 부

 

국가보안법 - 실질적 의미의 헌법

 

- 제6조,제9조,제12조,제15조,제18조,제19조,제26조

 

96. 정부보고서는 규약 제19조에 관한 설명에서 국가보안법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정부보고서 제245항 내지 247항 참조). 그러나 국가보안법이 한국의 인권문제에 미치는 중대한 영향에 비추어 정부보고서의 설명은 너무나 부족하고 국가보안법에 의한 인권의 침해상황을 전혀 설명하지 않고 있다.

 

97. 국가보안법은 이름 그대로 "국가안보"를 지키기 위하여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법률이다. 이 법은 한국의 특수한 상황, 즉 남북한의 분단과 적대관계를 기반으로 하여 만들어진 법이다. 이 법은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인권을 제한하고 있고 너무나 강력하게 집행되어 왔기 때문에 인권문제에 관한 한 남한에서 "실질적 의미의 헌법"이라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의 중대한 비중을 가진 법이다. 국가보안법에 의하여 처벌을 받은 사람과 그 가족은 사회에서 정상적으로 사회생활을 꾸려나가는 것 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이 법의 위하력은 대단히 크다.

 

98. 국가보안법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1948년 12월 1일이다. 이때는 각각 미국과 소련의 지지를 받는 두 정부가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하여 한반도의 남쪽과 북쪽에 수립된 직후였다. 이 무렵 남쪽에서는 일련의 폭동이 일어나 새로 수립된 정부를 위협하였다. 이러한 내란상태에 대처하기 위하여 한시적으로 국가보안법이 제정되었는데 이 국가보안법은 모두 6개 조문으로 되어 있었다. 이 법은 반국가단체를 조직하거나 가입하거나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하는 일련의 행위를 처벌하였다. 여기서 반국가단체란 원래 북한을 겨냥한 것이지만 그밖에 남한 정부에 반대하는 조직을 두루 포함하는 개념이다. 그런데 이 소박한 국가보안법은 내란상태가 끝나고 한국전쟁도 종결되어 평화가 회복된 다음 점차 강화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99. 이 법은 그동안 7번에 걸쳐 개정되었다. 그리고 지금의 틀은 1958년, 1961년 및 1980년의 개정에 의하여 완성되었다. 1958년 이승만대통령의 정부는 이 법을 모두 40개 조문으로 강화하는 개정안을 제안하였는데 무술경찰을 동원하여 개정에 반대하는 야당의원들을 국회의사당 밖으로 끌어 낸 다음 여당의원만으로 통과시켰다. 1961년 국가재건최고회의(제14항 참조)는 반공법을 제정하였다. 1980년 다시 군사쿠데타후 구성된 국가보위입법회의(제14항 참조)는 반공법을 폐지하면서 대부분의 내용을 국가보안법으로 수용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독재적인 정부아래서 국가보안법과 반공법은 정권을 유지하는 데 가장 중요한 도구로 사용되었다.

 

100. 1991년 5월 정부와 여당은 국가보안법을 개정하였다. 당시 야당은 이 법의 폐지를 주장하면서 여당의 개정안에 반대하였는데 국회의 절대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던 여당은 국회의 토론과 표결절차도 없이, 야당의원들에게 참여할 기회를 주지 않은 채 날치기방법으로 개정안의 통과를 선언하였고 대통령은 이를 공포하였다. 이 개정법률은 정부보고서가 언급하였듯이(제246항)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다소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이 개정법은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개정법은 몇개의 조항을 삭제하였다. 그런데 삭제된 조문은 북한을 제외한 사회주의 국가와 교류하는 것을 처벌하는 조항 등 사실상 적용되지 않았던 조항들에 그치고 있기 때문에 이 법의 적용상황에 별다른 변화를 주지 못하였다.

 

둘째, 개정법은 몇몇 조문에서 기존의 구성요건에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라는 요건을 추가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추가된 구성요건도 추상적인 가치개념으로서 일반 국민들이 그 내용을 명확히 알기 어렵기 때문에 기존의 막연한 구성요건을 제한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실제로 개정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검찰이나 법원의 국가보안법 해석과 적용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다.

 

세째, 개정법은 부칙 제2항에서 개정법의 시행 전에 한 행위에 대하여는 개정전의 법률을 그대로 계속 적용하고 개정이후에 일어난 행위에 대하여만 개정법을 적용한다고 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한국에는 지금 두 개의 국가보안법이 시행되고 있는 셈이다. 하나는 개정법의 시행일인 1991년 5월 31일 이전의 행위에 적용되는 국가보안법(법률 제3318호)이고 다른 하나는 그 이후의 행위에 적용되는 개정된 국가보안법(법률 제4373호)이다. 정부보고서의 설명(제247항)대로 이 개정법이 "구성요건을 명확히 하여 인권침해의 소지를 배제"한 것이라면 개정법의 부칙은 규약 제15조에 위반하는 것이라는 의심이 있다.

 

 

국가보안법이 처벌하는 주요범죄의 유형과 사례

 

101. 반국가단체의 구성과 가입(제3조)

반국가단체를 구성하거나 반국가단체에 가입하는 행위를 처벌하고 있다. 반국가단체란 "정부를 참칭하거나 국가를 변란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국내외의 결사 또는 집단으로서 지휘통솔체제를 갖춘 단체"를 말한다(제2조). (여기서 밑줄을 친 부분은 1991년 5월의 개정법에 의하여 추가된 부분이다. 아래에서도 법조문을 인용한 데서 밑줄친 부분은 모두 마찬가지이다.) 반국가단체의 수괴나 간부 또는 지도적임무에 종사한 자에게는 사형까지 과할 수 있다.

 

반국가단체란 원래 북한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에 한하는 것은 아니고 국내 또는 국외의 남한에 반대하는 단체들을 두루 포함하고 있다. 그동안 반정부적인 국내의 여러 단체들과 해외에 있는 교포들의 단체에 대하여 반국가단체라는 판결이 선고되었다. 일단 어떤 단체가 반국가단체로 인정되면 그 단체를 구성하거나 그 단체에 가입한 사람들 뿐 아니라 그 단체와 연락하거나 일정한 관련을 맺은 모든 사람이 처벌대상이 된다. "반국가단체"에 관한 이 조항은, 뒤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적단체"의 결성과 가입을 처벌하는 제7조 제3항과 함께 규약 제18조가 보장하는 사상의 자유, 제19조의 표현의 자유, 제22조의 결사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

 

102. 간첩죄 및 목적수행죄(제4조)

가. "반국가단체의 지령을 받고" 일련의 행위를 한 경우를 처벌한다. 그중 약 50개의 행위유형에 대하여는 사형까지 과할 수 있고(제1항 제1호 내지 제4호) "사회질서의 혼란을 조성할 우려가 있는 사항에 관하여 허위사실을 날조하거나 유포한 때에는 2년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제1항 제6호). 이처럼 국가보안법은 매우 많은 종류의 행위에 대하여 사형을 과할 수 있게 하고 있는데 "가장 중한 범죄"에 대하여만 사형을 과할 수 있도록 한 규약 제6조 제1항에 위반하는 것으로 보인다.

 

나.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간첩죄이다. 1991년 5월 31일 이전의 행위에 적용되는 개정전의 국가보안법은 간첩행위를 하거나 "국가기밀을 탐지. 수집. 누설. 전달하거나 중개한 때"에 모두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 처하게 되어 있는데 개정법은 "군사상 기밀 또는 국가기밀이 국가안전에 대한 중대한 불이익을 회피하기 위하여 한정된 사람에게만 지득이 허용되고 적국 또는 반국가단체에 비밀로 하여야 할 사실, 물건 또는 지식인 경우"와 그밖의 군사상 기밀 또는 국가기밀로 나누어 앞의 경우에는 사형 또는 무기징역을, 뒤의 경우에는 사형, 무기징역 또는 7년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게 하였다.

 

다. 여기서 지적해야 할 것은 한국의 법원이 "군사상 기밀 또는 국가기밀"의 범위를 매우 광범위하게 해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법원은 국가보안법의 국가기밀에 대하여 "반국가단체에 대하여 비밀로 하거나 확인되지 아니함이 대한민국의 이익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모든 정보자료를 말한다고 할 것이므로 순전한 의미에서의 국가기밀에 한하지 아니하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방면에 관한 기밀사항이 모두 포함되며, 나아가 그 내용사실이 대한민국에서는 자명하고도 당연하며 상식에 속하는 공지의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반국가단체에는 유리한 자료가 되고 우리에게는 불이익을 초래할 수 있는 것이면 국가기밀에 속한다"(1990.6.8 선고 90 도 646판결 - 문익환목사사건)고 판결하였다. 이러한 태도는 오래전부터 반복된 확고한 것으로 유지되고 있다.

 

이처럼 널리 인정하는 "기밀"의 개념에 따라 문익환목사사건에서 문목사를 수행하여 북한을 다녀온 유원호씨는 1989년 1월 결성된 남한의 재야단체인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에 관하여 일본에서 만난 정경모에게 일간신문에 보도된 내용대로 "전민련은 분열된 재야가 하나의 단일기구로 조직된 것이고 40대가 주축이 되었으며 앞으로 정당으로 확대발전될 가능성이 있다"는 등의 말을 하였는데 법원은 이러한 내용의 말이 국가기밀을 누설한 것이라고 하여 유죄판결을 선고하였다.

 

라. 법원은 "기밀" 뿐 아니라 범죄사실을 구성하는 다른 용어도 매우 광범위하게 해석하고 있다. 국가보안법 제4조가 처벌하는 행위중에는 반국가단체에 군사상 이익을 공여하는 행위가 포함되어 있다.

 

1989년 7월 북한의 평양에서 열린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정부의 허락없이 참가하였다는 이유로 처벌받은 임수경은 북한에 있는 동안 그곳의 사람들에게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은 19개지구와 특별기구로 구성되며 19개지구대표가 정책을 결정한다, 전대협의 동원능력은 3만명이다, 대학졸업후 취업이 어려우며 등록금부담이 크다, 대학생들은 민중들과 연대하고 있다, 대학생들이 북한바로알기운동을 하고 있다"는 등의 말을 하였는데 법원은 이러한 내용들이 북한에 군사상 이익을 공여한 것이라고 하여 유죄판결을 선고하였다(대법원 1990.9.25.선고 90도 1613판결).

 

마. 법원은 국가기밀의 범위를 너무나 넓게 해석함으로써 이 조항이 규약 제19조가 정한 표현의 자유와 알 권리를 침해하도록 운용하고 있다.

 

103. 잠입.탈출죄(제6조)

가.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반국가단체의 지배하에 있는 지역으로부터 잠입하거나 그 지역으로 탈출한 자"는 10년이하의 징역에 처하고(제1항) 반국가단체의 지령을 받거나 받기 위하여 잠입. 탈출한 경우에는 사형까지 과할 수 있다(제2항).

 

나. 이 조항에 관하여 법원은 "탈출"이란 북한지역은 물론 북한이 아닌 지역으로부터 북한으로 가는 것을 포함하며 "잠입" 역시 북한지역에서 남한으로 오는 것은 물론 그밖의 곳에서 남한으로 오는 행위를 모두 포함한다고 하고 있다. 또 그 방법은 비합법적인 방법으로 은밀히 왕래하는 행위 뿐 아니라 공개적이고 합법적으로 왕래하는 행위도 모두 포함한다고 해석하고 있다. 따라서 문익환목사나 임수경씨, 문규현신부의 경우에는 기자회견을 하고 온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비행기편으로 또는 판문점을 통하여 귀국하였는데도 잠입죄를 적용하여 처벌하였다.

 

다. 앞서 본 국가기밀누설 등의 행위와도 관련된 것인데 법원은 국가보안법에서 가중처벌의 요건이 되는 "반국가단체의 지령"을 매우 넓게 해석하고 있다. 예컨대 앞서 본 임수경씨 사건에서 법원은 북한 조석학생위원회가 전대협에 보낸 초청장을 "반국가단체의 지령"이라고 인정하여 유죄판결을 하였다. 그런데 이 초청장은 전대협대표를 청년학생축전에 초대하는 것으로 정부기관인 국토통일원의 승인을 받아 대한적십자사가 전대협에 전달해 준 것이었다.

 

라. "잠입"과 "탈출"이라는 이름으로 남한과 북한사이의 단순한 이동을 처벌하는 이 조항은 "자국을 포함하여 어떠한 나라로부터도 자유로이 퇴거할" 권리를 보장한 규약 제12조 제2항, "자국에 돌아올 권리를 자의적으로 박탈당하지 않을" 권리를 보장한 규약 제12조 제4항에 위반되는 것으로 보인다.

 

104. 찬양. 고무 .동조. 이적단체구성. 이적표현물 제작죄(제7조)

가.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 고무. 선전 또는 이에 동조하거나 기타의 방법으로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한 자" 또는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의 활동을 찬양. 고무. 선전 또는 이에 동조하거나 국가변란을 선전.선동한 자"(제1항)는 7년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나. 제1항에 정한 행위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이적단체)를 구성하거나 이에 가입한 자는 1년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제3항).

 

다. 위에 든 "행위를 할 목적으로 문서. 도화 기타의 표현물(이적표현물)을 제작. 수입. 복사. 소지. 운반. 반포. 판매 또는 취득한 자"는 그 조항에 정한 형으로 처벌한다(제5항).

 

라. 국가보안법 제7조는 국가보안법중 가장 널리 이용되는 조항으로 국민들의 사상과 양심의 자유. 언론.출판.예술 등 표현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 이 조항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또는 북한을 지지하거나 그에 대하여 우호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의 경우에는 어떤 형식으로든지 처벌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심지어는 단지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였는데 그 내용이 북한의 남한에 대한 비난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처벌받은 사례도 허다하다. 이 조항에 의하여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포함한 저작들, 레닌의 저작과 그밖에 트로츠키와 카우츠키, 로자 룩셈부르크, 루카치, 그람시, 모리스 돕, 레오 휴버만, E.H. 카, 프란츠 파농, 파울로 프레이리, 사미르 아민, 마르쿠제, 루이제 린저, 부루스 커밍스 등 오늘날 서구에서 사회과학의 고전적 저작으로 인정되는 많은 책들을 출판하고 읽었다는 이유로 지식인들이 처벌을 받았다. 그밖에 소련이나 서구, 중국의 노동운동과 공산주의의 역사, 북한의 사정이나 역사, 북한의 지도이념인 주체사상에 관한 책들, 혹은 북한에서 출판된 문학작품 들을 출판하고 읽거나 소지하였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처벌받아 왔다. 그외에 미국의 대한정책을 제국주의라고 비난하거나 미군이 남한에 보유하고 있던 핵무기의 철수를 주장하는 내용, 남한정부의 공식적인 통일정책에 반대하여 연방제통일안을 지지하는 것 등이 모두 이 조항에 의하여 처벌되었다. 북한을 방문했던 임수경씨와 문규현신부는 북한을 왕래한 사실외에 북한에서 한 모든 발언에 대하여 북한을 찬양하고 동조했다는 죄로 처벌받았다.

 

마. 국가보안법에 의하여 처벌받아 금서로 되어 있는 도서는 1990년말 현재 376종이며 그후에 더욱 늘어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여기에 포함되는 도서를 출판한 출판사, 판매한 서점의 주인과 그것을 구해서 읽거나 보관한 사람은 모두 처벌된다. 그리고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사람들은 이러한 책을 반입하여 읽는 것이 불가능하다. 정부당국은 이 금서목록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여기서는 국가보안법 제7조에 의하여 처벌받은 몇 가지의 사례만을 열거해 둔다.

 

(1) 화가인 홍성담은 그의 동료들과 함께 "민족해방운동사"라는 제목으로 한국의 현대사를 형상화한 일련의 그림을 제작하였다. 그는 그중에서 1980년 광주에서 쿠데타군에 대항한 시민들이 피살당한 사건을 형상화한 그림을 그렸는데 법원은 이 그림이 이적표현물이라고 하여 유죄판결을 선고하였다(서울고등법원 1990.6.1.선고 90 노 1022호 판결). "민족해방운동사"라는 연작그림과 관련하여 1991년에도 화가 정선희, 최익균, 오진희, 차일환, 박용균, 이진우 등이 기소되어 유죄판결을 선고받았다.

 

(2)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던 박태훈은 한국계미국인들로 구성된 "재미한국청년연합"이라는 단체에 가입하였다. 그후 그는 병역의무를 마치기 위하여 귀국하였다가 이적단체에 가입하였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기소되었고 일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다음(서울형사지방법원 1989. 12.22. 선고 89 고합 1221판결) 항소하여 아직도 재판을 받고 있다(육군고등군사법원 91 노 292 사건). 재미한국청년연합은 미국법에 따라 합법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한국교포단체로서 한국인들의 지위향상과 남한의 민주화운동을 지원하는 단체이다. 그런데 검찰은 한청련에 관한 구체적인 증거없이 박태훈의 자백에 근거하여 한청련을 이적단체라고 규정하여 기소하였고 법원도 유죄판결을 선고하였다. 박태훈의 자백에 의하면 한청련은 "한국이 미국에 예속되어 지배를 받고 있으므로 미국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하고 민중들의 생존권이 박탈되어 있으므로 이를 회복해야 하며 미국의 핵무기를 한반도에서 철수시키고 팀스피리트훈련을 중지하며 군사독재정권을 타도해야 한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3) 1991년 6월 서울사회과학연구소의 연구원 또는 연구원 출신으로 군에 입대한 4명의 연구자들이 국가보안법의 이적표현물을 제작한 혐의로 구속되었다. 서울사회과학연구소는 주로 국립서울대학교출신인 약 70명의 사회과학 전공교수 또는 대학원생들로 구성된 학술단체이다. 이들에 대한 주된 공소사실은 연구소에서 발간한 학술서적인 "사회주의의 이론, 역사, 현실"(신현준)과 "한국에서의 자본주의발전"(권현정)에 논문을 기고한 것, 학술단체협의회가 "1980년대 한국사회와 지배구조"라는 주제로 연 학술심포지움에서 "신식민지 파시즘의 이론구조"라는 논문을 발표한 것(송주명), 사회과학이론을 다루는 "현실과 과학"이라는 학술잡지에 "PDR의 올바른 이해를 위하여"라는 논문을 기고한 것(이창휘) 등이다. 이들은 모두 서울대학교의 정치학 또는 경제학 박사과정 또는 석사과정에 있는 사람들로 기소된 이적표현물 중 상당수는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학위논문으로 통과되었거나 제출되어 통과를 기다리는 것들이다. 이 글들은 전체적으로 볼 때 필자들의 사회주의적인 성향을 드러내고 있는데 수사기관은 이들 논문들이 북한의 대남선전과 같은 내용으로 북한을 이롭게 했다고 규정하였으나 이 사건에 대하여 서울대학교의 교수들은 이 논문들의 내용이 오히려 북한의 지도이념인 주체사상에 반대하는 것이며 학술적인 자세로 진지하게 작성된 것임을 증언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이들 모두에 대하여 유죄판결을 선고하였다(이창휘, 송주명:국방부보통군사법원 91고 23, 국방부고등군사법원 91노 15;신현준:서울형사지방법원 91고단 5555; 권현정:서울형사지방법원 91고단 5554) 이 사건은 그동안 국가보안법의 이적표현물 조항이 주로 반정부적인 단체에서 발간한 홍보물 또는 각종 서적에 대하여 적용되어 왔는데 비하여 국립서울대학교에서 학위논문으로 심사받고 통과된 순수 학술논문들에 까지 적용되었다는 점에서 큰 충격을 주었다. 더구나 정부가 국가보안법을 개정하여 이 법을 더욱 신중하게 적용하겠다고 공언하는 시점에서 나온 것이어서 그 충격은 더욱 컸다.

 

(4) 홍근수목사는 북한을 찬양하는 설교를 하고 한국방송공사의 텔레비젼프로그램에 초대되어 토론하는 도중 남한과 다른 북한사회의 몇 가지 장점을 지적하였다고 하여 북한에 동조하였다는 등의 이유로 기소되어 징역 2년의 형을 선고받았다(서울고등법원 91노 3731). 신학자인 박순경교수는 일본에서 열린 기독교모임의 강론에서 "기독교와 민족통일의 전망"이라는 제목으로 통일을 위하여 남한 사람들이 북한의 지도이념인 주체사상을 이해해야 한다는 내용의 발언을 한 것이 북한에 동조한 것이며, 남북한과 해외에 있는 사람들로 구성된 "범민련"의 "남측본부 준비위원회"를 구성한 것이 이적단체를 구성하였다는 이유로 구속되어 재판을 받았으며 유죄판결이 선고되었다(서울형사지방법원 91고합 1547).

 

바. 최근에 대법원이 전원합의체에서 이 조항에 관하여 한 판결(1992.3.31.선고 90 도 2033호)을 보면 과거의 법해석을 조금도 바꾸지 않고 있다. 사회주의 이론에 비추어 본 임금("임금의 기초이론")과 노동운동에 관한 책자("새벽6호"), 그리고 한국이 미국의 식민지라고 비난하는 표현물("미국, 누구를 위한 미국인가")에 관하여 국가보안법이 적용된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그 내용이 "대한민국의 안전과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위협하는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표현으로서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벗어난 것"이라고 하면서 유죄를 확정하였다.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국가보안법 제7조 제5항에서 범죄의 구성요건으로 정하고 있는 "목적"은 "피고인이 표현물의 내용이 객관적으로 보아 반국가단체인 북한의 대남선전, 선동 등의 활동에 동조하는 등의 이적성을 담고 있는 것임을 인식하고 나아가 그와 같은 이적행위가 될지도 모른다는 미필적 인식이 있으면 충족되는 것"이라고 하면서 "객관적으로 반국가단체인 북한의 대남선전, 선동 등의 활동에 동조하여 반국가단체나 그 활동을 이롭게 하였거나 그 이익이 될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있는 이적표현물을 그와 같은 인식을 하면서도 이를 취득. 소지 또는 제작. 반포하였다면 그 행위자에게는 위 표현물의 내용과 같은 이적행위가 될지도 모른다는 미필적 인식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피고인이 스스로 "이적목적"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하면 이적목적이 있는 것으로 인정된다고 하고 있다. 결국 외형적으로 북한의 주장과 같거나 비슷한 내용의 표현물을 소지한 경우, 그 내용과 결과의 이적성은 당연히 인정되고 그 표현물이 북한을 이롭게 한다는 것을 미필적으로 인식하는 것은 추정되며, 미필적 인식이 있으면 "이적목적"은 당연히 인정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보안법의 이 조항이 어떤 구성요건을 정하고 있는가와 상관없이 일정한 내용의 표현물을 가지고 있거나 읽는 것만으로도 범죄가 되고 당사자는 처벌을 받게 된다.

 

105. 회합. 통신죄(제8조)

가. "반국가단체의 이익이 된다는 정을 알면서" 또는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와 회합. 통신 기타의 방법으로 연락을 한 자는 10년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나. 여기서도 법원은 "반국가단체의 지령을 받은 자"를 매우 넓게 해석하고 있으며 실질적으로 아무런 증거없이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예컨대, 임수경사건에서 법원은 미국에 사는 한국인 목사 정기열을 "북한의 지령을 받은 자"라고 인정하였다. 그런데 법원은 정기열목사가 언제, 어디서, 누구로부터, 어떤 내용의 지령을 받았는지는 전혀 밝히지 않은 채 정기열이 주관한 국제평화대행진이 북한에서 열렸으며 그 행사는 북한당국의 협조를 받아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근거로 그가 북한의 지령을 받은 자라고 하였다.

 

다. 한국의 법원은 북한외에도 해외에 있는 많은 교포단체와 개인들을 반국가단체 또는 북한의 지령을 받은 자라고 규정하고 이들과 만나거나 연락하는 것을 처벌하고 있다. 물론 이때 반국가단체 또는 북한의 지령을 받은 자라고 규정하는 데에 충분한 증거가 제시되는 일은 없다. 대부분의 경우 그들이 남한정부에 대하여 비판적이거나 북한에 대하여 우호적인 발언을 하였다는 것을 증거로 하거나 외국에 있는 한국대사관의 영사가 만든 영사증명서를 근거로 한다. 이 영사증명서는 안기부의 직원인 것으로 보이는 한국영사가 외국에 있는 단체를 감시한 결과 그들이 북한에 동조하는 이러저러한 말과 행동을 하였다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이러한 영사증명서는 한국의 법원에서 피고인과 변호인이 그 진실성을 전혀 검증할 수 없는 상태에서 법원에 의하여 증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최근의 몇 몇 사건에서 북한의 지령을 받은 자 또는 반국가단체로 인정된 사례는 다음과 같다.

 

(1) 정경모 - 문익환목사 사건, 일본거주, 문필가, 문목사의 북한방문을 주선함.

(2) 정기열 - 임수경 사건, 미국거주, 목사, 북한에서 열린 국제평화대행진을 주관함.

(3) 성낙영 - 홍성담, 서경원 사건, 미국거주, 목사, 재유럽민족민주운동연합에 관여하였고 북한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였음.

(4) 재유럽 민족민주운동연합 - 홍성담, 김현장 사건, 독일에 있는 한국교포단체, 영사증명서에 의하여 반국가단체로 인정.

 

라. 북한은 물론 국내외의 일정한 범위의 사람들과 만나고 통신하는 것 자체를 금지하는 이 조항에 의하여 "국경에 관계없이 모든 종류의 정보와 사상을 추구하고 접수하며 전달할 자유"를 보장한 규약 제19조 제2항은 한국에서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

 

106. 불고지죄(제10조)

 

가. 국가보안법의 죄를 지은 자라는 정을 알면서 수사기관에 고지하지 않은 자는 5년이하의 징역이나 벌금에 처한다. 개정법은 그 적용범위를 약간 축소하였고 본범과 친족관계가 있는 경우에는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한다고 정하고 있다.

 

나. 국가보안법이 매우 광범위한 행위에 적용되고 특히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측면에 비추어 이 불고지죄는 규약 제18조가 보장한 양심의 자유, 즉 침묵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

 

 

구속기간의 연장(제19조)

 

107. 남한의 경우 경찰과 검사는 범죄의 피의자를 법원의 영장을 발부받아 각각 10일간 구속할 수 있으며 검사는 다시 10일간 그 기간을 연장받을 수 있다. 따라서 피의자는 기소되기 전에 합법적으로 30일간 구속될 수 있다. 그런데 국가보안법 제19조는 경찰과 검사가 각각 10일간 구속기간을 더 연장받을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국가보안법 사건의 경우에는 모두 50일간 피의자가 구속되어 수사를 받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수사기관에는 국가안전기획부와 국군기무사령부가 포함된다.

 

108. 이 보고서 제191항 내지 제203항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한국의 수사기관에서는 고문과 그밖의 가혹행위가 수시로 일어나며 피의자들은 억압적인 상황에서 자백을 강요받는다. 수사과정에서 무죄추정의 원칙은 거의 존중되지 않는다. 국가보안법사건의 경우 수사는 일반적으로 더욱 억압적이며 50일간 조사를 받는 피의자들은 자백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국가보안법 사건의 경우 법원이 수사절차의 위법을 이유로 피의자의 석방을 명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가족이나 변호인과의 면회 또는 접견도 매우 제한되기 때문에 피의자의 입장은 더욱 어렵게 된다.

 

109. 1992년 4월 14일 헌법재판소는 국가보안법 제7조와 제10조의 범죄에 대하여 구속기간을 추가로 연장하는 것은 위헌이고 구속기간은 30일에 그쳐야 하지만 그밖의 조항이 적용된 다른 사건의 경우에는 구속기간을 50일까지 연장할 수 있다고 결정하였다(90 헌마 82). 그러나 제7조와 제10조가 적용되지 않은 종류의 국가보안법위반 사건이라고 하여도 일반 형사사선에 비하여 20일이나 더 구속할 수 있도록 하는 국가보안법은 명백히 규약 제26조가 정한 평등의 원칙에 위반한다고 보이며 그 기간은 무죄로 추정되는 피의자에게 자백을 강요하는데 이용된다는 점에서 규약 제14조 제2항 및 제3항 (g)에도 위반하는 것으로 보인다.

 

 

현실과 괴리된 국가보안법 - 이중기준의 적용

 

110. 정부보고서도 지적하고 있듯이 국가보안법은 남북한 사이의 적대적인 관계 또는 북한의 "남한적화정책"을 근거로 정당화되어 왔으나 앞에서 간략히 살펴 본 바와 같이 이 법은 북한의 남한에 대한 공격을 예방하기 보다는 정부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처벌하는 데 주로 이용되어 왔다고 비판받고 있다. 또한 법원은 이 법을 선의로 해석.적용하기 보다는 권한을 남용하여 민주주의 사회에서 허용되어야 할 시민의 자유를 침해하였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111. 이 법은 곳곳에서 매우 추상적이고도 막연한 구성요건을 설정하고 있기 때문에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에 위반된다고 지적받아 왔다. 그런데 법률의 합헌여부를 결정할 권한을 가진 헌법재판소는 이 법의 위헌성을 지적하면서도 결론에서는 정부보고서가 지적하였듯이 추상적인 조건을 붙여 합헌이라는 모순된 결정을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그 이후의 법집행에 아무런 제한을 가하지 못하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112. 국제정세의 변화에 따라 남북한 사이의 관계도 점차 호전되었고 양쪽 정부사이에는 물론 경제, 문화, 체육 등 여러 방면에서 왕래와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다. 국가보안법에 의하면 모두 처벌대상이 되는 이러한 교류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정부는 1990년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을 국가보안법의 특별법으로 제정하였다. 이 법률에 의하면 국토통일원장관의 사전허가를 받으면 북한을 방문하거나 북한사람을 만나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 이 법률에 의하여 북한과 많은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으나 정부와 대립적인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여전히 북한을 방문하거나 교류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고 국가보안법에 의한 처벌이 이루어지는 실정이다. 결국 법의 적용에 이중기준이 적용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데 최근의 좋은 예는 통일교주 문선명씨 사건이다. 문씨는 정부의 사전허가를 받거나 사후에 신고하지도 아니한 채 그 수행원들과 함께 북한을 방문하였다. 그러나 정부는 그 일행에 대하여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다. 이 사건과 앞서 본 문익환 목사에 대한 가혹한 처우를 비교해 보면 정부는 이중기준을 가지고 사람에 따라 법을 달리 적용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13. 국가보안법은 또 국제연합 헌장과 최근에 체결된 남북합의서의 정신 및 내용에도 위반하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남한정부는 대외적으로는 북한을 하나의 국가로 인정하거나 통일을 향한 동반자로 인정하면서 대내적으로 국민들에 대하여는 여전히 "불법조직된 반국가단체"로 인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114. 국가보안법은 정부의 정책과도 모순된다. 정부는 몇년전부터 북한 및 공산권에 관한 자료를 개방하기로 결정하고 서울 시내 등 전국 곳곳에 "북한 및 공산권 정보자료센터"를 설치하였다. 이 센터에 가면 북한은 물론 공산권 국가에서 출판된 각종 책, 신문, 잡지 등을 원본 그대로 누구든지 볼 수 있고 북한에서 만든 영화도 관람할 수 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자유롭게 볼 수 있는 책들을 시중의 서점에서 구입하여 읽으면 범죄로 처벌되는 모순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또한 최근 몇년 동안 한국방송공사와 문화방송의 텔레비젼은 "남북의 창" 또는 "통일전망대"라는 프로그램을 설치하여 일주일에 한번씩 북한의 사정을 소개하고 북한의 텔레비젼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대학생들이 학교에서 그러한 내용의 북한영화나 텔레비젼프로그램을 보는 것은 국가보안법에 위반하는 행위로 처벌을 받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국가보안법 위반사건에 관한 통계

 

115. 1980년 이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된 사건의 수는 다음표와 같다.

 

+---------------+----+----+----+----+----+----+----+----+----+----+----+----+

 

| 죄명 \ 연도 | 80 | 81 | 82 | 83 | 84 | 85 | 86 | 87 | 88 | 89 | 90 | 91 |

 

+---------------+----+----+----+----+----+----+----+----+----+----+----+----+

 

| 국가보안법 | 23 | 169| 171| 153| 93 | 176| 318| 432| 104| 312| 414| 265|

 

+---------------+----+----+----+----+----+----+----+----+----+----+----+----+

 

| 반 공 법 | 136| 65| 13| - | 3 | 2| 5| - | - | - | - | - |

 

+---------------+----+----+----+----+----+----+----+----+----+----+----+----+

 

| 집 시 법 | 3| 155| 130| 283| 249| 540|1245| 714| 506| 413| 413| 364|

 

+---------------+----+----+----+----+----+----+----+----+----+----+----+----+

 

*자료는 법원행정처에서 발간한 1990 사법연감, 497쪽; 대법원, 제156회 국회 국정감사 서류제출(1991.9.), 440 - 450쪽 에서 인용.

 

**1991년의 통계는 1월 1일부터 8월 31일까지의 것임.

 

***반공법은 1980년 12월 31일 폐지되었음.

 

 

116. 1991년의 대법원자료에 의하여 구속영장발부현황과 무죄현황을 보면 다음과 같다.

 

+---------+--------+------+--------+--------+------+---------+------+------+

 

|연도\구분|영장청구| 기각 | 발부율 |보석신청| 석방 | 판결인원| 무죄 |유죄율|

 

+---------+--------+------+--------+--------+------+---------+------+------+

 

| 1990 | 514 | 9 | 98.2 % | 49 | 11 | 380 | 1 |99.74%|

 

+---------+--------+------+--------+--------+------+---------+------+------+

 

| 1991 | 289 | 0 | 100 % | 23 | 2 | 309 | 2 |99.3 %|

 

+---------+--------+------+--------+--------+------+---------+------+------+

 

*1991년은 1월 1일부터 8월 31일까지임.

 

 

117. 1989년 9월부터 1990년 8월까지와 1990년 9월부터 1991년 8월까지 검찰에서 접수한 국가보안법 위반 피의자수는 모두 759명과 724명인데 이를 죄명별로 구분하면 다음과 같다(자료: 1990년, 1991년 국회국정감사기록).

 

+---------------+-----------------+----------------+----------+------+------+

 

| 죄 명 구 분 | 이적표현물 | 찬양.고무.동조 | 이적단체 | 간첩 | 기타 |

 

+---------------+-----------------+----------------+----------+------+------+

 

|89-90년(759명) | 418 | 173 | 136 | 9 | 23 |

 

+---------------+-----------------+----------------+----------+------+------+

 

|90-91년(724명) | 324 | 128 | 234 | 2 | 36 |

 

+---------------+-----------------+----------------+----------+------+------+

 

118. 1990년 10월 한 달동안 북한의 영화를 상영하였다는 이유로 수사기관이 법원에 압수수색영장의 발부를 청구한 것은 모두 41건이고 그중 40건에 대하여 영장이 발부되었는데 수색한 장소는 다음과 같다.

 

고려대학교, 중앙대학교, 숭실대학교, 단국대학교, 동국대학교, 서울대학교, 국민대학교, 국제대학교, 한성대학, 성균관대학교, 건국대학교, 한양대학교, 세종대학교, 경희대학교, 서울시립대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 덕성여자대학교, 서울여자대학교, 연세대학교, 홍익대학교, 서강대학교, 명지대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 용인분교, 경북대학교, 충남대학교, 한남대학교, 순천대학교, 여수수산대학, 목포대학교, 전주대학교, 마산 카도릭여성회관.

 

위의 장소들에서 압수한 영화필름 중에는 앞서 본 바와 같이 국토통일원이 설치한 "북한 및 공산권 정보자료센터"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상영한 영화도 있다.

 

119. 정치범들의 가족들로 구성된 "민주화실천 가족운동협의회"가 집계한 바에 따르면 1991년 9월 9일 현재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수감되어 있는 사람의 수는 539명이며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구속수감되어 있는 사람수는 218명이다. 한편 남한이 규약을 비준하여 효력이 발생한 1990년 7월 직전인 그해 6월에는 국가보안법 위반 구속자가 398명, 집시법위반 구속자가 172명이었다. 따라서 규약의 효력발생이후에도 정치범의 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상과 양심의 자유

 

- 관련된 규약의 조항 : 제18조

 

120. 한국에는 사상과 양심의 자유 및 그것을 표명하는 자유, 자기의 신념을 침해하는 강제를 받지 아니할 자유를 침해하는 법률과 관행이 있다. 정부보고서가 모호하게 지적하고 있지만(제229항) 한국의 헌법은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고 있다. 실제로는 자본주의체제를 반대하거나 사회주의, 공산주의체제를 지지하는 사람의 경우에는 사상의 자유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 더욱 정확하다. 자기의 사상을 표현할 자유에 대한 침해는 규약 제18조 제3항이 인정한 사유를 아주 넓게 해석하는 법률과 법원의 판결에 의하여 침해되고 있다.

 

121. 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또는 한국정부와 대립적인 관계에 있는 북한 정부를 지지하는 신념을 표시하는 행위에 대하여는 국가보안법 제7조에 의하여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하는 행위"로서 형사처벌이 가해진다는 점과 국가보안법은 또 다른 사람의 국가보안법 위반 행위를 아는 사람이 이를 수사기관에 알리지 아니한 경우에 처벌하는 불고지죄 조항을 두고 있기 때문에 침묵을 지킬 권리를 침해하고 있고 결국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점에 대하여는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122. 국가보안법위반죄로 복역중인 사람들의 경우에 법무부는 법무부령인 "수형자 분류처우규칙"과 "가석방심사 등에 관한 규칙"에 의하여 이들을 "공산주의자"로 전제한 다음 자신의 사상을 포기한다는 전향서를 작성하지 않으면 행형법에 정한 일체의 혜택을 배제하고 있다. 또한 국가보안법위반으로 장기구금되어 있는 수형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이들에게 사상의 전향을 강요하는 과정에서 교도관들의 고문과 가혹행위가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전향제도"는 명백히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보안관찰법

 

123. 국가보안법이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여 사람들을 처벌하고 있고 "전향"제도는 그렇게 처벌받은 재소자들의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으며 보안관찰법은 국가보안법 등에 의하여 처벌받고 석방된 사람들의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

 

124. 보안관찰법은 사회안전법(1975.7.16. 법률 제2769호, 1980.12.31. 법률 제3318호로 개정)을 폐지하면서 대신 제정된 것이다. 사회안전법은 국가보안법 등으로 처벌받고 출소한 사람들 중 "죄를 다시 범할 현저한 위험성이 있거나 일정한 주거가 없어 감호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자"에 대하여는 법무부장관의 행정처분에 의하여 2년간 보안감호소에 수용할 수 있게 하고 있었으며 그 기간은 무한정 갱신할 수 있었다(제6조). 보안관찰법은 사회안전법의 보안감호처분과 주거제한처분을 페지하였으나 보안관찰처분을 통하여 출소자들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

 

125. 국가보안법 제4조(목적수행죄), 제5조(자진지원,금품수수), 제6조(잠입.탈출), 제9조(편의제공) 및 그밖에 형법과 군형법의 일부조항(보안관찰해당범죄)에 의하여 처벌받은 사람들 중 "보안관찰해당범죄를 다시 범할 위험성이 있다고 인정할 충분한 이유가 있어 재범의 방지를 위한 관찰이 필요한 자"(제4조)에 대하여는 검사의 청구에 의하여 법무부에 소속된 "보안관찰처분 심의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법무부장관이 2년의 기간 동안 보안관찰처분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같은 절차를 거쳐 2년 단위로 그 기간을 갱신할 수 있다(제5조, 제7조, 제10조 내지 제15조).

 

126. 보안관찰결정을 면제하기 위하여는 법무부장관이 보기에 "준법정신이 확립"되어 있고 "일정한 주거와 생업"이 있어야 하며 2인 이상의 신원보증이 있어야 한다(제11조). 그리고 "법령을 준수할 것을 맹세하는 서약서"를 제출하여야 한다(시행령 제14조 제1항). 보안관찰처분을 받은 사람(피보안관찰자)은 7일이내에 주거지의 관할경찰서장에게 자기의 인적사항과 "가족 및 동거인 상황과 교우관계", "본인 및 가족의 재산상황", "종교 및 가입한 단체", "직장의 소재지 및 연락처" 등 광범위한 사항을 신고하여야 한다(제18조 제1항). 또 3개월마다 "3개월간의 주요활동사항", "통신.회합한 다른 보안관찰처분대상자의 인적사항과 그 일시, 장소 및 내용", "3개월간에 한 여행에 관한 사항", "관할경찰서장이 신고하도록 지시한 사항" 등을 경찰서장에게 신고하여야 한다(제18조 제2항). 그 사항에 변동이 있을 때에도 신고하여야 하며 주거지를 이전하거나 국외여행 또는 10일이상 주거를 이탈하여 여행하고자 하는 때에는 미리 그 내용을 신고하여야 한다(제18조 제4항). 검사 및 사법경찰관은 대상자의 "행동 및 환경을 관찰"해야 하며 "신고사항을 이행함에 적절한 지시"를 할 수 있고 "사회의 선량한 일원이 되는데 필요한 조치"를 하는 방법으로 그를 "지도"할 수 있으며(제19조 제1항) 특히 필요한 경우에는 "보안관찰해당범죄를 범한 자와의 회합. 통신을 금지"하거나 일정한 "집회 또는 시위장소에의 출입을 금지"하거나 "특정장소에 출석"을 요구하는 등의 "조치"를 할 수 있다(제19조 제2항).

 

127. 피보안관찰자가 보안관찰처분을 받지 않기 위하여 은신 또는 도주한 때에는 3년이하의 징역에(제27조 제1항),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요구되는 신고를 하지 않거나 허위의 신고를 한 경우, 거주예정지나 주거지를 명시하지 않은 경우에는 2년이하의 징역이나 벌금에, 제19조 제2항에 의한 조치에 위반한 경우에는 1년이하의 징역이나 벌금으로 처벌할 수 있다(제27조 제3항).

 

128. 이러한 보안관찰법은 모든 처벌을 다 받은 사람에 대하여 다시 행정처분에 의하여 양심에 반하는 신고의무를 부과하고 주거를 결정하고 이동할 자유를 침해하며 다른 사람과 만나거나 통신할 자유를 포함한 사생활의 자유, 그리고 피보안관찰자의 가족 등 주위사람들의 권리를 침해하여 규약 제12조, 제17조, 제18조 등에 위반하고 있다.

 

129. 서준식은 재일교포로서 서울대학교법과대학에 재학중 북한에 다녀 온 것을 이유로 그의 형인 서승과 함께 간첩죄로 처벌을 받았다. 그는 7년의 징역형을 마친 후 "전향"을 거부하여 사회안전법에 의하여 10년간 보안감호소에 수감되었으며 1989년 석방되었다. 그는 석방후에 보안관찰법에 의하여 보안관찰처분을 받았으나 그 법에 의한 신고를 거부하였다. 이를 이유로 그는 1991년 서울형사지방법원에 기소되어 유죄판결을 선고받았다(91 고단 5196호).

 

130. 보안관찰법은 사회안전법과 마찬가지로 보안관찰처분을 받은 사람이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에 사회안전법에 의한 보안감호처분의 적법성에 대하여 제기한 소송에서 대법원은 "죄를 다시 범할 위험성"에 관하여 그의 경력과 전과, "사회주의 내지 공산주의의 우월성을 믿고 있다는 점", "사회안전법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점", "수용시설내의 관규를 어기고 단식 및 소란행위를 하는 점" 등에 비추어 보안감호처분을 한 것이 정당하다고 판단하였다(85.11.26.선고 85 누 343 판결). 또 다른 판결(85.12.24.선고 85 누 28 판결)에서는 이러한 추상적인 사정외에 "2년간의 보안처분을 받고도 뉘우침이 없이 아직 사상전향을 하지 않고" 있는 점에 비추어 보안감호처분이 정당하다고 하였다. 따라서 추상적인 보안관찰처분의 요건을 널리 해석하는 법원의 태도가 바뀌지 않는 한 행정소송을 통한 구제의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한편 행정소송은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드는데 행정소송을 하는 도중 2년이 지나가 버리면 법원은 이미 문제된 그 처분은 소멸하였다는 이유로 소송을 각하할 것이기 때문에 법적인 구제의 가능성은 더욱 낮은 형편이다.

 

 

학생들에 대한 종교교육

 

131.한국의 기본적인 학교제도는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로 이루어진다. 이들 학교에는 국가가 설립운영하는 국립학교, 지방자치단체가 설립운영하는 공립학교, 그밖에 법인이나 개인이 설립운영하는 사립학교가 있다. 사립학교 중에는 기독교, 천주교, 불교 등의 특정 종교재단이 설립운영하는 학교들이 있고 이들 학교는 그 종교에 관한 교육을 교과목에 편성하여 교육하고 있다. 그런데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의 경우에는 학생이나 학부모가 학교를 선택할 권한이 없고 학교에서도 학생을 선택할 권한이 없으며 학생의 주거지가 어디인가에 따라서 정부가 강제로 특정한 학교에 학생들을 배치하게 된다. 그리고 학생들은 정부가 배치해 준 학교에서 교육을 받아야 한다. 따라서 특정 종교를 믿는 부모의 경우에 그 자녀가 자기가 믿는 것과 다른 종교에서 운영하는 학교에 배치되는 경우도 있으며 이러한 경우 믿는 것과 다른 내용의 종교교육을 학교에서 받게 되므로 "신념에 따라 자녀의 종교적, 도덕적 교육을 확보할 자유"가 침해되고 있다.

 

 

표현의 자유

 

- 관련된 규약의 조항 : 제19조, 제25조 (b)항

 

132. 한국에서 표현의 자유가 침해되는 양상은 매우 심각하다. 표현의 자유는 정부보고서가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제238항 이하)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명목상으로는 보장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규약의 기준에 위반하는 각종 법률 또는 법률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법원의 판결에 의하여, 그리고 때로는 법률에 근거하지 않은 정부의 사실력에 의하여 표현의 자유가 침해되고 있다.

 

 

국가보안법

 

133. 국가보안법(제245항 내지 제247항)에 의하여 표현의 자유가 침해되는 것에 대하여는 다른 장에서 살펴 본 바와 같다. 다만 이 법은 '국가안보'의 개념을 적용하여 정부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거의 모든 말과 행동을 북한에 동조하는 행위로 몰아 처벌할 수 있고 실제로도 그렇게 적용되어 왔다는 점을 다시 지적하고자 한다.

 

 

제3자 개입금지규정

 

134.한국에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법률은 이른바 '제3자 개입금지' 규정이다. 이 조항들은 노동조합법 제12조의 2(1963.4.17.공포 법률 제1329호. 법률 제3350호로 개정된 것)와 노동쟁의조정법 제13조의 2(1963.4.17.공포 법률 제1327호. 법률 제3351호로 개정된 것)인데 모두 1980년 12월 31일 군사쿠데타로 구성된 국가보위입법회의에서 만든 것이다.

 

135.이 조항들은 "직접 근로관계를 맺고 있는 근로자나 당해 노동조합 또는 법령에 의하여 정당한 권한을 가지지 않은 자"가 "노동조합의 설립과 해산, 노동조합에의 가입. 탈퇴 및 사용자와의 단체교섭에 관하여"(노동조합법) 또는 "노동쟁의에 관하여"(노동쟁의조정법) "관계 당사자를 조종. 선동. 방해하거나 기타 이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개입하는 행위"를 한 경우 3년(노동조합법 제45조의 2) 또는 5년 이하의 징역(노동쟁의조정법 제45조의 2)이나 벌금으로 처벌할 수 있게 하고 있다.

 

136.이 조항들은 근로자들의 어려운 상황과 관련되어 있다. 남한의 근로자들은 경제발전과정에서 권리를 보장받지 못했으며 독립한 노동조합을 설립하는 일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였다. 그러나 18년간 계속된 박정희정권이 무너진 1979년 가을 이후 근로자들은 노동조합을 활발하게 설립하면서 노동법이 보장한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처지에 동감하고 이제 새로 시작하는 노동운동을 지원하였다. 1980년 쿠데타로 집권한 새 정권은 노동운동을 잠재울 필요가 있었고 그 일환으로 일반인들의 노동운동 지원을 막기 위하여 이러한 법규정을 만들게 된 것이다.

 

137.이 조항들은 근로자들을 지원하는 사람들을 처벌하여 근로자를 고립시키는 데 이용되어 왔다. 이 조항들은 근로자들을 도와 주는 사람들을 처벌하는 데에만 이용되었을 뿐이며 사용자의 편을 드는 제3자를 처벌하는 데 이용된 일은 없다. 이 조항들의 구성요건은 "조종, 선동, 방해, 기타 이에 영향을 미칠 목적, 개입" 등과 같이 매우 추상적이고 막연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이 금지하는 행위의 유형을 합리적으로 추론하는 것이 불가능하여 인권을 침해하는 데 남용되었다. 이 조항들에 대하여는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되고 부당하게 근로자들에게만 불이익을 주는 것으로 평등권에 위배된다는 여러 비판이 있었으나 헌법재판소는 1990년 1월 15일 이 조항들이 합헌이라고 선언하여(89 헌가 103) 이 조항들에 대한 더 이상의 문제제기가 불가능하게 되었다.

 

138.가. 제3자 개입으로 처벌받은 행위는 매우 많다. 근로자들이 노동조합을 조직하는 데 도움을 주거나 쟁의를 하는 근로자들을 격려하는 경우 이 조항들에 의하여 처벌을 받고 있다. 최근에 있은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연대를 위한 대기업노조회의 ("연대회의")사건을 들 수 있다. 1990년 가을 여러 대기업 노동조합들의 대표자들이 연대회의를 구성하였는데 정부는 1991년 2월 서울 북부의 의정부에서 모임을 마치고 나오던 연대회의의 간부 60여명을 불법연행하였고 그 중 실무간사인 홍영표를 포함한 7명을 구속하였다. 기소된 6명에게는 대우조선노동조합의 쟁의에 개입하였다는 이유로 노동쟁의조정법의 제3자 개입금지규정이 적용되었다. 그리고 홍영표에게는 개인적으로 노동조합법의 제3자개입금지 규정이 적용되었다.(한진중공업의 노조위원장인 박창수는 구속중 사망하였는데 수사기관은 그가 자살하였다고 발표하였으나 가족들과 동료들은 계속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나. 대우조선의 쟁의에 개입하였다는 범죄사실은 다음과 같다.

 

1991년 2월 8일 경상남도 거제도에 있는 대우조선주식회사의 노동조합은 회사측과 하던 오랜 단체교섭이 결렬되자 파업에 들어갔다. 이에 대하여 정부는 경찰을 투입하여 쟁의를 진압하려는 방침을 밝히고 있었다. 연대회의의 대표자들은 2월9일 거제도에서 약 400KM이상 떨어진 의정부에 모여서 대우조선 노동조합의 쟁의는 정당한 것이며 정부의 무력진압방침은 부당한 것이므로 반대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작성하고 이를 모사전송기를 통하여 대우조선 노동조합에 보냈다. 그리고 2월13일 노동조합과 회사는 원만히 합의하여 쟁의는 평화적으로 종결되었다. 그런데 정부는 연대회의의 간부들이 대우조선의 쟁의에 개입하였다는 이유로 기소했고 이들에 대하여 서울형사지방법원에서 모두 유죄판결이 선고되었다.(정윤광 91 고단 1474, 이은구 91 고단 1476, 윤명원 91 고단 1477, 홍영표 91 고단 1478, 손종규 91 고단 1479, 이철규 91 고합 379 대법원)

 

다. 홍영표에게 적용된 노동조합법의 제3자 개입은 다음과 같다.

 

홍영표는 1985년에 일어난 대우자동차 노동자들의 쟁의와 관련하여 1986년 2월 동료들과 함께 해고되었다. 그후 홍영표는 해고된 동료들과 함께 회사에 대하여 계속 복직을 요구해 왔다. 그리고 노동조합도 단체교섭의 안건으로 이들의 복직을 요구하여 회사와 협의한 결과 여러 명이 복직되기도 하였다. 1989년 9월과 1990년 7-8월에 노동조합과 회사는 해고자들의 대표를 참석시킨 가운데 공식으로 해고자들의 복직을 위한 교섭을 벌였다. 그리고 홍영표는 1989년 9월에는 교섭기간 중 자신들의 복직을 요구하는 유인물을 만들어 회사근로자들에게 배포하였으며 1990년 7-8월의 교섭에는 회사의 동의아래 근로자대표로 복직협상에 참여하여 해고근로자들의 복직을 요구하였다. 그런데 검찰은 홍영표의 이러한 행위가 모두 노동조합법의 제3자 개입금지규정에 위반하였다며 기소하였고 법원은 유죄판결을 선고하였다.

 

139.한국의 노동조합은 사실상 기업별 노동조합의 형태로 구성되어 있고 모든 노동조합은 정부가 공인한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및 그 산하의 산업별 연맹에 가입하지 않으면 노동조합을 설립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한국노총은 정부의 정책을 지지해 온 어용조합이라는 비판을 받아 왔다. 그리고 노동조합이 단체교섭이나 쟁의를 할 때 한국노총이나 그 산별연맹이 아닌 자가 노동조합을 도와 줄 경우 제3자 개입으로 처벌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노동조합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 없게 되어 활동에 사실상 큰 제약을 받고 있다. 제3자 개입금지규정은 근로자들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동시에 제3자의 신체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

 

 

영화, 공연, 음반 등에 관한 사전검열

 

140.한국의 헌법이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고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을 금지하고 있는 것은 정부보고서가 설명한 바와 같으나(제239항) 여러 법률은 실제로 사전 허가나 검열제도를 정하여 예술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는데 이는 규약 제19조에 위반된다.

 

 

공연법의 사전검열

 

141.공연법(1961.12.30.법률 제902호, 1989.12.30. 법률 제4183호로 개정) 제14조와 제14조의 2, 제17조, 제27조, 이 법 시행령 제15조 내지 제 18조는 공연자가 공연을 할 때에는 사전에 관할관청에 각본 또는 대본을 붙여 신고해야 하며 각본 또는 대본에 대하여는 문화부장관의 심사를 받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무용 또는 음악연주에 대하여는 실연심사를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이렇게 신고한 내용과 다른 공연을 하거나 문화부장관의 심사에 합격하지 않은 것을 공연한 경우, 합격한 것과 다른 공연을 한 경우에는 공연자 등에게 6월 까지 공연활동의 정지를 명할 수 있고 1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할 수 있다.

 

 

영화법의 사전검열

 

142. 가. 영화법(1973.2.16.법률 제2536호, 1989.12.30.법률 제4183호로 개정)에 의하면 영화제작업자는 문화부에 등록해야 하며(제4조) 일단 영화를 제작한 다음에 상영하기 위해서는 다시 공연윤리위원회의 심의를 받아야 하고 심의를 받지 않은 영화는 상영이 금지된다.(제12조 제1,2항) 영화제작업자로서 등록을 하지 않고 영화를 제작하거나 심의를 받지 않은 영화를 상영하는 경우 2년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처벌하게 된다.(제32조 제1호, 제5호) 공연윤리위원회는 "헌법의 기본질서에 위배되거나 국가의 권위를 손상할 우려가 있을 때, 공서양속을 해하거나 사회질서를 문란하게 할 우려가 있을 때, 국제간의 우의를 훼손할 우려가 있을 때, 국민정신을 해이하게 할 우려가 있을 때" 등의 경우에는 심의를 거부하게 되어 있다.(제13조) 이러한 검열기준은 너무 포괄적이기 때문에 정부에 대하여 비판적인 내용은 대부분 심의를 통과할 수 없어 영화를 통한 예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크게 침해하고 있다. 이 점은 뒤에서 보는 음반 및 비디오물에 관한 법률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나. 소형영화를 제작하는 홍기선은 1988년 6월에 16MM 극영화인 "오 꿈의 나라"를 제작하면서 문화부장관에게 신고하지 않았다. 그리고 공연윤리위원회의 심의를 받지 않고 "한마당"이라는 극장에서 그 영화를 상영하였다. 이를 이유로 홍기선과 극장주인 유인택은 영화법위반으로 기소되었다.(서울 형사지방법원 89 고단 3541, 4362) 그리고 1989년 10월 5일 법원은 그들에게 모두 유죄판결을 선고하였다. "오 꿈의 나라"는 1980년 쿠데타를 한 정권에 대항하여 항의하다가 피살당한 광주시민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것이다. 사람들은 정부가 소형영화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사전신고나 심의를 요구하지 않으면서 이 영화에 대해서만 문제삼은 것은 영화의 주제가 반정부적인 것이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다. 영화제작자인 이용배는 1989년 12월경 근로자들이 독립한 노조를 결성하여 파업에 들어가는 과정을 그린 "파업전야"라는 영화를 제작하여 "한마당"이라는 극장과 여러 대학교의 구내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상영하였다. 이를 이유로 하여 이용배와 한마당의 대표 김명곤은 영화법위반으로 기소되어 서울형사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90 고단 8020)

 

라. 이상인은 역시 문화부장관에게 등록하지 아니하고 "어머니 당신의 아들"이라는 영화를 제작하여 사전심의를 받지 않은 채 여러 대학교에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상영하였다. 이를 이유로 그는 기소되어 서울형사지방법원에서 유죄의 판결을 선고받았다.(1991.9.3.선고 91 고단 4595판결) 정부는 이 영화를 대학교에서 상영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전투경찰을 동원하여 학교를 봉쇄하고 학생들을 체포하고 영사기 등을 압수하기도 하였다.

 

 

음반법에 의한 사전검열

 

143.가. 음반 및 비디오물에 관한 법률(1991.3.8. 법률 제4351호, 과거에는 법률 제1944호 음반에 관한 법률)은 제3조에서 음반 또는 비디오물의 제작자에게 문화부장관에게 등록하게 한 다음 판매. 배포. 대여 등의 목적으로 음반이나 비디오물을 제작하려는 자는 사전에 공연윤리위원회로부터 심의를 받아야 하고 심의를 받지 아니한 음반 등에 대하여는 판매. 배포. 대여. 진열. 보관 등을 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제16조) 이러한 제한에 위반한 경우에는 3년이하의 징역이나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된다.(제24조 제1항)

 

나. 박인배는 1990년 9월 제작자로 등록하지 않고 사전심의를 받지 아니한 채 노동운동을 지지하거나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의 노래들이 실린 카세트테이프를 만들어 판매하였다는 이유로 기소되어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에서 징역 2년의 형을 선고받았다.(91 고단 1418)

 

 

정기간행물의 등록제도

 

144.가. 정기간행물의 등록등에 관한 법률(1987.11.28. 법률 제3979호, 1991.12.14. 법률 제4441호로 개정)은 정기간행물을 "동일한 제호로 연 1회이상 계속적으로 발행하는 신문 ,통신, 잡지, 기타 간행물"이라고 넓게 정의하고 있다.(제2조) 그리고 이러한 정기간행물을 발행하고자 하는 자에 대하여 발행부수와 목적에 상관없이 아주 까다로운 조건을 붙여 공보처장관에게 등록하게 한 다음(제7조) 등록을 하지 않고 정기간행물을 발간하는 경우 1년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할 수 있게 하고 있다(제22조).

 

나.정부에 비판적인 단체가 이 법에 의하여 등록하지 아니하고 홍보물을 발행하는 경우에 처벌받은 사례가 많이 있다. 예컨대 정부가 불법화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경우 그 회원들을 상대로 전교조신문을 발행하여 배포하였다는 이유로 위원장 등 간부들이 처벌받았으며(서울형사지방법원 89 고단 5590, 90 노 548) 재야단체인 전민련에서 전민련신문을 발행했다는 이유로 대표인 오충일과 윤정석이 기소되어 있고(서울형사지방법원 89 고단 5592)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의 위원장 권영길도 등록하지 않고 기관지인 언론노보를 발행했다는 이유로 같은 법원에 기소되어 재판을 받고 있다.(89 고단 5591) 특히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의 경우에는 정부가 공인한 한국노총에 가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노동조합설립을 부인하고 있고 두 번에 걸쳐 언론노보의 발행을 위해 공보처에 등록하려 했는데도 노동조합으로 합법화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등록을 거부하였다. 그런 다음에 등록없이 언론노보를 발행했다는 이유로 기소하였다.

 

 

방송과 관련한 표현의 자유

 

145.언론매체와 관련한 표현의 자유는 텔레비젼방송과 관련하여 특히 문제가 되고 있다. 한국에는 4개의 텔레비젼방송국이 있으며 주한미군을 위한 AFKN이 따로 채널을 가지고 방송을 하고 있다. 4개의 방송국은 공영방송국인 한국방송공사(KBS), 방송문화진흥회가 소유자인 주식회사 문화방송(MBC), 재벌기업인 주식회사 태영이 소유한 방송국으로 1991년에 개국한 서울방송(SBS), 문교부가 소유한 교육방송 등이다. 그중 한국방송공사는 2개의 텔레비젼채널과 여러 개의 라디오방송을 가진 가장 중요한 방송국이다.

 

146.한국방송공사법(1987.11.28.법률 제3980호, 1990.8.1. 법률 제4264호로 개정)에 의하면 KBS의 최고의결기구인 이사회를 구성하는 이사들은 방송위원회의 추천으로 대통령이 임면하며 사장은 이사회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면한다(제6조, 제15조). 주식회사 문화방송의 경영진은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의 이사회가 선임하는데 방송문화진흥회법(1988.12.26. 법률 제4032호)에 의하면 방송문화진흥회의 이사회는 모두 10명으로 구성하며 국회의장이 지명한 4명, 방송위원회가 추천하는 6명으로 구성한다(제6조).

 

147.방송위원회는 방송법(1987.11.28.법률 제3978호, 1991.12.14.법률 제4441호로 개정)에 의하여 방송에 관한 기본정책과 방송내용의 심의, 시정과 제재 등을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기관이다.(제11조 내지 제21조) 방송위원회는 9명으로 구성하는데 대통령, 국회의장, 대법원장이 각각 3명씩 지명하는 9명으로 구성하게 되어 있다(제12조). 결국 KBS와 MBC방송국의 경영진은 방송위원회에 의하여 선임되는데 방송위원회의 위원들이 대통령과 대통령으로부터 독립하여 있다고 보기 어려운 대법원장과 국회의장에 의하여 지명되므로 성격상 정부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로 구성되게 되어 독립성을 의심받고 있다. 그리고 이들에 의하여 경영진이 구성되는 방송국도 정부로부터 독립되어 있다고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실제로 1990년 4월에는 합법적으로 선출되어 비교적 공정하게 직무를 수행한다는 평가를 받는 한국방송공사의 사장을 임기도중에 무리하게 퇴진시키고 어용언론인으로 비판받는 사람을 새 사장으로 선임하는 일이 일어났다. 그때 정부의 조치에 반발하여 5,000여명의 사원들이 약 20여일간 사실상 파업을 하였으며 이 일로 13명의 사원이 구속되어 처벌을 받은 일도 있다.

 

148.방송위원회는 일정한 내용의 방송내용에 대하여 사전에 그 내용을 심의한다. 또 방송위원회가 정한 심의규정에 위반한 방송에 대하여는 시청자에 대한 사과, 방송내용의 해명, 정정 또는 취소, 책임자나 관계자의 징계 또는 1년이내의 출연정지 등의 조치를 할 수 있다(제21조). 그런데 심의규정의 내용은 "보도. 논평의 공정성에 관한 사항", "자유민주주의의 신장과 인권존중에 관한 사항", "공중도덕과 사회윤리의 신장에 관한 사항" 등과 같이 막연하게 정해져 있어서(제20조 제2항) 정부의 입장이나 기존의 가치관에 어긋나는 내용을 광범위하게 금지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고 있다.

 

149.방송위원회가 방송내용을 통제하는 사례중 대표적인 것은 다음과 같다. 이러한 사례들은 방송위원회가 방송을 통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가. 방송위원회는 1989년과 1991년 MBC가 심의를 요청한 "한국 - 알려지지 않은 전쟁"(Korea - the Unknown War)의 방영을 금지하였다. 이 프로그램은 영국의 테임즈 TV프로덕션이 제작한 것으로 한국전쟁에 관한 기록물이다. 방송위원회는 이 프로그램의 내용이 "한국전쟁에 대한 기존인식과 다르고 화면의 시각적 표현이 편향되어 있다"는 등의 이유로 방영을 허가하지 않았다.

 

나. 1991년 1월 6일부터 MBC는 모두 50회로 예정된 "땅"이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하기 시작했다. 이 프로그램은 한국에서 땅값의 지나친 상승과 그 이익을 노린 투기와 땅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을 다룬 것이며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방송위원회는 1월 24일 MBC에 대하여 "사과방송"을 명령했으며 그 제작자들은 징계를 받았고 마침내 이 프로그램은 15회만을 방영한 채 도중에 끝나고 말았다. 이 사건으로 방송위원회가 독립성을 잃고 정부나 경제적 강자들의 입장만을 옹호한다는 비판이 강하게 제기되었다.

 

다. KBS는 1991년 5월 24일부터 6월 21일 까지 일주일에 한번씩 남북통일에 관한 여러 문제를 다루는 "대화"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하였다. 그런데 방송위원회는 이 프로그램이 정부의 통일정책을 왜곡할 우려가 있고 학생들의 통일운동이 정통성과 순수성을 갖는 것 처럼 취급했다는 이유로 "사과방송"을 명령했다. 이 조치로 방송위원회가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프로그램의 방영을 제한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그밖의 문제점

 

150.한국에서 언론기관의 경영자들은 정부로부터 독립되어 있지 않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1987년 이후 언론의 자유가 신장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도 정부에 대한 예민한 비판에는 여러 제한이 있다고 언론인들은 주장하고 있다. 특히 대통령, 안기부, 군부의 문제점 등은 이른바 "성역"으로 취급되고 있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비판기사는 삭제되거나 쓴다고 하는 경우에도 "고위층", "모(某)기관", "군당국자" 등과 같이 모호하게 표현하는 것이 관례이다. 특히 대통령을 예민하게 비판하는 기사에 대하여는 청와대 또는 안기부가 언론사에 영향력을 행사하여 보도되지 않게 하거나 기사내용을 축소하기 위하여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도 많이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정부에 거슬리는 보도를 한 언론인을 수사기관이 불법으로 연행하여 조사를 하는 일도 있다.

 

151.표현의 자유 또는 국민의 알 권리를 제한하는 또 하나의 문제는 기자들과 정부당국의 유착이다. 한국의 주요 언론사의 기자들은 주요한 정부기관이나 법원, 주요정당 등 기관별로 주로 취재하는 기자들이 정해져 있는데 이들은 기자단(press club)을 구성하고 있다. 이 기자단은 관련된 기관의 정보를 독점적으로 공유하며 새로 생긴 언론사나 자유기고가 등의 취재를 봉쇄하는 역할을 하고 기자단의 내부통제를 위반하는 회원을 징계하여 취재를 금지하기도 한다. 또 기자단은 출입처로부터 정기 또는 부정기로 금품을 받는 일이 많이 있다. "촌지"라고 하는 금품제공의 관행은, 언론계의 주장에 의하면, 대통령부터 많은 행정기관과 정당, 사회단체 들에 널리 퍼져 있다고 하며 언론이 출입처의 필요에 따라 정보를 왜곡하여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주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이러한 뿌리깊은 부패관행에 대하여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 기자협회 등 일선 언론인단체들이 정화운동을 벌이고 있지만 아직도 해결될 전망은 보이지 아니하며 여러 번 큰 문제가 되었으나 수사당국이 이에 대하여 수사를 벌이는 일은 거의 없었다.

 

152.언론의 자유에 대한 억압의 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정부의 비리나 인권침해를 집요하게 추궁하는 언론인에 대한 기소와 처벌이다. 1989년 8월 15일 학생운동 지도자의 한 사람인 중앙대학교 총학생회장 이내창이 남해안의 섬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일이 일어났다. 이 사건 이후 수사당국은 그가 자살했다고 결론을 내렸으나 가족과 학생들은 수사의 모순을 지적하면서 의문을 제기하였다. 그리고 이내창이 사망하기 전에 안기부의 직원으로 있는 여자가 동행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안기부가 이내창의 사망에 관련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추적하여 보도한 한겨레신문의 이공순기자는 허위사실을 보도했다는 이유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고 있다(서울형사지방법원 91 고단 4995). 이 사건에서 목격자들은 처음에는 그 안기부직원이 이내창과 동행했다고 진술하였으나 그 후에 안기부직원을 본 일이 없다고 진술을 번복하였고 이공순기자에 대한 기소는 이처럼 번복된 진술에 근거하여 이루어졌다.

 

 

기밀보호법제의 문제점

 

153.국가의 기밀보호와 관련한 주요한 형벌법규는 국가보안법외에 군사기밀보호법과 형법 제127조가 있다. 형법 제127조는 "공무원 또는 공무원이었던 자가 법령에 의한 직무상 비밀을 누설한 때에는 2년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년이하의 자격정지"형으로 처벌할 수 있다. 군사기밀보호법(1972.12.26. 법률 제2387호, 1981.12.31.법률 제3492호로 개정)은 국군과 향토예비군, 한국에 주둔하는 국제연합군과 외국군(미군)의 군사정책, 전략, 외교, 작전계획, 용병, 편제, 장비, 동원, 정보, 운송, 통신, 인사, 군용물 생산, 공급, 연구 등에 관한 사항을 모두 군사기밀로 정하고(제2조, 제18조) 이러한 군사기밀을 "부당한 방법으로 탐지하거나 수집하는 것"(제6조), "탐지.수집하거나 업무상 알게 된 기밀을 타인에게 누설하는 것"(제7조, 제8조), "과실로 누설하는 것"(제9조), "우연히 알게 된 기밀을 누설하는 것"(제10조), "기밀을 분실하거나 도난당하고 신고하지 않은 것"(제12조) 등을 모두 처벌하고 있다.

 

154.군사기밀보호법은 1972년의 비상국무회의에서 만든 법인데 군사기밀의 범위를 군에 관한 모든 사항으로 열거한 다음 군당국이 스스로 공표하는 것이 아닌 한 이를 취재하거나 아는 것을 처벌하기 때문에 군에 대한 비판의 자유와 알 권리를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155.형법 제127조는 법률의 문장이 분명히 "법령에 의한 직무상 비밀"을 누설한 행위만을 처벌하게 되어 있는데도 대법원은 "법령에 의하여 비밀로 분류명시된 사항 뿐 아니라 사회적 필요에 의하여 비밀로 된 사항, 외부에 알려지지 않는 것에 상당한 이익이 있는 사항을 포함한다"고 넓게 해석하여(1981.7.28.선고 81 도 1172 판결) 비밀의 범위를 유추확장하고 있다. 이러한 해석에 근거하여 여러 재벌기업이 부동산투기를 한 내용을 공개한 감사원의 감사관 이문옥은 이 조항에 위반한 것으로 구속되었고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서울형사지방법원 90 고단 3615)

 

156.국가보안법의 국가기밀에 대한 광범위한 해석과 함께 이러한 기밀보호법들은 국가의 정보에 대한 언론의 취재와 보도를 금지함으로써 규약 제19조가 보장한 표현의 자유는 물론 국민들이 정보를 추구하고 접수할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 특히 법원에 기밀의 내용에 관하여 아무런 통제도 하지 않고 오히려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경험하는 사실이나 언론매체의 보도 등을 통하여 알게 되는 내용 등을 모두 국가기밀이라고 함으로써 모든 공무원과 국민들이 언제든지 필요에 따라 이러한 법률로 처벌받을 수 있는 실정에 있다.

 

 

정부가 독점하는 교과서제도

 

157.교육법(1949.12.31.법률 제86호, 1991.3.8.법률 제4347호로 개정) 제157조 제1항은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의 경우에 교과용도서는 교육부가 저작권을 가졌거나 검정 또는 인정한 것에 한하여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1977.8.22.대통령령 제8660호, 1988.8.22.대통령령 12908호로 개정. 이하 "규정")에 의하면 교과용도서란 학생용의 주된 교재인 교과서, 교사용의 주된 교재인 지도서를 의미한다(제2조). 그중 교육부가 저작권을 가진 것을 "1종 교과서" 또는 "1종 지도서"라고 하고 교육부장관이 검정한 것을 "2종 교과서" 또는 "2종 지도서"라고 한다. 그런데 국민학교의 모든 교과서와 지도서, 중학교의 교과목 중 국어, 도덕, 국사, 고등학교의 교과목 중 국어, 국민윤리, 국사의 교과서와 지도서는 교육부가 저작권을 가진 1종교과서와 지도서만 사용할 수 있고 그밖에도 교육부장관은 필요한 교과목에 대하여 1종 교과서와 지도서를 사용하도록 지정할 수 있다(규정 제4조).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나머지 교과목에 대하여는 교육부장관의 검정을 받은 교과서와 지도서를 사용해야 하는데 검정은 교육부장관이 위촉한 심사위원이 교육부장관이 정한 검정기준에 따라서 하며 검정에 합격하는 교과서와 지도서는 한 과목에 8가지 이내로 하게 되어 있다(규정 제12조 내지 제19조).

 

158.이와 같이 학생용 교과서와 교사용 지도서를 교육부장관이 저작권을 가진 것 또는 교육부장관이 검정한 것에 한하여만 사용하게 하고 그밖의 도서는 사용할 수 없게 함으로써 교육의 내용이 정부에 의하여 확일적으로 통제되며 교과용도서의 집필과 출판에 관하여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

 

 

각종 선거법에 의한 표현의 자유제한

 

159.한국의 선거법에는 대통령선거법(법률 제3937호), 국회의원선거법(법률 제4003호), 지방의회의원 선거법(법률 제4311호), 지방자치단체의 장 선거법(법률 제4312호) 등이 있다. 그런데 이 법들은 공통적으로 선거기간 중 선거인들의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함으로써 규약 제19조와 "선거인의 의사의 자유로운 표명을 보장"하는 규약 제25조 (b)항에 위반된다.

 

160.선거법들은 공통적으로 선거운동의 개념을 "당선되거나 되게 하거나 되지 못하게 하기 위한 행위"로 정한 다음(대통령 제33조, 국회의원 제38조, 지방의회 제38조, 지방자치단체의 장 제34조)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자를 정당, 후보자, 선거운동원으로만 제한하고 법률에 정한 이외의 방법으로는 일체의 선거운동을 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그리고는 선거운동을 할 자격이 없는 사람들, 즉 일반 국민들은 정당 또는 후보자를 지지. 추천하거나 반대하는 활동 등 선거와 관련된 의사표시를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정부와 여당을 지지하는 행동은 사실상 허용되는데 비하여 정부에 반대하거나 야당을 지지하는 행위는 처벌받는 경향이 있어 평등권을 침해하는 측면도 있다.

 

161.1991년 6월 20일 남한에서는 지방의회의원 선거가 있었다. 이 선거를 앞두고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에서는 "노동조합을 탄압하는 정당의 후보는 찍지 맙시다. 단일화된 야권후보를 찍읍시다." 는 등의 내용으로 사실상 여당에 반대하고 야당을 지지하는 내용의 조합원활동지침을 결의한 다음 이를 그 연맹의 신문에 실어서 조합원들에게 배포하였다. 사무금융노련의 위원장인 최재호는 지방의회의원선거법에 위반하였다는 이유로 구속되어 기소되었고 제1심과 제2심에서 모두 유죄판결을 선고받았다.(서울지방법원 동부지원 91 고합 439; 서울고등법원 91 노 4558)

 

162.1992년 3월 24일에는 국회의원총선거가 있었다. 총선거를 앞두고 시민단체인 경실련에서는 모든 입후보자들을 대상으로 경제정책에 관한 설문조사를 하여 후보자들이 회답한 결과를 공개하려 하였다. 그런데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경실련이 그 설문조사를 공개하는 것이 위법하다고 하면서 금지하였다. 이러한 당국의 처사는 선거와 관련하여 선거인의 자유로운 의사표명을 제한하는 동시에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 보인다.

 

 

알 권리

 

163.남한에는 아직 정보공개법이 제정되어 있지 아니하다. 그런 반면 정부는 행정전산망을 통하여 국민 개개인에 대하여 광범위한 정보를 수집하여 관리하고 있고 국가안전기획부와 국군기무사령부, 치안본부 등 각종 정보.수사기관도 넓은 범위의 국민들에 대해 다양한 방법으로 정보를 수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처럼 정부에 의하여 수집되어 있는 정보의 내용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정보의 내용이 사실 그대로인지 국민들은 확인할 길이 없는 실정이다.

 

164.그밖에도 국가기관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정보에 대하여 언론기관이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매우 제한되어 있고 개인에 대한 수사기록과 재판기록을 관리하는 검찰청은 당사자들의 자기 사건에 대한 기록 복사요구를 거부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평화적인 집회의 권리

 

- 관련된 규약의 조항 : 제21조

 

165. 한국에서는 앞서 본 국가보안법 등 여러 가지 법률들과 정부의 정책에 의하여 국민들의 의사표현의 자유가 엄격하게 통제되어 왔다. 그런 반면 정치적인 민주화와 생존권의 보장 등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는 점차 확대되어 왔고 자기들의 의사를 표시하고 정부의 정책에 영향을 미치려는 대중들과 이를 억누르려는 정부 당국 사이에 마찰이 있어 왔다. 이런 이유로 한국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1989.3.29. 법률 제4095호, 1991.11.30. 법률 제4408호로 개정)은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보장하기 보다는 오히려 통제하는 역할을 해 온 것이 사실이다.

 

166. 1980년 5월 전남 광주에서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와 시민들이 충돌하여 약 일주일 동안 수백명의 시민이 피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후 정부는 정부보고서에서도 지적하고 있듯이(제254항) "현저히 사회적 불안을 야기시킬 수 있는 집회 또는 시위"를 금지한다는 구집시법(1962.12.31. 법률 제1245호, 1980.12.16.법률 제 3278호로 개정)의 조항을 확대해석하여 대학교 구내이건, 혹은 시내이건 막론하고 무장한 전투경찰을 동원하여 모든 평화적인 집회를 봉쇄하고 관련자를 처벌해 왔다. 그런 가운데 의사표현의 방법을 갖지 못한 일부 대학생 등은 최소한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얻기 위하여, 즉 전투경찰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화염병 등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정부는 이러한 시위의 양상을 이유로 집회와 시위를 더욱 강경하게 진압하면서 그러한 폭력성 때문에 집회를 금지한다고 주장해 오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일정한 정책적 필요에 의하여 집회와 시위를 허용한 경우에는 언제나 집회가 평화적으로 끝나고 있다는 점에 비추어 보면 외형적으로 보이는 집회와 시위의 폭력성은 정부의 자의적인 집회금지와 전투경찰을 동원한 원천봉쇄로 유발되는 측면이 강한 것으로 보인다.

 

167. 구집시법이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한다는 비판에 따라 1989년 3월 29일 개정된 지금의 집시법이 공포되었는데 이법은 금지하는 집회와 시위의 개념을 "집단적인 폭행, 협박, 손괴, 방화 등으로 공공의 안녕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할 것이 명백한 집회 또는 시위"라고 규정함으로써(제5조 제1항) 문언상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더욱 보장할 수 있을 것 처럼 생각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에도 불구하고 정부당국은 신고제도와 금지통고권을 남용하여 정부와 여당의 정책에 반대하는 내용의 집회와 시위, 그리고 반정부적인 성향을 가지는 사람들에 의하여 열리는 모든 집회와 시위를 금지하고 전투경찰을 동원하여 원천봉쇄를 감행함으로써 평화적인 집회의 권리는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집회의 사실상 허가제도

 

168.집시법은 신고제를 채택하여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주최하고자 하는 자는 그 목적.일시.장소.주최자등을 기재한 신고서를 집회 또는 시위의 48시간전에 관할 경찰서장에 제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제6조 제1항). 이 신고서를 접수한 관할 경찰서장은 ①신고된 집회시위가 절대적으로 금지되는 집회 또는 시위에 해당된다고 인정되거나 ②시간적.장소적 제한 규정에 위반된다고 인정될 때, ③교통소통을 위하여 금지할 집회 또는 시위라고 인정될 때에는 신고서를 접수한 때부터 48시간이내에 그 집회 또는 시위의 금지를 주최자에게 통고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금지통고에 위반하여 집회를 연 경우에는 주최자는 물론 참가자도 형사처벌을 받게 되어 있다.(제19조)

 

169.그런데 경찰은 신고된 집회 시위가 위와 같은 금지통고의 대상이 되는지 여부를 판단할 때 법률을 선의로 해석하지 아니하고 그 집회의 내용과 주최자가 누구인가에 따라 해당법규를 차별적으로 해석.적용하여 금지통고를 하고 있다. 그리고 금지통고를 한 경우에는 전투경찰을 동원하여 집회예정장소 등을 원천봉쇄하고 참가자들을 강제연행함으로써 사실상 집회 또는 시위에 대한 허가제로 운영하고 있다.

 

170.정부에 비판적인 집회에 대하여 금지통고를 하는 이유는 언제나 그 집회를 여는 사람이나 단체가 과거에 "폭력시위"에 개입한 일이 있기 때문에 그들이 열려고 하는 집회는 역시 폭력적으로 될 것이 명백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예를 보면 정부의 이러한 주장은 설득력이 약함을 알 수 있다.

 

가. 1991년 4월 26일 서울의 명지대학교 학생인 강경대는 학교앞에서 열린 집회에 참가하였다가 집압하는 경찰에 쫒겨 학교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던 중 5명의 전투경찰에게 붙잡혔다. 아무런 방어수단도 지니지 못한 그는 경찰들이 마구 휘두르는 쇠파이프에 온몸을 맞아 사망하였다. 이 사건 이후 전국적으로 경찰의 폭력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고 그 와중에서 5월 18일에는 성균관대학교 학생인 김귀정양이 전투경찰의 진압을 피하여 도망하는 군중들에 깔려 사망하는 일이 다시 벌어졌다. 그런데 정부가 집회의 개최를 허용한 김귀정의 장례식의 경우 정부가 항상 폭력시위를 연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5월 25일 수만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으나 전혀 폭력이 없이 평화적으로 끝났다.

 

나. 정부와 사용자로부터 독립적인 노동조합들로 구성된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 또한 항상 정부가 폭력시위의 주최자 또는 불법단체로 비난하는 단체이다. 그리고 이 단체가 여는 집회는 언제나 정부에 의하여 금지되고 관련자가 처벌받아 왔다. 그러나 1991년 11월 10일 한국의 국제노동기구 가입을 계기로 전노협이 주최한 "노동법개정촉구 대회"는 정부가 개최를 허용하였는데 아무런 폭력없이 평화적으로 끝났다.

 

다. 이러한 예를 보면 정부가 폭력적이라고 비난하는 대부분의 집회와 시위가, 정부에 의하여 금지되지만 않았더라면 평화적으로 끝날 수 있는 것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라. 경찰서장이 신고한 집회와 시위에 대하여 금지통고를 한 경우 당사자가 이에 불복하여 구제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없다는 점도 문제이다. 집시법에 의하면 금지통고에 대하여는 서울시장 등에게 이의신청을 하고 이의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고등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제9조). 그런데 이의신청에 의하여 집회를 허용하는 결정이 내려지는 경우는 없기 때문에 결국 행정소송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행정소송은 적어도 여러 달의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집회를 열기로 했던 기간을 훨씬 지나서 승소한다고 해도 아무런 실익이 없게 된다. 따라서 경찰서장의 집회금지통고에 대하여 사실상 아무런 법적인 구제방법이 없는 셈이고 금지통고는 허가제와 마찬가지의 효과를 가지는 것이다.

 

 

원천봉쇄

 

171. 경찰은 신고된 집회 또는 시위에 대하여 금지통고를 하는 경우에는 거의 예외없이 예정된 집회의 장소에 수백 내지 수천명의 전투경찰병력을 배치하여 그 집회에 참가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거나 체포연행하여 집회의 개최자체를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게 하는데 이를 보통 "원천봉쇄"라고 부르고 있다.

 

172. 이러한 원천봉쇄과정에서 경찰은 참가자들을 영장없이 검문. 검색하고, 최루탄을 발사하거나 혹은 체포하여 경찰서로 강제연행하기도 한다. 경찰의 버스에 태워 교외로 데리고 가 한 사람씩 내려놓아 버리기도 한다. 때로는 집회에 참석하려는 사람들이 지방에서 오는 것을 막기 위하여 지방의 공항, 역, 버스터미널, 고속도로진입로 등을 가로막고 검문검색하여 집회에 참석할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사람의 이동을 물리적으로 봉쇄하기도 한다.

 

 

진압과정의 무분별한 폭력행사

 

173. 앞서 본 강경대와 김귀정의 사망사건에서 보이듯이 정부는 일단 불법이라고 규정한 집회.시위에 대하여 무장한 전투경찰을 동원하여 폭력적이고 공격적인 방법으로 진압을 하여 부상자와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다. 집회와 시위의 집압과정에서는 대량의 최루탄이 발사되는 것은 물론이고 쇠파이프와 방패를 무기로 사용하며 시위대를 향하여 돌을 던지기도 한다. 또 권총이나 M16 소총을 발사하는 경우도 있다.

 

174. 1990년 3월 19일 치안본부는 각 경찰관서에 "시위진압술 및 장비개선방안"을 시달하였는데 그 주요내용은 ①시위진압부대는 "이보전진.일보후퇴" 대신 시위대를 향하여 "계속전진"한다. ②신체가격범위와 방식을 대폭 확대 강화한다. ③체포.연행을 공격적으로 한다. ④대형진압등으로 무장하고 방패를 공격무기로 사용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175. 정부는 또 1990년 10월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집단시위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였는데 그 내용은 ①국가시설과 경찰관서 기습은 과감한 무기사용으로 대응한다. ②가두시위에 대하여는 기존의 공격형 진압을 넘어 검거 위주의 작전으로 대처한다. ③화염병 투척자에 대하여는 교내에 들어가더라도 끝까지 추적하여 검거한다는 것이었다.

 

 

형사처벌과 법률의 자의적 해석

 

176.가. 1990년 4월의 "KBS사태"에 대한 집시법의 적용양상은 집시법의 조항을 한국의 법집행당국이 선의로 해석하지 않고 있는 하나의 사례이다.

 

1990년 4월 공영방송인 한국방송공사의 근로자들은 합법적으로 선출된 사장이 자의에 의하지 아니하고 사퇴한 후 정부에 예속적인 것으로 보이는 새로운 사장이 취임한 데 항의하여 파업에 들어갔고 정부는 그중 13명을 구속하여 처벌하였다. 이들에게 적용된 죄명에는 사전신고없이 집회를 열어 집시법을 위반한 것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당시 한국방송공사의 근로자들은 파업기간 중 회사의 구내에서 연 집회에 대하여는 신고를 하지 아니하였고 회사의 울타리밖에서 연 집회에 대하여는 모두 신고하여 허가를 받았다. 그런데 검찰은 회사의 구내, 즉 사원들의 자유로운 사용과 출입이 보장되어 있는 회사의 마당에서 이들이 연 집회에 대하여 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소하였고 제1심인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 제2심인 서울형사지방법원 항소부 및 상고심인 대법원은 모두 유죄판결을 하였다.

 

나. 경찰청의 통계에 따르면 1990년 10월 13일부터 1991년 8월 31일까지 사이에 불법시위를 했다는 이유로 연행된 사람의 수는 11,644명이며 그중 1,158명 구속, 1,789명 불구속입건, 1,285명을 즉결심판에 회부하고 나머지 사람을 석방하였다.

 

다. 대법원의 통계에 의하면 집시법위반으로 인한 구속영장발부, 보석 및 재판현황은 다음과 같다.

 

+-----------+---------+-----+--------+--------+------+--------+------+------+

 

| 연도\구분 | 영장청구| 기각| 발부율 |보석신청| 석방 |재판인원| 무죄 |유죄율|

 

+-----------+---------+-----+--------+--------+------+--------+------+------+

 

| 1990 | 539 | 24 | 95.5 %| 126 | 57 | 364 | 0 |100 % |

 

+-----------+---------+-----+--------+--------+------+--------+------+------+

 

| 1991 | 370 | 11 | 97 % | 62 | 19 | 309 | 1 |99.7% |

 

+-----------+---------+-----+--------+--------+------+--------+------+------+

 

*1991년은 1월부터 8월까지임.

 

 

개선대책

 

177. 이상과 같은 사정에 비추어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①집시법의 과도한 규제조항을 합리적으로 개정하여 경찰서장이 차별적으로 금지할 수 있는 여지가 없도록 해야 하며 ②사실상 허가제로 운영되고 있는 금지통고제도를 개선하여 신속하고 합리적인 불복수단이 보장되어야 하며 ③집회.시위의 개최자체를 불가능하게 하는 "원천봉쇄"의 방법이 사용되어서는 안된다. ④마지막으로 법에 어긋나는 집회.시위에 대해서는 이를 사후에 해산하거나 혹은 형사처벌하되 ⑤불가피한 경우에 해산하더라도 강제력은 인명을 살상하는 일이 없도록 필요한 범위내에서 최소한도로 사용하도록 제도와 관행이 개선되어야 한다.

 

 

참 정 권

 

- 관련된 규약의 조항 : 제25조

 

178. 정부보고서가 지적하고 있듯이(제302항 내지 제307항) 한국의 법률은 국민의 참정권을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러한 권리들이 침해되고 있다.

 

179. 관계법률은 노동조합의 정치활동을 전면적으로 금지함으로써 근로자들이 노동조합을 통하여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 노동조합법은 제12조에서 노동조합에 대하여 공직선거에서 특정정당을 지지하거나 특정인을 당선시키기 위한 행위, 조합원으로부터 정치자금을 징수하는 행위, 노동조합기금을 정치자금에 유용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여기에 위반한 경우에는 5년이하의 징역형으로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제45조의 2). 정치자금에 관한 법률도 제12조에서 노동단체가 정치자금을 제공하는 것을 금지하고 위반한 때에는 3년이하의 징역형이나 벌금 및 제공한 자금의 몰수형에 처할 수 있게 하고 있다(제30조). 한국에서는 법률에 의하여 기업과 사용자 및 그들의 단체는 정치활동을 하고 또 정치자금을 지지하는 정당이나 정치인에게 제공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으며 이들은 정당과 정치인들의 정책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그러나 유독 노동조합에만 그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근로자들의 자유를 침해할 뿐 아니라 평등의 원칙에도 위반하는 것으로 보인다.

 

180. 국회의원선거법을 비롯한 한국의 선거법들은 예외없이 중립기관인 선거관리위원회의 주관아래 엄격한 절차에 따라 모든 선거를 치르도록 정하고 있고 투표때에는 선거관리위원회 뿐 아니라 여당과 야당의 후보들이 선정한 참관인들이 참관하여 선거의 부정이 일어나지 않게 감시하도록 하고 있다(국회의원선거법 제99조 내지 제121조). 그런데 선거법은 영내에 거주하는 군인등의 부재자투표에 대하여는 선거관리위원회의 감시나 여야당 참관인의 참관 등 투표의 공정성을 보장할 장치를 마련하지 않고 있어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 1992년 3월 24일 열린 국회의원선거와 관련하여 각급 군부대에서 장교들이 사병들에게 여당의 후보에게 투표하도록 권유하거나 그밖의 방법으로 영향력을 미쳤다는 믿을 만한 주장이 현역 장병들에 의하여 제기되었다. 군대안의 부재자투표인 수는 약 56만여명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주장이 사실이라면 규약 제25조에 위반하는 일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군당국은 사실을 부인할 뿐 공정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아니한다.

 

181. 1960년 5월의 군사쿠데타 이후 한국에서는 지방자치제가 실시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대통령에 의하여 임명되었으며 지방의회는 구성되지 않았다. 그러나 1990년 12월 31일 법률 제4004호로 개정된 지방자치법은 부칙 제2조에서 지방의회의원선거는 1991년 6월 30일 안에, 지방자치단체의 장 선거는 1992년 6월 30일 안에 하기로 정하고 있다. 이 법에 따라서 지방의회의원선거는 1991년 상반기에 이루어졌다. 그러나 1992년 1월 10일 대통령은 위 법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지방자치단체의 장 선거를 1992년에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였다. 이러한 조치에 의하여 남한에서는 지방자치단체에 관한 한 "직접 또는 자유로이 선출한 대표자를 통하여 정치에 참여하는 권리"와 "지방자치단체의 장으로 피선될 권리"가 침해되고 있다.

 

182. 한국에서는 1선거구에서 1명의 국회의원을 뽑는 소선거구제를 채택하고 있다. 그런데각 선거구마다 선거인의 수에 큰 차이가 나서 투표가치가 불평등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예컨대 3월 24일 한 국회의원선거에서 서울 구로갑 선거구에서는 238,346명의 선거인이 1명의 국회의원을 뽑았는데 전라남도 장흥의 선거구에서는 51,770명의 선거인이 1명의 국회의원을 뽑아서 각 선거인의 투표가치에 약 5배의 차이가 나게 되었다. 인구와 지리를 고려하여 선거구를 정한다고 하더라도 투표가치의 차이가 너무 심하여 규약 제25조(b)가 보장하고 있는 평등선거의 원칙에 위반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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