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강: {자본론} 제1권 '서문'의 내용
1. 독일어 제1판 서문(맑스. 1867년 7월 25일)
1) 4쪽. "이 책에서 나의 연구대상은 자본주의적 생산방식 및 그것에 대응하는 생산관계와 교환관계다. 이 생산양식이 전형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나라는 지금까지는 영국이다. 영국이 나의 이론전개에서 주요한 예증으로 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 해설 >
가) 내가 '생산방식'이나 '생산양식'으로 번역한 것은 모두 mode of production이라는 용어다. 생산양식은 생산방식(예: 가내수공업, 공장제 수공업, 기계제 대공업)과 생산관계(예: 생산수단의 소유형태, 생산물의 처분형태, 생산과정에서 맺는 사람들의 위계적 질서) 및 교환관계(예: 노동생산물이 유통하는 형태, 상품형태, 화폐형태)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용했다. 물론 이러한 개념으로서의 생산양식은 '경제적 토대'를 가리킬 뿐인데, 생산양식이라는 개념을 경제적 토대뿐 아니라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예: 정치, 법률, 문화, 사상)까지 포함해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나)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은 현실의 영국 경제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영국 경제에서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구성하는 자본가계급과 임금노동자계급 및 지주계급 이외에도 다양한 인구집단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제1권 565-6쪽에서 맑스가 인용한 1861년의 인구조사(잉글랜드와 웨일즈)에 의하면 인구 구성은 다음과 같았다.
총인구 2,000만 명 중에서 비경제활동인구, 행정관리 목사 법률가 군인, 불로소득자, 극빈자 부랑자 범죄자를 빼면 800만 명이 남는데, 그 중에서 광공업노동자가 161만 명이었고, 농업노동자가 110만 명, 하인 하녀 심부름꾼 등 봉사자계급이 121만 명이었고, 그외에는 공업, 상업, 금융업 등에 종사하는 자본가와 자영업주들이었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 경제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이외의 다양한 생산양식을 포괄하고 있으면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 경제를 완전히 이해하려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운동법칙뿐 아니라 자본주의적 생산양식과 기타의 생산양식 사이의 접합(articulation)도 파악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자본주의 경제는 자본주의 경제적 사회구성(체)(social formation)으로 개념화할 수 있을 것이다.
2) 6쪽. "여기에서 개인들이 문제로 되는 것은 오직 그들이 경제적 범주의 인격화, 일정한 계급관계와 이해관계의 담당자인 한에서다. 경제적 사회구성의 발전을 자연사적 과정으로 보는 나의 입장에서는, 다른 입장과는 달리, 개인이 이러한 관계들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개인은 주관적으로 아무리 이러한 관계들을 초월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그것들의 산물이다".
< 해설>
가) 자본가는 '자본'(capital)이라는 경제적 범주( '자본은 자기의 가치를 증식시키려는 가치다' self-valorising value)가 인간의 형상을 띠고 나타난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자본론}에서는 자본가를 묘사할 때 인정이나 인류애나 환경보호 등과 같은 것에는 전혀 관심 없이 오직 이윤을 증대시키기 위해 활동하는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다. 예를 들면 자본가는 노동자들에게 될수록 적은 임금을 주면서 될수록 오래동안 노동시키려고 하는데, 이 때문에 자본가의 이익은 노동자의 이익과 대립하게 된다.
나) 이처럼 자본의 인격화 또는 화신(化身)으로 자본가를 파악하는 것은 자본가의 본질적 특성을 부각시키는 방법일 뿐 아니라, 자본주의의 구조와 발전을 연구함에 있어 개인(의 의지나 희망)보다는 사회적 관계를 중시하는 방법이다. 부르주아 경제학이 소비자의 효용극대화 행위나 생산자의 이윤극대화 행위를 합계하여 사회적 경제현상을 연구하는 것은 '방법론적 개인주의' methodological individualism인데, '개인의 합이 사회'라는 인식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로 개인이 독립적이고 고립적인 존재(예: 로빈슨 크루소)가 아니라 사회에 의해 영향을 받기 때문에, 개인들의 행위를 단순히 합계하여 사회현상을 설명할 수가 없다. 소비자의 무차별곡선을 그릴 때 소비자가 타인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가정하는 것은 불가피하지만, 이것은 현실타당성이 없는 가정이다. 둘째로 구성의 모순(fallacy of composition)이 발생한다는 점인데, 예를 들면 모든 개인들이 저축을 증대시키려고 노력하면 사회 전체에는 유효수요가 부족하여 생산의 감소, 소득의 감소를 통해 결국 저축이 감소하게 되는 것이다.
다) 그러므로 {자본론}에서는 자본주의 사회가 주어져 있다고 가정하면서 이 사회가 개인들의 행위를 규제한다고 본다. 자본가들은 서로 경쟁하면서 초과이윤을 획득하려고 노력하며, 노동자들은 자기의 노동능력을 가장 비싼 값으로 팔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동학(dynamics)에 의해 경제가 끊임없이 변화 발전하는 것이다.
2. 독일어 제2판 후기(맑스. 1873)
1) 11쪽. "경제학이 부르주아적인 한, 즉 그것이 자본주의제도를 사회적 생산의 하나의 과도적인 역사적 발전단계로 보지 않고 사회적 생산의 절대적이고 궁극적인 형태로 보는 한, 부르주아 경제학은 계급투쟁이 아직 잠재적 상태에 있거나 또는 오직 고립적이고 불규칙적인 현상으로 나타나는 동안만 과학으로 존속할 수 있다".
< 해설 >
가) 독일어 제1판 서문(6-7쪽)에서도 맑스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 바 있다. "경제학이 취급하는 문제의 독특한 성격 때문에, 사람의 마음 중에서 가장 맹렬하고 가장 저열하며 가장 추악한 감정--즉 사리사욕이라는 복수의 여신--이 자유로운 과학적 연구를 저지하는 투쟁 마당에 들어오게 된다". 다시 말해 부르주아지의 사리사욕 추구를 저지하는 계급투쟁이 일어나면 부르주아 경제학의 과학성은 훼손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나) 과학성이 훼손되는 형태는 첫째로 자본주의에 대한 '사악한 변호론'이다. 12쪽에서 맑스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노자간의 계급투쟁이 격화하면,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은 어떤 이론이 옳은가 옳지 않은가를 문제삼지 않고 그것이 자본에 유리한가 불리한가, 정치적으로 위험한가를 문제로 삼기 때문에, 객관적인 학자들 대신 고용된 앞잡이들이 나타나고, 진정한 과학적 연구 대신 비양심적인 사악한 변호론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다) 둘째는 '천박한 절충주의'이다. 13쪽에서 맑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직도 약간의 과학적 명성을 얻고 있으며 지배계급의 단순한 궤변가 및 아첨꾼으로 되는 데 만족하지 않던 사람들은 자본의 경제학을 이제는 더 이상 무시할 수 없게 된 프롤레타리아의 요구와 조화시키려고 하였다. 이로부터 존 스튜어트 밀을 대표자로 하는 천박한 절충주의가 나왔다".
라) 그렇다면 계급투쟁이 격화하는 과정에서 '경제학의 과학성'은 어떻게 확보될 수 있는가? 경제학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타도와 모든 계급의 최종적 철폐를 자기의 역사적 사명으로 하고 있는...프롤레타리아'(14쪽)를 대변할 때 가능하다고 맑스는 본다. 그러나 이러한 '선언'은 19쪽에서 부연 설명되고 있는데, 경제학이 '현존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이해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의 부정(즉 그것의 불가피한 파멸)'을 인정해야 하며, '역사적으로 전개되는 모든 형태들을 유동상태 운동상태에 있다고 간주함으로써 그것들의 일시적 측면을 동시에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2) 18쪽. "발표(서술)방법은 형식의 면에서 조사(탐구)방법과 다르지 않을 수 없다. 조사는 마땅히 세밀하게 소재를 파악하고, 소재의 상이한 발전형태들을 분석하고, 이 형태들의 내적 관련을 구명해야 한다. 이 작업이 끝난 뒤에라야 비로소 현실의 운동을 적절하게 발표(서술)할 수 있다".
< 해설 >
가) 복잡한 현실(또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모사' 또는 '반영'하더라도 그 현실을 '이해'할 수가 없다. 따라서 복잡한 현실을 '이론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복잡한 현실에 대한 '지식'을 생산해야 한다. 지식을 생산하는 데도 노동수단(또는 조사수단)이 필요한데, 지금까지 우리가 물려받은 지식들 또는 이론들이 조사수단으로 사용될 것이다. 맑스는 기존의 이론들을 논리적 일관성과 현실적 타당성의 관점에서 '비판'하면서 자기 스스로의 이론을 정립한 것이다.
나) 물론 복잡한 현실 중에서 자기가 해명하려는 대상을 선택해야 하고, 그 조사대상을 구성하는 여러 가지 요소들을 분리하여 개념들을 생산하고 그들 상호간의 연관을 분석해야 할 것이다. 이리하여 조사대상을 완전히 머리 속에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이 조사방법이고 이른바 구체로부터 추상으로 나아가는 '하향법'이다.
다) 그 다음으로 간단한 개념들을 꿰매고 관련시키면서 복잡한 현상들을 재구성하여 논리정연하게 발표 또는 서술하게 된다. 이것이 이른바 추상으로부터 구체(사유 속의 구체)로 나아가는 '상향법'이다.
라) {자본론}은 맑스가 이미 조사 또는 탐구한 것을 발표 또는 서술한 책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상향법에 의거하고 있다. 예를 들면 상품으로부터 시작하여 화폐와 자본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곳곳에서 어떤 개념이나 사물들의 관련을 도출하기 위해서는 하향법에 의한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예를 들면 상품의 '가치' '가치의 실체' '가치의 형태'라는 개념을 도출하기 위해 상품들 사이의 관계를 조사하고 있는 것이다.
3) 18쪽. "나의 변증법적 방법은 헤겔의 그것과 근본적으로 다를 뿐만 아니라 그것과는 정반대의 것이다".
< 해설 >
가) 맑스의 법증법이 헤겔의 그것과 어떻게 다른가는 매우 큰 철학적 과제로 남아 있다.
나) '정반대'라는 것을 지적하기 위해, 헤겔은 '관념이 현실을 창조한다'고 말했지만 맑스는 '현실이 관념을 창조한다'고 말했다는 점을 흔히들 강조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맑스를 포이에르바하와 같은 '기계론적 유물론자'로 간주하고 있을 뿐이다.
다) 헤겔은 모든 현상을 설명하면서 그 현상들이 하나의 본질 또는 하나의 이념의 외적 표현이라고 본다. 다시 말해 모든 현상을 본질 또는 이념으로 환원시킨다. 이것을 흔히들 이성(Logos)중심주의라고 부른다. 그런데 만약 맑스가 모든 사회현상(예: 정치적 문화적 법률적 현상)을 경제적 원인으로 환원시키는 경제중심주의(또는 경제주의 또는 경제적 결정론)에 빠져 있었다면, 맑스는 결코 헤겔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라) 또한 헤겔은 역사가 절대이성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발전하면서 프러시아국가에서 종결한다는 '목적론'과 '종말론'을 제시하였는데, 만약 맑스가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공산주의의 방향으로 발전하면서 역사는 공산주의에서 종결한다는 '목적론'과 '종말론'을 주장했다면, 헤겔이나 맑스는 동일한 오류를 범한 것이다.
마) 맑스가 사회의 토대와 상부구조를 구분한 것과, {자본론}에서 경제를 중심으로 연구하면서 법률과 이데올로기를 논의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맑스가 경제주의에 빠졌다고 비판하는 것은 지나치다. '토대가 궁극적으로 상부구조를 규정한다'는 말은 헤겔의 관념론을 비판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맑스는 경제 정치 사상의 상대적 자율성을 인정하면서 교호작용에 관심을 쏟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자본론}은 경제라는 창구(entry point)를 통해 사회 전체를 파악하려고 한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서 논의되는 법률(예: 공장법)이나 이데올로기(예: 자본은 평균이윤을 낳는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당연히 경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바) 맑스는 자본주의를 타도하고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가 없는 사회를 앞당기기 위해 이론적으로 정치적으로 실천했기 때문에, 공산주의의 도래를 전망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제2인터내셔날의 자본주의 자동붕괴론자들과는 달리 자본주의는 공황(또는 경제적 위기)을 겪으면서 재편성을 거듭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는 정세변화에 따라 온갖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으며, 역사는 항상 끝없는 운동상태에 있다고 파악하고 있었다. {자본론}에서 묘사되고 있는 공산주의는 자본주의의 특수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언급한 것에 불과하며, 역사의 '목적론'이나 '종말론'을 설명하기 의해 언급한 것은 아니었다.
사) 그러나 맑스는 계속 심층(the esoteric)과 표층(the exoteric)을 구별하고 있는데, 이 구별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예를 들면, 현실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화폐가격뿐인데, 이 화폐가격의 변화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심층에 있는 '가치'와 표층에 있는 '화폐'를 연결시킬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것이 단순한 화폐수량설을 비판하는 맑스의 입장이다. 물론 심층에서도 여러 가지의 모순이 있기 때문에, 심층의 모순이 표층으로 표출되는 형태도 단순하지가 않을 것이고 또한 표층의 자율적인 요소들도 심층의 모순에 작용할 것이다. 결국 맑스는 가시적이고 경험적인 표층을 배후에서 통제하는 심층이 존재한다고 보는 것인데, 그렇다고 심층에 대한 표층의 반작용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3. 영어판 서문(엥겔스. 1886)
1) 27쪽. 엥겔스는 독일어판의 편과 장의 구분을 변경시켰는데, 그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 {자본론}에는 영국학자들의 이론에 대한 비판, 영어문헌으로부터의 인용 등이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이 점에서는 영어판이 독일어판보다는 더욱 이해하기가 쉽다.
2) 30쪽. "우리는 영속적이고 만성적인 불황이라는 절망의 진흙탕 속에 빠지고 말 것 같다...우리는 실업자들이 참다 못하여 자기의 운명을 자기의 수중에 틀어쥐게 될 순간이 오리라는 것을 확실히 예상할 수 있다. 그와 같은 순간에는 마르크스의 목소리를 응당 들어야 할 것이다".
< 해설 >
가) '영속적이고 만성적인 불황'은 그 당시 영국 경제의 정세(conjuncture)를 나타내는 말이고, 맑스는 1825-67년 사이에 있었던 10년 주기의 산업순환을 이론화하려고 하였을 뿐이다. 장기적인 경향(tendency 또는 trend)과 그때그때의 정세를 결합시키는 것이 정치적 실천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나) '맑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첫째 이유는, 독일어 제1판에서 말한 것이다. "한 사회가 비록 자기 진행의 자연법칙을 발견했다 하더라도, 자연적인 발전단계들을 뛰어넘을 수도 없으며 법령으로 폐지할 수도 없다. 그러나 그 사회는 그러한 진행의 진통을 단축시키고 경감시킬 수는 있다". 다시 말해 맑스는 영국 경제의 진행과정을 과학적으로 분석했기 때문에, 현재의 문제점을 장래의 진행방향에 따라 해결하면 그냥 내버려 두었을 때보다는 사회적 희생이 적어진다는 것이다. 둘째 이유는, '적어도 유럽에서는 영국만이 전적으로 평화적 합법적 수단에 의해 필연적인 사회(주의)혁명을 수행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30쪽)라고 맑스가 진단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맑스는 일반대중에게 자기의 운명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고, 더욱이 보다 어려운 폭력적인 무력혁명이 아니라 훨씬 쉬운 일상적인 선거혁명이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물론 일반대중은 이러한 평화적 합법적 혁명에 영국의 지배계급이 무조건 굴복하리라고 예상해서는 안될 것이지만. 여기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dictatorship of proletariat)라는 개념이 나오는데, 이 개념은 자본주의 사회가 부르주아 독재라고 명명하는 것과 같은 수준의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독재'는 특수한 정부 형태(예: 왕정이나 군사정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특정 계급에 의한 지배'를 가리키며, 폭력 또는 강제에 의한 지배(여기에는 경찰 검찰 안기부 군대가 필요할 것이다)뿐 아니라 동의에 의한 지배(여기에는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가 필요한데, 언론 학교 종교기관이 큰 역할을 한다)도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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