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standing international conflicts; An Introduction to Theory and History
By Joseph S. Nye
Chapter 3
Balance of Power and World War Ⅰ
제 1차 세계대전은 국제정치의 주요 개념 중의 하나인 세력균형에 의해 일어난 것이라는 주장을 한다. ‘세력균형’은 고대부터 현재까지 그 영향을 떨어왔다. ‘세력균형’이란 말 자체도 모호하고 혼란스러운 개념 중 하나로 인식되어 왔다. 간략하게 세력균형을 설명한다면, 세력균형이란 국제관계에서 한 국가의 힘이 비대하다면 다른 국가들은 한 국가에 맞서 동맹이나 다른 국제법, 국제기구들을 통해 이 국가와 힘의 균형을 비슷하게 맞춤으로서 전쟁의 방지와 한 국가가 힘이 비대해지는 것을 막으려는 데 그 의미가 있다.
세력균형을 설명하기 위해서는‘권력’이라는 말을 이해해야 한다.‘권력’이란 자기의 목적이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사전적 의미는 권력이란 어떤 일을 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정치학자 달은 권력을 상대방으로 하여금 권력이 아니라면 하지 않았을 일을 하게 만드는 능력이라고 정의한다.
정치학자 달처럼‘권력’을 해석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 책을 쓴 나이의 다른 저서에 보면‘포섭적 권력’이라고 해서 권력을 갖고 있는 국가가 지시하지도 않았는데 문화적, 관습적으로 알아서 행동하는 경우가 있다. 즉, 쉽게 말해서 알아서 엎드리는 것이다. 더불어 뒤에서 다루게 될‘권력의 전환’을 핵심적으로 나이는 다루고 있다.
행태주의에서는‘권력’을 자원과 결부시켜 표현한다. 상대방을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은 특정한 자원을 소유하고 있는지의 여부와 관련되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정치적 지도자들은 대부분 특정한 자원을 지표로 하여 권력을 정의한다. 예를 들면 인구, 영토, 자연자원, 무역의 양, 군사력으로 나타낼 수 있다. 기존에는 현실주의자들의 견해인 군사력만이 권력을 갖는다고 생각했으나 시간이 지나고 세계가 다원화됨에 따라 석유, 가스 등 천연자원들도‘권력’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힘을 갖게 되었다. 경제적인 측면처럼 희소성이 가치를 결정한다는 말과 맥을 같이 한다.
나이는 이 저서에서‘권력의 전환’을 강조하고 있다. 18세기에는 인구가 힘이 되는 시대였다. 세금의 근원이자 보병징집의 기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19세기에는 산업과 철도시스템의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군사력만이 힘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배경인 사회기반시설의 연계가 중요성을 더한 시기였다. 1945년 핵시대에는 선진과학과 기술이 결정적인 자원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처럼 과거에는 권력이 군사력으로 치환되었던 시기에서 오늘날은 다양한 사회기능분야들로 확대되는 것을 나이는‘권력의 전환’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이처럼 권력을 질과 양적으로 측면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세력균형을 계산한다는 것은 오류가 생길 수 있다. 세력균형의 의미를 나타내기 어렵지만 명확하게 해야 한다. 세력균형이라는 단어는 3가지 의미로 사용될 수 있다.
첫째, 세력균형은 권력의 분산을 의미한다. 누가 권력의 자원을 가지고 있는가? 사람들은 세력균형을 기존의 권력분산을 유지하는 것, 즉 현상유지를 의미한다.
둘째, 정책으로서 세력균형을 의미한다. 세력균형은 다른 국가들이 한 국가의 압도적인 힘을 얻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행동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셋째, 다극체제로서의 세력균형이다. 다극체제의 세력균형은 안정성과 평화를 증진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세력균형에 있어서의 오류는‘위협의 근접성’이다. 강한 국가와 동맹을 맺지 않는 이유는 강대국과 같이 동맹을 맺음으로서 난국을 타개하고 나서 자신에게 증가하는 위험성 때문이다. 그래서 동맹은 한 강대국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해지기 위해 정책적으로 선택되어진 것이며 중간 규모의 두 국가는 동맹을 형성함으로서 강대국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해 질 수 있는 것이다.
제 1차 세계대전의 기원을 설명할 때, 다양한 견해가 피력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저서에서는 분석의 3가지 차원을 강조하고 있다. 첫째, 개인적인 차원이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제는 늙고 조야하며, 심신이 지쳐있는 사람이었다. 지도자로서 평범했다.
둘째, 국내사회와 정치차원의 분석이다. 여기서 레닌은 자본주의의 최고점은 제국주의 전쟁이라고 주장했는데, 제 1차 세계대전은 국내사회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 제국주의 전쟁이 아니라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국내적 위기와 독일의 국내정치 상황이다. 독일의 역사가 피셔는 독일내의 엘리트들이 사회적 분열을 외부의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한 시도라고 판단하고 있다.
셋째, 국제관계의 체계에 있다. 체계구조의 차원은 독일 권력의 증가와 동맹체제의 경직성에 있다. 독일은 눈부시게 성장했고 산업적인 측면에서 영국을 앞질렀다. 이러한 점들이 독일권력의 증대와 동맹체계에 있어서 경직성을 강화시켰다. 비스마르크 시대의 특징인‘동맹의 변화’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즉, 독일을 자만에 빠지게 만들었다.
제 1차 세계대전의 원인 3가지 분석차원에 있었다면 전쟁은 불가피했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는가? 그렇지 않다. 세력균형의 구조와 국내정치체제의 변화가 가장 근원적인 요인이고 다음으로 독일 국력의 증가와 양극 동맹체제의 발전이 있었으며 마지막 원인은 오스트리아 황태자가 암살된 것이다. 이런 시나리오 하에 제 1차 세계대전은 발발했다. 만약 사회주의자들이 독일을 지배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수 있다. 또한 1916년 러시아의 철도가 건설되기 시작했다면 전쟁의 발생할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제 1차 세계대전과 가상사실과 결부시켜 생각해 보면, 4가지 전쟁이 가능했다.
첫째, 단순한 국지전이다. 처음에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지원했을 때, 독일 황제 카이저는 1908년에서 1909년까지 있었던 보스니아의 위기가 재현된 것이라고 단순히 생각한 것이 국지전을 확대시킨 요인이 되었다.
둘째, 단일전선의 전쟁이다. 벨기에, 프랑스, 러시아 등과 다면 전쟁을 수행하지 않고 러시아만을 상대로 전쟁을 벌였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수 있다.
셋째, 영국이 없는 전쟁을 상상하는 것이다. 프랑스-러시아와 독일-오스트리아의 전쟁으로 생각한다면 독일의 승리로 끝날 수 있었다. 그러나 독일이 벨기에를 공격하고 해군력을 증강시킨 사실이 영국을 참전으로 이끌었으며, 결국 독일은 패하게 되었다.
넷째, 미국이 참전하지 않는 전쟁이다. 독일이 미국 상선을 상대로 잠수함 공격을 취하지 않았다면 미국이 참전하지 않았고 독일의 승리로 끝날 수 있었다.
이러한 점들은 전쟁의 확대내지 발발이 없을 수 있는 상황적 개연성을 피력한 것이다. 필연적인 전쟁이란 세상에 없다.
제 1차 세계대전은 역사의 교훈을 남기고 있다. 구성주의자들은 과정으로부터 절제가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세력균형만으로는 안정이 보장되지 않는다. 또 다른 교훈은 평화에 대한 자만이나 다음 위기가 지난 번의 위기와 동일한 패턴이 될 것이라고 믿는 안일을 경계해야 한다. 21세기 세계는 제 1차 세계대전과 두 가지 면에서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하나는 핵무기의 등장이고 다른 하나는 전쟁의 이데올로기와 전쟁을 용인하지 않는 태도가 강해졌다는 사실이다.
<STUDY QUESTION>
1. 제 1차 세계대전은 불가피했는가? 만약 그랬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며 불가피해진 시점은 언제인가? 불가피 하지 않았다면 언제 그리고 어떻게 대전을 회피할 수 있었는가?
☞ 제 1차 세계대전은 불가피하지 않았다. 세계대전이 아닌 단순한 오스트리아-세르비아의 국지전으로 끝 날 수도 있었고 독일은 단일 전선으로 전쟁을 유도할 수 있었으며, 영국과 미국의 참전을 막을 수 있었 지만 이 모든 점이 실패했기 때문에 세계대전으로 확대된 것이다.
2. 월츠의 이미지들은 제 1차 세계대전의 원인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가?
☞ 3가지 분석의 차원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첫째, 개인적인 측면 둘째, 국내사회와 정치적인 측면, 셋째, 국제체제적인 특징으로 설명할 수 있다. 특히 가장 중요한 원인은 독일의 국력증가와 양극 동맹체제의 발전, 민족주의의 출현, 그것에 의해 쇠락하던 두 제국의 멸망과 독일정치에 있었다. 또한 중간원인으 로 독일의 정책, 평화에 대한 자만의 증가, 그리고 지도자의 개인적 특성이었다. 마지막으로 촉진원인 은 세르비아의 테러리스트가 사라예보에서 페르디난드를 암살한 사건으로 설명할 수 있다.
3. 제 1차 세계대전의 발발을 설명하는 데 다음 중 어느 것이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고 생각하는가?
a. 동맹체제
b. 여론
c. 군사적 독트린 또는 군사적 지도력(국가들을 구체적으로 밝히시오)
d. 정치적 지도력(국가들을 구체적으로 밝히시오)
e. 경제적 압박 또는 무력
f. 오판
g. 기타 다른 요인
☞ 국제관계에 있어 세력균형의 변화 독일권력의 상승, 이로 인한 독일의 자만과 오판이 점철되었다고 볼 수 있다.
4.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근본적 원인이 ‘아테네의 힘의 증가와 그것이 스파르타에 가져다 준 두려움’이라고 주장한다. 제 1차 세계대전이 독일의 힘의 증가와 그것이 영국에 가져다 준 두려움 때문에 일어난 면은 어느 정도인가? 러시아의 힘의 증가와 그것이 독일에 가져다 준 두려움에 대해서도 같은 답을 하라.
☞ 독일의 힘의 증가와 영국에게 가져다 준 두려움은 일리가 있다. 대륙에서 독일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될까봐 두려워했다. 더불어 벨기에의 침공과 해군력을 증강시키는 면에서 영국에게 두려움을 안겨 주었 다. 그러나 독일과 러시아와의 관계는 다르다. 러시아는 범슬라브주의라는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전쟁에 임하고 있지만 독일에게는 전쟁에 참전할 이유가 오스트리아와 동맹관계라는 점을 제외하고 이유가 없 다. 독일은 러시아를 두려워 할 만큼 경제적, 문화적으로 뒤떨어지지 않았다.
5. 설사 아주 약간이라 할지라도 제 1차 세계대전은 어느 정도 ‘우연적’이었는가? 우연적인 전쟁이란 말이 타당한가? 또한 ‘의도하지 않은’ 전쟁이란 어느 정도 타당한가?
☞ 우연적이라는 말보다 계획적이라는 말이 적당하다. 독일은 상승하는 독일의 국력을 보고 전쟁을 준비하 고 있었고 페르디난트 황태자의 암살로 그 시기가 좀 더 앞당겨졌을 뿐이다. ‘의도하지 않은’전쟁이 란 있을 수 없다.
6. 현실주의적, 자유주의적 또는 구성주의적 시각들은 제 1차 세계대전의 원인을 이해하는 데 어떤 도움을 주 는가?
☞ 현실주의는 세력균형과 동맹으로 자유주의는‘권력의 전환’이라는 측면에서 구성주의 시각은 역사적 교훈이라는 측면에서 이해가 가능하다.
7. 1914년 교훈 중 오늘의 정책결정자들이 전쟁을 회피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은 어떤 교훈인가?
☞ 전쟁은 숙명적인 것이 아니다. 제 1차 세계대전의 참화가 역사적 교훈이며 이를 통해 정책결정자들은 전쟁에 신중해야 하며, 전쟁에 있어서 정치적 오판이나 자만은 전쟁의 패배로 이끌 수 있다.
연대기 : 제 1차 세계대전으로 가는 길
1905 ~ 1906년 | 1차 모르코 위기; 독일이 프랑스를 대신하려고 카이저가 탄지에르를 방문함; 알헤시라스 회의에서 프랑스가 만족하는 방향으로 사건이 종료됨 |
1908년 | 1878년 이후부터 슬라브 영토였던 보스니아와 헤르체코비나에 대한 오스트리아의 합병선언; 세르비아는 전쟁을 위협했으나 러시아의 지원없이는 무기력함; 독일이 오스트리아-헝가리를 지원함으로써 러시아를 억제함 |
1911년 | 2차 모르코 위기; 독일이 프랑스의 모르코에 대한 주장을 인정하는 대신 다른 지역에서의 식민지 양보를 강제하기 위해 포함 펜더를 아가디르항에 출항시킴 |
1912년 | 1차 발칸 전쟁; 불가리아, 세르비아, 그리스가 터키를 물리치고 트라케와 살로니카를 얻음, 오스트리아-헝가리는 세르비아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알바니아의 건설을 지원 |
1913년 | 2차 발칸 전쟁; 세르비아, 그리스, 루마니아가 불가리아를 물리치고 그 희생을 통해 영토를 확장 |
1914년 주요일지 | |
6월 28일 |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드 부부의 살해 |
7월 5일 | 오스트리아, 세르비아에 대항하기 위한 독일에 대한 지원 요청과 지원 획득 |
7월 23일 | 오스트리아의 세르비아에 대한 가혹한 최후 통첩 |
7월 25일 | 오스트리아의 최후통첩에 대한 세르비아의 (일부)거부와 러시아에 대한 지원 요청 |
7월 26일 | 영국의 외무장관이 에드워드 그레이 경이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회의를 제안함; 그에 대한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거부 |
7월 28일 | 오스트리아의 세르비아에 대한 선전포고 |
7월 29일 | 오스트리아군의 베오그라드 폭격; 러시아, 오스트리아에 대항하기 위한 동원령 |
7월 30일 | 러시아와 오스트리아의 총동원령; 프랑스군, 독일 국경으로부터 10㎞ 후퇴 |
7월 31일 | 독일, 러시아에게 병력동원을 취소하라는 최후통첩 발표; 러시아의 최후통첩 무시 |
8월 1일 | 독일의 러시아에 대한 선전포고; 영국 해군의 동원; 독일군의 룩셈부르크 침략과 그것으로 인한 프랑스의 병력동원 |
8월 2일 | 독일이 벨기에에 자유 통로 요구 |
8월 3일 | 독일의 최후통첩에 대한 벨기에의 거절; 독일의 프랑스에 대한 선전포고 |
8월 4일 | 독일군의 벨기에 침공; 영국의 독일에 대한 선전포고 |
죠셉 나이의 Understanding international conflicts의 Chapter 3의 마지막 장 ‘연대기: 제 1차 세계대전으로 가는 길’에서 발췌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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