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Photographer18

Dorothea Lange (도로디어 랭, 1895∼1965) 미국의 여류사진가인 도로디어 랭은 농업안정국(Farm Security Administration)에서 가장 큰 공을세운 사진가중 한 사람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1935∼1942까지 7년에 걸쳐 FSA운동에 가담하면서 공황기의 미국을 특히 이민 노동자나 소작인 등을 중심으로 한 다큐멘타리 사진을 발전시킨 장본인이다. 1930년대 세계공황의 바람이 세차게 불어올때 랭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영업사진관을 경영하고 있었다. 당시 많은 실업자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카메라에 담고자 하여 일련의 사진들을 모아 1934년에 개인전을 열었는데 뜻밖에 반응이 좋았다. 사실 이 사진전을 통하여 농업안정국(FSA) 운동에 감담한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이다. 1935년에 FSA에 가담하게된 그녀는 당시 농민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록.. 2024. 2. 28.
Margaret Bourke-White (마가렛 버크 화이트, 1906~1971) 1904년(혹은 1906년 생) 6월 14일 미국 뉴욕에서 출생했다. 그녀가 사진에 대해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 것은 코넬 대학(Cornell Univ)에서 공부하는 동안이었다. 그녀가 본격적으로 사진을 공부하기 시작한 것은 후에 콜롬비아 대학(Columbia Univ)에서 클라렌스 화이트(Clarence H. White)에게 사진 과정을 공부하면서부터였다. 이 때 그녀는 건축관련 사진에 특별한 흥미를 느꼈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박물관의 파충류 콜렉터로 근무할 예정이었으나 그녀의 사진적인 감각을 아까워 한 동창의 권유로 건축전문 사진가가 될 결심을 하고 클리블랜드에 스튜디오를 개설했다. 버크 화이트에게 포토저널리스트가 될 기회가 찾아왔다. 1929년 버크 화이트는 헨리 루스(Henry Luce)가 창간.. 2024. 2. 28.
Minor Martin White (마이너 화이트, 1908~1976) Solitude is wonderful, too much is stagnating. Gregariousness is healthy, too much scatters the forces. ( 고독이란 멋있지만 지나치면 사람이 발전이 없고, 어울려 사는 것은 건강에 좋지만 지나치면 힘이 분산되어 버린다. ) 사진가에게는 어느 정도의 고독이 필요한가? 인간에게는 빵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특히 예술가에게는 빵보다도 고독이 더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러나 마이너 화이트의 말처럼 창작에 도움이 될 정도의 알맞은 고독을 누릴 수 없다는데 문제가 있다. 특히 예술가에게 있어 고독은 창작의 연료나 마찬가지지만 마이너 화이트는 유달리 고독했던 사진가였다. 그것은 그의 사진만 봐도 알 수 있다. 자신의 고독을 외부로 드러내.. 2024. 2. 28.
Bruce Davidson (브루스 데이비슨, 1933~) 나의 할아버지는 미국으로 이민해 온 유태계 폴란드인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내가 다섯 살 때 이혼했고, 그래서 어머니와 나와 내 동생은 조부모님 댁에서 살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재혼한 할아버지는 시카고로 가서 살림을 차렸다. 한편 어머니는 나와 동생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일했다. 그래서 나와 동생은 종종 외톨이가 되기 일쑤였고 우리끼리만 버려져 있곤 했다. 부모님의 이혼, 할머니의 죽음, 내가 거의 보지 못했던 이 아버지라는 작자와 거의 집에 없었던 어머니, 이런 것들이 어쩌면 학창시절에 내가 저질렀던 문제들, 외로움에 대한 나의 선호(選好), 그리고 가족들에 대한 일종의 초연함 같은 것들을 부분적으로나마 설명해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 인생은 사진을 발견하게 된 .. 2024. 2. 27.
Jean Eugene Auguest Atget (으젠느 앗제, 1856∼1927) 19C 후반기에 사진계에 등장하여 20C 초까지 한 세기의 전환기에 활동한 사진가였던 으젠느 앗제(Jean Eugene Auguest Atget)는 알프레드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와 더불어 현대사진의 선구자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살아생전에는 이와같은 영애로움을 누리지 못한채 가난과 고독, 외로움으로 불운하게 지내다가 세상과 작별하고 나서야 그의 존재가 널리 알려지고 인정을 받은 사진가이다. 1857년에 프랑스 보르도에서 태어난 앗제는 어린나이에 부모를 여의면서 부터 그의 불행이 시작되었다. 어려서부터 삼촌의 손에서 자라나 열살이 넘어서 부터는 선실 급사로 바다에 나갔고 스므살이 넘어서는 떠돌이 극단의 배우로 생활하였다. 그의 배우 생활이라고 해보았자 단역에 지나지 않았으며 주로 무.. 2024. 2. 27.
Laszlo Moholy-nagy (나즐로 모홀리-나기, 1895∼1946) 나즐로 모홀리 나기(Laszlo Moholy-nagy)는 제1차세계대전중에 화가로서 활동을 시작하여 제2차세계대전의 종식 직후에 병으로 사망하여 세계사의 격동시대를 살아간 예술가로서 그는 결코 자기 자신을 사진가라고 생각한 적이 없고 단지 몇 장의 사진이 그의 인생에 관련되었다고 생각하였다고 한다. 모홀리-나기의 활동무대는 모국인 헝가리에서 시작하여 독일, 네델란드, 영국, 미국 등으로 옮기며 각각의 나라에서 주목할 만한 업적을 올린 국제적 예술가였다. 또한 활동분야에 있어서도 기본은 회화였지만 살아있는 동안 실험정신이 넘쳐 사진, 영화의 영상예술 레이아웃, 타이포 그래픽 등의 각종 상업미술, 무대예술이나 무대장치, 금속이나 프렉시유리를 이용한 입체조형과 조형예술 혹은 시각예술의 전체영역에 걸쳤으며 더구.. 2024. 2. 27.
Paul Strand (폴 스트랜드, 1890-1976) 14세에 루이스 위케스 하인 Lewwis Wickes Hine의 지도를 받아 사진에 흥미를 갖고 291화랑에서 스티글리츠의 사진전을 보고 사진가가 될 것을 결심했다. 하인은 스트랜드를 스티글리츠에게 소개를하여 스티글리츠가 291에서 첫 개인전을 갖도록 주선했으며 같은해에 Camera Work지에 사진을 실어주었고 1917년에는 스트랜드의 특집을 실어주었다. 사진 분리파가 순수사진운동을 시작한것은 스티글리츠때문 이였지만 완전히 정립한 사람은 스트랜드였다. 순수사진이 스트글리츠가 주장한 대로의 실질적 결말은 스트랜드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정립이 되었다. 스티글리츠도 그가 배격한 회화적인 사진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스트랜드는 사진 분리파가 내건 순수사진의 주장을 냉철하고 과학적 객관성을 파악하고 사진의기.. 2024. 2. 27.
Eugene Richards (유진 리차드) 유진 리차드는 1944년 메사추세스에서 태어났다. 노스이스트대학과 메사추세스공대에서 사진을 공부했다. 특히 그는 마이너 화이트 아래에서 수업을 받았다. 73년 [조그만 위안 또는 놀라움-알칸사스의 삼각주]를 출판했다. 74년 이후, 그는 프리랜서 사진가로서 [라이프], [뉴욕타임스 매거진], [게오] 등의 잡지사를 통해 사진을 발표했다. 79년부터 최근까지 매그넘 멤버로 활동했다. 지금까지 9권의 책을 냈고, 구겐하임상과 코닥상, 올해의 매거진 사진상, 캐논 포토그래퍼상 등을 수상했다. 그는 사진 인류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이며 다큐멘터리 사진가이다. 그는 최근 비디오저널리트로 활동 중이며, 그의 작품 [그날은 왔다](USA /2000 /26min/Beta/Color/Documentary)가 전주국제영화제에 .. 2024. 2. 27.
반응형