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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cs and Society Archive

87년 6월항쟁의 현재적 의미

by 淸風明月 2023.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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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6월항쟁의 현재적 의미

 

하나의 사건은 수많은 사건들의 축적의 결과로서 만들어져 특정한 시점에서 불꽃처럼 타올라 역사의 흐름을 바꾼다. 그리고 불꽃은 다음에 올 또 다른 사건을 키워내는 불씨로 남는다. 그렇게 때문에 역사학자 E. H. 카아는 역사를 "현재를 과거와 이어주는 대화"라 했다.

 

그러나 우리의 80년대는 아직 과거가 아니다. 80년 광주항쟁이 과거가 아닌 것처럼 876월항쟁도 아직은 우리에게 과거가 아니다. 광주항쟁과 6월항쟁으로 대표되는 우리의 80년대는 21세기 들머리에서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우리는 6월항쟁에서 광주항쟁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90년대의 민주화와 개혁의 과정에서 끊임없이 계속되는 6월항쟁을 보았다. 6월항쟁은 그 속에 짧게는 광주항쟁을 포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길게는 해방 후 우리 현대사의 모든 격정을 안고 있는 것이다.

 

6월항쟁의 의미는 그것이 80년대의 격랑 속에서 광주항쟁을 부활시켰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그것은 세 측면에서 그렇다. 먼저, 6월항쟁은 광주항쟁의 일시적 좌절에 대한 국민적 복원으로서, 결코 광주항쟁이 805월로 끝난 것이 아니며, 광주항쟁이 실패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6월항쟁은 광주학살의 진실을 은폐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었으며, 학살자들이 대가를 치르도록 해주었다. 그리하여 6월항쟁은 광주학살자들에게 미흡하지만 역사적 책임과 정치적 책임을 물었다. 마지막으로, 6월항쟁은 광주항쟁의 정신을 계승하여 발전시켰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그 이후의 운동 속으로 전파하는 역할을 했다. 이런 점에서 광주항쟁은 6월항쟁의 전 단계이며, 6월항쟁은 광주항쟁의 2단계로 평가될 수 있다.

 

더 넓은 역사적 시각에서 6월항쟁을 조망해보면, 6월항쟁은 한국 현대사와 관련해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해방 후 한국정치의 특징은 미소냉전과 남북분단의 대결구조를 배경으로 시작된 군사독재였다. 이런 점에서 우리의 민주화 운동은 '탈군사독재 민주화'로 집약되었으며, 6월항쟁은 30년 군사독재 시대를 마감하고 우리 사회가 민주화로 진행하는 가장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했다. 또 하나, 6월항쟁은 한국전쟁 이후 형성된 대결적 분단구조를 허물고 민족의 통일과 평화를 위한 노력과 시도가 정부와 민간 두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추진되는 계기가 되었다. 결론적으로, 6월항쟁은 해방 후 우리가 끊임없이 추구했던 민주화와 그를 위한 모든 운동의 총체적인 종합이자 그 귀중한 성공의 시작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80년대의 암울했던 시절, 87년의 6월항쟁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런 점에서 6월항쟁 이후의 시기는 우리 역사에서 민주주의와 민족통일, 정의와 평화를 위한 희망의 시기였으며, 그러나 동시에 적지 않은 좌절의 시기이기도 했다. 우리는 6월항쟁에서 국민의 힘으로 대통령직선제를 쟁취했지만 그 성과를 군사정권에게 내주고 말았다. 광주학살에 대한 청문회를 시작했지만 끝내 마지막 진실을 속시원히 밝혀내지 못했다. 6월항쟁의 도도한 물결이 군사독재를 꺾고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를 출범시키고 민주화와 개혁을 추진했지만, 민주화와 개혁은 뜻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리고 다시 19년이 지났다. 이 시기에 많은 좌절과 고통이 있었지만, 우리 역사에서 6월항쟁은 민주주의를 위한 기폭제였으며, 6월항쟁 이후의 시기는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을 위한 시기였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바라는 민주주의는 아직 실현되지 못했다. 더구나 우리 민족 최대의 비운이자 또한 숙원인 민족통일은 그간의 수많은 통일운동과 통일논의, 최근의 6·15남북공동선언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전망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6월항쟁은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현재진행형의 미완성 혁명이다. 따라서 미완의 6월항쟁이 이 시점에서 갖는 의미는 크게 세 가지라 할 수 있다.

 

첫째, 6월항쟁은 군사독재를 끝장내고 군의 정치개입을 차단함으로써 탈군사독재 민주화를 이룩하는 결정적인 계기였다. 그러나 형태상 탈군사독재는 이루어졌지만 군사독재 아래서 뿌리를 내린 군사독재의 잔재들, 즉 독점과 차별과 소외의 구조는 우리 사회 곳곳에 산재해 있다. 따라서 군부를 병영으로 복귀시킨 6월항쟁은 오늘의 시점에서 우리에게 그 잔재인 독점의 정치, 차별의 정치, 소외의 정치를 청산함으로써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룩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특히 정치적 독점, 경제적 독점, 교육의 독점 등 온갖 독점구조를 타파함으로써 차별과 소외를 극복하는 것이 우리가 당면한 과제라 할 것이다.

 

둘째, 6월항쟁은 광주항쟁을 겪으면서 성장한 모든 사회적 운동의 전국적 통합체인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를 매개로 진행되었으며, 그 힘으로 국민적 지지와 참여를 이루어냈다. 말하자면 전두환독재와의 막바지 대결 국면에서 6월항쟁의 중심에 섰던 국민운동본부는 국민들에게 믿음과 희망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이 운동을 바탕으로 다시 노동운동과 진보정당운동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후 국민들에게 믿음과 희망을 주는 진정한 운동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그 사이에 민주노총이 탄생하고 시민운동단체들이 활성화되고, 시민운동의 역량을 모아 결성된 총선시민연대의 낙선운동이 국민적 지지를 받고,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이 원내진출에 성공하기도 했지만,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고 국민적 역량을 결집할 수 있는 대안적인 운동을 만들어내지는 못한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6월항쟁의 21세기적 형태를 모색하는 것은 우리의 당면한 과제라 할 수 있다.

 

셋째, 6월항쟁은 지역감정의 영향을 받지 않고 전국적인 연대를 성사시켰지만, 항쟁의 마지막 단계에서 지역주의적 발생을 목격하였다. 게다가 민주진영 내에서 발생한 지역주의적 발상이 군사정권의 분리통치전략과 결합되어 3당합당을 거치면서 망국적인 지역대결구조로 확대되었다. 이로 인해 야당이 지역감정을 왜곡하고 심화시켰으며, 민주화 운동세력이 지역감정의 볼모가 되었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되었다. 우리 사회에서 지역감정은 해결해야 할 하나의 부분적인 과제가 아니라 우리 정치의 발전을 가로막는 총체적인 장애물로 존재하고 있다. 지역감정은 작게는 사람들간의 이성적인 대화를 가로막는 우상과 같은 것일 뿐만 아니라 크게는 정치발전을 가로막고, 진보정당의 발전을 가로막고, 지역의 정상적인 발전을 가로막는 괴물과 같은 존재로 남아 있다. 이런 점에서 지역감정을 해소하고 지역대결구도를 극복하는 일은 6월항쟁의 미완의 과제를 해결하는 매우 중요한 일이라 하겠다.

 

6월항쟁은 18년 전에 군사독재를 마감한 국민적 힘의 표출이자 그 상징이었다. 그 힘으로 우리는 민간정부를 세웠고 민주화와 개혁을 추진했다. 지난 19년간의 민주적 성과는 전적으로 6월항쟁으로 표출된 민주화를 위한 국민적 요구에서 비롯된 것이다. 6월항쟁이 우리 시대의 민주주의와 개혁의 원천이자 원동력이었음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6월항쟁은 우리 시대의 소중한 기억이자 자산인 것이다. 반면 6월항쟁 이후의 상황을 평가할 때 민주주의 발전은 제한적이고, 수많은 개혁이 좌절되었으며, 지역주의가 더욱 기승을 부리는 상황에서 민족통일의 길은 아직도 멀기만 하다. 이것은 6월항쟁의 역사적 한계를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6월항쟁을 기억하거나 단순 재생하는 것만으로는 21세기를 준비할 수 없다. 6월항쟁에 대한 추억만으로는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의 과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지역주의세력과 수구세력을 극복할 수도 없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6월항쟁을 통해 광주항쟁의 좌절을 훌륭하게 극복했던 것처럼, 6월항쟁을 기억하되 기억하는 것으로만 끝나지 말고 21세기적 관점에서 6월항쟁을 극복하는 제26월항쟁을 통해 6월항쟁의 내재적 한계를 극복하면서 한 걸음 앞으로 전진하는 역사적 진보의 발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절차적 민주주의에서 전진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민주주의의 수준을 한 단계 더 참여민주주의와 실질적 민주주의로 진전시키고, 지역주의를 극복하며, 한반도 평화와 민족통일의 기반을 구축하는 것인 동시에 이를 통해서 심각한 사회양극화를 극복하고 복지사회의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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