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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ntio ergo sum

한-미 FTA ; 자본과 인간다움의 싸움

by 淸風明月 2006.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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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 4차 협상이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한미 FTA 대한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지 않고 녹음기 마냥 같은 소리만 늘어놓고 있다. 그 중 ‘국영기업의 민영화를 요구하지는 않음을 확인했다’ 정도로 사회공공성 해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무마하려는 모습은 정부가 한미 FTA를 계기로 터져나오고 있는 요구들이 무엇인지 짐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미국과 하나의 시장을 만들어 하나의 경제권을 형성하자는 한미 FTA, 그 경제권이란 것이 바로 시장인 것이다. 시장이 무엇인가 자본이 동기가 되어 작동하는 이윤추구의 공간이다. 그런 공간에서 과연 인간다운 삶이 존재할 수 있으리라 보는가?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인간다움을 보장하던 필수적 권리들을 보장하기 위한 공공의 영역을 침범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자본이 공공정책에 개입해서 더욱 많은 것들을 시장으로 가져가는 동안, 이 과정에 민중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는 점점 더 없어져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협정문 초안의 8장 ‘투자’에서 보장하고 있는 투자자-국가 소송제도는 이미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에서도 악명을 떨치고 있다. 투자자인 기업이 투자유치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 수 있는 투자자-국가 소송제도가 보장된 NAFTA는 멕시코와 캐나다 정부의 환경정책을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린것을 보지 않았는가?

이처럼 인간다운 삶을 유지할 수 있는 필요한 권리들이 만들어지는 공공정책들이 자본의 이해관계에 따라 없어지는 것이 한미FTA인 것이다. 이미 FTA 협상 개시에서부터 민주주의는 훼손되었다. 민중의 권리가 도마에 올라있는데도 FTA와 관련된 절차에 민중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는 없었다. 어떤 집단과 어떤 규칙의 교역을 할 것인가에 대해 민중이 발의할 수 있는 구조는 언감생심이라고 치자. 그러나 정부의 보고서 하나 제대로 검토하지 못하는 국회의 ‘능력’은 어떻게 봐야 하나? 당신들의 능력을 믿어야 하나 - 에라 X이나 먹어라 -

이것만이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사법부가 보여준 탁월한 능력은 너무나 탁월하여 말이 나오지 않는다. 2005년 9월 전라북도 학교급식 조례안이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위반이라는판결이 그것이다. 국제기구나 초국적자본의 명시적 압력이 존재하지도 않는 상태에서 자발적으로 백기를 들었으니 말이다. ‘국회 비준을 거쳐 공포.시행된 조약은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다’는 헌법 6조1항을 즐기기를 좋아하는 사법부가 무역협정은 금과옥조처럼 떠받들면서 유독 사회권규약 등 국제인권조약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이 과연 무지의 소치일까. 대법원의 판결로 ‘식량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중요한 자원이 제3자의 힘이나 경제적 지배에 의해 박탈되지 않도록 입법을 포함한 적절한 조치를 취해 보호할 의무’는 내동이쳐졌다. 

정부의 인권에 대한 몰이해는 말하기가 버거울정도로 많이 존재한다. 지난해 7월 단전으로 인한 인권침해가 문제되면서 산업자원부가 들고 나온 소전류 제한기만 봐도 인권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확연히 드러난다. 사용료를 내지 못하는 가구는 110W로 사용할 수 있는 전류가 제한되도록 한 것. 냉장고를 켜놓으려면 TV는 볼 수 없고 형광등은 두 개까지 켤 수 있는 전력인 110W는 인간다운 삶, 바로 인권의 존재이유를 제한하는 것이었다. 그런 정부가 한미 FTA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지원책을 마련해 놓았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도 있는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제조업의 피해는 고스란히 제조업에 종사자들이 감수해야 할 몫으로 떨어진다. ‘외부의 충격을 통한 내부 개혁’이라는 한미 FTA의 목표는 비정규직 노동의 확대, 노동권의 후퇴를 정확히 겨냥하고 있다. 전기를 끊어놓고 제한된 전류로 삶을 묶어놓는 소전류제한기와 노동권을 박탈한 후 지원을 통해 피해를 보완하겠다는 시도는 어딘가 닮지 않았는가? 인간답게 살기 위해 필요한 만큼의 에너지를 보장하는 것이 인권이고 억눌리지 않고 자유로운 노동을 만들어가는 것이 인권이다. 줄 수 있는 만큼 받는 것은 인권이 아니라 노예계약일 뿐이다. 세계인권선언에도 규정되어 있듯, 인권의 보편성은 ‘모든 권리와 자유가 완전히 실현될 수 있는 사회적 및 국제적 질서에 대한 권리’의 보장을 요구한다. 과연 한미 FTA는 모든 권리와 자유의 실현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 필연적으로 민중의 권리를 배제해가는 과정인 FTA는 단지 인권을 후퇴시키는 데 그치지 않는다. 사회공공성의 파괴를 통한 인간권리에 대한 부정, 그것이 한미FTA의 정확한 실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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