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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cs and Society Archive

Understanding International Conflicts - Chapter 2 -

by 淸風明月 2023.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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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derstanding international conflicts;

An Introduction to Theory and History

By Joseph S. Nye

 

 

Chapter 2

 

Origins of the Great Twentieth - Century Conflicts

 

국제체제란 가장 큰 특징으로 무정부성을 꼽을 수 있다. 때문에 국내체제와는 구별되고 권력이 분산되어 있으며, 체계적이거나 조직적이지 않다. 더불어 전체의 패턴이 부분을 합한 합보다 더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월츠는 그의 책에서 소개한대로 국제정치를 3가지 이미지로 분석을 하고 있다. 3가지 차원의 원인은 개인, 국가, 국제체제로 구분된다. 첫 번째 이미지인 개인은 개개인의 특별한 성격보다는 일반적인 인간의 본성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예를 들면 히틀러의 호전적인 성격이 전쟁을 일으켰다고 볼 수 있지만, 그 보다도 우선하는 것은 인간의 원초적인 본성이 이기적이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두 번째 이미지인 국가는 국가가 가진 이념성 즉, 국가의 내부체제가 공산주의인지 자본주의인지에 따라 이미지가 달라질 수 있다. 칸트의 고전적인 명제인 민주주의 국가사이에 전쟁은 없다물론 이 주장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지만 이처럼 국가의 내부체제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 더불어 첫 번째 이미지인 개인의 특성을 강조하다 보면, 올바른 국제관계를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세 번째 이미지인 국제체제는 국제관계의 구조와 과정에 지배를 받게 된다.

 

체제에서 구조란 힘이 어떻게 분배되는지를 고찰하는 것이고, 과정은 행위자간의 상호작용이 어떤 종류와 패턴을 갖고 있는지를 설명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경제학자가 시장구조를 묘사함에 있어서 독점인지, 과점인지, 자유경쟁체제인지를 파악함으로써 시장구조를 예측하고 상호 주체들이 어떻게 행위하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국제정치학자들도 양극인지, 다극인지에 따라 국제체제의 구조를 고찰할 수 있다. 또한 체제의 구조를 분석하는데 그치지 않고, 국가간에 상호관계를 정규적인 패턴이라고 할 수 있는과정을 분석하면 더 많은 함의를 가질 수 있다. 여기서 구조권력의 분포이지만 과정은 행위주체들의 상호작용 패턴을 의미한다. 국제정치에서 과정은 3가지 요소에 의해 결정된다.

 

첫째, 체제의 구조(양극체제는 유연성이 떨어지는 과정을 만들어내는 경향이 있다)

둘째, 협동하려는 국가의 동기와 능력을 결정하는 구조를 둘러싼 문화적, 제도적 배경

셋째, 국가가 그 목적과 수단에서 혁명적인가 아니면 온건한가의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

 

국가의 목적은 국제체계의 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라는 물음에 구성주의 이론에 보는 것처럼 대부분의 체제는 일정한 기본적 법칙과 관습을 내포하는 문화적 배경 속에 존재한다. 국가는 그 규칙과 관습에 도전할 수도 있고 이를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또한 과학기술의 발달로 기존의 툴이 무너지고 새로운 사회적 관습과 법칙을 만들어 낼 수 있다.

 

19세기 체제의 구조와 과정의 중요한 사건은 나폴레옹 전쟁, 나폴레옹 전쟁 사후 처리인 비엔나 회의, 민족주의 발흥, 독일과 이탈리아의 통일 및 성장 등의 사건들로 채워졌다. 구조와 과정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나폴레옹 전쟁을 수습하기 위해 열린 빈회의에서 메테르니히를 비롯해서 여러나라들은 나폴레옹의 민족주의와 자유주의를 방어하기 위해 나폴레옹 이전의 보수주의로 회귀했고 다극체제를 복원시켰다. 더불어 1870년 독일의 통일은 세계 중심국가가 되려는 독일의 과정과 불안해 하는 주변국들로 요약된다. 결국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 주변국들은 1870년대의 속편이 되지 않을까? 라는 두려움이 있었다.

 

국내정치와 외교정책에 대한 현실주의, 자유주의의 시각은 다르다. 현실주의는 체제 차원의 분석에 의존하기 때문에 국가의 행동은 유사할 것이다라고 보며, 자유주의는 국내적 차원의 분석에 기초하여 국내 사회가 유사하면 국가의 행동도 유사할 것이다라고 본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현실주의 이론이 맹위를 떨쳤다. 그러나 1960,70년대에 유럽의 상호의존의 증대로 인한 기능주의, 신기능주의 이론을 비롯하여 유럽연합을 모색하는 연방이론 등의 자유주의 이론이 부활했다. 이런 신자유주의적 사고에는 경제, 사회, 정치의 세 가지 갈래로 설명할 수 있다. 여기서 정치는 다시 제도와 민주주의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경제는 무역에 초점을 둔다. ‘권력의 전환으로 인한 무력 외에 경제가 치환될 수 있는 환경의 발달과 일본과 같은 나라들이 경제적인 측면에서 강대국이 되었기 때문에 좋은 모델이 되고 있다. 더불어 무역의 증대로 전쟁을 치르지 않고도 강대국이 될 수 있는 시각을 제공함으로서 시각의 변화를 가져왔다.

 

둘째, 사회에 초점을 둔다. 이 시각은 개인 vs 개인의 접촉이 상호이해를 증가시킴으로써 분쟁이 줄어든다.

 

셋째, 제도를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의 갈래이다. 제도는 미래의 그림자를 길게 드리워 안보딜레마의 심각성을 완화시키고 무정부상태의 효과를 감소시킨다. 또한 제도는 기대를 4가지 측면에서 안정시킬 수 있다. 첫째, 제도는 지속감을 마련해준다. 둘째, 제도는 상호주의의 기회를 마련한다. 셋째, 제도는 정보의 흐름을 제공한다. 고로 제도는 안정적 평화에 대한 기대가 발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 네 번째, 민주적 가치의 상승이다. 민주적으로 구성된 사회는 당연히 외교관계에서도 평화적으로 행동할 것이라고 칼 거쉬만은 역설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 국가에 대한 맹신이라는 편견일 수도 있다. 더불어 명제는 거짓원인일 확률이 높다. 예를 들면 미국의 니카라와 침공이나 그라나다 침공에서 볼 수 있듯이 민주국가라고 해서 전쟁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국가는 국익을 위해 행동한다말은 사실이지만 국가이익을 어떻게 정의하는냐에 따라 외교정책이 달라질 수 있다. 현실주의자는 무력과 군사안보를 강조하지만 자유주의자는 무역에 역점을 두고 경제적 복지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한다. 이에 따라 외교정책의 변할 수 있다. 자유주의자들은 국가 내부의 관료조직에 표준행동절차를 가지고 그 툴에 적용시키거나 국제정치경제를 전공한 학자는 국내이익과 연계시킴으로서 외교정책을 간결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20세기 대전쟁의 원인을 살펴봄에 있어 방법적인 도구가 필요한데, 이는 가상사실로 실험을 할 수가 있다. ‘가상사실이란 사실과는 다른 조건이나 인과관계의 주장을 판단하기 위한 정신적 실험이다. 역사의 사실 중 ‘what if'를 사용해서 조건부 역사속에 함의를 찾아나가는 지적 과정을 시행하는 것이다. 이 가상사실의 실험이 유용한지를 판단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4가지 기준이 유용할 수 있다. 그 기준이란 신빙성, 근접성, 이론, 사실이다.

 

 

1) 신빙성

유용한 가상사실은 타당한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예를 들면 19세기 사건을 20세기의 사건에 대입시킬 수 없다.

 

2) 시간의 근접성

원인의 사슬 속에서 두 사건이 근접해 있다는 것은 우리가 다른 원인들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에 특정한 원인의 진정한 중요성을 파악할 수 있다.

 

3) 이론과의 관계

가상사실의 좋은 표본은 예전에 일어난 일에 대해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걸러낸 것들을 대표하는 기존의 존재하는 이론에 기초해야 한다. 예를 들면 나폴레옹의 워털루 전쟁 당시 스탤스 전투기가 있었다면.... 이라고 가정하는 경우,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 일어날 수 있는 것들을 토대로 가상사실로 삼고 정신적인 실험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4) 사실

사실을 상수로 놓고 실험하고자 하는 컨텐츠를 변수로 삼아서 가상사실을 유도해야 한다. 의미없이 많은 변수들을 나열해서 적용시키면 혼란을 가져오기 쉽다.

 

 

<STUDY QUESTION>

 

1. 비엔나 회의의 주요 목표는 무엇이었는가? 비엔나 회의는 전쟁 이전의 유럽질서를 재현한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낸 것인가?

비엔나 회의 주 목적은 나폴레옹 전쟁 이전 체제로 회귀하는 것이다. 이것은 나폴레옹이 전쟁을 하면서 각국의 민족주의와 자유주의를 전파했기 때문에 그 당시 보수적인 다른 유럽에 국가들은 이런 혁명을 원치 않았다. 그러나 1848년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선언으로 혁명의 불길이 땡겨졌다. 그러나 1815년의 비엔나 회의는 나폴레옹 전쟁의 이념적 확산을 방지하고 구체제로 돌아가는데 그 목적이 있다.

 

2. 1815년에서 1848년까지 유럽체제의 성격은 무엇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 성격은 18세기의 세력균형이나 19세기 후반의 국제체제와 다른 것인가? 다르다면 어떤 요소가 변화를 일으켰는가?

1815 ~ 1848년 사이에 유럽체제의 성격은 보수회귀적 국가체제이다. 이것은 19세기 후반의 국제체제 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그 이유는 각 국가들의 민족주의가 성장했고 독일과 이탈리아 등 유럽에 신생국 가들이 등장하였기 때문이다.

 

3. 유럽체제에서 독일의 출현은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유럽에서 비스마르크의 전략은 무엇이었는가? 그는 세 력균형을 이루는 데만 관심이 있었나 아니면 이를 무너뜨리는 데 관심이 있었나?

해양의 패권세력으로 영국이 있었지만 러시아, 프랑스와 더불어 육상패권을 다툴 국가가 출현하게 된 것이다. 특히 1870년 독일을 통일로 이끈 명재상 비스마르크는 탁월한 외교적 감각을 발휘해 독일을 그 당시 최고의 패권국으로 만들었다. 비스마르크의 주요한 전략은 독일을 강대국으로 만드는 목표를 설정하고 각 국가들과 합종연횡을 하면서 유럽내에서 세력균형을 이루면서 독일이 내부 산업들이 성장 할 수 있는 기틀을 제공했다.

4. 왜 자유주의자는 민주주의가 전쟁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들 시각의 한계는 무엇인가?

고전적 자유주의의 시조인 칸트는 민주공화정일 경우, 규범-문화와 구조-제도들이 전쟁을 꺼려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삼권이 분리되어서 서로 견제가 가능하고 여론이 전쟁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칼 거쉬 만은 민주적으로 구성된 사회는 당연히 외교관계에서도 평화적으로 행동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유진 로스토는 민주적 국가가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전쟁으로부터 구원되기 위해 이상주의자들 이 추구한 신화의 고전 중 가장 최근 시리즈이다라고 대답했다. 이에 반해 마이클 도일은 민주주의 국 가는 다른 민주주의 국가와 전쟁을 벌이지 않는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민주국가들끼리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관관계이고 일부 상관관계들은 거짓 원인으로 판명되었다. 예를 들면, 미국의 니카라 와 침공, 그라나다 침공 등은 위 명제의 한계이다. 한 가지 더 추가해서 설명하자만 1990년 부시정권의 이라크 침공에 미국 국민들 중 과반수 이상이 찬성했다는 사실은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5. 월츠의 세 가지 이미지란 무엇인가? 그 이미지들은 어떻게 결합될 수 있는가?

개인, 국가, 국제체제이다. 개인은 일반적인 인간의 특성이고, 두 번째, 국가는 국가의 내부적인 체제의 형태를 의미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국체체제는 무정부적인 특성과 구조와 과정의 형태들의 결합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 중 국제체제와 국가의 이미지가 가장 중요하다.

 

6. 가상사실의 역사란 무엇인가?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자연과학은 실험실에서 실험으로 그 과정과 결과를 도출할 수 있지만 사회과학은 이런 점이 자연과학과 는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을 바탕으로 개연성있는 ‘what if'로 지적 실험을 계속해나가는 것을 의 미한다. 가상사실을 신빙성, 시간의 근접성, 이론과의 관계, 사실들에 비추어 가상사실의 실험이 유용한 지를 판단할 수 있다.

 

 

17세기 유럽의 연대기

1618 ~ 1648 30년 전쟁 : 유럽 내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 간의 분쟁; 마지막 종교전쟁; 독일의 유린
1643 ~ 1715 루이 14, 프랑스의 왕으로 재임
1648 베스트팔렌 조약, 30년 전쟁의 종결
1649 ~ 1660 영국의 찰스 1세 참수와 크롬웰의 공화국
1652 ~ 1678 해양 패권을 위한 영불, 영난 간의 일련의 전쟁
1660 영국의 스트어트 왕조의 복원; 찰스세의 계승
1682 ~ 1725 피터 대왕이 러시아의 서구화 시작
1683 터키의 오스트리아 포위공격 실패
1685 루이 14세의 낭트칙령 무효선언; 프랑스의 프로테스탄트 박해
1688/1689 영국의 명예혁명
1688 ~ 1697 아우크스부르크 전쟁, 루이 14세에 대항한 전쟁

 

18세기 유럽의 연대기

1700 ~ 1721 대북방전쟁; 러시아, 폴란드, 덴마크가 발트해에서 스웨덴의 패권을 반대함;
러시아가 유럽의 강대국으로 등장
1701 ~ 1714 스페인 왕위계승 전쟁과 위트레흐트 조약, 프랑스와 스페인 왕조의 영구적 분리; 프랑스 권력의 몰락
1707 영국과 스코틀랜드의 연합으로 대영제국 형성
1740 ~ 1748 오스트리아 왕위계승 전쟁
1756 ~ 1763 7년 전쟁; 영국과 프랑스는 식민지 전쟁을 통해, 프랑스는 캐나다와 인도를 잃은 반면
영국은 세계의 주요 식민지 국가로 등장함
1775 ~ 1783 미국 혁명 전쟁
1789 ~ 1799 프랑스 혁명
1799 프랑스에서 나폴레옹 쿠데타 발생
1799 ~ 1815 나폴레옹 전쟁은 프랑스를 유럽 대륙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로 만듦

 

19세기 유럽의 연대기

1801 대영제국과 아일랜드의 합병으로 영연방 형성
1804~ 1814 나폴레옹 1세 프랑스의 황제로 재임
1806 신성로마제국의 종말; 프란시스 세 황제의 권리를 포기
1810 네덜란드 왕국이 프랑스 제국으로 편입됨
1812 프랑스의 러시아 공격; 나폴레옹 군대의 몰락
1814 ~ 1815 워털루 전쟁; 나폴레옹의 엘바 탈출 및 영국과 프러시아 군대에 의한 나폴레옹 군대의 패배
1833 ~ 1871 독일의 통일
1848 프랑스, 독일, 헝가리, 보헤미아에서의 혁명;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선언
1848 ~ 1916 프란츠 조지프, 오스트리아의 황제; 1867년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왕이 됨
1854 ~ 1856 크림전쟁; 러시아에 대항하기 위해 영국과 프랑스가 오스만 투르크를 지지
1855 ~ 1881 알렉산더 , 러시아의 차르(czar)
1859 ~ 1870 이탈리아의 정치적 통일과 가리발디의 지도에 의한 문화적 민족주의 성장
1861 러시아 알렉산더 세에 의한 농노 해방
1862 ~ 1890 독일의 재상 비스마르크가 독일제국을 창설
1864 ~ 1905 러시아의 폴란드, 발칸, 중앙아시아로 향한 팽창
1867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건설
1870 ~ 1871 보불전쟁; 독일의 프랑스 침략; 프랑스의 제 3공화국 탄생
1870 ~ 1914 유럽 제국주의의 정점; 산업의 성장; 노동력의 이동 증가와 마르크스 주의
1871 파리코뮌; 혁명의 중심지인 파리에서 자신들의 정부를 세워 국가와 전쟁을 벌임
1878 베를린회의;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대부분을 오스트리아, 러시아, 영국간의 분할
1881 러시아의 알렉산더 세 피살
1882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이탈리아의 삼국동맹
1899 ~ 1902 남아프리카의 보어전쟁

 

 

20세기 첫 10년 유럽의 연대기

1904 영국과 프랑스의 양국협상
1904 ~ 1905 러일 전쟁이 러시아의 패배로 종결; 일본이 세계 강국으로 등장
1907 러시아가 영국, 프랑스와 함께 삼국협상을 맺음

죠셉 나이의 Understanding international conflictsChapter 2의 마지막 장 유럽의 연대기에서 발췌.

 

 

[첨부파일]

understanding_international_conflicts2.pdf
0.25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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