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standing international conflicts; An Introduction to Theory and History
By Joseph S. Nye
Chapter 7
Interdependence and Power
냉전의 현상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은 국가간 상호의존 심화, 세계화, 정보화이다. 세계화는 “세계시장에서 번영할 수 있는 기술과 기동성을 가진 그룹들과 그것을 가지지 못한 노동자, 연금수령자, 환경운동가 사이에 존재하는 깊은 단층을 드러낸 것이다”이러한 변화는 세계시장은 권력의 국제적인 구조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군사력으로 상대를 제압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경제적 제재가 유용한 수단이 되고 있다. 경제적 제재는 무력의 사용을 회피하기 때문에 인기있는 방법이나 그 효과는 복합성을 띤다. 경제적 제재는 성공을 거둘 때도 있지만 실패할 때도 있었다. 그 예는 쿠웨이트에서 이라크군을 몰아내기 위해 초기에 경제제재와 아이티와 같은 빈곤한 국가에서 나타났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적 상호의존은 급격히 증가했지만 경제적 분쟁을 명실상부하게 무대의 중심으로 옮겨놓은 사건은 1973년의 석유파동이었다. 이 석유파동은 현실주의자인 한스 모겐소의 관점을 완화시켰다. 군사적 권력이 천연자원을 기초로 한 경제적 권력으로부터 분리되었다는 점에서 석유파동은 미증유의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상호의존’은 ‘민족주의’나 ‘제국주의’만큼 여러 면에서 애매한 용어이다. 그러나 분석적 용어로서 상호의존은 체제의 다른 부분들에 있는 행위자나 사건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상황을 가리킨다. 간단히 말하자면 상호의존은 서로 의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호의존은 자원, 이익, 상대적 비용, 대칭성의 4가지 구분을 통해 상호의존의 여러 가지 점을 알 수 있다. 첫째, 상호의존과 자원과의 관계가 있다. 군사적 상호의존은 군사적 경쟁에서 발생하는 상호의존이다. 그러나 핵무기의 발달로 상호확증파괴의 가능성이 있는 군사적 수단은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켰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가치와 비용에 대한 정책결정의 개입이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두 번째, 상호의존의 이익이 있다. 여기서는 한 쪽의 이익이 나에게는 손실이라는 제로섬게임에 기반한다. 즉, 이익 분포의 문제가 작용하는 것이다. 한쪽의 이익이 상대방의 손해로 직결되는 제로섬의 상황에서 제기되는 문제이다. 특히 상대적 이익에 관심을 갖는 국가일 경우 제로섬 게임으로 설명하기 쉽다. 그러나 경제적 상호의존은 기존의 양상을 바꿔 놓았다. 국내이슈와 국외이슈들은 완전히 섞어 놓고, 더욱 복잡한 연합과 더욱 뒤얽힌 분쟁 패턴과 과거와는 다른 이익의 배분을 초래했다. 그리고 경제적 상호의존 하에서는 국가들이 다른 국가들에 대한 상대적 이익을 물론이고 절대적 이익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세 번째, 상호의존의 비용에 있다. 상호의존의 비용에는 단기적 민감성 또는 장기적 취약성이 포함될 수 있다. 민감성은 의존 효과의 양과 속도를 가리키는 개념이다. 취약성은 상호의존체제의 구조를 변화시킬 때 드는 상대적 비용을 가리킨다. 그리고 두 국가 중에 덜 취약한 국가란 덜 민감한 국가를 말하는 것은 아니고, 단지 그 국가가 상황을 변화시킬 때 비용이 덜 들어간다는 뜻을 말한다. 또한 취약성에는 정도의 문제와 결부되어 있다. 1973년 산유국의 감산조치는 미국에 타격을 주었지만 속도감속, 온도를 낮춤으로써 취약성을 극복할 수 있었다. 그것은 단기적인 민감성은 높지만 취약성은 낮다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취약성은 종합적 조치 이상의 것에 의해 좌우된다. 그것은 사회가 변화에 빨리 대응할 수 있는가에 의해서도 좌우된다. 그리고 취약성은 또한 대체물이 있으냐 없느냐와 다양한 공급원이 있느냐 없느냐에도 달려 있다. 기술의 정도가 높을 경우 미래의 취약성은 낮을 수 있다.
네 번째, 상호의존의 대칭성에 있다. 대칭성은 불균형적인 의존과는 반대되는 상대적으로 균형이 잡힌 상황을 가리킨다. 덜 의존적이라는 것은 권력의 원천이 될 수 있다. 다른 이슈 영역에서 상호의존의 비대칭이 있을 때 국가는 이슈들을 연계시키거나 분리시키려고 한다. NAFTA와 같은 협정은 상호의존을 증가시키고 관계의 비대칭성을 약화시킬지 모른다. 멕시코의 경제위기가 발생했을 때 비대칭성이 증가할 것을 우려한 미국은 원조를 통해 이를 감소시켰다.
세계경제의 리더쉽은 가장 큰 국가들이 결정한다. 19세기 금본위제의 영국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1930년대 이후 약화된 영국이 개방된 국제경제를 유지하기에는 너무 허약했고 미국은 새로운 책임에 걸맞은 삶을 살지 않았다. 세계공황과 제 2차 세계대전을 경험하면서 미국은 개방적 자유무역주의 경제체제를 선택했다. 그래서 세계적인 리더쉽을 발휘해 나가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세계무역기구나 OECD와 같은 기구들이 세계경제에서 리더쉽을 발휘하였다. 세계적인 정치적, 경제적 제재는 예전보다 더욱 어렵고 복잡해졌다. 상호의존의 복잡성에 관련된 더 많은 분야, 국가, 이슈, 개인행위자들이 나타날 것이다.
현실주의와 복합적 상호의존은 간단한 모델 또는 이상적 유형이다. 일련의 국가들간의 관계가 스펙트럼의 어디에 위치하느냐에 따라 다른 정치와 다른 형태의 권력투쟁이 벌어진다. 냉전시기에는 미-소간의 관계는 현실주의에 가까웠고, 냉전의 종결로 미-소 관계는 현실주의와 복합적 상호의존의 중간에 이동하게 되었다.
상호의존에 가장 중요한 이슈로 등장한 것은 바로‘석유’이다. 석유는 그 자체로 중요할 뿐만 아니라 현실주의와 복합적 상호의존의 양면이 개입되는 이슈이기도 하다. 일정한 영역에서 상호의존은 규칙, 규범, 제도의 틀 안에서 발생한다.
1960년에 석유레짐은 주요 소비국가의 정부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 사적 과점 상태였다. 석유의 가격은 큰 석유회사들이 얼마나 생산하느냐와 대부분의 석유를 수입하는 선진국의 수요에 달려 있었다. 이것이 바뀐 시기는 1973년 석유파동이었다. 선진국들의 시장에서만 가격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산유국들이 생산속도를 직접 결정함으로써 석유가격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쳤다.
이런 변화를 가져온 것은 전체적 세력균형, 오일 이슈에서의 세력균형, 국제제도라는 3가지이다. 현실주의자들은 전체적인 세력균형을 강조한다. 60대까지 중동의 절반이 유럽의 식민지였지만 70년대에는 모두 독립국가가 되었다는 점이다. 더불어 1973년에 선진국들이 개입하여 산유국을 식민화하지 않은 이유는 민족적으로 의식이 깨어있는 국민들을 상대로 무력을 사용할 때 들어가는 비용이 크기 때문이다.
변화를 설명하는 두 번째 방법은 전체적 군사구조보다는 석유 이슈 자체내의 세력균형에만 초점을 맞추는 현실주의의 수정된 형태이다. 미국이 석유생산이 1971년에 정점에 다다른 후 미국이 석유를 수입하기 시작하자 석유시장에서 세력균형의 권력은 사우디아라비아나 이란과 같은 국가들로 이동했다.
세 번째, 1973년 이후 석유레짐의 차이를 설명해 주는 국제제도의 역할 변화에 의존한다. 대형 석유회사들이 석유자원을 개발시키면서 정유 및 정제 기술을 산유국에게 교육했기 때문에 산유국 독자적으로 개발할 능력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협상의 쇠퇴를 가져왔고 다국적 기업들은 본의 아니게 가난한 국가들이 그들 스스로 원전을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을 발전시켜 준 기술과 기능을 이전시키게 되었다. 그러면서 OPEC의 힘이 증대되었고 생산자의 협상력이 증대되었다.
요컨대 석유는 현실주의와 복합적 상호의존의 이상적 유형 사이에 있는 이슈의 본보기이다. 전체적 세력균형, 권력의 이슈구조, 석유 이슈 영역 내의 제도라는 세 차원의 변화가 1960년대의 석유 레짐과 1973년 이후의 석유 레짐의 극적인 변화를 설명할 수 있게 한다.
1973년 석유가 무기로서 중요 자원으로서 인식되는 시점에서 산유국은 이스라엘과 호의적인 국가들에게 석유판매를 금지함으로써 미국 아젠다의 최전선에 부각될 수 있게 만들었다. 이에 대해 일본과 프랑스는 독자적인 입장을 표명함으로써 난국을 타개해 나갔다.
미국은 이스라엘과의 동맹으로부터 아랍의 대의를 지지하는 쪽으로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석유는 효과적인 권력자원이기는 했지만 미국의 정책을 뒤바꿀 만큼 강한 것을 아니었다. 이런 배경에는 미국 자체에서 생산되는 석유와 중동 이외의 산유국도 역할을 했다.
또한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한 중동의 안보를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석유무기를 무기로 사용하는 것에 대한 신중함을 가질 수 있도록 산유국들에게 보여주었다. 이것은 안보의 상호의존과 석유의 상호의존 간에 간접적인 연계가 되었다. 무력은 이를 공공연하게 사용하기에는 그 비용이 너무 높았지만, 배후에서 권력자원으로서의 역할을 했다.
전후 중요한 것의 하나로 부각되는 것은 초국적 행위자의 증가이다. 현실주의에서는 국가만이 국제사회에서 행위로 인식을 하고 있지만 다국적 기업, NGO, 국제기구의 수적 증가는 국가만을 행위자로 생각하는 시대가 아닌 다양성에 기초한 다원화된 권력을 중시하는 시대로 이행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특히 20세기 후반에 있었던 수적 변화야말로 국제체제의 중대한 변화를 초래했다. 세계적 상호의존의 세계에서 세계에서 국제정치의 아젠다는 더 광범위해졌고, 모두가 참여하고 싶어하는 쪽으로 이동했다. 복합적 상호의존의 사회에서는 많은 사회 기능분야들이 서로 교류한다. 노동자이 파업 등으로 다른 국가와의 무역에 자국이나 다른 국가에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자국의 노동자와 다른 국가의 노동자의 연대를 통한 상호의존이 증가했다. 그리고 외교정책기관 등이 중앙지배의 외부에서 국경을 넘어 상호 작용하는 것을 초국가적 관계이라고 한다.
또한 복합적 상호의존은 이해의 복잡성이 항상 존재했고 그 복잡성은 전통적 군사안보 이슈보다는 경제와 사회이슈에서 더 크게 작용한다. 그리고 경제적 상호의존이 증대되고, 국제정치의 아젠다에서 경제적 이슈가 증가함에 따라 정치과정을 묘사하는 데에 우리의 전통을 속기로는 불충분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정보화는 상호의존의 심화를 가져왔다.‘장소’를 초월한 정보의 이동으로 정보혁명을 범세계적으로 유도하고 있고 자국의 시민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의 시민과의 공통 이슈에서의 연계를 가져올 수 있게 되었다.
‘정보혁명’은 정보를 처리하고 송신하는 비용을 극적으로 감소시킨 컴퓨터, 통신, 소프트웨어의 급격한 기술적 발전을 가리킨다. 정보혁명에 있어서 비용은 크게 감소했고, 비정부적 행위자들은 매우 낮은 비용으로 초국가적으로 조직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환경이나 지뢰같은 이슈들과 관련하여 성공적으로 정부에 압력을 가할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하는 데 국경을 넘어 많은 유권자와 국가들에 접근하기 때문에 국내정치와 국제정치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든다.
그리고 세계화와 시장화는 국가권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세계화는 시장개방을 위한 국제적 틀과 정치적 압력은 미국 정책의 산물이지만 각 국가가 세계시장의 힘에 대항하는 데 드는 비용을 현저히 증가시킨 운송과 통신기술의 발전이 그 틀을 더욱 강화했다. 시장화는 석유파동 이후 인플레이션, 계획경제에 실패에 기원하며 국가와 시장 간의 개방적이고 자유무역체제로 이동하는 것처럼 균형관계가 전환된 것을 의미한다.
더불어 정보는 효율적 시장에서 핵심적인 요소이며, 정보의 증가와 확산은 거래비용을 낮추고 모든 종류의 계약을 휠씬 쉽게 만들었다. 이러한 정보의 역할 증가는 자원의 차원에서 측정되는 국가권력에 영향을 미쳤다. 18세기 프랑스에서 영토, 인구, 농업을 기반으로 군사력의 증대를 가져온 프랑스가 수혜자였고, 19세기에는 산업능력이 팽창된 영국, 20세기에는 과학이 결정적인 자원이 되어서 미국과 소련을 수혜자로 만들었다. 그러나 21세기에는 정보가 패권국을 만들 것이며, 정보강국이 미래사회를 움직일 것이다.
정보혁명과 복합적 상호의존의 관계는 서로 불가분의 관계를 지닌다. 복합적 상호의존은 사회들간의 접촉의 다중적 채널 차원에서 더 크다. 초국가적, 초정부적 접촉은 그 횟수가 엄청나게 증가했을 뿐만 아니라 종류도 변화했다. 이것을 정보혁명의 매개체로 더욱 더 수월하게, 저비용으로 가능케 했다. 이러한 다중적 채널의 증가로 비정부적 기구들과 네트워크는 국경에 상관없이 국가에 침투하는 것과 아젠다를 위해 국내유권자를 이용하여 정치인을 움직이는 데 특히 효과적이다.
NGO의 연계 등 초국가적 네트워크의 다른 유형은 인식공동체라고 불리는 전문가들의 그룹이다. 지식이 중요하게 작용할 수 있도록 이슈를 설정함으로써 그와 같은 전문가들의 네트워크는 연명의 형성과 협상과정에서 때로는 중요한 행위자가 될 수 있다. 그들은 지식을 창출함으로써 효과적인 협동의 근거를 제공할 수 있다. 오존층 파괴에 대한 몬트리올 회의가 바로 그 예이다.
정보혁명과 민주화는 상관관계가 크다. 과거에 폐쇄적으로 국가운영을 했던 국가들이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을 통제하는 데는 고비용이 들어가고 상호작용과 가상공동체가 장래에 가질 효과가 무엇이 되든, 다중채널을 통해 전해지는 자유로운 정보 흐름의 증가로 인한 정치적 영향 중 한 가지는 국가들이 자기 사회의 정보에 대한 통제권을 많이 잃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정보혁명이 진전됨에 따라 다원화된 사고를 가진 가상공동체에서 공동 이슈를 추진하는 세력들로 인한 민주화는 심화가 될 전망이다.
<STUDY QUESTION>
1. 복합적 상호의존은 무엇인가? 그것은 서술적 모델인가? 오늘날 복합적 상호의존이 가장 발전된 예를 어디 에서 찾을 수 있는가?
☞ 초국가적인 행위가의 증가와 국제사회에서 다양한 이슈의 증대로 행위자와 이슈간의 연계로 인한 상호 의존의 증대로 다중적 채널의 증대를 의미한다. 그것은 단지 서술적인 모델인 아니다. 왜냐하면 복합적 상호의존은 실제 사회에서 서로 의사소통을 통해 다양한 사회기능분야들에 있어서의 연계가 실제로 진 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잘 된 오늘날의 복합적 상호의존의 사례는 오존층을 파괴에 대한 몬트리올 회의가 바로 그 예이다.
2. 무엇이 경제적 상호의존을 권력의 자원으로 만드는가? 민감성과 취약성은 어떻게 다른가?
☞ 경제적 상호의존을 권력의 자원으로 만든 계기는 석유파동이다. 석유파동으로 인한 국가들 중 타격을 받았다면 그것은 민감성이 큰 것이고 취약성은 이를 막을 수 있는 대책이나 대체물이 있다면 취약성은 약하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덜 취약한 국가란 덜 민감한 국가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단지 그 국가가 상황을 변화시킬 때 비용이 덜 들어감을 의미한다.
3. 1973년 석유위기의 근원적 원인과 직접적 원인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왜 더 일찍, 예를 들면 1967년에 일어나지 않았는가? 그것은 유일한 사건이었는가 아니면 국제정치에서 혁명의 시작이었는가? 왜 무력은 사 용되지 않았는가?
☞ 원인은 크게 전체적인 세력균형의 변화, 오일 이슈에서의 세력균형의 변화, 국제제도 3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전체적인 세력균형의 변화에 있어서는 민족주의와 탈식민지화로 민족의식이 고양되었을 뿐 만 아니라 무력행사로 이 지역을 다룰 수 없게 되었다. 오일 이슈에서의 세력균형 변화는 미국이 세계 에서 석유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국가였지만 1971년을 기점으로 미국 석유생산이 정점에 이르렀다는 점 이다. 국제제도에 있어서는 다국적 석유기업들의 협상의 쇠퇴를 들 수 있다. 이들은 산유국에서 원전을 개발하고 정제했지만 이 이시에 이르러 산유국들이 교육받을 것을 자국에서 수행할 힘이 생겼기 때문이 다.
그리고 1967년에 석유위기가 발생하지 않은 것은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많이 석유를 생산했기 때문에 OPEC의 감산조치는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것은 국제정치에 있어서 혁명적인 사건이다. 왜냐하면 군사력 이외의 다른 수단, 즉 천연자원도 무기가 될 수 있음이 증명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석유위 기에서 무력이 사용될 수 없었던 이유는 중동의 민족주의의 성장과 1970년대에 이르러 유럽의 식민지에 서 모든 국가가 벗어났기 때문이다.
4. 자유주의 이론은 국제 무역의 증대로 국제정치의 도구로서 군사적 힘의 매력이 현저히 감소할 것이라는 점 에 낙관적이었다. 국제 석유 레짐은 이 주장을 지지하거나 반박하는 데 있어 무엇을 보여주는가?
☞ 국제 석유 레짐은 중동 산유국의 민족주의 증대와 탈식민지화와 연관이 있다. 이러한 힘을 바탕으로 산 유국의 레짐은 당사자가 제정하는 규칙, 규범, 제도를 의미하기 때문에 군사력 다른 국가가 이를 군사 력으로 제압한다는 것은 주권침해이자 국제법에 위배될 수 있다.
5. 전통적 현실주의의 가정하에서는 무정부상태에서 국가간의 협력이 가능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없다. 1973 년에 산유국들이 이루어낸 고도의 협력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금수조치가 그 목적을 달성했는가? 그 것은 어떻게 성공했는가? 아니면 어떻게 실패했는가?
☞ 정확하게 알지 못하지 못하기 때문에 답변을 드릴 수 없습니다.
6. 생태학적 상호의존은 협력을 만들어낼 것인가?
☞ ‘생태학적’이라는 말이 모호하기 때문에 답변을 드릴 수 없습니다.
7. 국제경제의 통치에서 큰 국가들의 역할은 무엇인가? 제도의 역할은 무엇인가?
☞ 세계경제의 리더쉽이다. 세계적인 경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세계경제를 안정하게 만들 의무가 강대국과 제도에 요구된다.
8. 초국가적, 초정부적 행위자들은 중요성을 획득할 것인가?
☞ 정보혁명과 세계화, 시장화로 다국적 행위자들이 증가할 것이고 다양한 이슈의 영역에서 이들은 가상공 동체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에 미래에 있어서 중요성이 점차 증대될 것이다.
9. 정보혁명은 세계정치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 정보혁명은 세계정치를 개방적이고 자유적으로 바꿀 것이다. 왜냐하면 의사소통의 증대로 인해 폐쇄적 인 국가가 이를 막기에는 고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이고 다양한 이슈에서 행위자들이 초국가적인 연대를 할 수 있는 매개적 도구가 생긴 것이기 때문이다.
10. 세계화와 거리의 단축은 역행시킬 수 없는 것인가?
☞ 역행시킬 수 없다. 과학기술의 진보는 인류의 삶을 편안하고 간편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삶의 단면들 이 인류가 원하는 것이었다. 세계화에 있어서 다양하게 논의될 수 있다. 개방적인 경제가 가져올 자국 의 폐해를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 개방적인 경제로 인해 무역이 증대될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생길 것이다. 중요한 점은 긍정적으로 보던, 부정적으로 보던 세계화는 역행시킬 수 없는 시대적인 조류이 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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