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총리의 옛날 논문이 줄줄이 문제가 되는 사태를 보면서 드는 생각이 하나 있다. 옛날 독재 시절에는 대통령이 총리나 장관을 임명하면 거수기 국회는 그냥 통과시키는 것이 관행이었다. 지금과 같은 개명천지에서는 인사청문회가 열려, 케케묵은 과거 일까지, 사돈의 팔촌 일까지 다 꺼내어 도마 위에 올려놓고 후보자나 피임명자를 검증한다. 지나친 측면도 있고,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꼴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이러한 변화 자체는 다행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권력 분립을 위해 그러한 제도를 만들어 둔 취지에 좀더 가깝기 때문이다.
임명을 받아 현직에 있더라도 과거의 잘못이 드러나면 언론과 여론의 비판을 받게 되고, 임명권자는 이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고위 공직자는 임명 전후는 물론이고 임무를 수행하면서도 개인의 과거 처신이 끊임없이 현재를 평가하는 항목 중 하나가 된다고 볼 수 있다. 지금과 같은 세상에서 공직자는 과거와 현재가 끊임없이 대화하는 접점에 서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런 조명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는 인물이 하나 있다. 바로 한미 FTA 협상을 주도하고 있는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다.
어떤 경우든 상대방의 개인 신상을 물고 늘어지는 것은 아름답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또 나랏일 하는 사람을 놓고 개인 잡사를 시시콜콜히 끄집어 내어 트집을 잡는 것도 신사적이지 않다. 쥐 잡는 자리에 있는 고양이는 그 털 색깔이 중요하지 않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고양이가 쥐를 잡고 있는 것인지 주인을 할퀴고 쥐어뜯고 있는 것인지 헷갈리는 상황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혹은 어떤 털 색깔을 갖고 있나가 결정적으로 중요한 대목도 있을 수 있다.
국민이 김현종에 대해 갖는 관심은 그가 어떤 옷을 입고 어떤 밥을 먹고 어떤 놀이를 하며 사는가를 궁금해하는 여성잡지적 호기심이 아니다. 국민의 명운을 틀어쥔 일을 수행하는 이가 과연 어떤 배경을 갖고 있고 어떤 철학과 인생관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공직자가 어떤 사람인지, 믿고 일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아는 것은 국민의 권리이기도 하다. 더구나 지금처럼 적지 않은 국민으로부터 매국노라는 비난까지 받는 상황이면 그의 현재뿐 아니라 과거가 어떤 것인지 들여다보는 것은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도 있다.
김현종에 대해 일부에서는 미국인보다 더 미국적인 자가 한국 대표로 협상 테이블에 앉아 있다고 주장한다. 김현종은 대체 어떤 사람인가. 이리저리 정보를 조사해보던 나는 그가 많은 부분에서 불투명한 경력을 갖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우선 언론사 사이트의 인물 정보에 공식적으로 올라 있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성명 김현종 金鉉宗
영문명 KIM, HYUN-CHONG
생년월일 1959/09/27 (음력)
출생지 서울
사무실주소 서울 종로구 도렴동 95-1 외교통상부
우편번호 110-051
사무실전화 02-2100-7039
E-Mail hyunckim@chollian.net
성별 남
학력
미국 윌브램 맨스고등학교
- 1981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국제정치학과 (학사)
- 1982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대학원 국제정치학과 ( 석사 )
- 1985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대학원 ( 통상법학박사 )
경력
1985 - 미국 뉴욕주 변호사자격 획득
1985/10 - 미국 밀뱅크트위드법률사무소 변호사, 스톡홀름 상공회의소 중재인
- 1989 프랑스 지적재산권보호협회 회원
1989 - 김신&유 변호사사무실 변호사
1993 - 홍익대학교 무역학과 겸임교수 무역학과
1995/05 - 외무부 통상자문변호사
1998 -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 통상전문관(비상임) , 제일국제법률사무소 변호사
1999/05 - 세계무역기구(WTO) 사무국 분쟁해결상소기구 법률자문관
- 2003 세계무역기구(WTO) 법률국 수석고문변호사
2003/03 - 2004/07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 통상교섭조정관(1급)
2004/07 - (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 본부장
이에 더하여, 그간의 기사를 찾았더니 다음과 같은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 김병연 전 노르웨이 대사(뒤에 코리아헤럴드/내외경제신문 회장)의 아들이다.
- 외무부 안에서 황태자 그룹으로 불리는 대물림 외교관 중 하나다.
- 그렇지만 외시 출신이 아니라서 정통 외교관은 아닌 것으로 간주된다.
- 출생지는 서울이다.
- 초등학교 3, 4 (?)학년까지 한국에서 다니다 미국으로 건너갔다.
- 김병연 전 대사는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교섭 당시 주일대표부에 근무했다.
- 금호아시아나그룹 수석법률고문으로 스탠포드 로스쿨 출신인 김미형 부사장은 김현종의 친동생이다.
- 김미형은 일본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가족은 홍콩에 살고 있다.
- 김미형의 남편은 세계적인 투자 은행에서 근무하고 있다.
- 김미형은 워런 크리스토퍼 전 미국 국무부 장관의 로펌에서 일했다.
- 김현종의 남동생 역시 스탠포드 MBA 출신으로, 홍콩에서 살고 있다.
- 김현종은 2005년 홍콩에서 열린 WTO 각료회의에서 농산물 개방을 시사하는 발언을 연설문에 포함시켰다가 물의를 빚었다.
- 한미 FTA뿐 아니라 전방위 FTA에 나서고 있다.
- 인사 문제로 외교부 안에서 마찰을 빚은 적이 있다.
- 외교부에 들어온 뒤 고속 승진했다.
- 노무현과 전 인사수석 정찬용의 극진한 지지를 받고 있다. (정찬용은 지금 그 자신이 외교통상부 비정부기구(NGO) 담당 대사로 있다. 직급으로 보면 김현종의 밑이다.)
- 아버지에 따르면, 김현종은 남에게 지는 것을 지독히 싫어하고 내가 아니면 아무도 못한다는 기질도 있다.
그동안 나온 기사에서 확인한 것들이므로, 이것들이 정확한 팩트인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이러한 정보들로부터 많은 의문이 쏟아져 나온다. 특히 그가 한국의 명운을 좌우할 협상을 미국과 벌이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이런 의문을 풀어주고 안심시켜 줄 정보가 나오기를 기대했는데, 별다른 것을 건질 수가 없었던 것이다. FTA 관련 기사가 아니라, 드물게 김현종 개인을 다룬 한 주간지의 특집 기사 제목은 'FTA 사령탑' 김현종 미스터리다. 무슨 남파 간첩이나 스파이도 아닌데, 고위 공직자 개인을 다룬 기사에서 미스터리라는 제목이 붙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는 상황이다.
미스터리 킴에 대해 알려진 사실과 그의 행동을 하나하나 엮어 보면서 다음과 같은 생각을 갖게 된다.
1. 일부의 의혹과는 달리 김현종의 국적은 한국인 것 같다. 한국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3, 4학년까지 다녔다고 한다. 3, 4학년이란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다. 취재기자가 대충 받아적은 것인지 정보를 릴리즈하는 측에서 대충 흘린 것인지 확실하지 않다.
2. 여동생 김미형은 재벌 기업의 부사장이므로 매스컴에 매스컴에 자주 등장한다. 그는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한국 외교관의 딸이었으므로 속인주의를 채택하는 일본의 정책에 따라 한국 국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3. 김미형이 크리스토퍼의 사무실에서 근무했다는 점은 결과적으로 김현종의 줄과 끈이 얼마나 든든한 고래심줄처럼 미국과 닿아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 점은 김현종을 추어주는 기사에서 흔히 '미국에 방대한 인맥을 갖고 있다'라고 표현된다. 좋아하기는 좀 이르다. 거꾸로 보면, 김현종이 아는 미국분들도 한국 정부의 현직 고위 인사와 든든한 인맥을 맺고 있는 셈이다. 인맥 좋은 게 뭔가. 필요하면 엉겨붙어 내가 필요한 것을 얻어낼 수 있는 게 아닌가. 김현종도 그렇지만, 거꾸로 김현종을 아는 미국분들 처지에서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의 협상 과정을 보면 김현종이 미국 인맥을 이용한다기보다 미국분들이 김현종 인맥을 기막히게 활용하고 있는 것 같다.
4. 형제자매가 모두 미국에서 공부했으며, 모두 미국 변호사 아니면 MBA다. 이들의 직계 비속의 국적 역시 궁금해진다. 자꾸 국적 이야기 해서 미안하지만, 왜 중요한지는 더 말하지 않아도 다들 아실 것이다.
5. 기사들에서 유추해 보면 김현종에게는 자녀가 한 명 이상 있는 것 같다. (추가: 아들이 둘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들이 어디에 사는지, 어떤 국적을 갖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저 위에 인용한 언론사의 인물정보는 흔히 가족 정보를 포함하고 있는데, 김현종의 경우는 그 부분이 빠져 있다. 처자식이 몇 명인지, 뭐 하는 사람들인지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이런 의문을 갖는 것이 아니다. 미국에 오래 살았으니 그의 가족은 필시 미국에 기반을 두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가족의 기반이 미국에 있다면, 본인은 비록 잠깐 한국에 살며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도 미국과의 협상을 벌이는 주역이라는 자리에는 적합하지 않다. 협상이 지금 걱정하는 대로 진행될 경우, 한국 국민은 한반도 곳곳에서 고통받더라도 그는 가족이 기다리는 미국으로 휙 날아가 월 스트리트의 무슨무슨 금융회사에서 고위직을 꿰차고 미국인으로 살면 그만일 것이며, 이런 개인적 가능성은 협상의 전 과정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6. 그는 서민의 생활을 몸소 겪어본 적이 없다. (추가: WTO 법률자문관 시절 1억2천만원 정도의 연봉을 받았다고 한다.) 과부 사정은 홀아비가 아는데, 과부나 홀아비가 되어본 적이 없는 분이 그 사정을 짐작으로 아는 데는 한계가 있다. 좀더 나가면, 사회에서 80%를 차지하는 중하층 국민을 돌보지 않고, 20%인 상류층이 더 부유해지는 것을 전체 사회의 발전으로 인식하는 신자유주의형 인간에 딱 맞는 프로필을 갖고 있다. 과부나 홀아비 되어 보라는 게 아니라, 지금 하는 일의 방향이 과부나 홀아비 더 울리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7. 김현종이 지금 무슨 삿된 욕심으로 한미 FTA를 밀어부치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과거의 행적을 보면 그는 FTA형 시장 개방을 소신으로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것은 외교부에서 그 일을 하면서 더욱 굳어져왔을 가능성이 있다. 그가 한국 정부에 픽업된 것도, 현재 존재하고 있는 이유도 FTA를 비롯한 대외 통상 업무가 있기 때문이다. 김현종의 존재 이유는 FTA 추진인 것이다. FTA가 맛이 가는 순간 김현종의 자리도 없어진다.
8. 그가 뭘 바라고 한미 FTA를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FTA를 비롯한 개방 자체가 소신이라고 해도, 문제 해결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을 벌이고 하는 사람은 모두 저 나름대로 소신을 갖게 마련이며, 그 소신은 남에게 꿀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다. 전두환은 스스로 정말 자기가 정의사회 구현을 위해 일한다고 믿었을 것이며,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완용도 당시에는 일본에 나라를 넘기는 것만이 혼란에 처한 대한제국과 백성을 구하는 길이라는 소신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비슷한 소신을 펴고 있는 미친 분들이 지금도 존재하는 마당이다. 소신은 그 자체에서 자동으로 무결점성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잘못된 소신도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9. 잘됐든 잘못됐든, 관료의 소신은 임명권자의 임명과 지지를 통해서 정책으로 현실화된다. 그렇게 보면, 김현종의 소신을 사서(buy) 쓰고 있는 사람은 결국 노무현이다. 거꾸로 보면 김현종은 적절한 시기에 자신과 자기 소신인 시장개방주의를 노무현에게 기막히게 세일즈한 셈이 된다. 노무현이 한미 FTA에 올인하게 만든 대표적인 사람은 분명히 그인 것 같다. 노무현으로 하여금, 마치 한미 FTA가 나라를 확 탈바꿈시켜 미국 같은 선진 대국이 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이 될 것으로 굳게 믿게 만든 것은 바로 이 사람이라는 주장에 많은 사람이 일치된 의견을 보인다.
10. 김현종의 공식 약력을 보면 미국에서 고등학교부터 나온 것으로 되어 있다. 한 기사에 따르면 그는 초등학교 3, 4학년까지 한국에서 다니고 중등부터 미국에서 공부했다고 한다. 이것은 개인적인 호기심이 아니라 그의 배경을 짐작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다. 유학이든 이민이든 미국에서 청소년기를 보내고 어른이 된 한국 국적의 남성이라면 당연히 병역 문제가 걸린다. 병역 문제란 간단하게 말하면 이수했나, 연기했나, 면제됐나, 기피했나에 대한 대답이다. 이 부분에 대한 정보는 아무 것도 찾을 수 없었다. 경력에 나온 햇수로 따져 보면 한국에 돌아와 병역을 이수한 것 같지는 않다. 인터넷에서 확인한 것으로는 정부 쪽에서 '잠깐 한국에 돌아와 공익요원으로 근무했다'는 설을 내고 있다는 것과, 미국에서의 김현종을 알던 사람이 '그가 군 기피를 하기 위해 무척 애썼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가 군대에 갈 나이인 시절에 공익요원 제도가 있었는지도 의문이거니와, 정부 전산망에 번호 몇 개만 넣어보면 금방 나올 일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점은 당연히 의혹을 불러 일으킨다. (추가: 위에 인용한 <뉴스메이커> 기사에 대해,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는 김현종 본부장이 대학원 졸업생 등의 병역특례에 관한 특별조치법 제3조에 의거, 석사장교로 1986년 11월15일부터 1987년 5월16일까지 복무했다고 알려왔다고 한다.)
11. 나는 미국에서 공부하고 사회 생활을 시작한 그의 약력과 최근 FTA 협상을 추진하는 그의 행태를 함께 보면서 많은 모순을 느꼈다. 그는 미국적 사고방식을 가졌다고 한다. FTA를 밀고 있는 것도 이같은 사고방식에서 나온 자기 신념이라고 한다. 그런데 한편, 미국에서 자라고 공부해 미국적 사고방식을 가졌다는 사람이, 일이 되어가는 꼴을 제대로 공개하면 사람들이 반대할까봐 은밀하게 감추며 밀어부친다고 한다. 우리가 욕 많이 하는 미국이지만, 제도적이고 절차적인 부분에서는 배울 점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미국적 사고방식과 파시스트적이고 전제군주같은 사고방식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미국에서 자라고 공부했다는 그가 뭘 배웠다는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적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 국민을 무시하고 여론 수렴, 동의 창출, 합의 도출, 절차적 민주주의 같은 것은 모조리 집어치우고 오로지 나팔만 불어대며 은밀히 일을 추진한다고는 믿기 어렵다.
12. 아니면, 미국적 사고방식이 뼛속까지 지나치게 체득되어 있는 탓인지도 모른다. 자기 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족속인 미국인들은 세상 사람을 곧잘 미국인과 비미국인으로 나누어 생각한다. 물론 이들에게 이 말은 지구촌의 일류 주민과 이삼류나 하류층 주민이라는 분류와도 동의어가 된다. 자국(미국)의 이익은 동전쪼가리 하나까지 기를 쓰고 챙기면서 다른 나라는 죽이되든 밥이되든, 나라가 결단나든 사람들의 사지가 찢겨나가든 신경안쓰는 게 미국(정부)이다. 이렇게 보자니, 이삼류 주민 한국인은 무시하고 깔아뭉개면서 일류 주민 미국분들에게는 되는 일 안되는 일 다 고해바치고 바라는 것 다 들어주었다고 하는 김현종의 행태는 어찌 보면 미국분들보다 더 미국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13. 음지에서 일하며 양지를 지향한다는 정보 기관의 책임자조차 국회와 언론을 비롯한 세간의 까다로운 검증 절차를 통과해야 한다. 김현종이 맡고 있는 통상교섭본부장 자리는 장관급이라는데, 이렇게 과거와 현재가 미스터리인 사람이 장관직을 맡고 있는 것도 몹시 희한한 일이다. 국가 중대사를 맡고 있는 사람이 아무런 공식, 비공식 검증과 견제도 받지 않고 오로지 대통령의 총애 하나에 기대어 나라와 국민의 명운을 자기 마음대로 틀어쥐고 주물러서야 제대로 된 나라라고 할 수가 없다. 일이 중요할수록, 그 일을 맡고 있는 사람을 투명하게 걸러내야 하는 것은 인사, 용인의 기초다.
14. 김현종이 통상 전략을 핑계로 국회와 국민을 배제하고 독단적인 대외 통상 정책을 추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2004년 각국과의 쌀 관세화 유예협상도 철저히 비밀로 진행하고 협상 내용을 외부에 전혀 공개하지 않았다. 이 문제로 열린 국회 특위 조사에서조차 경제 통상에 대한 방대하고 전문적인 지식이 없으면 이해하기 힘든 어려운 내용의 자료들에 영문 문서까지도 상당히 섞여있는 이 비밀자료들은 이번 조사에 참여하는 국회의원과 그가 대동한 1인의 전문가만이 볼 수 있는데 복사는 물론, 필사조차도 허용되지 않는다. 조일현 특위 위원장이 겨우 "단어 수준에서 간단한 메모만 허용된다"고 말하자 한나라당 김재원 의원 등이 "그래서 무슨 조사가 되겠느냐, 정부는 국민의 대표를 뭘로 보는 거냐"며 강력하게 따지고 나서 한바탕 소란이 일기도 했다 고 한다. (<민중의 소리> 2005년 5월 기사) 소란이야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지만, 한바탕 소란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남 몰래 진행하는 모든 일들은 남의 눈에서 벗어나고, 비판과 견제를 받지 않으며, 책임도 지지 않게 된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15. 정부의 FTA 추진에 모호한 이론적 근거를 대주고 있는 인하대 정인교 교수의 자료(pdf 문서)를 보면, 한미 FTA 파도를 가장 먼저 맞게 될 우리나라 기업인의 77%가 한미 FTA가 필요하다거나 이에 적극 찬성했다고 한다. 이들이 찬성하는 근거로 내세운 것은 '관세 철폐로 인한 대미 수출 증가'였다. 그러나 같은 자료 두 쪽 앞을 보면 정교수 자신이 '대미국 무역 수지는 악화될 가능성'이라고 평가해 두었다. 이렇게, 전문 기업인들조차 한미 FTA의 실체에 대해 감을 못잡고 혼동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상을 국민에게 보고하지 않고 밀실에서만 협상을 추진해온 김현종과 정부가 이런 상황을 의도적으로 기도했다고 믿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다는 증거만 자꾸 나온다. 기업의 목소리를 모아서 협상에 강력하게 반영하고 있는 미국측 협상팀을 보면, 대체 어떤 것이 미국적 사고방식인지, 김현종이 미국적 사고방식을 가졌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 혼동되지 않을 수 없다.
16. 그의 행태에 대한 의심은 그가 한국에서 진행된 한미 2차 협상에서 미국 대표들을 위해 한국 기자를 통제해 주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더 강해졌다. 미국은 언론의 자유 위에서 선 나라다. (부시를 비롯한 신자유주의자, 네오콘을 빼면) 국가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함에 있어 국민과 언론을 거짓말로 속여 가며 진행한다는 것도 들어본 바 없거니와, 그러다가는 닉슨 꼴이나 나는 것이다. 기자를 통제하고 언론에 재갈을 물린다는 것은 정상적인 미국 교육을 받은 사람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렵다. 언론을 비롯한 온 국민의 근심을 협상 테이블에서 활용해야 할 당사자가, 한국에 와 협상하는 미국측 대표들을 위해 기자들까지 친절히 통제해주는 꼴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17. 약력을 보면 그는 1989년에 한국에 들어와 일을 시작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렇다면, 아무리 바빴다고 하더라도, 예컨대 1998, 99년을 비롯해 그동안 치열하게 진행되어 온 스크린 쿼터 축소 반대 투쟁 등이 얼마나 큰 사회적 갈등 이슈인지 귀동냥이라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국민한테 물어보는 한마디 말도 없이 미국으로 휙 날아가 미국 정부에게 덥썩 안겨주고, 한국의 이해 당사자가 그동안 들인 온갖 고초를 한낱 물거품으로 만들고, 이들을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로 만든 사람이 과연 한국 사람인지 미국 사람인지 의문을 가지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18. 시장 개방과 FTA를 자기 소신으로 갖고 있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지구가 정육면체라는 소신을 갖고 살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듯이. 그러나 김현종의 위치는 자기 소신에 따라 자기 마음대로 처신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자기가 믿는 바를 실현하면 수많은 국민의 삶에 직접 영향이 미친다. 김현종의 소신 때문에 어떤 아빠는 다시 갓난애의 분유값을 마련하기 위해 남의 집 담을 넘어야 할지 모르고 김현종의 소신 때문에 어떤 부인은 애들을 버리고 파출부로 피곤한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야 할지 모른다. 이들 하나하나의 삶은 김현종이나 그의 가족의 삶이랑 똑같이 중요하다. 이들의 고단한 삶은 김현종이 들여다보는 문서에서 한낱 숫자로 표현되고 말겠지만, 그렇다고 그 삶이 무시되어도 좋을 수는 없다.
19. 한국에서 일해온 교육부총리는 그 기록이 다 남아 있으므로 크고작은 문제가 계속 터져나와 발목을 잡는다. 미국에서 살아온 통상교섭본부장은 기록이 없거나 숨기기 때문에 문제될 거리가 없다. 이런 세상이라면, 애들에게 앞으로 한국에서 장관 하려면 미국에 가서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는 꼴이나 마찬가지다. 김현종이 계속 미스터리 속의 인물로 남고 그 그늘 속에서 국민을 우롱하면서 활개친다면 이것은 바로 언론과 국회의 직무 유기임에 다름아니다. 공인에 대해 마땅히 공개해야 할 정보를 꼭꼭 숨겨두고 있는 정신나간 정부 관계자넘들은 말할 가치도 없다.
20. 좀 다른 이야기지만, 그를 '개혁, 개방론자'로 표현하는 홍보성 기사들이 몇몇 있는데, 개혁은 왜 갖다 붙이는 것인지 알 수 없고, 개방도 제(=한국) 나라 시장만 개방할 줄 알았지 행정이며 집행을 투명하게 개방할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여하튼 과거 기사들에서, 노무현이 그를 한국의 미래를 제시하는 인물로 총애하는 것이나 언론이 '통상외교의 골게터' 'FTA 전도사'라고 추앙하는 모습, 쌍무 협상이게 마련인 협상을 성사시켜 놓고 우리에게 유리한 것만 골라서 언론에 흘리는 모양, 한미 FTA로 가구당 30만원을 더 벌게 된다는 둥의 주먹구구, 김현종 본부장의 트레이드 마크는 ‘국익’이다. 입만 열면 ‘국익’ ‘국가관’ ‘애국심’ 같은 ‘교과서 용어’가 튀어나온다는 기사 등을 보니 어쩔 수 없이 그 옛날 방망이 깎던 황아무개 씨가 생각난다.
(fact로 읽지 말고 개인적인 opinion으로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그동안 정부가 FTA 추진선결조건으로 '스크린쿼터'만 양보했다고 주장해왔지만 4월 24일 자 <한겨레신문>이 단독입수한 미 의원들 부시에게 보낸 서한을 통해 그것이 새빨간 거짓말임이 드러났다. 김 현종이 4대 선결과제 해결을 보장해버린 것이다. 고등학교·대학교를 미국에서 나왔으니 그 잘난 영어로 미 의원들에게 약속해버린 것 아닌가. 김현종이 누구길래 우리 국민의 운명을 결정지을 발언을 무책임하게 뱉아낸다는 말인가. 그러니 정태인 전 대통령경제비서관이 공개토론을 요구하고 언론이 인터뷰 요청해도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 아닌가. 김현종은 전력을 볼 때 어느 나라의 국적을 가졌는지 심히 의심스럽거니와, 이런 사람을 통상교섭본부장으로 내세운 노 정부는 새빨간 거짓말로 가득찬 정권이다. 나 - 국민의 운명을 너 - 김현종, 노무현 -의 운명으로 바꿔치기한 정권일 뿐이다. 이 바꿔치기는 황우석의 논문조작이 감히 따라갈 수 없는 조작이요 비밀이자 거짓말이다. 나의 운명을, 왜 일언반구도 없이, '너희들이' 결정하는가? (문화연대 논평 중에서)
"방송 뉴스에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한미FTA 협상이 중단된다면 그 책임은 미국의 쌀 개방 주장 때문일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는 것을 들었다. 겉으로만 보면 매우 당당해 보이는 발언이지만 결과적으로 그 발언은 미국의 입지만 강화시켜줄 공산이 크다. 무엇보다 먼저 한국은 2004년 WTO 쌀재협상에서 의무수입량의 30%까지 밥상용 쌀을 수입하겠다고 약속함으로써 이미 쌀시장을 미국에게 다 내어준 상황이다. 다시 말해 쌀 개방과 관련해 미국은 이미 얻을 것은 다 얻은 상황이다. 설사 한국이 쌀 개방을 결정한다고 해도 미국은 한국 국민이 선호하는 중단입종자포니카 쌀은 더 이상 수출할 여력이 미약하다. 한마디로 미국의 쌀 개방 요구는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던진 미끼에 불과하다. ... 더욱 심각한 문제는 한국 정부와 협상 대표단의 자세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앞잡이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 됐기 때문이다. 기초적인 현실에조차 무지해서 협상용 발언에 속은 것인지, 아니면 알고도 일부러 그런 것인지 반드시 밝혀야 할 것이다." (김성훈 전 농림부장관, <시민의 신문> 기사 중에서)
필자는 황우석 교수가 지식과 과학의 사기꾼이고, 거짓 근거를 갖고서 국고를 낭비하고 과학계의 윤리 질서를 어지럽힌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 또 다른 많은 황우석이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그 대표적인 사람으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다. 김 본부장은 이번 홍콩 WTO협상에서 “협상의 진전을 위해 농업부문에서 신축적일 용의가 있다”는 내용의 연설문을 언론에 흘렸다가 여론의 반발을 샀던 인물이다. 그는 “미국에서 대학교육까지 마치고 현지에서 변호사 업무를 하다 귀국한 국제통상 전문가”다.
필자가 장관급인 통상교섭본부장으로 있는 그를 주목하게 된 계기는 지난 5~6월에 국회에서 있었던 ‘쌀 관세화 유예 연장 협상의 실태규명을 위한 국정조사’를 통해서였다. 모내기 한번 하지 않았을 그는 국회의원들 앞에서 국제통상에 대해 ‘복잡하고 화려한’ 강의를 해주었다. 왜 관련 내용을 모두 국회에 보고하지 않느냐, 모든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어떻게 국회 비준을 받으려 하느냐는 의원들의 단순명쾌한 지적에 대해, 그 ‘유식한’ 경제 관료는 ‘복잡하고 화려한’ 이론을 늘어놓으면서 이리저리 빠져나갔다.
장밋빛 미래를 제시하면서 ‘복잡하고 화려한’ 설명을 갖다 붙인다는 점에서, 하는 말들이 진실이든 아니든 황 교수나 김 본부장이나 관련 분야에서 최고의 지식을 가졌다는 점에서, 두 사람 모두 신분상 보통 사람들이 아닌 상류층으로 분류된다는 점(한 사람은 대학교수이고, 한 사람은 장관급)에서 두 사람은 비슷한 이미지로 내게 다가왔다. (윤효원, <매일노동뉴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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