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olitics and Society Archive

41주기 4.3추모토론회

by 淸風明月 2018. 2. 11.
반응형

 

 

 

  * 표제/저자사항

  41주기 4.3추모토론회 / 제주4.3연구소

  * 발행사항

  제주4.3연구소 / 1989 년

  * 첨부파일

  SE-0002 41주기 43추모 토론회.pdf 

 

사회(이지훈) : '4·3 진상규명을 위하여'라는 주제를 가지고 토론회를 갖도록 하겠습니다. 토론에 참석하신 선생님들께서는 우선 4·3을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 간단히 말씀을 해 주시고 나서, 토론의 주제가 그 '진상 규명을 위하여'에 있다는 점을 명심하시고, 주제에 어긋나는 내용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왜냐하면, 4·3에 대한 객관적이고 총체적인 연구·조사 작업이 미흡합으로 해서, 아직은 그 성격 규정에 대해, 시론적인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고, 그러한 문제들은 본격적인 학술 세미나 등을 통해 구체적으로 정리되어 나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는 한정된 시간이기 때문에, '왜 4·3은 진상 규명이 되어야 하며, 그 진상 규명은 어떻게 할 수 있는가'라는 제언에 촛점을 맞추겠습니다.이 자리에 참석하신 도민들도 나눠드린 갱지에 진상 규명을 위한 제언을 적어 주시면, 하나로 모아 가지고 '41주기 4·3 추모제'의 결론을 도출시켜 보겠습니다. 우선, 고창훈 선생님의 말씀을 들어보겠습니다.

 

고창훈: 우선, 우리 4·3이 지금까지 거의 말을 못해 왔고, 또 연구라고 해봐야 총체적인 연구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말씀드려야 하겠군요. 그래서 저는 어떤 입장에서 연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연구가 문제제기의 성격을 갖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전제로 이야기하겠습니다. 우리의 4·3 에 이어서 중요한 것은 47년 3·1 대회가 아닌가 합니다. 왜냐하면 바로 우리의 3·1절 기념식을 못하게 했다는 것, 아울러 거기서 죽었다는 것이 민중에게 어떤 깨침을 주었다고 봅니다. 미군정에 대한 인식은 아무리 말로 해서도 되는 것이 아니고, 실제 경험을 했을때 바로 그것이 어떤 세상을 보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그리고 3·1 시위가 주는 2차적인 의미는 미군정 G-2 보고서의, '제주도 민중의 75% 정도가 좌익적 주장을 하고 좌경적 경향이 있다' 고 하는, 내용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상당히 큰 문제거리가 됩니다. '그 당시 시위에 참여했던 제주도 사람은 약 4만명 이상이 되었다' 라고 하는 이 수치 역시 G-2 보고서 분석에 근거해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결국 '빨갱이 참여'라는 근거가 어디에 있다는 말입니까? 이 문제 역시 우리가 4·3 을 연구하거나 총체적으로 밝히기 위해서는 고려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제주도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이 죽었는가 하는 것보다는, 항쟁과 수난이 한꺼번에 같이 복합된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 4·3 이다' 라고 저는 말하고 싶습니다. 여기에서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이 언제 죽었느냐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대강, 48년 10월부터 다음 해 4월까지일 것이고,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일종의 대결 항쟁으로 수반된 죽음이 아니기 때문에, 상당히 큰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아집니다. 왜 그런가 하면, 좌·우가 대결한다든가 군정과 싸운다든가 하는 점도 있지만, 이 시기의 죽음은 대부분이 양민이였고, 그것도 항쟁이 끝난 한참 후에 였고, 그 형태 또한 마을별 집단 학살로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상당히 주시해야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보통 제주도민들이 쓰는 말중에 세 가지 유형의 욕이 있습니다. 첫째, 몽고의 침략과 관련되어 나오는 것으로 '몽근놈의 새끼'. 둘째, 일제 침략과 관련된 것으로 '쪽바리'. 셋째로 4·3과 관련되어 나오는 것이 '양코배기 놈'과 '육지 것들'이라는 말입니다. 아직까지 우리에게 남아있는 이러한 언어들은 무엇인가? 이것이 항쟁이 실패했던 아픔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과연 '제주도의 정신'은 무엇인가? 자주의 사상과 평화의 사상이 제주도의 정신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러한 것들이 위협을 받을 때, 그것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것이 제주도 사람의 역사 전체에 흐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