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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 Cinema

평범한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우리학교"

by 淸風明月 2011.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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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학교 - 평범한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곱다고 봐주는 사람들도 없는데 어이하여 너는 여기에 피었는가? "분계선 코스모스" 같은 아이들... 볼수록 사랑스럽다!안녕하세요, 여기는 ‘우리학교’ 입니다! 해방직후 재일 조선인 1세들은 일본땅에서 살아갈 후손들을 위해 자비로 책상과 의자를 사들여 버려진 공장에 터를 잡아 ‘조선학교’ = ‘우리학교’를 세운... 

다큐멘터리 지루하다면 지루하고 재미 없다면 재미없는 그런 다큐멘터리는 끝나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고 있다. 그러나, 난 아무것도 하지 않은채 그저 화면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영화가 끝나고 몇분간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그저 먹먹함만을 느낄뿐이다. 

진심은 마음을 움직이고, 편견을 접어두고 이해하기 시작하면 새롭고 넓은 세계가 보인다. 바로 다큐멘터리가 가지는 힘이다. 반도의 남쪽에서는 철저히 잊혀진 존재. 이방인, 타자, 그림자,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사람으로 살아온 재일 조선인. 훗카이도조선초중급학교를 3년간 촬영한 이야기 "우리학교". 이 영화는 얼핏 두서없는 이야기의 나열처럼 보이지만 누구보다 조리 있는 수사를 구사하며, 일본땅에서 뿌리내리고 살아온 재일 조선인들의 삶이 존재의 증명이자 인정의 투쟁이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학교’라는 평범해 보이는 제목. 상영시간이 131분이나 되는 다큐멘터리. 7000만원이라는 초저예산 제작비. 개봉하고 있는 극장에서도 하루 한번 상영하는 정도. 어찌 보면 쫄딱 망하는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구비하고 있는 다큐멘터리가 엄청난 폭풍을 불러일으켰다. 다큐를 본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올라온 뜨거운 기류는 저예산 다큐멘터리의 모든 기록을 갱신하며 관람객 3만명을 넘어선 영화! 이 다큐멘터리의 무엇이 관객들의 심장을 울렸던 것일까?

전교생 162명 27명의 선생님 초급부로 학교에 입학하면 12년간 가족처럼 지내는 아이들 자율적으로 조를 짜서, 자습이며 독서, 지각여부를 두고 경쟁한다. 그러나 이에 따른 상벌은 없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부모와 떨어져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이 수십명인데, 선생님들은 이들에게 오후엔 간식을 직접 만들어주고, 밤에는 함께 놀다가 잠이 든다. 최장 12년 동안 정말 열심히 배우고 운동하지만, 정식학교는 아니다. 일반 대학에 가려면 별도의 시험을 치러야 하는 갑종학교. 그러나 다른 학교에서 전학 온 친구는 “이 학교에 와서 나도 바뀌었습니다. 혹시 이 학교에 오지 않았으면 지금쯤 깡패가 되었거나 경찰에 잡혀서 소년원에 있을지도 모릅니다”라고 말한다. 아이들은 점수를 위해 악착같이 경쟁하는 법이 아니라, 남을 도와주고 사랑하고 사랑받는 법을 배운다. 이곳은 ‘혹카이도 조선초중고급학교’. 일본 최북단 가장 큰 섬이자 6천명의 재일동포가 살고 있는 홋카이도에 존재하는 유일한 조선학교다.

해방 직후 재일조선인 1세들은 우리말과 글을 몰랐던 자녀들이 조국으로 돌아와 불편이 없도록 가장 먼저 학교를 세웠다. 그로부터 60년이 지난 지금 일본에는 80여개의 ‘조선학교’가 남아 있다. 대부분 고향이 남쪽인 재일조선인이 3, 4살까지 이어지는 동안 한반도 남쪽의 사람들에게 ‘조선학교’는 잊혀진 존재였다. - 프롤로그 자막 중에서 -

조선학교의 학생들은 조선말을 쓰고, 조선말로 수업을 하며 여학생들은 치마저고리를 입고 생활한다. 한국(조선)에서는 내면의 정체성을 가지면 외적인 모습은 크게 중요하지 않지만, 일본에서는 외적인 모습으로 민족성을 표현하지 않으면 내면까지 금방 일본인이 되어버린다는 한 학생의 말은 그들이 왜 그렇게 조선의 것을 지키려고 하는 지를 잘 표현해준다.

해방 후 540여개가 있었던 우리학교(조선학교)가 지금은 80개만이 남아있는 상황. 일본 우익들의 이성을 잃은 공격이 극심한 상황에서 조선인으로의 정체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은 삶 그 자체가 투쟁이라는 생각이 들도록 만들었다. 해방 이후 조선학교를 일본인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공부는 나중 문제였고, 싸움이 첫째였다는 재일동포 1세대 할머니의 회상은 마음 깊은 곳을 파고들었다.

 

그러나, 우리학교가 우리의 심장을 울리는 까닭은 단순히 하나의 민족이라는 지점에서 멈추지 않는다. 우리학교에서 학생과 선생님이 어우러지는 모습은 입시경쟁과 물질만능주의(자본주의)의 노예가 되어 고통받고 자살하기까지 이르는 이곳의 학교와는 달라도 너무나 다르다.
아이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헌신하는 선생님들의 모습. 일본에서 어렵고 힘들게 사는 동포들의 생각하며 이를 악물고 축구대회에 나가는 학생들.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우리학교의 모습에 감동해서 눌러앉아 버린 일본인 체육교사. 이지메(왕따)가 없고 서로가 서로를 위해 살아가는 공동체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그동안 잊고 살았던 소중한 가치들을 발견하게 된다.

아름다운 공동체의 모습 속에서 인공기도 만경봉호도 어색한 이북식 말투도 어느덧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동무’라는 단어가 이렇게 아름다운 단어인 것을 우리는 모르고 살았다. 고향은 ‘남쪽’이고 조국은 ‘북조선’이라는 우리학교 학생들의 서슴없는 말은 사실은 필연적인 것이다. 재일동포 문제는 그들의 문제라며 사실상 방치해왔던 남쪽 정부와는 달리 이북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물심양면으로 조선학교를 지원해온 것이다. 만경봉호를 타고 조국(북조선)을 처음으로 방문하는 아이들이 배에서 내리면서 발보다 손을 먼저 짚는 모습. 조선의 태양은 아름답다며 석양을 바라보며 감상에 젖는 아이들의 모습. 이북의 안내원, 군인들과 어우러져서 춤추고 정을 나누는 모습. 일본으로 떠나는 만경봉호에 다시 오르면서 조국과 동포들에 대한 뜨거운 감정에 눈물 짖는 아이들의 모습. 판문점을 방문한 아이들이 38선은 무슨 거대한 벽으로 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저렇게 조그만 선으로 조국이 갈려있다는 것에 놀라고 안타까워 한다.

“많이 먹고 자는 것은 행복이 아니죠. 돈을 가지고 있는 것도 행복이 아니죠. 그런데 인민들은, 정말의 행복을 알고 있죠.” 일본학교를 다니다가 고급부 1학년으로 편입하여, 처음엔 자신이 조선 사람인 것이 싫었다는 학생이 고국(북조선) 방문 뒤 상기된 표정으로 북에서 만난 동포를 향한 애정을 고백한다. 마지막을 장식하는 우리학교의 졸업식은 선생님과 아이들 모두가 울음바다가 되어버린다. 관객들 모두가 2시간이라는 어찌보면 짧은 시간동안에 졸업식에서 아이들이 흘리는 눈물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다지 슬프지도, 그다지 분노가 일어나지도, 그다지 기쁘도 않은데 관객들 모두가 졸업생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것이 바로 한 민족이라는 것일까? 


Cinema Paradiso  NO.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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