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 강의
제1편 상품과 화폐
<해설>
제1편은 자본주의 경제에서 항상 부닥치는 상품과 화폐가 무엇인가를 개념적으로 규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맑스는 상품과 화폐가 ‘가장 명확한 형태로 나타나며 교란적인 영향을 가장 적게 받는 곳’(4쪽), 즉 단순상품생산사회에서 상품과 화폐를 관찰하고 있다. 단순상품생산(simple commodity production)사회란 자본주의적 상품생산과는 달리 개별생산자가 스스로 생산수단을 소유하면서 자기의 판단 아래 생산물을 생산하고 그것을 시장에 판매하여 사회의 신진대사를 유지하는 사회다. 이러한 단계의 사회가 역사적으로 존재했는가는 알 수 없지만, 상품과 화폐의 기본적인 속성을 파악하기 위해 자본주의적 상품생산으로부터 추상한 방법론적 구성이라고 보면 좋을 것이다.
제1장 ‘상품’과 제2장 ‘교환과정’은 궁극적으로 화폐가 무엇인가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지만, 이 과정에서 노동생산물과 상품, 상품의 가격과 가치, 구체적 노동과 추상적 노동, 사적 노동과 사회적 노동 등등의 개념을 만들어 내고 있다.
1. 노동생산물과 상품의 차이: 90-105쪽.
<해설>
1)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연을 이용한다. 자연을 개척하거나 가공하여 인간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을 만들어 소비 또는 사용한다. 어떤 사회에서나 생산-->분배-->소비-->생산이라는 경제활동은 필요불가결하다. 그런데 노동생산물들이 시장에 나가 매매되는 것(즉 상품으로 되는 것)은 매우 특수한 역사적 상황에서만 발생한다. 노동생산물이 상품으로 되지 않는 경우들을 살펴 보자.
2) 로빈슨 크루소는 섬 생활에서 자기의 필요 또는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자기의 노동시간을 분할해 여러가지의 유용한 노동(useful labour)을 했다. 그러나 자기의 노동생산물은 상품으로 될 수가 없었다. (96쪽)
3) 유럽의 중세에는 인격적 예속관계(예: 영주와 농노, 제후와 가신, 성직자와 속인)가 지배했는데, 농노는 일년 중 일정 기간을 영주를 위해 부역을 하든지, 자기의 노동생산물의 일정 부분을 공납으로 영주에게 그리고 십일조(10분의 1세)를 성직자에게 바쳤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농노가 자기의 노동생산물을 영주에게나 성직자에게 판매하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97-8쪽)
4) 자가소비를 위해 모든 필요한 것들을 스스로 생산하는 농민가족의 가부장적 생산에서는 가족노동(집단노동)이 여러가지의 물건들을 생산하지만 이 물건들은 상품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가부장은 가족구성원의 성별 연령별 차이에 따라 상이한 노동들(예: 농경, 목축, 방적, 직포, 재봉)을 분배하고 분업을 실시한다. 분업은 있지만, 노동생산물은 상품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98-9쪽)
5) ‘자유인의 연합체’ 또는 ‘자유로운 생산자들의 연합체’(association of free producers) (생산수단을 공동으로 소유하며 사회구성원의 노동력 전체를 계획적으로 지출하는 사회)에서는 노동생산물은 처음부터 사회적 생산물로서 사회가 직접적으로 분배하고 처분한다. 생산물의 일부는 생산수단의 보충이나 확대에 사용하고, 다른 일부는 사회구성원 전체를 위한 공동소비(예: 도로, 학교, 병원, 스포츠센터)에 사용하며, 또 다른 일부는 사회구성원 각각의 생활수단을 위해 사용한다. 노동생산물이 상품으로 매매될 필요가 없다.
또한 사회구성원 전체의 노동시간은 연합체의 다양한 필요(needs) 또는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계획적으로 분배되고, 각 개인의 노동시간은 낮은 단계의 연합체에서는 생활수단의 분배몫을 결정하는 척도가 된다. (높은 단계의 연합체에서는 ‘필요’에 따라 생활수단이 분배될 것이다.) (99쪽)
6) 그러나 단순상품생산사회에서는 생산자들이 서로 독립적으로 생산하고 각자의 생산물을 시장에서 서로 교환함으로써 사회의 신진대사가 이루어진다. 이제 노동생산물이 상품으로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이 상품사회는 위의 사회들과 다음과 같은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사회구성원들이 어떤 분야에서 그리고 어떻게 노동하고 있는가는 시장에 등장하는 상품을 통해서만 알 수 있게 된다. 더욱이 사적으로 생산한 물건이 사회적으로 유용하지 않다면(다시 말해 사회적 수요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 물건을 만드는 데 든 ‘사적 노동’(private labour)은 낭비된 것이다. 사적 노동 또는 개인적 노동이 그대로 사회적 노동(social labour) 또는 집단노동의 일부로 인정되지 않으며, 사적 노동의 생산물이 시장에서 판매될 때 비로소 사회적 노동으로 승인되는 것이다. 이제 사회구성원들의 노동력 전체는 인간의 의식적 계획이나 인격적 예속에 의해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시장기구(또는 상품의 사회적 수요-공급 변화)에 의해 관리될 뿐이다. 위의 사회들에서는 사회구성원들이 어떻게 생산하며 어떻게 서로 관련을 맺고 있는가가 투명했지만, 단순상품생산사회에서는 상품들과 시장이 표면에 나타남으로써 생산자들의 노동과 생산자들 사이의 관계는 뒷편으로 물러나 보이지 않게 되었다. 다시 말해 사회의 표층과 심층이 분리하게 된 것이다.
표층 --- 상품의 세계
심층 --- 노동의 세계
2. 상품의 분석: 사용가치, 교환가치, 가치, 가치의 실체
1) 상품은 타인의 필요 또는 욕망을 충족시켜야 한다. 다시 말해 사회적으로 유용해야 하는데, 이러한 의미에서 상품은 ‘사용가치’(use-value)를 가진다고 말한다. 사용가치는 상품체의 물리적 화학적 속성에 의해 결정되므로 주관적인 ‘효용’(utility)과는 개념이 다르다.
2) 상품은 시장에서 다른 상품들과 교환된다. 아마포가 저고리 또는 차 또는 금과 교환된다. 상이한 ‘구체적 노동’(concrete labour)의 생산물들이 서로 교환되는 것이다. 또한 상품은 시장에서 일정한 비율로 다른 상품들과 교환된다. 예를 들면, 20미터의 아마포가 1개의 저고리 또는 10그램의 차 또는 2온스의 금과 교환된다. 이 경우 우리는 20미터의 아마포는 1개의 저고리 또는 10그램의 차 또는 2온스의 금과 교환될 수 있는 ‘교환가치’(exchange-value)를 가진다고 말한다. 물론 ‘화폐’가 등장한 상황에서는 20미터 아마포의 교환가치는 20,000원이라는 ‘가격’(price)으로 표현될 것이지만, 아직 우리는 화폐의 개념을 정립하지 못했으므로 상품에 의해 교환가치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3) 구체적 노동의 생산물들이 일정한 비율로 서로 교환된다는 것은, 노동생산물들이 ‘양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동질적인 그 무엇’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우리는 이것을 상품의 ‘가치’(value)라고 부른다. 따라서 우리는 상품들이 가치를 가지기 때문에, 아무리 그 모양과 성질이 다르더라도 서로 동질적인 것으로 간주되고 서로 양적으로 비교할 수 있게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4) 그러면 가치의 ‘실체’(substance)는 무엇인가? 상품들을 생산한 구체적 노동(예: 직포공의 노동, 재봉사의 노동, 농부의 노동)은 이질적이기 때문에, 양적으로 서로 비교할 수가 없다. 그러나 구체적 노동으로부터 모든 구체적인 속성을 배제해 버린 인간노동 일반, 즉 ‘추상적 노동’(abstract labour)은 동질적이며, 따라서 서로 양적으로 비교할 수가 있다. 상품 가치의 실체는 그 상품에 응고되어 있는 추상적 인간노동이다. 그러나 어떤 상품에 얼마나 많은 양의 추상적 인간노동이 응고되어 있는가는 하나의 상품을 아무리 분해하더라도 알 수가 없으며, 오직 상품들 사이의 교환과정에서 드러날 뿐이다.
5) 20미터의 아마포 = 1개의 저고리라는 등식은, 첫째 아마포와 저고리는 상이한 구체적 노동의 생산물이면서도 추상적 인간노동을 함유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동질적이라는 점, 둘째 20미터의 아마포와 1개의 저고리에는 동일한 양의 추상적 인간노동이 응고되어 있다는 점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 등식은 20미터 아마포의 ‘가치’를 표현하고 있는 셈이다. 위에서 상품은 교환가치를 가진다고 말했지만, 표층의 교환가치가 사실상 심층의 가치를 표현하는 형태이므로, 상품은 가치를 가진다고 말하는 것이 더욱 정확하다.
표층 --- 가격 또는 교환가치
심층 --- 가치 또는 추상적 노동
6) 교환가치(또는 가격)와 가치를 기호언어학의 용어를 빌려 구분하면 다음과 같다.
형태(form) 실체(substance) 질료(matter)
표현(expression): 표층 가격(교환가치) 화폐체계 화폐 그 자체
내용(content): 심층 가치 추상적 노동 노동 그 자체
3. 가치의 실체로서의 노동
사용가치 교환가치
(개별적) (사회적)
(드러난 노동)
구체적 노동 사회적 노동
사적 노동 추상적 노동
(드러나지 않은 노동)
1) 노동에 관한 개념들의 상호관계를 파악해 보자. 구체적 노동은 이질적 노동(예: 동일한 부문 안의 다양한 노동, 상이한 부문들 사이의 이질노동)으로서 실제의 노동과정의 특수성을 표현한다. 이 구체적 노동이 노동의 지출시간을 통해 측정될 때 사적 노동으로 변화하며, 이 사적 노동은 사회적 승인과정을 거쳐 사회적 노동으로 드러난다. 어떤 상품의 가치량은 그 상품의 생산에 든 개별 생산자들의 사적 노동시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socially necessary labour-time)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48-9쪽)이 바로 이것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사회적 노동은 상품들이 교환과정에서 거래된 뒤에 드러나게 된다.
2) 만약 화폐가 존재한다고 가정한다면, A부문의 총노동시간(사적 노동)은 A부문의 순부가가치(화폐액)로 드러날 것이다. A부문의 순부가가치액을 A부문의 총노동시간으로 나누면, A부문 노동자들의 사적 노동이 사회적 승인과정에서 얼마나 큰 사회적 노동으로 평가되고 있는가를 보여 줄 것이다. 이 경우 (A부문의 부가가치액 / A부문의 총노동시간)을 A부문의 사회적 노동 1시간의 화폐적 표현이라고 부른다.
3) 이러한 부문별 사회적 노동을 사회전체의 관점에서 포착하는 것이 추상적 노동인데, 추상적 노동이 가치의 실체를 형성하기 때문에, 사회전체의 순부가가치액을 모든 부문의 총노동시간으로 나누어 추상적 노동 1시간의 화폐적 표현을 얻을 수 있다.
4) 생산자 각각의 사적 노동 1시간의 화폐표현, 생산부문 각각의 사회적 노동 1시간의 화폐적 표현, 그리고 추상적 노동 1시간의 화폐적 표현을 알게 되면, 생산자 각각의 사적 노동과 생산부문 각각의 사회적 노동이 사회적 평균노동 1시간에 비교해 어느 정도의 가치를 형성하는가를 알게 될 것이다. 사회적 평균노동력보다 질적으로 우수한 노동력은 동일한 노동시간에 보다 큰 가치를 창조할 것이고 저급의 노동력은 보다 적은 가치를 창조할 것이다.
5) 이렇게 보면, 구체적 노동-->사적 노동-->사회적 노동-->추상노동으로 하향하는 과정은 단순한 증류법적 환원이 아니라 표층과의 연관을 통해 심층을 파악하는 방법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4. 상품의 가치가 표현되는 형태: 화폐의 발생 (59-89쪽)
1) 상품은 가치를 가지며 이 가치는 교환과정에서만 자기의 모습을 드러낸다. 이렇게 드러난 모습을 우리는 ‘가치형태’(value-form) 또는 교환가치라고 부른다.
2) 단순한 가치형태
가. 어떤 상품이 자기의 가치를 다른 하나의 상품의 양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예컨대 20미터의 아마포 = 1개의 저고리. 20미터의 아마포가 자기의 가치를 저고리에 관련시켜 상대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저고리는 아마포의 등가(물)(equivalent)가 되어 있다.
나. 이 등가물 또는 등가형태에 있는 상품(위의 예에서 저고리)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게 된다. 첫째 아마포가 자기의 가치를 저고리라는 물건(사용가치)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저고리는 사용가치이면서 동시에 가치를 대표하고 있다(71쪽). 둘째 저고리가 가치를 대표하고 있기 때문에, 저고리는 구체적 노동의 생산물이면서 동시에 추상적 노동을 대표하고 있다. 셋째 저고리가 추상적 노동을 대표하고 있기 때문에, 저고리는 사적 노동의 생산물이면서도 동시에 이미 사회적 노동을 대표하고 있다.
다. 20미터의 아마포 = 1개의 저고리라는 등식은 이제 다음과 같이 해석해야 한다. 20미터의 아마포를 가진 사람이 시장에서 1개의 저고리를 주면 자기의 아마포를 팔겠다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이 경우 저고리를 가진 사람은 수동적인 역할을 하지만, 지금 당장이라도 아마포를 얻을 수가 있다. 왜냐하면 저고리가 가치나 추상적 노동이나 사회적 노동을 대표하기 때문에 언제라도 아마포와 직접적으로 교환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등가물은 직접적 교환가능성을 지니게 된다.
3) 전개된 가치형태
20미터의 아마포 = 1개의 저고리
또는 = 10그램의 차
또는 = 2온스의 금
또는 = 기타 등등
4) 일반적 가치형태
전개된 가치형태를 역전시키면, 모든 상품들의 가치를 아마포라는 단일 상품으로 표현할 수가 있으며, 따라서 상품들의 가치는 단순하고 통일적으로 표현된다. 이 경우 아마포를 ‘일반적 등가(물)’(general equivalent)라고 부르며, 아마포는 이제 다른 모든 상품들을 직접적으로 구매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그러나 일반적 가치형태에서도 여러가지 상품들(예컨대 저고리 또는 차 또는 금)이 일반적 등가물의 지위를 차지할 수 있는데, 국가권력이나 사회적 관습에 의해 어느 하나의 상품이 일반적 등가물의 지위를 독점하게 될 때, 그 상품이 ‘화폐’(money)로 된다. 역사적으로 금과 은이 화폐로 역할했다.
5) 화폐형태
20미터의 아마포
1개의 저고리
10그램의 차 = 2온스의 금
기타 등등
상품들의 가치를 화폐의 양으로 표현한 것을 상품의 ‘가격’(price)이라고 부른다. 20 미터의 아마포의 가격은 2온스의 금인데, 만약 금 2온스 주화의 명칭이 2원이라면 아마포의 가격은 2원으로도 표시할 수 있다.
6) 화폐의 가치(화폐의 구매력)
화폐도 기타의 상품과 마찬가지로 자기의 가치를 다른 상품들에 의해 상대적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
2온스의 금 = 20미터의 아마포
또는 = 1개의 저고리
또는 = 10그램의 차
또는 = 기타 등등
7) 이제 상품세계는 상품과 화폐로 분열되는데, 이것은 상품에 내재한 사용가치와 가치가 각각 외부로 독립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화폐는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일반적 등가형태’(133쪽)로서 다른 모든 상품들을 구매할 수 있는 힘을 지니게 되었으므로, 상품생산자는 자기 상품을 화페로 전환시키지 못한다면, 다시 말해 자기 상품을 팔지 못한다면, 상품생산자는 몰락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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