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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cs and Society Archive

구두닦이에서 광주투사로...

by 淸風明月 2018.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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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표제/저자사항

  구두닦이에서 광주투사로 / 한국현대사사료연구소

  * 발행사항

  말 / 1989 년

  * 첨부파일

  SE-0001 광주투쟁기.pdf 

광주투쟁기 : 구두닦이에서 광주투사로

 

한 밑바닥인생이 겪은 5·18과 고문

 

구술 : 박래풍(당시 구두닦이)

정리·제공 : 한국현대사사료연구소(소장 송기숙 전남대 교수)

“데모 조금 한다고 민족을…”

내가 여섯 살때 아버님께서 돌아가셨다. 어머님은 그해에 나를 고아원에 맡기고 개가하셨다. 형제도 없기 때문에 그때부터 혼자 생활하기 시작했다. 무등갱생원에서는 월산국민학교를 졸업하던 해까지 살았다. 원생들은 150여명쯤 되었다. 어느 고아원과 마찬가지로 사회 사업가나 사회단체의 보조금으로 생활하고 국민학교 다니면서부터 학용품은 각자가 벌어서 섰다. 나는 구두닦이를 했는데 다른 친구들은 신문팔이도 했다. 국민학교 졸업 후 구역부근에서 약 4년동안 구두닦이를 하다가 서울로 올라갔다. 친척도 없기 때문에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 장롱에 자개 붙이는 일을 2년간 했다. 그때 고생했던 것을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겠는가! 연락이 닿는한 고향사람들을 틈틈이 찾아다니면서 어머님 소식을 물었다. 그렇게 생활한지 2년이 지난 어느날 고향어른으로부터 어머님이 화순에서 살고 계시다는 말씀을 듣고 곧바로 그곳 생활을 정리하고 화순으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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